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무는 무엇을 보았을까?
샤를로트 길랑 지음, 샘 어셔 그림, 김지연 옮김 / 반출판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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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트 길랑의 그 나무는 무엇을 보았을까?(BARN)는 그림작가 샘 어셔의 이름 때문에도 망설임 없이 선택할 작품이었습니다. STORM : 폭풍우 치는 날의 기적부터 또 다른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드는 기적시리즈의 작가이자 제 2의 퀸틴 블레이크로 불리기에 다시금 로알드 달의 책들을 꺼내오게도 합니다. “그 나무는 무엇을 보았을까?”의 표지에는 커다란 나무 뿐 아니라 무언가를 응시하는 아이들도 보입니다.아이들의 시선이 닿는 곳, 나무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생각하며 책을 펼칩니다.

 

처음에 나는 작고 동그란 도토리였어요. 나뭇가지에서 툭, 하고 떨어져서 땅 속에 묻혔지요. 그러다가 나는 자라기 시작했어요. 무려 수백 년 동안 말이죠. 그렇게 나는 나무가 되었답니다. 그동안 나는 정말 많은 것들을 보았어요.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요?(책 속에서)” 도토리가 자라 수백 년을 지내면서 보고 느끼고 경험할 것들을 상상케 합니다. 책을 한 장씩 넘길때마다 같은 구도의 동일한 화면은 특별한 차이점과 변화를 부각시킵니다. 참나무의 성장 과정이 가장 눈에 띄지만 시간의 흐름은 계절의 변화와 배경의 전환, 참나무 주변의 사람들로 시선을 붙듭니다. 특히 아이들의 모습은 놀이 형태와 복장의 변화로 보여줍니다.

 

아름답고 직관적인 그림 만으로도 참나무가 본 것들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글이 더해지면 한층 세밀하게 감정까지 공감하게 됩니다. 자연의 대변자인 참나무는 묵묵히 지켜봅니다. 나무들이 베이지고 숲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마을이 생기는 것과 쟁기질로 파헤쳐지는 주변의 땅, 도끼를 휘두르며 잘라낸 나무로 배를 만들고, 공장과 도시의 확장으로 좁아드는 땅, 증기 기관차, 굴착기, 비행기까지 지켜보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독자의 마음도 안타깝네요. 그럼에도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었답니다.(책속에서)” 바로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에서, 생명을 이어갈 새 도토리에서 희망을 봅니다.

 

그 나무는 무엇을 보았을까?”를 읽으며 연상되는 작품은 버지니아 리 버튼의 1943년 칼데콧 상 수상작 작은 집 이야기입니다. 걸작 그림책의 반열에 올라있는 이 작품의 작은 집참나무로 대체하여 다시 한 번 독자를 일깨우고 울림을 주는 듯 했습니다. 책의 부록격으로 실린 한국사와 세계사의 굵직한 요약은 2020년 코로나 대유행까지 정리함으로 시간과 환경의 역습을 생각게 하고 1000년 후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 참나무의 한 살이도 시간과 생명에 대해 숙고하게 합니다. 밝고 경쾌한 톤으로 진지하게 질문하는 그림책 그 나무는 무엇을 보았을까?”는 책을 덮은 후에도 긴 여운을 남깁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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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65
샬럿 브론테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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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Jane Eyre(열린책들/이미선 옮김/1847)』 는 21세기의 현재까지 영화로, 연극으로, 낭독 뮤지컬로 독자 곁에서 여러 옷을 갈아입으며 함께하고 있다. 완역 번역본도 여러 선택지가 있지만 스핀 오프작으로 제인에어는 이제 그만, 버사 메이슨의 눈과 입으로 이야기하는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부터 제인 에어를 주요 모티브 삼아 확장하며 생각거리를 던지는 패러디 작품, 어른도 아이도 기뻐할만큼 사랑스럽게 각색되어 나온 근래의 일러스트 판형까지 그녀는 독자의 시선에서 빗겨 사라지지 않는다.

 

1847년은 샬럿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 자매가 각각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의미깊은 해 이기도 하다. 역자 해설의 다음 문장은 작품의 특징을 잘 설명한다. 인기를 누리며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제인 에어』는 연애 소설, 고딕 소설, 종교적인 주제를 다룬 소설로서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위선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사회 비판서이자 주인공 제인 에어의정신적, 정서적 성장을 다룬 교양 소설 혹은 성장 소설로도 익힐 수 있다.(753p)” 더불어 정신분석학적인 텍스트, 버사 메이슨을 제인 에어의 거울 이미지로 해석해 볼 수 있는 페미니즘 소설, 인종적 편견을 보여주는 사회 문화적인 텍스트(754p)로도 접근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완역으로는 각각 다른 출판사의 판형으로 두 번째 읽는 “제인 에어”는 우선 ‘독서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을 직접 경험케 해주는 작품이다. 한 순간도 언제 다 읽나,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고 책 속으로, 제인 에어의 공간과 주변의 인물들과 심지어 꽃과 나무, 바람까지 촉감되는 가상공간으로의 초대를 내내 즐겼다. 제인 에어가 살아온 시간의 궤적을 일방향으로 쫓을 수 있는데 시기별 장소가 또 하나의 구조물로써 안정감을 준다. 게이츠헤드에서 로우드까지의 어린시절, 손필드에서 로체스터와의 만남, 윗크로스의 무어하우스에서 과거를 절연한 시간, 다시 손필드로, 그리고 완벽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제인 에어”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때로 ‘독자여’하고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기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제인 에어의 고난 앞에서는 응원하고, 부당함을 겪을 때면 함께 분노하고, 위험 앞에서는 숨죽이며 마음 졸이곤 했다. 부당함은 여러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가장 압도적인 것은 ‘붉은 방’의 감금이다. ‘음산한 신성화의 느낌’을 간직한, 진한 붉은 다마스크 커튼과 붉은 양탄자, 탁자를 덮는 선홍색 천 덮개, 썰렁하고 조용하고 엄숙한, 외삼촌이 죽은 이후로 아무도 기거하지 않았던 방에 두려움에 떨며 홀로 갇혔던 어린시절의 기억은 결코 지워지기 어려운 트라우마다. “그런데 제인 에어, 너는 착한 아이니?(49p)”라는 질문과 “착한 아이가 되길 바란다.(67p)”는 판단하는 눈길도 그렇다. 자신의 의지 너머에 있던 버사 메이슨의 존재나 후에 세인트 존의 강압적 청혼도 결코 쉬운 장애물만은 아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제인 에어는 자신의 조건과 사회적 편견에 의기소침하지 않고 분별있는 목소리를 낸다. 자신을 존귀히 대하면서도 엄격하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에도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질서! 우는 소리 하지 말기! 감상에 빠지지 말기! 미련 갖지 말기! 나는 이성과 결단만 허용할 것이다.(262p)” 이성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성향, 동시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함은 가장 매력적인 그녀의 특징이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고 세밀하게, 상대가 충분히 공감하게끔 풀어서 그려보이는 점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대화를 통해 제인 에어는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성실히 밝히는데 그들의 대화를 곁에서 듣는 즐거움, 말들을 왜 이렇게 잘하나 생각할 때 다시 한 번 작가의 필력에 감탄했다. 비유와 상징, 묘사와 인용, 반복적이고 리드미컬한 단어의 조화, 재치가 넘치고 유머가 웃게 만드는 순간들까지 가득하다. “단지 저보다 나이가 많다거나 세상 경험이 더 많다는 점 때문에 제게 명령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보다 더 뛰어나다는 주장은 당신이 어떻게 시간과 경험을 이용했느냐에 달려 있어요.(216p)”

 

한때 입장동화가 강조되었듯이 다른 등장 인물의 편에서 상황을 바라본다면 다른 생각들이 따라온다. “항상 그애 엄마가 싫었어.(374p)”로 시작되는 리드 외숙모의 마지막 말들은 결국 그 속에 함몰되어 자신 뿐 아니라 가족 모두를 잃어간 그녀의 부정적인 감정의 강도를 확인케 한다. “진실하고 너그러운 감정을 그리 대단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 두 성격은 그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한 사람은 참을 수 없이 혹독하고 다른 한 사람은 멸시받을 정도로 무미건조한 성격이 되었다. 판단력 없는 감정은 사실 물로 탄 약 같고 감정으로 순화되지 않은 판단력은 너무 쓰고 까칠까칠해서 도저히 삼킬 수 없는 조각 같다. (382p)”

 

“지배하고 정복할 권리와 살아서 봉기하여 마침내 군림할 권리, 그렇다, 그러니까 말할 권리를 주장했다.(408p)”, “저는 지금 관습이나 전통의 매개를 통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의 매개를 통해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의 영혼에 말을 거는 것은 바로 제 영혼이에요.(410p)” 그러나 제인 에어는 그저 돌기둥인 윗크로스, 벌판, 히스 속을 헤매며 무모할 만큼 극한의 상황에 스스로 처한다. 처음 읽었던 때 적나라한 고통이 너무도 현실적이라 놀라왔으며 시간이 지나 또 다른 변곡점에 이를 순간 제인이 로체스터의 목소리를 듣는 장면은 제일 인상깊었다. 천성의 가장 세밀한 부분까지 잘 맞는(733p) 영혼의 단짝이 어려움을 이기고 결실을 맺는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된다. 결혼 후 10년이 된 시점에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며 정리한 제인 에어의 수기는 앞으로도 계속 현명하고 아름답운 길을 걸어가리라 넉넉히 짐작케 한다. 제인 에어의 많고 많은 말 중 하나를 새로운 모토로 삼는다. “할 일은 아무리 이른 시간에 시작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아.(523p)” 읽을 때마다 더 좋아지는 작품들이 있어 감사하다.

 

 

          책속에서>

 

- 무엇보다 가장 좋아했던 것은 절대 끝나지 않는 이야기에 마음의 귀를 여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끊임없이 서술되고, 내가 바라지만 내 실제 삶에는 없는 온갖 사건과 생명력, 열정, 감정으로 고무된 이야기였다.(176p)

-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해.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친구가 없으면 없을수록, 오점이 없으면 없을수록 나는 나 자신을 더욱더 사랑해. 나는 하느님이 주시고 인간이 인정한 법을 지킬 거야.(중략) 법과 원칙은 유혹이 없는 때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야. 그것들은 몸과 영혼이 그 준엄함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킨 지금과 같은 그런 때를 위해 존재하는 거야. 그것들은 준엄해. 그것들은 절대 더럽혀져서는 안 돼. 내가 개인적인 편의를 위해 법과 원칙을 어긴다면 그것들의 가치가 어떻게 되겠어? 그것들은 가치가 있어. 나는 항상 그렇게 믿어 왔어. (5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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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내 기분
알렉스 앨런 지음, 앤 윌슨 그림, 사라 데이비스 컨설팅, 정유진 감수 / 사파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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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앨런의 오늘의 내기분(사라피/앤 윌슨 그림)은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감정그림책입니다. 하지만 그림 작가나 역자 외에 조금 다른 이름도 보입니다. ‘컨설팅감수로 지식전달이라는 목적과 함께 또 다른 유익을 염두에 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감정을 다루는 책들을 근래 더 자주 만나게 되는데 그들과 다른 특징은 무엇일지 눈여겨 보게 됩니다. 책의 표지에는 크고 튼튼해 보이는 대관람차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보랏빛과 짙은 푸른빛 배경에 선명한 별들까지 밤하늘처럼 아름답네요. 관람차의 일인용 좌석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타고 즐기고 있습니다. 속표지에서 동물들은 구름을 타고 하늘을 유영합니다. 더 자유로와 보이네요.

 

책이 시작되면 감정의 여행도 시작됩니다. 행복, 슬픔, , 두려움, 걱정까지 다섯 가지 주요 감정을 살펴봅니다. 각각의 감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던지면 나도 모르게 집중하면서 정의 내려보기도, 연상되는 것들을 자유로이 내뱉기도 합니다. 뒤이어 이 책의 특징인 과학 한 스푼이 등장하는데 사람의 기분과 생리적 반응의 관계를 설명해줍니다. 자연스런 신체 현상을 이해하고 나면 감정을 긍정적으로 다루는게 조금 더 수월해집니다. 이때 함께해 보아요코너에서 때로는 쉽고 때로는 유쾌한 조언을 제시하는데 이를 따름으로써 우리는 내 감정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것을 알게되고 조금씩 문제해결력을 높이게 됩니다.

 

오늘의 내기분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은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에 있습니다. 제시되는 다섯 가지 감정을 가장 잘 대표할 만한 삽화는 그 자체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슬픈 장면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책을 타고 떨어질 듯 하고 각각의 방울이 비슷해 보이면서도 모두 다른 색감, 다른 무늬라는 것을 눈치채게 되면 슬픔의 이유에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화나고 불안하고 걱정하는 장면들이 감정을 충만하게 대변하기 때문에 직면함으로 이미 카타르시스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으로 아이의 기분을 읽어주고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그와 동시에 어른의 마음도 멈추고 쉼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뭇잎에 쓴 걱정거리가 강물을 타고 떠가는 모습을 보니 나의 걱정도 가벼워지네요. 흘러가는 것은 때로 마침표나 정답보다 더 힘이 세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책과 함께 제공되는 표정 팻말은 멋진 선물입니다. ‘행복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해서 지금 내 기분을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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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경험치를 쌓는 중입니다
김수정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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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의 『미술 경험치를 쌓는 중입니다(아트북스)』는 “일상에서 예술을 만나는 ‘손쉬운’방법으로 여러분에게 미술의 위로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9p)”라는 마음을 담은 따뜻한 초대장으로 시종일관 그 길을 안내한다. 오랜 기간 교육 현장에서 소통해온 시간은 대상자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에 관심을 두게 했고 본인이 검증한 가장 좋은 것들로 채워 선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시대가 어쩌면 형식과 타인의 시선이라는 포장을 걷어내고 본질을 선택하고 내면의 성장에 집중하게끔 강제했을 것이다. 익숙하지 않았지만 익숙해지도록 그래서 충만하고 자유로울 수 있도록 저자의 응원이 전해진다.

 

 

이 작지만 예쁜 책, 신기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한 책, 미술을 전공한 적이 없지만 늘 선망했던 나의 시간을 ‘잘했어’ 라며 지지해주는 책, 내가 아는 것 다 알려줄게 하며 아낌없이 내어주는 책, 나의 내일이 달라질 것 같다고 가슴 뛰게 하는 책, 줄과 체크로 가득 채워진 책 “미술 경험치를 쌓는 중입니다”를 다시 열어 본다. 첫 장은 강렬한 그녀, 프리다 칼로다. 화집은 물론이고 인물 이야기부터 여러 버전의 그림책까지 그녀의 이야기는 다양한 각도로 조명되는데 SNS 셀러브리티의 가능성은 공감되면서도 신선했다. 결국 해시태그와 검색과 좋아요에 소심 미적지근했던 나조차 긍정 게이지가 약간 상승한다.

 

 

“그림을 부르는 그림”에서는 앞선 그림의 영감을 받아 그린 오마주 작품들, 짝을 이루는 연작들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루이 베루가 나오는데 그는 20장 “미술관에서 그림 그리기를 허하라”에 재등장하고 이번에는 “모나리자 도난 사건”과 함께 기억에 남는 이름이 된다. “뭉크는 그림을 자식처럼 예뻐해서 그림을 팔았더라도 똑같은 그림을 다시 그려 모든 그림을 자신이 갖고 있기를 원했다(49P)”는 말에 뭉크가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취향은 수많은 실패와 낭비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53P)”는 말과 함께 자신만의 “궁극의 넘버원”을 갱신하려는 노력, 열정은 배우고 싶다. “취향을 선물하는 사람”을 읽으며 동유럽 여행에서 클림트 우산을 선물해줬던 후배를 떠올렸다. ‘뭐 이런걸 다’ 머쓱해하면서도 정작 손떨려 비닐도 못빼고 먼지 속에 고이 간직하는 명화 우산, 이제 꺼내야 겠다 마음먹으며 선물 목록을 작성할 생각에 내 맘도 몽글몽글해진다.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큰, 그러나 강렬했다는 그웬 존의 “누드 소녀”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의 그 정물화가 선명히 떠올랐다. 너무 작은데도 너무 강력했던 그림, “해골, 촛대와 책” 세잔이었다. 촬영 금지 표시 앞에 그림을 외워야 하나 생각하며 미치는 줄 알았다. 왜 검색을 하지 않았을까 그 또한 불가사의다.

 

 

“그러나 모든 감상법의 궁극적인 목표는 같습니다. 바로 미술을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76P)” 이 문장에 별표를 한다. 미술 일기 쓰는 법부터 트레이싱, 피가되고 살이 되는 사이트 목록,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작품과의 인연, 부럽기 그지없는 마인드맵의 빼곡함, 영화 속 그림 찾기······그렇게 다시 페이지를 넘긴다. 마지막으로 “너와 함께라면, 미술관”에서 나의 인생의 미술관, 너무 오래 가보지 못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올해는 가보리라 내게 약속한다.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아이를 데리고 유모차를 밀고도 갔던 곳, 아기의 소중한 목각 버섯 딸랑이를 잃어버려 경사진 통로를 무한반복 수색했던 곳, 조각 공원의 “노래하는 사람”을 보고 “아저씨가 왜 저래?”끝없이 묻던 아이, 그 아이가 훌쩍 커 대학생인데 다시 손잡고 가볼 생각이다. “미술 경험치를 쌓는 중입니다”속 “미술로 행복해지는 방법”으로 따로 엮은 팁만 잘 활용해도 알차고 훌륭한 방법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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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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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문학동네/안정혁 옮김)』은 대문호 괴테가 25세에 발표한 첫 번째 작품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 사조로 이행하던 과도기에 괴테는 낭만주의의 선구자로서 이성과 질서, 규범 보다는 인간 본연의 감성에 충실한 대변자 베르테르를 창조한다.(괴테의 교양/생각뿔) 너무 유명해서 식상하다 싶을 베르테르, 당대의 아이돌로서 모방의 대상이었고 베르테르 효과라는 신드롬을 초래하기도 했던, 그러나 ‘누구나 알지만 정작 읽지 않는’이라는 수식을 받곤 하는 ‘고전’의 한 권으로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21세기에도 유효한 실제적 질문을 던진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절친한 벗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괴테 역시 루소나 리처드슨의 영향을 받았지만(202p) 서간소설 중 가장 고지를 점하는 작품일 것이다. 친근한 어조로 최대한 솔직하게 감정을 서술함으로 수신인을 납득시키고, 이해와 지지에 대한 호소를 은연중에 내포하기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수신인은 곧 독자이기도 해서 베르테르가 겪는 사건과 감정의 굴곡을 촘촘히 간접경험하게 된다. 7주간 이어지는 총 82편의 편지는 “그렇게 떠나오고 나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네! 내 소중한 친구,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대체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11p)”로 시작되는 기대와 설렘 가득한 출발의 기운으로 시작한다. 기대는 기념비적 인물이 된 로테와의 만남으로 곧바로 이어지고 둘이 나눈 이야기와 정서적 교감은 모든 순간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로테를 영웅이자 시인인 오시안과 동격으로(55p), 자석산의 예화를 떠올리며(63p) 거부할 수 없는 가치인 유일한 사랑으로 고조시킨다.

 

 

1부에서 베르테르와 알베르트의 대화는 인상적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알베르트가 베르테르의 열정을 극단적이고 과도하다 여기나, 이에 반하는 베르테르의 입장은 타협하지 않는 순수함이 스스로를 연소시키는 것 조차 허용한다. 로테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향했지만 그곳에서도 쉼을 얻지 못하는 베르테르는 말한다. “활동이란 게 대체 뭔가! 감자를 심고 시내에 가서 곡식을 내다 파는 사람이 나보다 많이 활동할 걸세. 그게 아니라면 사슬에 묶여 사는 이 노예선에서 10년은 더 몸 바쳐 일할 용의가 있네.(97p)” 사회가 요구하고 받아들여지는 인간상이나 삶이 민감한 베르테르에게는 부조리하게만 다가온다.

 

 

나름의 시도를 접고 로테의 곁, 로테의 대기권으로 돌아온 베르테르는 이전에 알았던 사람들과 차례로 조우하며 그 속에서 자신 역시 다르지 않을 비극을 조금씩 발견한다. “나만 이 모양으로 사는 건 아닐 테지.(117p)”라는 목소리가 슬프고 안쓰럽다. 농가의 젊은 머슴이나, 이성을 잃고 꽃을 찾아다니는 하인리히나 모두 베르테르를 변주하고 있다. 다른 얼굴들이지만 그는 ‘우리’라고 부른다. “자네는 구제받을 수 없네, 불쌍한 인간아! 우리가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네.(150p)” 극도로 사로잡혀간 인간의 점진적 변화 과정이 생생해서 더 애처롭게 남는다. 아름다운 묘사와 문장이 베르테르의 슬픔을 더 짙게 채색한다.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초와 사탕과자와 사과 등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앞에 나타나 하늘을 날 듯 황홀해지던 시절 말입니다.(157p)” 자신의 어린시절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들려주던 베르테르, 아이들과 별과 시를 사랑하던 베르테르가 다시 맞지 못한 그 시간이 가슴아프다.

 

<책 속에서>

-또한 그는 내 마음보다는 내 이성과 재능을 더 높이 평가한다네. 그러나 마음은 내가 자부심을 느끼는 유일한 것으로, 모든 에너지와 모든 행복 그리고 모든 불행의 원천이네. 아, 내가 아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지만 이 마음은 나만의 것이라네.(114p)

-사람들이 서로 가지겠다고 다투지 않는 대상이 단 하나도 없네! 건강, 평판, 기쁨, 휴식 등 모든 것이 그렇다네. 대부분 어리석고 이해심이 부족하며 옹졸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도 그들은 좋은 의도로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네. (1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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