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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발터 벤야민의 『고독의 이야기들』(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엘리, 2025, 344쪽 분량)은 노벨레 형식의 문학 작품집으로 꿈과 현실을 오가며 이야기 타래를 푼다. 노벨레는 단편 소설 양식이나 짧은 소설 장르를 지칭하는데 괴테는 여기에 ‘새로운’이라는 이탈리아어 의미를 가져와 ‘들어본 적 없는 사건’을 노벨레의 본래 개념으로 정리하였다. 이로써 독자는 언어 철학자이자 문예학자, 비평가로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을 비롯하여 기념비적인 저작들을 남겼던 발터 벤야민 세계로 진입하는 또 다른 길을 선사 받게 되었다. 주디스 버틀러에 따르면 <고독의 이야기들>은 그의 비평 작업을 어떻게 선행적으로 수행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벤야민의 애독자라면 말 그대로 선물이 될 만한 책이고,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발터 벤야민 입문서로 가치를 발할 것이다.
『고독의 이야기들』은 1부 <꿈과 몽상>, 2부 <여행>, 3부 <놀이와 교육론>까지 저자가 관심을 가져온 주제별로 새롭게 묶였다. 마흔두 편의 글 말미에는 집필 시기와 출처를 표기했는데 생전에는 발표되지 않은 글이 상당하다. 각 부에는 연관 테마를 다루는 책의 서평도 실려 있어서 독자는 저자의 다양한 글을 경험할 수 있다. 서평을 먼저 말하자면 ‘서평은 소개다’라는 기준에서 볼 때, 평을 읽은 후 궁금한 마음에 책을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프란츠 헤셀에 대하여 “그는 이 상황과 저 상황, 이 한 시간과 저 한 시간, 이 1분과 저1분, 이 단어와 저 단어를 분리하고 구별 짓는 문턱들을 어느 누구보다 예민하게 발바닥으로 감지한다.”(p.156)고 소개한다. 책의 형식과 내용을, 빼어난 점과 약점을 균형있게 또 논리적으로 조망하여 평의 진수, 평의 모범을 보여주기에 책에 실린 여섯 편의 글은 두고두고 탐독할 만하다. 예술론을 비롯한 주요 저작들을 더 늦지 않게 읽어야 할 동기를 부여한다.
저자가 구성하지 않고 추후에 발굴되고 신중하게 다루어진 글이어서일까, 한편 한편을 더욱 아껴가며 읽게 된다. 이 책을 선택하는 데는 파울 클레의 작품도 큰 몫을 하였다. 단상처럼 분량이 짧아도 한 번 읽고 가뿐하게 넘길 수 없는 글들은 클레의 그림으로 또 한 번 파장을 일으킨다. <너무나 가까운>은 그리움이라는 정서적 상태, 감정적 반응을 물리적으로 치환하고 층위를 달리한 끝에 ‘복된 그리움’에 닿는다. “이름 속에 형상 없이 깃든 그는 모든 형상의 피난처다.”(p.51) 이름은 이미 불멸의 명성이 되어 버린 게 아닐까 잠시 궁리한다. 이 글은 클레의 <한 쌍의 천사>와 함께이다. 거친 듯 부드러운 필선이 그대로 드러난 천사의 그림은 연약해 보이기도 강건해 보이기도 한다. 그들 사이에 충분히 그리워할 거리가 필요할지, 마음은 이미 일심동체일지 그림은 다시 상념을 보탠다.
2부는 여행을 이야기한다. “‘있을 곳 없는 사람이 집으로 삼는 시간’은 떠나올 때 두고 온 것이 아무것도 없는 여행자에게는 왕궁이 된다.”(p.170)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북유럽 바다>는 도시, 꽃, 바다를 차례로 지목한다. 그리고 <빛>을 호명하는데 어느 집에선가 들려오는 소리들이 이 밤을 “달력에 없는 어느 하루”로 바꾸어 놓는다고 작가는 말한다. “시간 창고 안에 들어가보면 사용되지 않은 하루하루가 쌓여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수천 년 전 지구가 얼려둔 나날이.”(p.175) 이어지는 문장을 따라가면서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자는 시간 창고에 냉동 보관되어 있는 나날을, 시간의 뭉텅이 또는 부스러기를 상상하며 꼼꼼하게 다음 문장을 읽어야 하는데 여기서 멈춘다. 생각은 이미 어떤 날개를, 작위적인 날개이든 유치한 날개이든 만들어내고는 뜬금없이 날기 시작한다. 3부는 상상력이 더욱 빛난다. 수수께끼와 게임, 퀴즈 등 위트가 넘치는 글은 다시 한번 생각하기와 비틀어 생각하기, 한계 넘어 생각하기의 자유로움을 펼쳐낸다.
1부의 ‘몽상’ 편에서는 “두 번째 자아: 새해 전야 성찰을 위한 이야기”가 인상 깊다. 평균 4주에서 6주에 한 번 이사하는, 독신남 앞에 ‘군식구 없는’을 겹따옴표로 강조한 주인공 크람바허는 어쩔 수 없이 저자 자신을 투영한다. 1930년에서 33년경에 썼으리라 예측되는 글은 33년 히틀러가 수상으로 임명되며 바이마르 공화국이 막을 내리는 시기와 겹친다. 크람바허가 카이저파노라마를 통해 관람하는 장면은 이국의 풍경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소망들이다. 그는 기계장치를 통과해 ‘두 번째 자아’를 만나며 열두 개의 문장으로 한 해를 돌아본다. 성취보다는 상실과 아쉬움의 문장이다. 이에 더해 그는 외출조차 하지 않았고, 꿈에 침잠하지도 못했으며, 빈 잔을 떨구지 않은 몽상 상태였다. “그때 저 기회를 잡고 싶었는데”(p.44)라는 열두 번째 문장은 마치 미래를 예견한 듯하여 너무 마음이 아프다. 야만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국경을 넘을 기회를 잡지 못한 벤야민은 필생의 저작을 미완으로 남긴 채 더는 나아가지 못한다. 현실을 초월한 듯 신비로우면서도 현실 인식과 비판의 지점들을 아로새긴 지성의 이야기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책 속에서>
또 나는 방에서 소음 때문에 너무 고생을 했었다. 어젯밤 꿈이 그것을 잊지 않고 새겨두었다. 나는 지도 밖에 나와 있으면서 동시에 지도에 묘사되어 있는 풍경 안에 들어와 있었다. 풍경은 경악스럽도록 황량했다. 황량한 풍경이 바위투성이 황무지였는지 활자들 말고는 아무도 살지 않는 텅 빈 회색 바닥이었는지, 누가 물어보았다면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활자들이 바닥 위를 구불구불 행진해 긴 산맥처럼 보였다. 그렇게 형성되어 있던 단어들은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내가 귀 지도의 미로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머리 내지 몸으로 감지되었다. 하지만 그 지도는 동시에 지옥도이기도 했다.(p.93/17.일기)
벤야민은 최고의 이야기꾼인 프루스트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는 그리움에 상처투성이가 되어 침대에 쓰러졌다. 그가 그토록 그리워한 세계는 현실과 비슷하지만 일그러져 있는 세계, 현실의 진짜 얼굴인 초현실이 돌발 출현하는 세계였다.” 벤야민에 대해, 그리고 벤야민 본인의 픽션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p.335/편집자 해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