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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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의 『모멸감(문학과지성사/유주환 작곡)』 은 부제의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이라는 말로 첫 번째 힌트를 주고, 표지의 초록색 선으로 다시 한 번 독자의 시선을 붙든다. 띠지를 빼면 보이는 흰색 책표지에는 미끈한 초록 선이 무명씨의 불편한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어 앞 뒤 표지를 연결해 펴서 보면 무명씨를 무자비하게 비웃는듯한 상대를 발견할 수 있다. 면지의 온통 검은색은 무명씨의 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 익명의 위치를 대신할 얼굴들, 표정들이 어렵지 않게 떠오르고 이 책이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임을 눈치채게 된다. 저자는 본문에 앞서 “모멸감이라는 감정을 프리즘 삼아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을 조명하면서 삶과 마음의 문법을 추적하려는 것(8p)”이라고 집필 목적을 밝힌다.

 

 

책의 뒤 표지에서 모멸감을 “나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는 괴로운 감정;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라고 설명한다. 한국어대사전에서는 “업신여김과 깔봄을 당하여 느끼는 수치스러운 느낌”이라고 정의했다. 흔하게 많이 쓰이는 감정단어는 아니지만 풀어서 볼 때 아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모멸감”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의 감정으로 제대로 정의내리고, 이해하고, 원인을 찾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나가는데 그 과정 자체만으로 숨을 조이는 묵직한 돌의 무게를 조금씩 덜어내는 경험을 하게 해준다.

 

 

프롤로그에서는 ‘감정의 사회적 문법’이라는 소제목으로 감정의 정체와 작동에 조금씩 접근한다. “감정은 이성보다 더욱 근본적이고 강력하다. 그것은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잉여가 아니라, 중대한 인간사를 좌우하는 핵심이다. (29p)” 한국 사회가 주로 보여주는 감정의 결은 “상승 이동에 대한 욕망과 비교의식이 강한데 자신의 처지는 점점 뒤처지는 듯하기에, 그 간극이 자괴감과 열패감으로 드러난다. (중략) 이른바 ‘르상티망’(원한, 증오, 질투 따위의 감정이 되풀이되어 마음속에 쌓인 상태)이 번식한다.(40p)”, “한국인들은 사소한 차이들에 집착하면서 위세 경쟁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모멸을 주고받기 일쑤다.(41p)” 꼬리를 무는 문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지경임이 분명하다.

 

1장 “모멸감,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에서는 모욕과 모욕감, 수치심과 모욕감, 모욕감과 모멸감의 차이를 짚는다. “모욕은 적나라하게 가해지는 공격적인 언행에 가깝고, 경멸 또는 멸시는 은연중에 무시하고 깔보는 태도에 가깝다.(중략) 그런 의미에서 모멸은 모멸은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라고 할 수 있다.(67p)” 생활용어로 정착된 ‘감정노동’의 비인간적 내몰림, 노동자가 자신의 감정에서 소외되기에 무엇보다 치명적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2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신분제는 붕괴되었으나 신분의식은 여전히 지속한다는데서 찾으며 다양한 사례를 든다.

 

 

반복해서 ‘모멸’을 정의내리고 포착할 때 3장에서는 일곱 가지 특징을 그림과 문학작품, 영화나 이슈되었던 사건 등을 예로 들어 살펴본다. 압박 면접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다는 ‘모욕 스터디’, 가상의 인신공격을 주고받으면서 저항력을 키운다는(176p) 현실이 놀라움을 자아낸다. 4장에서는 원인 분석과 현실 진단으로부터 변화의 가능성, 나아갈 바를 말한다.

 

 

매 장의 첫머리에 한 컷의 미술 작품과 키워드로부터 영감을 얻은 작곡가 유주환의 음악을 실었는데 이번 장에서 맞잡은 손의 형상을 보여주는 로뎅의 ‘대성당’은 짧은 스케치를 통해 한번 더 울림을 준다. 감수성이 왜 중요한지, 왜 민감해야 하는지를 되짚어보고, 화폐와 연관해서는 “돈이 너무 많은 일을 좌우하고 돈 때문에 모멸감을 맛보기 일쑤인 현실에서, 나의 자존을 세우기 위해서는 돈보다 더 소중한 것에 착목해야 한다. 돈의 논리로 포섭되거나 환원될 수 없는 삶의 근원적인 가치에 눈떠야 한다.(240p)”는 말이 눈에 띈다. “생존에서 존엄으로”라는 5장의 제목이 인상적이다. 유머의 힘, 평정심, 나의 감정과 거리두기 등을 심리학자들의 저서나 고전 문학 안에서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모멸감”은 계획했던 다른 책 읽기와 병행해서 하루에 한 장씩 일주일동안 읽었다. 읽는 동안 저절로 몰입하게 되고, 읽고 난 후에도 여운과 질문, 때론 책 속 예화 외에 내가 겪어온 직 간접 경험들이 떠오르다 가라앉다를 계속했다. 참담한 상황과 부조리한 현실도 이성적이고도 논리적으로 분석해 전달하고 있어서 감정에만 너무 휘둘리지 않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 중에도 연일 뉴스의 기사는 모멸 사회의 쓰디쓴 장면들을 내보내니 페이지를 넘기며 해당 부분을 찾을 수 있을 만큼이나 여전한 오늘 우리의 문제임에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존엄으로 나아가기 위한 희망의 가능성과 방법을 기억하고 작은 일에서부터 어제와는 다르게 반응하고 행동하겠다는 나와의 약속은 지켜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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