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65
샬럿 브론테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Jane Eyre(열린책들/이미선 옮김/1847)』 는 21세기의 현재까지 영화로, 연극으로, 낭독 뮤지컬로 독자 곁에서 여러 옷을 갈아입으며 함께하고 있다. 완역 번역본도 여러 선택지가 있지만 스핀 오프작으로 제인에어는 이제 그만, 버사 메이슨의 눈과 입으로 이야기하는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부터 제인 에어를 주요 모티브 삼아 확장하며 생각거리를 던지는 패러디 작품, 어른도 아이도 기뻐할만큼 사랑스럽게 각색되어 나온 근래의 일러스트 판형까지 그녀는 독자의 시선에서 빗겨 사라지지 않는다.

 

1847년은 샬럿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 자매가 각각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의미깊은 해 이기도 하다. 역자 해설의 다음 문장은 작품의 특징을 잘 설명한다. 인기를 누리며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제인 에어』는 연애 소설, 고딕 소설, 종교적인 주제를 다룬 소설로서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위선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사회 비판서이자 주인공 제인 에어의정신적, 정서적 성장을 다룬 교양 소설 혹은 성장 소설로도 익힐 수 있다.(753p)” 더불어 정신분석학적인 텍스트, 버사 메이슨을 제인 에어의 거울 이미지로 해석해 볼 수 있는 페미니즘 소설, 인종적 편견을 보여주는 사회 문화적인 텍스트(754p)로도 접근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완역으로는 각각 다른 출판사의 판형으로 두 번째 읽는 “제인 에어”는 우선 ‘독서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을 직접 경험케 해주는 작품이다. 한 순간도 언제 다 읽나,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고 책 속으로, 제인 에어의 공간과 주변의 인물들과 심지어 꽃과 나무, 바람까지 촉감되는 가상공간으로의 초대를 내내 즐겼다. 제인 에어가 살아온 시간의 궤적을 일방향으로 쫓을 수 있는데 시기별 장소가 또 하나의 구조물로써 안정감을 준다. 게이츠헤드에서 로우드까지의 어린시절, 손필드에서 로체스터와의 만남, 윗크로스의 무어하우스에서 과거를 절연한 시간, 다시 손필드로, 그리고 완벽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제인 에어”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때로 ‘독자여’하고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기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제인 에어의 고난 앞에서는 응원하고, 부당함을 겪을 때면 함께 분노하고, 위험 앞에서는 숨죽이며 마음 졸이곤 했다. 부당함은 여러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가장 압도적인 것은 ‘붉은 방’의 감금이다. ‘음산한 신성화의 느낌’을 간직한, 진한 붉은 다마스크 커튼과 붉은 양탄자, 탁자를 덮는 선홍색 천 덮개, 썰렁하고 조용하고 엄숙한, 외삼촌이 죽은 이후로 아무도 기거하지 않았던 방에 두려움에 떨며 홀로 갇혔던 어린시절의 기억은 결코 지워지기 어려운 트라우마다. “그런데 제인 에어, 너는 착한 아이니?(49p)”라는 질문과 “착한 아이가 되길 바란다.(67p)”는 판단하는 눈길도 그렇다. 자신의 의지 너머에 있던 버사 메이슨의 존재나 후에 세인트 존의 강압적 청혼도 결코 쉬운 장애물만은 아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제인 에어는 자신의 조건과 사회적 편견에 의기소침하지 않고 분별있는 목소리를 낸다. 자신을 존귀히 대하면서도 엄격하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에도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질서! 우는 소리 하지 말기! 감상에 빠지지 말기! 미련 갖지 말기! 나는 이성과 결단만 허용할 것이다.(262p)” 이성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성향, 동시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함은 가장 매력적인 그녀의 특징이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고 세밀하게, 상대가 충분히 공감하게끔 풀어서 그려보이는 점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대화를 통해 제인 에어는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성실히 밝히는데 그들의 대화를 곁에서 듣는 즐거움, 말들을 왜 이렇게 잘하나 생각할 때 다시 한 번 작가의 필력에 감탄했다. 비유와 상징, 묘사와 인용, 반복적이고 리드미컬한 단어의 조화, 재치가 넘치고 유머가 웃게 만드는 순간들까지 가득하다. “단지 저보다 나이가 많다거나 세상 경험이 더 많다는 점 때문에 제게 명령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보다 더 뛰어나다는 주장은 당신이 어떻게 시간과 경험을 이용했느냐에 달려 있어요.(216p)”

 

한때 입장동화가 강조되었듯이 다른 등장 인물의 편에서 상황을 바라본다면 다른 생각들이 따라온다. “항상 그애 엄마가 싫었어.(374p)”로 시작되는 리드 외숙모의 마지막 말들은 결국 그 속에 함몰되어 자신 뿐 아니라 가족 모두를 잃어간 그녀의 부정적인 감정의 강도를 확인케 한다. “진실하고 너그러운 감정을 그리 대단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 두 성격은 그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한 사람은 참을 수 없이 혹독하고 다른 한 사람은 멸시받을 정도로 무미건조한 성격이 되었다. 판단력 없는 감정은 사실 물로 탄 약 같고 감정으로 순화되지 않은 판단력은 너무 쓰고 까칠까칠해서 도저히 삼킬 수 없는 조각 같다. (382p)”

 

“지배하고 정복할 권리와 살아서 봉기하여 마침내 군림할 권리, 그렇다, 그러니까 말할 권리를 주장했다.(408p)”, “저는 지금 관습이나 전통의 매개를 통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의 매개를 통해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의 영혼에 말을 거는 것은 바로 제 영혼이에요.(410p)” 그러나 제인 에어는 그저 돌기둥인 윗크로스, 벌판, 히스 속을 헤매며 무모할 만큼 극한의 상황에 스스로 처한다. 처음 읽었던 때 적나라한 고통이 너무도 현실적이라 놀라왔으며 시간이 지나 또 다른 변곡점에 이를 순간 제인이 로체스터의 목소리를 듣는 장면은 제일 인상깊었다. 천성의 가장 세밀한 부분까지 잘 맞는(733p) 영혼의 단짝이 어려움을 이기고 결실을 맺는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된다. 결혼 후 10년이 된 시점에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며 정리한 제인 에어의 수기는 앞으로도 계속 현명하고 아름답운 길을 걸어가리라 넉넉히 짐작케 한다. 제인 에어의 많고 많은 말 중 하나를 새로운 모토로 삼는다. “할 일은 아무리 이른 시간에 시작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아.(523p)” 읽을 때마다 더 좋아지는 작품들이 있어 감사하다.

 

 

          책속에서>

 

- 무엇보다 가장 좋아했던 것은 절대 끝나지 않는 이야기에 마음의 귀를 여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끊임없이 서술되고, 내가 바라지만 내 실제 삶에는 없는 온갖 사건과 생명력, 열정, 감정으로 고무된 이야기였다.(176p)

-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해.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친구가 없으면 없을수록, 오점이 없으면 없을수록 나는 나 자신을 더욱더 사랑해. 나는 하느님이 주시고 인간이 인정한 법을 지킬 거야.(중략) 법과 원칙은 유혹이 없는 때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야. 그것들은 몸과 영혼이 그 준엄함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킨 지금과 같은 그런 때를 위해 존재하는 거야. 그것들은 준엄해. 그것들은 절대 더럽혀져서는 안 돼. 내가 개인적인 편의를 위해 법과 원칙을 어긴다면 그것들의 가치가 어떻게 되겠어? 그것들은 가치가 있어. 나는 항상 그렇게 믿어 왔어. (51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