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지킴이 레이첼 카슨 - 레이첼 이모와 함께한 밤 바닷가 산책길 지구를 살리는 그림책 10
데버러 와일즈 지음, 대니얼 미야레스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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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버러 와일즈의 『지구지킴이 레이첼 카슨(보물창고/대니얼 미야레스 그림)』은 “지구를 살리는 그림책”시리즈의 열 번째 책이다. 보물창고 출판사의 상상놀이터 시리즈나 I LOVE 그림책 시리즈까지 매력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는데 2016년부터 나오고 있는 생태 환경 테마의 지구를 살리는 그림책은 어린이를 위한 지식 정보 도서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나아가 연령에 상관없이 공존이라는 주제로 질문을 던지며 멈추어 생각하게끔 해준다. “지구 지킴이 레이첼 카슨”은 “레이첼 이모와 함께한 밤 바닷가 산책길”이라는 부제가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지구의 딸, 지구의 목소리라고 불리는 레이첼 카슨, 환경운동가로서 “침묵의 봄”은 기념비적인 저서가 되었으며 해양 생태 과학자이자 작가로서의 재능을 온전히 헌신했던 그녀를 그림책으로 만난다.

표지는 검푸른 밤 풍경 속이지만 노란 등잔 빛이 따뜻하다. 타이틀 표지의 외딴 집 한 채는 숲에 둘러싸인 채 아직 불이 꺼지지 않았다. 천둥치는 밤, 로저는 두렵기도 했지만 이모의 제안에 비옷과 장화, 손전등을 들고 밤 바닷가 산책을 나선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소리도 이전과는 달라지는 순간, “자, 생물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렴.”하는 이모의 말에 화답하듯 부엉이도 개구리도 귀뚜라미도 자기만의 소리를 낸다. 바닷가에 도착해서 날아가는 바닷새, 도망치는 달랑게들과 놀고, 이제 손전등도 끄고 눈도 감았다 뜬 잠시 후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여러 색깔 보석처럼 반짝이며 바다를 빛나게 하는 것, 바다의 작은 생명체들은 장관을 이룬다. 이 장면은 눈 앞에 깊은 빛이 드리워진 것처럼 아름답게 그려졌다. 번지는 수채화의 물감이 온전한 반짝임처럼 보인다. 로저는 폭풍 속에서 길 잃은 반딧불이를 담아와 돌봐준 후 자연으로 돌려 보낸다.

잠시의 외출이지만 자연의 품에 한껏 안겼던 로저는 이 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넌 숲과 바다의 모든 생물들을 사랑하는 아이란다. 넌 그들의 용감한 보호자야.”라는 카슨의 말도 마음 속에 심어질 것이다. 책의 말미에는 레이첼 카슨과 이 그림책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 그림책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 중에서 “나의 희망은 레이첼이나 로저처럼 여러분이 밖으로 나가 자연 속에 있을 때, (중략) 경이감으로 가득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책 속에서, 부록)”라는 부분은 자연과 우리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왜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지식 정보책답게 “생물 발광”에 대한 설명도 담아 이 신비한 현상을 더 찾아보고 싶어진다. 그림책을 통해 그녀와 함께 한 시간은 짧지만 감동과 여운은 영롱하기만 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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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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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국의 『순교자/문학동네/도정일 옮김』 는 1964년에 출간되었다는 점에서 먼저 주목하게 된다. 역자는 그 의미를 한국 전쟁 발생시점에서 14년 만에, 휴전 기점으로 10년 후라는 것 만으로도 이미 ‘경이롭다’(313p.해설)고 한다.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현재 진행형 고통 속에서 여전히 혼란스러울 시점에 서른 두 살의 젊은 작가는 완벽한 작품화를 통해 마땅히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기록으로 보전하고 객관화 시킴으로 공론의 장을 마련한다. “이 작품은 욥, 도스토옙스키, 카뮈의 위대한 전통 속에 있다.(314p)”고 초판 출간시 뉴욕 타임스는 평가했다는데 읽는 내내 언급한 인물과 작품들의 그림과 장면들로 쉼 없이 왕래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1950년 6월 어느 이른 아침 전쟁이 터졌고 북한 인민군이 수도 서울을 점령했을 무렵 우리는 인류문명사 담당 강사로 재직했던 대학을 이미 떠난 뒤였다.(11p)” 유엔군이 북한 수도 평양을 점령했던 전쟁이 발발한 해 10월, 육군 본부 정치정보국의 파견대 본부를 장로교회 평양 중앙교회 맞은편으로 잡는다. 화자인 이 대위는 ‘실종된 목사들에 대한 조사’임무를 맡는데 집단 총살 당한 열 두명과 살아있을 두 명을 찾아내 사실관계를 밝혀야 한다. 이 대위의 동료이면서 친구인 박 군의 아버지도 이미 죽은 목사들 중 한 명이고 신앙의 갈등으로 부자의 연을 끊었던 박군은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추적한다. 과연 당신의 말처럼 끝까지 소신을 지켜낸 죽음이었을까, 실패한 죽음이었을까를. 살아남은 두 목사, 신 목사와 충격을 못 이기고 미쳐버린 젊은 한 목사까지 그 둘과 죽음을 맞은 열 명에 대해 열은 어떻게 죽었는가 왜 둘은 살아남았는가, 목사들의 순교에는 살아남은 자의 배반이 있었을까 의심의 눈초리는 답을 요구하고 순교자와 생존자의 프레임은 견고해가며 점차 원하는 답을 의도한다.

반복되는 화두는 ‘진리란 무엇인가’이다. 신 목사의 진리는 양심의 진리, 신앙의 진리(55p)고 이에 반해 이 대위에게 진리는 ‘인간에 관한 사실(55p)’로 결을 달리한다. 장대령은 “열두 명의 순교자들은 위대한 상징이야. 그들은 고난받은 교인들의 상징이자 궁극적인 정신적 승리의 상징이지.(75p)”라며 목표하는 진리가 분명하다. 고 군목의 출현은 또 다른 물음을 동반한다. 군목이 버려야 했던 결국 공산당에게 죽음을 맞은 네 사람 중 한 명은 빨갱이들의 끄나풀(80p)이었지만 자신의 교회 장로의 아들로 영웅적인 죽음이었다 믿고 있는데 ‘사실’을 밝히는 것이 진리 편 아닌가. “그 사람은 이미 늙었고, 자네가 말한 그 영광스러운 환상이 필요한 사람이야. 어떻게 감히 그 늙은이에게 또 고통을 안겨줄 수 있겠어?(83p)“ 신목사는 그를 만류한다, 그의 진리 실현을 가로막는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 누가 진리 편인가, 진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진리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더라도 선한 목적이면 용납해야 하는가, 선과 악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이 질문은 마지막까지도 계속 된다. 신 목사에게 이 대위는 말한다. ”저라면 진실을 얘기하겠습니다. (중략) 진실은 뇌물을 먹일 수 없는 겁니다.(85p)“ 하지만 은밀히 요청되고 만들어지는 진실을 본다. ”젊은 친구, 그들이 진실을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소?(103p)“ 진실은 그것이 진실이기에 밝혀지고 발표되어야 한다는 이 대위에게 장 대령은 “진실은 묻어두어도 여전히 진실이야. 그걸 꼭 까발리고 떠들어야 하나?(153p)”며 반대한다. 진실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법인데 대의를, 또 순교자들이 순교자로 남는다는 선한 목적을 위해, 장 대령은 신 목사에게 양심을 보증하기로 한다. 이는 선한 거짓말을 견딜 양심이다. 양심의 순결을 더럽히지 않는, 양심의 품질과 관계 없는 일종의 면역된 양심(109p)을 만드는 일에 착수하는데 모든 이론은 예비되고 조정 가능하다.

“목사님의 신-그는 자기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을 알고 있을까요?(37p)”, “목사님, 목사님의 신은 저들의 고난을 진정 알고 있을까요?(202p)” 되풀이되는 이 질문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이 동생 알료샤에게 나열한 예들을 상기시킨다. 죄없는 어린이들에게 가하는 잔인한 학대의 사례를 들며(1권479~496p/문학동네) 그런 신이라면 신이 존재하더라도 그 나라의 입장권을 돌려주겠다고 단언한다. 죄 없는 그들이 고통당할 때 신은 그 고난을 알고 있는가, 왜 침묵하는가 하는 질문은 오래 되었고 여전히 반복된다. 신 목사는 아내와 한 목사의 죽음이라는 두 번의 쓰디쓴 실패로 무서운 결단을 하고 그것을 자신의 십자가라 부른다. 죽음 이후에 아무것도 없다는 내면의 확신을 홀로 간직하겠다며 ‘하나님의 종에게 숨겨진 그 무서운 진실(263p)’을 감춘다. “우린 절망에 대항해서 희망을 가져야 하오. (중략) 우린 인간이기 때문이오.(257p)”신과 인간의 이분법 속에 인간의 서를 선택하는 목사. 가엾은 인간들이 평화와 믿음과 축복의 ‘환상’ 속에서 눈감게 하겠다는 희망은 다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 대심문관의 논리와 일치한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을 놓을 수 없는 흡인력을 지닌 작품으로 매 장이 의외의 전환이나 새로운 절정으로 맺어지기에 다음 장으로 속히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장면의 전환과 그에 따른 극적 효과는 연극을 보듯이 눈앞에 그려지고 예상을 빗겨가는 진행과 속도감 있는 전개는 각 인물들이 쫓는 개별 진실을 예측하면서도 역사의 수레바퀴 속 미미한 하나의 톱니로 마모되고 부스러지는 인간 비극을 담담히 그려낸다. 고립되는 도시 평양으로 운전대를 돌리며 죽음을 목전에 둔 중환자들 곁에 남는 의사 민 소령에게는 『페스트』의 리외가 보인다. 그들은 모두 설득되지 않는 자기만의 의지를 살아내고 그 결과를 수용한다. 마지막 페이지의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이 전해질 때 밤낮 없이 댕그랑거리던, 이제는 흔적 없는 그 교회의 종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질문, 놓지 않아야 할 질문은 “진리란 무엇인가”, “신은 침묵하는가”일 것이고 이는 새로운 매일의 답안지를 요청한다. 무참히 고립되었던 도시 평양과 페스트의 오랑과 욥의 우스땅은 동일한 인간 조건을 의미하지 않을까.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기1:1)” 욥의 고난과 순종과 영광을 생각한다.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그들을 향해 들려오는 두 개의 목소리- 하나는 역사의 안에서, 또 하나는 역사의 건너편 저 멀리에서 각기 구원과 정의를 약속하며 각각 자기 쪽에 충성해줄 것을 요구하는 그 두 개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것인가?(3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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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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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시공사/김재혁 옮김)』는 독일 문학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유럽을 비롯한 일본, 남아메리카공화국 등에서 각국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슐링크의 대표작이기도 하지만 2008년 개봉한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로 먼저 기억되기도 한다. 저자인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법학을 전공한 후 교수로 재직하고 헌법재판소 판사를 역임하는 등 소설가 이전에 법조인이었으며 자연히 그의 작품은 주제와 등장인물, 전개방식이나 문체에 있어서 작가의 내, 외적 환경을 반영한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과거를 회상하며 거슬러 올라오는 미하엘 베르크의 1인칭 시점 소설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이야기가 진실되다고 생각하며, 바로 그런 까닭에 그것이 슬픈 이야기냐 아니면 행복한 이야기냐 하는 물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275p)” 자신을 사로잡는 이야기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써낸 소설이 하나의 판본일 뿐, 말해지지 않은 무수한 판본이 여전히 그의 안에 새롭게 살아나고 있음을 밝힌다. “내 나이 열다섯이던 해에 나는 황달에 걸렸다.(9p)” 소년은 이 질병으로 불편한 증상을 겪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그녀를 만났으며, 서른 여섯 살의 그녀로부터 경험하는 육체적, 정신적 변화는 그의 의사와는 별개로 인생 전체의 근간이 된다.

총 3부의 구성으로 1부는 미하엘 베르크와 한나 슈미츠의 만남으로 그들이 함께 보냈던 시간을 보여준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있기. 이것은 우리 만남의 의식이 되었다.(60p)” 소년은 사랑에 매혹당하고 그녀는 <오디세이아>부터 <전쟁과 평화>까지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된 미하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소년의 배반과 한나의 떠남은 머지않아 닥친다. “그 후 나는 한나를 배반하기 시작했다.(98p)”로 시작하는 15장에서 “그리고 부인(否認)은 배반의 다른 몇 가지 떠들썩한 유형들과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의 토대를 앗아가버린다.(98p)”등 부인, 배반, 죄책감, 회피, 합리화, 후회의 연속적인 갈등이 스치듯이, 그러나 상흔을 남길만큼 깊게 지나간다.

“한나 이후로 나는(114p)”, 이제 ‘나’는 한나 이전과 이후로 뚜렷한 경계를 인정한다. 다시 한나를 만나게 된, 엄밀히 말하면 ‘보게 된’ 것은 법정에서였다. 재판을 직접 체험하는 법과대 학생의 신분으로 나치 수용소 감시원들의 재판을 방청하면서 한나를 대면하는 자신의 상태를 “마취”에 비유한다. “누가 나에게 주사를 놓았는가? 마취를 당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나 자신에게 주사를 놓은 것인가? 마취는 법정 안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마치 한나를 사랑하고 열망한 사람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던 것처럼, 즉 내가 잘 알지만 나 자신은 아닌 그 누구였던 것처럼 그녀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나는 내 인생의 다른 모든 부분에 대해서도 나의 한쪽 옆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132p)” 특정 상황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로 고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는 알고 있는 죄의식에 대한 방어기제로 거리두기, 관망, 타자화를 선택한다. 책 속에서 단어들은 조금씩 변화한다. 마취에서 마비증세로 “마취되거나 술에 취한 듯한 무자비와 무관심, 불감증(134p)”으로 확산되며, 시간이라는 요인을 영원에까지 늘려 추가시키자 “화석화(134p)“에 도달한다.

한나가 소년을 떠났던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자신의 은밀한 배반이 아니라 단지 전차 회사에서 약점이 노출될까 두려웠기(171p) 때문이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나의 선택은 작품 속에서 끈질기게 내비쳤던 수수께끼, 혼란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그녀는 승리를 위해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이 노출되는 대가를 치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중략) 그녀에게는 자신의 이미지가 감옥에서 보낼 세월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175p)”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를 들고 철학교수인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하는 장면은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이다. ‘행복’이 아니라 ‘개인과 자유와 품위’에 초점을 맞추면 문제는 다른 색을 띈다. “하지만 어른들의 경우에는 내가 그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좋다고 여기고 있는 것보다 더 우위에 두려고 하면 절대 안 된다.(180p)” 3부에서 그는 다시 한 번 한나의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된다. ”한나는 다시 한 번 나에게 있어서 나의 모든 힘과 나의 모든 창의력과 나의 모든 비판적인 상상력을 묶어서 바치는 재판관이 되었다. 그런 후에 나는 나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낼 수 있었다.(233p)“ 그럼에도 그는 보이지 않는 벽은 허물지 않았고 오히려 공고히 했으며 그녀는 그것을 안다.

문장이 아름답고 묘사는 빛나지만 두 번 읽고 싶은 작품은 아니었다. 거의 2년 전, 4월 따뜻하던 봄날에 읽었던, 그래서 더 대비되었던 이 무겁고 먹먹한 작품을 다시 열어보게 될 줄은 몰랐다. 밑줄은 비슷하지만 많이 추가되었고 시간에 쫓겨 서평도 메모도 없었지만 이번에는 제법 여러 번 멈추고 페이지의 앞과 뒤를 무한루프처럼 반복해 넘겼다. ”나는 한나에게, 내가 생각하기에 소중했던 벽감 하나를, 내게 무언가를 주었으며 나 또한 그것을 위해 무언가를 행한 조그만 벽감 하나를 내주었을 뿐 나의 인생의 어떤 자리도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왜 내가 그녀에게 내 인생의 한 자리를 내주었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그녀를 하나의 벽감으로 격하시켰다는 생각으로 인해 느낀 양심의 가책에 스스로 화가 나서 반발했다.(247p)“ 인간의 내밀한 심리적 갈등과 작동을 사진 찍듯 포착한 문장들은 익숙한 자기방어의 행로와 이기심을 나의 것으로도 치환시킨다.

2차 세계대전 후 많은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몬 강제수용소 여자 감시원이었던 한나 슈미츠가 과거를 숨기고 그림자처럼 살았지만 그녀가 더 숨기고 싶었던 사실은 따로 있었고 수수께끼를 푸는 단서가 된다.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164p)”라고 재판장을 향해 잇따라 묻던 그녀, 결코 자신을 방어하지 못했고 결국에는 방어하지 않기를 선택했던 그녀, 프리모 레비부터 한나 이렌트까지 책꽂이를 채웠던 그녀, 결국 읽고 쓰게 되었으며 오지 않는 그의 편지를 기다렸던 그녀, 그의 사진을 마지막까지 간직했던 그녀, 받아들여지지 않을지언정 속죄하고 싶었던 그녀가 살아냈던 시간이 먹먹하게 다가온다. 결정(結晶)이 되어가는 농축된 원액같은 이야기 속 그녀를 본다.

 

-우리의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하여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2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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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1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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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의 『맛(문학동네/정영목 옮김)』은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세트” 세 권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로알드 달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녀를 잡아라”등 영화와 연극, 뮤지컬 등으로 현재까지 다양하게 재해석되는 동화작가로 익숙하지만 에드거 앨런 포 상과 전미 미스터리 작가상을 수상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단편집 ‘맛’을 읽다보면‘이야기꾼의 왕’, ‘이야기의 힘’, ‘블랙 유머’등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된다. 로알드 달을 읽는다는 것은 감탄을 연발하는 과정으로 돌입하는 것인데 그 감탄사가 나오는 템포는 작품마다 달라 더 매력있다.

 

 

로알드 달의 “맛”에는 총 여덟 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목사의 기쁨”에서 만나게 되는 시럴 보기스 씨는 ”싸게, 아주아주 싸게 물건을 사서 아주아주 비싸게 팔았기 때문에 매년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11p)“있는 골동품 가구 상인이지만 팔색조같은 변신 재능을 이용해 마음 먹은 모습으로 스스로를 연출한다. 날쌘 매가 먹잇감을 사냥하듯 그의 시야에 포착된 보물을 채가는 일은 백발백중이었다. “보기스 차에 보기스 장을 싣고 집으로 가는 보기스 씨. 역사적 사건이다.(51p)“ 노래라도 부르는 것 같은 문장들이 경쾌함을 더하기에 예기치 못한 결말은 ‘역시, 로알드 달!’ 감탄을 부른다.

 

 

“이야기는 결코 맛을 잃지 않았다. 긴장은 느슨해지지 않았다. 한 편의 일기는 길든 짧든 또 주제가 무엇이든, 거의 예외 없이 그 자체로 완결된 한 편의 놀라운 이야기였다.(63p)” 어느날 도착한 오스왈드 숙부의 일기는 한 인물의 까다롭고도 별난 특성과 그가 경험한 사건들을 보여준다. 그 중 ‘시나이 사막 이야기’가 소설의 주된 내용이자 마지막 일기다. 작가의 목소리가 끝났을 때 독자의 이야기가 조급하게 시작되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다면 그 아랍인도?, 잠깐 이게 마지막 일기랬지······도입부를 다시 펼치게 만드는 결말이 오싹하다.

 

 

개성있는 인물들에게 고유의 특징을 부여하는 작가의 솜씨는 중첩되지도 예상가능치도 않고 매번 신선하다. “맛”에서 “어떻게 된 건지 얼굴에 입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167p)”로 시작하는 미식가 프랏의 외모 묘사는 설마 싶으면서도 고스란히 믿어버리게 된다. 작품 곳곳에서 비약이다, 너무 과장 아닌가 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책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이미 환상처럼 눈 앞에 작가의 목소리가 그려지고 장면은 영상처럼 춤춘다. ’맛‘의 한줄 요약은 ’그녀가 아니었으면 어쩔뻔!!”이다.

 

 

로알드 달의 작품 속 내기 장면들은 도스토옙스키 작품 속 도박 장면들처럼 불안감을 동반하기에 ‘하지 말지, 왜 이러시나’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맛’에서의 치사한 내기부터 “항해 거리”에서 보티볼 씨를 보며 과연 이런 생각이 들게 될까, 이런 계획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 싶고, “남쪽 남자”의 남자, 카를로스는 처음에는 충동하다 점층적으로 집요하게 옭아매며 사람을 끌어들이는데 역시 으스스하다. 마지막 작품 “피부”는 인간의 사악한 이기심, 한계 없는 악행이 만연된 사회를 슬프게 조망한다.

 

 

로알드 달의 단편집 “맛”은 동화작가로 깊이 인식된 그의 새로운 면모를 확실히 보여준다. 원하는 것을 거침없이 자유자재로 그려내는 표현력, 재치 넘치는 위트, 짧지만 깊이 있는 배경설명, 자연의 풍광을 비롯한 아름다운 문장도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불안감이 증폭되는 지점, 온도가 바뀌는 장면이 여지없이 등장하고 그 때부터 독자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숨죽이게 된다는 점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전개와 그 순간의 트리거, 장치들이 절묘하다. 다채로운 이야기 속에서 탐욕과 어리석음, 나약함이나 애처로움, 후회나 안도 등 인간의 여러 얼굴을 보여주니 재미 이상의 여운으로 멈추어 성찰하게 한다. 두 번째 작품은 “클로드의 개”다. 무엇을 상상하든 기대 이상일 것이다.

 

 

책 속에서>

또는 그 얼빠진 자가수분 꽃, 예컨대 민들레 같은 것을 떠올렸다. 민들레는 씨를 만드는 데 수분이 필요 없었다. 따라서 그 화려한 노란 꽃잎은 그저 시간 낭비, 허세, 가장일뿐이었다. 생물학자들이 쓰는 용어가 뭐였더라? 무성생식. 민들레는 무성생식이었다. 이 점에서는 여름에 나오는 물벼룩도 마찬가지였다. 물벼룩과 민들레와 치과의사. 그녀는 생각했다. 꼭 루이스 캐럴의 책에 나올 만한 말이군.(2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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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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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의 『모멸감(문학과지성사/유주환 작곡)』 은 부제의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이라는 말로 첫 번째 힌트를 주고, 표지의 초록색 선으로 다시 한 번 독자의 시선을 붙든다. 띠지를 빼면 보이는 흰색 책표지에는 미끈한 초록 선이 무명씨의 불편한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어 앞 뒤 표지를 연결해 펴서 보면 무명씨를 무자비하게 비웃는듯한 상대를 발견할 수 있다. 면지의 온통 검은색은 무명씨의 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 익명의 위치를 대신할 얼굴들, 표정들이 어렵지 않게 떠오르고 이 책이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임을 눈치채게 된다. 저자는 본문에 앞서 “모멸감이라는 감정을 프리즘 삼아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을 조명하면서 삶과 마음의 문법을 추적하려는 것(8p)”이라고 집필 목적을 밝힌다.

 

 

책의 뒤 표지에서 모멸감을 “나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는 괴로운 감정;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라고 설명한다. 한국어대사전에서는 “업신여김과 깔봄을 당하여 느끼는 수치스러운 느낌”이라고 정의했다. 흔하게 많이 쓰이는 감정단어는 아니지만 풀어서 볼 때 아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모멸감”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의 감정으로 제대로 정의내리고, 이해하고, 원인을 찾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나가는데 그 과정 자체만으로 숨을 조이는 묵직한 돌의 무게를 조금씩 덜어내는 경험을 하게 해준다.

 

 

프롤로그에서는 ‘감정의 사회적 문법’이라는 소제목으로 감정의 정체와 작동에 조금씩 접근한다. “감정은 이성보다 더욱 근본적이고 강력하다. 그것은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잉여가 아니라, 중대한 인간사를 좌우하는 핵심이다. (29p)” 한국 사회가 주로 보여주는 감정의 결은 “상승 이동에 대한 욕망과 비교의식이 강한데 자신의 처지는 점점 뒤처지는 듯하기에, 그 간극이 자괴감과 열패감으로 드러난다. (중략) 이른바 ‘르상티망’(원한, 증오, 질투 따위의 감정이 되풀이되어 마음속에 쌓인 상태)이 번식한다.(40p)”, “한국인들은 사소한 차이들에 집착하면서 위세 경쟁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모멸을 주고받기 일쑤다.(41p)” 꼬리를 무는 문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지경임이 분명하다.

 

1장 “모멸감,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에서는 모욕과 모욕감, 수치심과 모욕감, 모욕감과 모멸감의 차이를 짚는다. “모욕은 적나라하게 가해지는 공격적인 언행에 가깝고, 경멸 또는 멸시는 은연중에 무시하고 깔보는 태도에 가깝다.(중략) 그런 의미에서 모멸은 모멸은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라고 할 수 있다.(67p)” 생활용어로 정착된 ‘감정노동’의 비인간적 내몰림, 노동자가 자신의 감정에서 소외되기에 무엇보다 치명적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2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신분제는 붕괴되었으나 신분의식은 여전히 지속한다는데서 찾으며 다양한 사례를 든다.

 

 

반복해서 ‘모멸’을 정의내리고 포착할 때 3장에서는 일곱 가지 특징을 그림과 문학작품, 영화나 이슈되었던 사건 등을 예로 들어 살펴본다. 압박 면접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다는 ‘모욕 스터디’, 가상의 인신공격을 주고받으면서 저항력을 키운다는(176p) 현실이 놀라움을 자아낸다. 4장에서는 원인 분석과 현실 진단으로부터 변화의 가능성, 나아갈 바를 말한다.

 

 

매 장의 첫머리에 한 컷의 미술 작품과 키워드로부터 영감을 얻은 작곡가 유주환의 음악을 실었는데 이번 장에서 맞잡은 손의 형상을 보여주는 로뎅의 ‘대성당’은 짧은 스케치를 통해 한번 더 울림을 준다. 감수성이 왜 중요한지, 왜 민감해야 하는지를 되짚어보고, 화폐와 연관해서는 “돈이 너무 많은 일을 좌우하고 돈 때문에 모멸감을 맛보기 일쑤인 현실에서, 나의 자존을 세우기 위해서는 돈보다 더 소중한 것에 착목해야 한다. 돈의 논리로 포섭되거나 환원될 수 없는 삶의 근원적인 가치에 눈떠야 한다.(240p)”는 말이 눈에 띈다. “생존에서 존엄으로”라는 5장의 제목이 인상적이다. 유머의 힘, 평정심, 나의 감정과 거리두기 등을 심리학자들의 저서나 고전 문학 안에서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모멸감”은 계획했던 다른 책 읽기와 병행해서 하루에 한 장씩 일주일동안 읽었다. 읽는 동안 저절로 몰입하게 되고, 읽고 난 후에도 여운과 질문, 때론 책 속 예화 외에 내가 겪어온 직 간접 경험들이 떠오르다 가라앉다를 계속했다. 참담한 상황과 부조리한 현실도 이성적이고도 논리적으로 분석해 전달하고 있어서 감정에만 너무 휘둘리지 않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 중에도 연일 뉴스의 기사는 모멸 사회의 쓰디쓴 장면들을 내보내니 페이지를 넘기며 해당 부분을 찾을 수 있을 만큼이나 여전한 오늘 우리의 문제임에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존엄으로 나아가기 위한 희망의 가능성과 방법을 기억하고 작은 일에서부터 어제와는 다르게 반응하고 행동하겠다는 나와의 약속은 지켜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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