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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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투명인간(창비)』 은 2014년 출간된 장편 소설로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반 세기를 거슬러 주인공 만수를 중심으로 그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을 보여준다. “5월 초순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등장한다. 그들 중에는 만에 하나쯤, 그러니까 0.01퍼센트의 확률로 대단히 드물긴 하지만 투명인간도 있다. 나부터 그러니까.(6p)” 투신 자살을 막기 위한 캠페인 메시지를 보며 투명인간은 생각한다. “연약하고 다정하다가 극악무도해지기도 하고 그런 채로 사랑에 빠지는가 하면 나르시시즘과 자기환멸 사이를 널뛰기하면서 바퀴벌레처럼 강인하게 생존을 이어가는 인간, 인간들.(9p)” 그 인간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가 다리 위헤서 우연히 만난 또 다른 투명인간은 김만수다.

소설은 연극적이다. 단편적으로 이어지는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모두 ‘나’로 ‘만석꾼’이라 불리고도 남을 김만수의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지는 가계도 속 인물들은 각자의 사연을 들려준다.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무대 위로 올라 조명 아래 모노드라마를 펼치듯이 풀어내는 목소리가 쌓이면서 점차 사실로써의 삶이 입체적이고도 생생하게 살아난다. 매번 바뀌는 화자를 바로 알아차리게 될 때도 있지만 페이지를 넘기며 유추할 때도 있어 주인공 찾기는 책을 읽어나가는 또 다른 재미다. 어릴 때 입다 작아져버린 옷을 오리고 바느질해 이은 조각이불이 각각의 사연을 간직한 채 전체적으로 압도하듯이 하나의 이야기 조각은 잇대어지고 자리잡아 다른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김만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성향이 다른 부자지간이다. 깊은 산골 개운리까지 들어가게 한 장본인이라 생각해 아들은 아버지에게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인생 망치고 집안 망조 들게 하는 공부나 책 따위와는 담을 쌓았고(29p) 일부러 더 목소리를 높힌다. “나는 매일 황소처럼 일했고 늘어나는 식구를 먹여 살렸다. 그런 일들이 나를 나로 만들었다. 헛된 말과 이루지 못할 계획이 아니라.(30p)” 만수 아버지는 세 딸과 세 아들에게 식구는 분신이고 뿌리고 울타리이며 끝까지 책임져야 할 존재임을 늘 강조한다. 개운리에서의 시간은 가난하고 고달프지만 동화처럼 아름답게 그려진다. 맏형 백수가 만수에게 돈 끼호테의 로시난떼에 비유해 하는 따뜻한 말, 평생의 노래가 된 “클레멘타인”을 배우던 순간, 고드름 선물과 세상 하나밖에 없는 빙수 등 빛이 난다. 특히 훗날 가슴아픈 일을 당한 명희의 목소리라 다시 읽을 때 더 처연하다.

어린 시절의 학창 시절은 모두의 추억을 소환한다. 시대적 배경은 깨알 장치로 등장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이리 저리 둘러보고 멈춰있게 만든다. 잊고 있던 분위기를 알아채기도, 이건 모르겠네 하는 장면에서는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한다. 형제들이 성장하며 개성도 뚜렷해지고 경험의 폭도 인생의 방향도 달라지지만 죽음과 사고로 지울 수 없는 슬픔을 각인하게 된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 위험과 함정에 빠지기도 하고 공안과 고문이라는 무서운 일들 앞에 인격이 스러지는 일들도 기록된다. 안타까운 선택들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잘못되기 시작한 첫 순간을 바꿀 수 있다면 달라졌을까 되풀이 생각하게 된다. 속도를 내며 불안하게 일방향 성장하던 나라의 시대적 현주소와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임박한 삶의 문제에 내몰리던 개인의 이야기는 두 개의 매듭처럼 얽힌다.

“우리 할아버지가 젊을 때 빚을 져서는 증조할머니하고 할머니, 아버지 데리고 밤중에 도망쳐가지고 내 고향 개운리 산골짜기로 들어오셨다는구만. 그래서 아버지가 어머니하고 결혼해서 우리 육남매를 낳았지. 우리 할아버지가 빚 때문에 도망치지 않았으면 나도 세상에 없었을 거야. 나는 빚 때문에 태어난 거라고. 어떨 때는 빚도 고마운 거야.(302p)” 선하고 열심이며 언제나 솔선수범하던 만수가 삶을 바라보는 무한 긍정의 태도를 보여주지만 이에 드리워지는 그늘도 무시할 수는 없다.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노력인지 고생인지 희망인지에 턱걸이 한 채 안간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왜 투명인간인가? 해리 포터가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세상에 하나 뿐인 투명 망토가 있다면 하고 선망하고 상상할 때의 신비로움과는 다르다. ‘투명 인간’은 도입부 이후 작품 속에서 스치듯 짧은 힌트를 남긴다. 친구 이동해와 “맞다. 인간은 염력으로 피라미드도 세우고 신대륙도 발견했다. 투명인간도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거다.(152p)”, 탈영병 난동 중 시민을 위해 움직였던 전경 김만수를 보며(211p), 김만수의 아내가 태석이에게 힘들어하며 “하지만 태석이는 나를 무시했다. 내가 투명인간이라도 되는 것처럼.(339p)”말할 때 그렇다. 간절함이 끓는점에 도달했을 때, 그렇지 않다면 일반론적인 ‘무시’의 의미일까 유추하는 중 감정이 증폭되는 부분은 만수 부부가 양자로 들인 조카 태석이 장면이다. 가장 예기치 못했던 장면, 감동과 애틋한, 슬프고 마음 아픈 복합적인 감정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 부분을 그렇게 종결을 얼마 안 남기고 맞게 되고 “투명인간 론”을 이후 본격 서술한다.

“갑자기 그게 됐다.(중략) 나는 내 삶의 어느 순간보다 나다웠다.(346p)”, “그게된다, 가끔. 그래서 나는 살 수 있다.(348p)” 소설은 인생의 여러 얼굴, 어느 하나 같을 수 없는 다양한 삶의 모습, 동기와 행동과 그로인한 결과,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우연까지 엮어 파노라마를 펼쳐보인다. 한 가족의 일대기를 따라가며 시 공간의 교집합에서 우리 각자의 추억을, 웃음과 눈물을 발견하게도 된다. 정밀 묘사같은 에피소드의 생생한 재현과 극한 판타지의 결합이 묘하게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투명인간”은 예술로서의 창작물이면서 동시에 유산으로서의 기록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우리들의 이야기, 살아가며 살아내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책 속에서>

-살아 있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도 서로를 안다.(362p)

-보이지 않는 인간은 스스로를 투명하다고 믿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착각, 맹신, 오해이거나 그저 이야기에 불과하거나, 사람들은 그런 데서라도 희망과 위안을 찾으려 하니까. 신화와 동화, 민담은 그래서 생겨났다. 이룰 수 없는 희망을 이야기로 바꾼 것이다. 이야기는 비록 이루어질 수 없다 해도 달콤한 위로가 되어준다. 그래서 허망한 줄 알면서도 인류는 아직 이야기로부터 젖을 떼지 못했다. (364p)

-지금 같은 순간이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내가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 기쁨이 내 영혼을 가득 채우며 차오른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느낌, 개인의 벽을 넘어 존재가 뒤섞이고 서로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진짜 나다.(3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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