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1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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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의 『맛(문학동네/정영목 옮김)』은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세트” 세 권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로알드 달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녀를 잡아라”등 영화와 연극, 뮤지컬 등으로 현재까지 다양하게 재해석되는 동화작가로 익숙하지만 에드거 앨런 포 상과 전미 미스터리 작가상을 수상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단편집 ‘맛’을 읽다보면‘이야기꾼의 왕’, ‘이야기의 힘’, ‘블랙 유머’등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된다. 로알드 달을 읽는다는 것은 감탄을 연발하는 과정으로 돌입하는 것인데 그 감탄사가 나오는 템포는 작품마다 달라 더 매력있다.

 

 

로알드 달의 “맛”에는 총 여덟 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목사의 기쁨”에서 만나게 되는 시럴 보기스 씨는 ”싸게, 아주아주 싸게 물건을 사서 아주아주 비싸게 팔았기 때문에 매년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11p)“있는 골동품 가구 상인이지만 팔색조같은 변신 재능을 이용해 마음 먹은 모습으로 스스로를 연출한다. 날쌘 매가 먹잇감을 사냥하듯 그의 시야에 포착된 보물을 채가는 일은 백발백중이었다. “보기스 차에 보기스 장을 싣고 집으로 가는 보기스 씨. 역사적 사건이다.(51p)“ 노래라도 부르는 것 같은 문장들이 경쾌함을 더하기에 예기치 못한 결말은 ‘역시, 로알드 달!’ 감탄을 부른다.

 

 

“이야기는 결코 맛을 잃지 않았다. 긴장은 느슨해지지 않았다. 한 편의 일기는 길든 짧든 또 주제가 무엇이든, 거의 예외 없이 그 자체로 완결된 한 편의 놀라운 이야기였다.(63p)” 어느날 도착한 오스왈드 숙부의 일기는 한 인물의 까다롭고도 별난 특성과 그가 경험한 사건들을 보여준다. 그 중 ‘시나이 사막 이야기’가 소설의 주된 내용이자 마지막 일기다. 작가의 목소리가 끝났을 때 독자의 이야기가 조급하게 시작되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다면 그 아랍인도?, 잠깐 이게 마지막 일기랬지······도입부를 다시 펼치게 만드는 결말이 오싹하다.

 

 

개성있는 인물들에게 고유의 특징을 부여하는 작가의 솜씨는 중첩되지도 예상가능치도 않고 매번 신선하다. “맛”에서 “어떻게 된 건지 얼굴에 입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167p)”로 시작하는 미식가 프랏의 외모 묘사는 설마 싶으면서도 고스란히 믿어버리게 된다. 작품 곳곳에서 비약이다, 너무 과장 아닌가 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책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이미 환상처럼 눈 앞에 작가의 목소리가 그려지고 장면은 영상처럼 춤춘다. ’맛‘의 한줄 요약은 ’그녀가 아니었으면 어쩔뻔!!”이다.

 

 

로알드 달의 작품 속 내기 장면들은 도스토옙스키 작품 속 도박 장면들처럼 불안감을 동반하기에 ‘하지 말지, 왜 이러시나’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맛’에서의 치사한 내기부터 “항해 거리”에서 보티볼 씨를 보며 과연 이런 생각이 들게 될까, 이런 계획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 싶고, “남쪽 남자”의 남자, 카를로스는 처음에는 충동하다 점층적으로 집요하게 옭아매며 사람을 끌어들이는데 역시 으스스하다. 마지막 작품 “피부”는 인간의 사악한 이기심, 한계 없는 악행이 만연된 사회를 슬프게 조망한다.

 

 

로알드 달의 단편집 “맛”은 동화작가로 깊이 인식된 그의 새로운 면모를 확실히 보여준다. 원하는 것을 거침없이 자유자재로 그려내는 표현력, 재치 넘치는 위트, 짧지만 깊이 있는 배경설명, 자연의 풍광을 비롯한 아름다운 문장도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불안감이 증폭되는 지점, 온도가 바뀌는 장면이 여지없이 등장하고 그 때부터 독자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숨죽이게 된다는 점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전개와 그 순간의 트리거, 장치들이 절묘하다. 다채로운 이야기 속에서 탐욕과 어리석음, 나약함이나 애처로움, 후회나 안도 등 인간의 여러 얼굴을 보여주니 재미 이상의 여운으로 멈추어 성찰하게 한다. 두 번째 작품은 “클로드의 개”다. 무엇을 상상하든 기대 이상일 것이다.

 

 

책 속에서>

또는 그 얼빠진 자가수분 꽃, 예컨대 민들레 같은 것을 떠올렸다. 민들레는 씨를 만드는 데 수분이 필요 없었다. 따라서 그 화려한 노란 꽃잎은 그저 시간 낭비, 허세, 가장일뿐이었다. 생물학자들이 쓰는 용어가 뭐였더라? 무성생식. 민들레는 무성생식이었다. 이 점에서는 여름에 나오는 물벼룩도 마찬가지였다. 물벼룩과 민들레와 치과의사. 그녀는 생각했다. 꼭 루이스 캐럴의 책에 나올 만한 말이군.(2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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