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부르크 이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8
고골리 지음, 조주관 옮김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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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와 <코>를 처음 읽었을 때의 놀라움이 여전히 생생하다. 이렇게 적나라한 이야기가 다 있구나 싶었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의 잠자리 동화 격으로 읽어주던 작품 중에 루쉰의 <아큐정전>을 비롯해 고골의 <코>도 있었다. 실망스럽게도 아이들은 지루함과 두려움을 내비쳤고 시기상조라는 결론에 완독은 미래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었다. 고골 단편선을 몇 개 출판사로 보유하고 있는데 내가 가진 민음사판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도 <페테르부르크 이야기>로 표기가 수정되어 나오고 있다. 번역은 즐겁게 읽었던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의 저자 조주관이다. 니콜라이 고골의 『페테르부르크 이야기(조주관 옮김, 민음사, 2002, 372쪽 분량)』는 당시로서는 미래적 도시이며 가공의 도시로 치환할 수 있을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러시아식 ‘작은 인간’의 분투를 기록한다. 작은 인간은 러시아 관등 체계에서 대부분 9등관으로 대표되는, 주로 정서나 펜 깎기를 하는 하급 관리의 대명사로 드러나지 않는 소모적 일에 시간을 쏟는 러시아문학의 한 전형이다. 『페테르부르크 이야기』는 <코>와 <외투>, <광인 일기>, <초상화>, <네프스끼 거리> 등 다섯 편의 대표작을 담는다.


<코>는 이발사 이반 야꼬블레비치가 아침 식사 중에 칼로 자르던 빵에서 코를 발견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코를 발견할 뿐 아니라 이 코의 주인을 한눈에 알아차린다. 코 따위를 집안에 둘 수 없다고 다그치는 아내를 피해 들고나온 코를 처치하고자 애를 쓰나 이 또한 만만치 않다. 1장은 “하지만 여기서 사건은 완전히 안개 속에 묻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p.15)로 이반의 에피소드를 맺는다. 2장의 주인공은 코의 주인인 8등관 꼬발료프다. 코가 있어야 할 자리에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다. 제법 잘생기고, 제법 관등에 만족하던 그는 우연히 5등관 신사가 되어 돌아다니는 자신의 코를 본다. 계급에서도 밀리는 코발료프가 당신은 사실 나의 코요, 라고 어렵사리 지적하는데, 코는 말한다. “당신은 실수하고 있소. 나는 어디까지나 나 자신이오.”(p.22) 코의 변신과 부조리하기 그지없어 마치 꿈꾸는 듯한 상황극과도 같은 현실이라니. 코발료프는 절망하는데 다행히 코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사라질 때처럼 시치미 뚝 떼고! 1부(장)와 2부의 결말은 ‘전혀 알 길이 없다’와 ‘전혀 알 길이 없었다’로 거의 동일하다. 3부에서 작가는 총평 격인 자신의 의견을 얹는다. 사건의 터무니없음과 그로 인한 궁금증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비현실 안에 내제하는 본질을 환기한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꿈과 일상을 넘나들며 자기 몫의 생을 버티는 사람들, 작은 인간들은 지금도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외투>는 만년 9급 문관 아까기 아까끼예비치가 주인공이다. 이름 짓기 곤란해 아버지의 이름을 따랐던 주인공이 이름 없이 생을 마치고 관리 유령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기까지의 굴곡사가 전개된다. 그는 한 벌의 외투를 원하나 그에게 모든 것이었던 외투는 꿈처럼 사라지고 만다. <광인 일기>는 9등관 포프리신의 일기로 일인칭 서술이다. 국장의 집 서재에서 펜을 깎는 일을 하는 포프리신은 국장을 매우 영리한 ‘국가적 인물’이라고 여기는데 우연히 만난 국장의 딸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는 국장 딸의 강아지 맷쥐가 하는 개들의 대화를 알아듣고 국장의 딸을 원하지만 이루지 못할 것이며, 그녀의 결혼 소식까지 알자 낙담한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이웃 개인 피젤을 만나러 가서는 “실은 댁의 강아지와 할 말이 있는데요.”(p.111)라고 이유를 밝힌다. 고통스러운 처지에 웃음이 끼어드는 장면은 곳곳에 등장한다. 그는 분노한다. “걸핏하면 시종무관 아니면 장군이라니, 이 세상은 더 나을 것이 없다. 시종무관이 아니면 장군이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된다.”(p.120), "어쩌면 나는 백작이나 장군인데, 다만 9급 관리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아마 나 자신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 모르고 있을 거다.“(p.121) 사회 비판과 자기 인식, 실존적 질문이 혼재하다가 그의 일기는 서서히 결을 달리한다. 12월 8일 다음에 2000년 4월 43일, ‘며칠도 아니다, 날짜가 없는 날’ 등으로 이어지며 그는 자신을 스페인의 왕이라고 믿는다. 비참하게 갇힌 채 내뱉는 그의 말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초상화>에서 젊고 재능 있는 화가였던 차르뜨꼬프는 우연히 사온 초상화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바뀐다. 그의 성정을 읽은 지도교수는 조심하라는 경고를 하였으나 ‘초상화’가 열어준 새로운 생활은 그에게 방아쇠 역할을 한다. 다만 그림 액자일 뿐인데 초상화가 쏘아보는 시선은 시트를 덮어씌우게 만든다. 그림과 대면하며 꿈을 꾸고, 꿈속의 꿈으로 거듭 들어가고 깨어나오는 장면은 상당히 생생해서 오싹한 기분이 든다. 쉽게 타협하고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탓에 차르뜨꼬프는 몰락하고 만다. 초상화의 연유를 밝히는 2부만으로도 단독 작품이라 해도 될 만큼 인간의 내면을 밀도 있게 포착한다. <네프스끼 거리>는 화가 삐스까료프와 삐로고프 중위 두 친구의 이야기다. 소설은 “뻬쩨르부르그에는 네프스끼 거리보다 더 나은 곳이 없다.”(p.227)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락을 “이 네프스끼 거리라는 건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로 시작하여 “그리고 악마가 모든 것들을 실제 모습으로 보여주기를 거부하고 램프의 불을 직접 켤 때, 네프스끼 거리는 더욱 심하게 사람들을 속인다.”(p.282)로 종결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자 화가 삐스까료프는 꿈으로 도피하고 꿈에서 욕구를 충족한다. 하지만 꿈은 현실을 속이는 눈가리개에 불과했고 멸망을 부른다.


“그 웃음의 배후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눈물을 느낀다.”는 푸시킨의 말처럼 고골의 단편에서 맞닥뜨리는 풍자와 아이러니는 애처로움과 슬픔을 품고 있다. 작은 인간이라는 전형이 19세기 러시아에만 존재하였다고 볼 수 없다. 지금도 사람들은 뻬쩨르부르크만큼이나 휘황한 도시의 대로에서 또는 외진 골목에서 힘쓰고 버텨낸다. 일주일 사용 가능한 힘을 하루 단위로 분배하며 ‘오늘도 무사히’를 읊조린다. 의미에 연연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살아가는 소수의 인물을 제외하고, 생래적 조건의 한계를 넘기 어려운 고골의 대다수 인물은 힘에 부치는 대결 끝에 목숨을 잃거나 미치고 만다. 이 연장선상에 작가인 고골 자신도 고통당하고 생을 재촉하였다. “(중략) 한편으로 자신의 재능이 진지한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통받았습니다. 고골은 전형적인 속물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최고 작가입니다. 문제는 그런 재능과 그가 생각한 작가의 소명이 충돌하는 데 있었습니다.”(p.111/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현암사) <죽은 혼> 2부의 원고를 두 번 불사르고 단식하다 죽음을 맞는 작가의 고통이 그의 등장인물들의 그것과 겹쳐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고골의 단편선 『페테르부르크 이야기』는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때론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거나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속도감 있는 전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겠다고 독자를 설득해 낸다. 시간 경과에 따른 <네프스끼 거리>의 변화를 기록할 때는 도스토옙스키가 『백야(1848년)』에서 “페테르부르크 전체가 나에게는 친구와 마찬가지”라며 감정을 이입하며 말을 걸던 장면을 연상케 한다. 때로 고독한 이들에게 장소는 그저 공간이 아니라 가능성이자 상징으로, 아려한 품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봄의 초입, 3월이다. 겨울이 완전히 떠나기 전에 정곡을 찌르는 시린 고전의 일독을 권한다.



책 속에서>

그렇긴 하지만 하나하나 따져본다면 전체적으로 이 사건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가 비현실적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 속에는 분명히 무엇인가 내포되어 있다. 누가 뭐라해도 이와 비슷한 사건들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다. 드물긴 하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p.51, <코>)


시종무관 따위가 뭐냔 말이다. 사실 이건 관직에 불과할 뿐, 아무것도 아니다. 손으로 잡고 감촉을 느낄 수 있는 어떤 물건도 아니다. 사실 시종무관이라고 해서 이마에 눈알이 하나 더 박힌 것도 아니다. 또 코가 금으로 된 것도 아니고, 내 코도 모든 사람의 코와 같다. 시종무관도 코로 냄새는 맡을 테지만, 먹거나 재채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왜 이 모든 차이와 다양성이 있는지 여러 번 파악하고 싶었다. 나는 9급 관리다. 왜 9급 관리가 되었을까? 어쩌면 나는 백작이나 장군인데, 다만 9급 관리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아마 나 자신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 모르고 있을 거다.(p.121, <광인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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