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 the Cat! 나의 첫 소설 쓰기 - 아이디어를 소설로 빚어내기 위한 15가지 법칙
제시카 브로디 지음, 정지현 옮김 / 타인의사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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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브로디의『나의 첫 소설 쓰기(정지현 옮김/타인의사유)』는 ‘아이디어를 소설로 빚어내기 위한 15가지 법칙’이라는 부제로 일종의 작법서다. 표지의 그림을 동반한 “Save the Cat!”이라는 문구는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이는 ‘스토리텔링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문제를 피하는’ 해결책 중 하나로 ‘비호감 캐릭터지만 독자들이 응원할 마음이 생기게 해 주는 무언가’(p.18)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시나리오 작가 블레이크 스나이더의 『Save the Cat!흥행하는 영화 시나리오의 8가지 법칙』의 소설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글쓰기 워크숍과 프로그램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본 스토리텡링 코드를 전하고 있다. 이 책은 강연을 대신하는 지침이자 안내서다.

1장은 “무엇이 독자의 관심을 끌어당기는가?”로 주인공을 살펴본다. 훌륭한 소설은 불완전한 인물을 등장시켜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시킨다는 저자는 주인공이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제시하는데 책 전체에서 반복되듯이 성공적인 작품들을 사례로 근거를 댄다. 2장은 본격 비트시트 분석으로 소설을 전체 3막으로 구분해 각각에 효과적으로 배치할 주제를 보여준다. 역시 다양한 작품에서 어떻게 실제 구현되었는가를 예로 든다. 3장은 문학을 10개의 이야기 유형으로 정리한다. 10개 장르는 추리물, 통과의례, 집단 이야기, 슈퍼히어로, 평범한 사람에게 닥친 문제, 바보의 승리, 버디 러브 스토리, 요술 램프, 황금 양털, 집 안의 괴물로 4장부터 13장까지는 차례로 집중 설명하고 있다.

『나의 첫 소설 쓰기』는 저자가 소설가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워크숍을 거울삼아 독자들이 활용하기 쉽게끔 연습법과 체크리스트도 제공한다. 기대하는 창작물 전체를 아우르면서 동시에 잘게 나누었을때의 포인트를 설명함으로 이해를 돕기도 한다. 그러나 용어 자체가 낯설고 주어진 틀에 유의하느라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창작을 목적으로 한 본격 소설가 지망생이 아닌 경우에는 말이다. 그럼에도 문학 작품을 세밀하게 분석해보고 작가의 의도를 유추하는 일, 장르별 대표 소설 목록을 살펴보거나 효과를 가늠하는 것은 즐거움을 준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예상되는 어려움에 답을 주려는 저자의 열의가 전해지는데 그가 제공하는 모든 사항이 아니더라도 어떤 지점은 분명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것이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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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 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이기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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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_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은 폴란드계 유대인 문학비평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1920~2013)의 자서전으로 1999년 출간되었다. 처음 자서전 권유를 받은 1943년 이후 줄곧 외면했다가 반세기가 지난 1993년 집필을 결심하고는 6년만이다. 외면의 이유를 저자는 밝히고 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모든 사건들을 또 한번 마음속에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글을 쓰는 일을 내가 감당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p.498) 이 자서전이 개인적 삶의 기록으로 그치지 않은 이유는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 가운데 하나를 증언하기 때문(출판사소개인용)이다. 동시에 ‘1960년부터 2000년까지 40년 동안 그가 비평한 책이 무려 8만권이 넘는다’(p.503)니 문학을 향한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열정과 헌신은 그의 인생의 버팀목이었으며 책 속에 충만히 녹아난다. 언어학자 페터 폰 마트는 2002년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괴테 상 수상식 축하 연설에서 “그의 뛰어난 자서전은 한 세기의 죄과와 파렴치를 고발하는 기록이자 거기에 파괴되지 않은 독일어와 독일문학을 향한 사랑을 증언하는 작품”이라고 평한다. 2013년 가을, “권좌에서 내려와 자신의 유일한 고향이자 안식처인 ‘문학’으로 돌아간”(출판사소개인용)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그의 유례없는 삶을 따라가본다.

『나의 인생_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은 연대순으로 나뉜 총 5부 구성으로 각 5~10개의 소제목안에 하나의 주제를 밀도높게 담는다. 소제목의 징검다리를 집중해서 건너다보면 해가 바뀌고 그가 맞닥뜨린 세상도 그의 상황도 변해간다. 장과 다음 장 사이에는 틈이 없다. 독자는 몰입한채 소제목의 의미와 이야기의 핵심을 명료하게 깨닫게 된다. “가는 길은 멀었다. 부모님이 들려준 동화의 세계, 부모님이 약속한 꿈의 나라에 도착하려면 밤이나 돼야 할 것이다.(중략) 나는 흥분에 들떠 이제 맛보게 될 기적을 그려보았다. 베를린이라는 기적을.”(p.24) 어린시절, 경제적 불행에 처한 가족이 베를린 이주를 결정하면서 ‘내 삶에는 획기적인 새로운 장이 열렸다.’(p.29)고 술회한다. 그는 어렴풋이 다가오는 감정에 대해 쓴다. “독일에서 처음 수업을 받은 그날 나는 순식간에 무언가를 감지했을 뿐이다. 평생 동안 나를 따라다녔지만 한 번도 극복하지 못한 그 무엇을. 따라다녔다? 아니다. 아직도 따라다닌다고 말해야 옳다. 그건 두려움이었다. 독일인이 든 회초리에 대한 두려움, 독일의 집단수용소에 대한 두려움, 독일의 가스실에 대한 두려움, 간단히 말해, 독일의 야만성에 대한 두려움이었다.”(p.29) 동시에 그 두려움 위에 내려앉은 독일 문학과 음악의 마력, 현재형이 어울리는 여전한 행복을 이야기한다. 문학에 대한 열정은 열두 살 때 어머니에게 선물받은 「빌헬름 텔」입장권이 단초였다. 아동극이 아닌 정극으로 처음 본 그날 저녁, 문학과 연극, 실러와 싱켈이 건축한 극장에 대한 사랑까지, 자신의 ‘위대한 사랑이야기 몇 편’(p.74)이 한꺼번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38년 여느 때와 똑같은 베를린의 하루는 그에게만은 다른 하루가 된다. 폴란드로의 집단 추방길에서 그는 생각한다. 서류가방 한 개가 짐의 전부인 그는 “낯설고 낯선 이 나라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하지만 훗날 ‘눈에 보이지 않는 짐’을 가져왔음을 깨닫는다. “나를 내쫓은 나라를 떠날 때 가지고 나온 것은 바로 언어였다. 그리고 문학이었다. 그건 독일어였고, 독일문학이었다.”(p.143)라고.

2부는 참혹한 시간이다. ‘사냥의 향연’이라는 무서운 소제목은 ‘기록’한다. “야만과 잔혹함이 우연이나 자의와 한패가 될 때 의미와 논리를 따지는 질문은 현실을 모르는 한가한 생각이라는 것을 그때만 해도 우리는 알지 못했다.”(p.169) 게토의 기억, 그는 게토에서 가장 강인한 인물이었다고 역사학자 에마누엘 링겔블룸의 이름을 적는다. 이어 아담 체르니아코프를, 그리고 부모님, 현자 나탄의 반지를 가진듯한 형마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상세히 글로 기록함으로 애도한다. 애도의 행렬은 슬프고 길다. 또한 위험 중에도 있었던 미확인 인물의 음악평론, ‘독자에게 진실을 밝히자면, 그건 바로 나였다.’(p.204)에서 볼수있듯 저자는 어릴때의 꿈을 조금씩 실현하면서 음악에 의지한다. 어려운 시간이 흐르고 볼렉의 집을 거쳐 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는 뉴스를 듣는다. “그렇다. 우리가 느낀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었고, 행복이 아니라 강렬한 분노였다. 다시 한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어둡고 무거운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때 나는 느꼈다. 우리 머리 위로 몰려오는 저 구름은 영원히 걷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가 사는 동안 평생 우리 옆에 있으리라는 것을.”(p.282)

“나를 베를린으로 몰아댄 건 복수심이 아니라 그리움이었다. 내가 성장한 도시, 그리고 나를 만들어낸 곳을 다시 보고 싶었다.”(p.284) 폴란드에서의 배척 등 여전히 혼란하게 변하는 분위기들에 반응하며 그는 다시 베를린을 선택한다. 계속해서 평론을 발표하며 ‘읽기 쉽게 글을 쓰는 믿을 만한 독일문학 전문가’(p.304)라는 명성을 얻게 된 후 공적, 사적으로 작가들과 만남을 갖고 관계를 지속하며 쌓아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전한다. 독자는 그들이 대면하는 자리에, 대화의 장에, 긴장되는 또는 온건한 분위기에 함께 물든다. 브레히트, 하인리히 뵐, 지그프리트 렌츠, 귄터 그라스, 47그룹의 정체성과 역할 등을 알게 되는데 현재, 이미 고전반열에 있는 작품 탄생의 전후 에피소드와 공기를 역동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을 읽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마지막 세 장은 더 각별하다. ‘예후디 메뉴인과 문학 4중주’에서 메뉴인의 인상깊은 태도, 문학의 기능과 연관해 던지는 질문들, ‘문학 4중주’가 이룬 성취는 빛처럼 다가온다. “요아힘 페스트, 마르틴 발저 그리고 ’해금‘”에서는 역사가 논쟁이 불러온 갈등을 전하는데 ‘내가 가장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내게 가장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것을 나는 떨쳐낼 수가 없다. 잊을 수가 없다. 고마움도 고통도.’(p.492)라는 문장이 그의 슬픔을 숨죽이고 가늠케한다. 그리고 “꿈이야”에 이르러 비로소 가장 아름답게 착지한다. ‘꿈이야, 현실일 리가 없어. 우리 둘이 함께 있다니.’(p.497)

『나의 인생_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은 거장이 걸어온 족적과 가장 순수하고 연약한 자의 발자국이 중첩되어 찍힌다. 폰타네에게서 인용한 ‘어른이자 아이인 사람’은 메뉴인 뿐만 아니라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삶에서도 발견된다. 극한의 고통에 내몰렸음에도 불같이 화를 낼 지언정 증오는 자신에게 생소한 감정이었다고 하는 그는 소년이었을 때의 첫 사랑, 바로 문학에 대한 사랑을 꺼트리지 않고 지켜나간다. 문학을 통해 삶과 인간을 바라보고 발언하고 돕는다. 『나의 인생』은 기라성같은 대가들의 작품을 8만권이 넘게 비평한 평론가의 자서전인 만큼 배경지식 없이 읽어내기 쉽지 않겠다는 예상을 깨는 책이기도 하다. 그의 문장은 편안하고 직관적으로 이해되며 간결하다. 익숙치 못한 작가들 이름이 종종 등장할지언정 어려운 용어나 현란한 수사법도 없다. 그가 염두에 둔 대상은 곧 대중, 일반 독자였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나는 독자에게 내가 훌륭하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책들이 왜 훌륭하고 아름다운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독자에게 그 책들을 읽히고 싶었다.”(p.480)고 말하는 문학의 교황이라니. 독자는 그만 숙연해진다.

그는 만남이 허락된 작가들, 사람들을 꿰뚫어본다. 책을 읽듯이 그들의 마음을 통찰하고 인정하며 때론 깊이 상처받고 아쉬워하지만 그 자체로 수용한다. 꾸밈없이 슬픔을 드러내기도 한다. 막스 프리슈의 사망소식을 들은 후 그와의 일화를 기록하며 ‘나는 그에게 내가 많이, 아주 많이 빚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으며, ’(p.471)로 시작하는 문단,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것도 말해주고 싶었다.‘의 반복은 한참을 머물게 한다. ‘원고는 좋지만 유대인은 나빠’(p.422)라고 할때의 뉘앙스가 자신에게도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의혹을 떨쳐버리기로 ‘굳게 결심’하는 그, 알면서도 견뎌야 했던 것들에 휘청이지 않고 전후 서독행을 선택했던 결정을 후회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다. 때론 자신을 ‘취미와 일, 열정과 직업이 완전히 일치한 사례’(p.442)로 들어 기뻐하면서 말이다. 발췌로 정리하려면 끝도 없는 책, 정의내리기와 개념 바로잡기의 연속, 인간의 다층적 면모를 담은 성실한 스케치, 책을, 결국은 인간에 대해 말하는 글, 헌사이자 애도의 서, 기록의 정점(특히 각 장의 마지막 문단은 한결같이 빼어나다, 따로 묶음을 만들고 싶을만큼), 문학으로부터 발견한 고향······『나의 인생』은 빛 바래지 않는 인상을 연속해서 등장시킨다. 이제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나의 인생』에서 눈을 돌릴 시간, 독자는 각자의 『나의 인생』을 생각하며 문학의 황제를 배웅한다. 이에 머물지 않고 그가 불러낸 작가들, 한 때 열렬했던 우리 마음속 작가들과 재회할 시간이다.

하이네의 말을 빌리면, 유대인들은 “제2예루살렘 성전이 불에 탈 때 자신들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금은 제기와 촛대와 등잔”은 내버려두고 성경만 가지고 나온 후 포로로 잡혀갔다. 성서는 그들의 ‘휴대용 조국’이 되었다. 어쩌면 나도 문학이, 그것도 독일문학이 내 ‘휴대용 조국’이라는 사실을 그때 확실히 깨달았는지도 모른다.(p.335)

내가 염두에 둔 대상은 대중, 곧 독자였다. 간단히 말하겠다. 나는 독자에게 내가 훌륭하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책들이 왜 훌륭하고 아름다운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독자에게 그 책들을 읽히고 싶었다. 나는 불평할 이유가 없다. 내 평론들은-적어도 일반적으로는-내가 원했던 영향을 독자에게 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영향을 주었다고 보지 않았다. 더 많은 것을 이룩해야 했다. 내용은 어렵지만 중요한 책들을 소수의 사람들만 읽는 현실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p.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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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8
조지 손더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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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손더스의 『여우 8(문학동네)』은 사람의 말을 알게 된 여우가 인간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우화다. 전자책으로 먼저 출간되었다가 2018년 디자이너 첼시 카디널의 일러스트와 함께 종이책으로 나온 『여우 8』은 책의 아담한 크기, 화자의 담담한 어조와는 달리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조지 손더스는 “현존하는 영어권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 “영미문학계의 천재”, “작가들의 작가”라는 평을 듣는 작가로 2017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바르도의 링컨』은 “완전히 독창적인 이 소설의 구성과 스타일은 위트 있고 지적이며, 지극히 감동적인 내러티브를 보여준다”는 찬사와 함께 그해 맨부커상을 수상한다. 2016년 국내 출간되어 지금껏 특별한 인상을 남기는 동화 『프립 마을의 몹시 집요한 개퍼들(담푸스)』을 떠올릴 때 관계와 소통, 이기심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일지 기대는 더 높아진다.

“독짜게,

우선 이 말부터 할께요. 내가 글짜를 틀리개 쓰더라도 이해하새요. 난 여우라서 그래요! 그러니 쓰기도 글짜도 완벽카진 안쵸..“(p.5) 어떤 집 근처를 걷다 창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 음악 같은 낱말들에 반해서 귀기울인 끝에 맞춤법은 틀릴지언정 인간의 말을 배우게 된 여우는 자신과 친구, 잃어버린 여우 무리의 이야기를 전한다. “머지안아 트럭들이 연기를 뿜꼬 경적을 울리며 도착캣거든요! 트럭들이 우리의 원시림을 파헤쳣서요! 우리의 기우뚱 나무를 뽑아버렷서요! 그늘진 옹달셈을 파개하고 우리가 아는 가장 놉픈 곳, 비가 안 오면 모든 피조물을 구버볼 수 잇섯던 그곳을 완전이 평평하게 만들어버렷서요!”(p.13) 인간의 환경 파괴는 여우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서식지와 먹이를 잃고 사람들의 공간에 접근케 되고, 그러던 중 소중한 친구 여우 7이 잔인하게 목숨을 잃는 것까지 목격하게되는 여우 8은 충격에 고통스럽다. 자책하고 괴로워한다. “채악의 시간이었고, 채악의 시간이엇다‘(p.41) 잃어버린 친구들을 잊지 못한 채 새로운 만남을 이어갈 여우 8은 사람들의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고 싶다고 말한다. ”당신들의 얘기가 행복하게 끈나기를 원한다면, 좀 차캐지려고 노력카새요.“(p.58) 여우 8은 여전히 인간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작가는 많지 않은 분량 안에 중요한 이야기를 충실히 담아낸다. 여우의 서툰 글로 이어지는 사건의 전개는 감정에 매몰되는 법 없이 간결하고 객관적인데 오히려 그렇기에 여우 8의 아픔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빼앗기고 잃어버리고 사과받지도 못한 채 희망을 발견하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여우 8이 써보내는 편지는 브레이크를 잃어버린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장인 셈이다. 낱말과 이야기를 사랑하고 공상을 즐기며 친구를 아끼는 여우 8은 약하지만 소중한, 지켜내고 공존해야 할 다양한 타자로 확대되기도 한다. 챌시 카디널의 일러스트는 색을 배제하고 선으로만 그림을 완성하는데 여우는 붉게, 그 외에는 검게 표현했다. 간략한 삽화는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든다. 마치 글의 여백이나 자간처럼 묵묵해 이중의 이야기처럼 머물게 한다. 어려운 중에도 위트를 잃지 않는, 마치 인간을 대신해서 생각하는 듯한 여우 8과 여우 7의 우정은 어린왕자와 여우를 생각나게도 한다. 또 한가지, 왜 여우 8일까? 숫자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그들, 그리고 새롭게 정착하는 공동체가 취하는 그들만의 이름 짓는 방식. 이 의미는 논제로 나눠보자. 틀린 글자들로 바른 생각을,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여우 8에게 책을 덮은 독자는 여전히 귀 기울이게 될 것이다.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좋은 책이다.

칭구가 조타는 건, 무리 전체가 등을 돌리는대도 내게 와주는 칭구가 잇다는 것. 아까 말햇던 여우 7 말이에요, 내가 잉간의 말을 하는 걸 첨으로 들은 칭구, 그 칭구가 총총거리며 띠어와 내 엽페 섯서요.

여우 7이 그랫죠. 너와 함께 갈게, 여우 8.

나는 그랫죠, 칭구.

그가 어깨를 살짝 으쓱캣고, 그건 이런 의미죠. 별것도 아닌대, 멀.(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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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 이야기 어린이작가정신 클래식 10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이경혜 옮김, 찰스 산토레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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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프랭크 바움의 『산타클로스 이야기(The Life and Adventures of SANTA CLAUS)/찰스 산토레 그림/어린이작가정신』는 커다란 판형과 화려한 그림으로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표지 가득 인자하게 미소 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아이 때의 추억과 오랜 상상을 소환한다. 그림책의 표지를 좌우로 펼치면 전체 그림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차고 넘칠듯한 선물 자루는 독자를 미소 짓게 한다. 반짝이는 붉은 제목과 은색 별이 검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잊지 못할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를 선사한다. 고전 명작 『오즈의 마법사』 작가로 더 유명한 프랭크 바움은 모든 어린이의 영원한 화두, 산타클로스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린이는 물론, 한때 어린이였던 독자를, 들을 준비가 된 모두를 초대한다.

작가는 총 4개의 장으로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완성한다.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들이 살고 있는 버지 숲, 그 마법의 숲에는 요정, 누크, 릴과 님프들이 살고 있는데 나무의 님프인 니실은 조금 특별하다. 완벽한 환경이지만 만족할 수 없었던 니실은 숲에서 발견한 인간의 아이 소식에 자신이 직접 키우게 해달라는 요청을 한다. 그녀의 간절함은 숲의 금기를 깨고 처음이자 마지막 허락을 받아내고 직접 ‘작은 아이’라는 뜻의 ‘클로스’라는 이름도 지어준다. 성장하게 된 클로스는 숲에 사는 모든 존재의 우두머리인 아크의 결정에 따라 온 세상을 도는 여행에 동행한다. 그때 클로스가 인간의 아이들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저는 아이들을 위해 살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일을 할 것입니다.”(p.25)라고 결심한 클로스는 웃음의 골짜기에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나무 장난감을 만들고, 부유한 아이들과 가난한 아이들의 간극에 마음 아파한다. 이야기는 클로스가 숲에서 알았던 사슴 프롤시와 글로시를 만나고 굴뚝을 통해 선물을 옮겨 양말에 넣어두고, 일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만 선물을 줄게 되고, 지금까지 계속될 수 있는 이유까지 차근히 들려준다.

『산타클로스 이야기』는 동심을 세심히 돌보면서도 뛰어난 설득력으로 독자를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안심시킨다. 『오즈의 마법사』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어린이들의 편지에 파묻혀 모두 14권에 이르는 '오즈' 시리즈를 완성했던 작가의 삶이 산타클로스 이야기에 녹아들지 않았을까 짐작게 된다. 함께 지내게 된 고양이 블링키를 조각한 나무인형이 첫 번째 장난감이 되고, 이미 많이 가지고 있는 아이의 요청에도 충분히 귀 기울이거나, 가난한 세 아이들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트리를 선물하는 등 산타클로스의 행보는 거창하지 않아도 중요한 가치를 반복해서 선택하기에 공감과 여운을 안긴다. 찰스 산토레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삽화는 책을 읽는 기쁨을 배가시킨다. 장면마다 따로 간직하고 싶어질 만큼 생생한 그림이 시공간을 넘어 또렷이 감각된다. 다시 12월이 되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트리 밑에 놓여있던 어릴 적 산타 할아버지의 흔적, 첫 번째 선물의 기억으로 스테인리스 소꿉세트를 받아 들었을 때의 경이로움과 서른이 넘었음에도 아빠의 필체로 쓰여진 산타 카드와 함께 가지런했던 선물, 한결같이 지켜졌던 크리스마스에 시간이 갈수록 먹먹한 감사를 드린다. 믿고 보는 어린이작가정신 클래식 시리즈로 만나는 『산타클로스 이야기』 역시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며, 다가오는 성탄을 위한 가장 맞춤한 선물이 될 것이다.

클로스는 썰매에 올라탔다. 무릎 위에는 따뜻한 담요를 덮고, 털모자를 귀까지 푹 당겨썼다. 썰매에는 몸집만큼 거대한 장난감 자루를 세 개나 실었다. 자루 안에 미처 들어가지 못한 선물들이 썰매 구석구석에 잔뜩 쌓여 있었다.

드디어 그들은 출발했다! 순록 열 마리는 바람처럼 훌쩍 앞으로 뛰어올랐다. 클로스는 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드디어 기다리던 1년 만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주면서 행복도 함께 퍼뜨리는 여행이 될 것이다.(p.56)



(출판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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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8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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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최애리 옮김/열린책들)』은 버지니아 울프(1882~1941)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20세기 현대문학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독보적 위치를 다시 한 번 되새겨줌은 물론 이전에 출간한 작품에서 선보였던 실험적 기법들이 처음으로 예술적 통일성을 획득한 작품이다.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 같은 뛰어난 문예 평론, 서평 등을 발표하여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출판사 인용) 버지니아 울프는 모더니즘 소설 기법인 ‘의식의 흐름’에 대해 『댈러웨이 부인』 발표 한달 전에 나온 평론집 『일반 독자』에서 명확히 한다. 작가는 사실주의 소설 기법에 반대해 마음속을 들여다 볼 때 삶이란 다른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마음은 갖가지 인상들을 받아들입니다-사소한 것, 환상적인 것, 덧없는 것, 또는 날카로운 강철로 새긴 듯한 것, 사방에서 그런 인상들은 마치 무수한 원자들의 그치지 않는 소나기처럼 밀어닥치고, 그런 소나기가 월요일 또는 화요일의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p.262)라는 십분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을 한다. 울프는 글쓰는 방식에 대해서, 독자에 대해, 『자기만의 방』 출간 이후로는 페미니즘의 기수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낸다.

“그런데, 하고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생각했다. 얼마나 상쾌한 아침인가. 마치 바닷가의 아이들에게나 찾아오던 아침처럼 신선했다.”(p.7) 소설은 1923년 6월의 어느 날 댈러웨이 부인이 파티를 장식할 꽃을 사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시작되어 저녁의 파티까지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이어지는 다음 문장은 곧바로 30여년 전 삶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했던 때를 소환한다. “얼마나 유쾌했는지! 마치 대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그런 느낌이었다.”(p.7) 열 여덟 살 그 시간은 ‘사람들’ 때문에 여전히 생생하다. 클라리사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자 매력이 넘쳤던 친구로 ‘무슨 말이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듯’(p.47)했던 샐리 시튼과 사랑도 논쟁도 나눴던 피터 월시, 꽃집을 향해 걷던 중 스쳐간 휴 휘트브레드도 있다. 하지만 클라리사가 선택한 사람은 피터 월시가 아닌 리처드 댈러웨이였다.

“왜냐하면 결혼해서 날이면 날마다 한집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약간의 방임, 약간의 독립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리처드는 그녀에게, 그녀는 그에게, 그런 여유를 허용하고 있었다.(중략) 하지만 피터와는 모든 것이 공유되어야 했고 모든 것이 설명되어야 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고, 그 작은 정원의 분수 곁에서 말다툼이 벌어졌을 때는 그와 절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둘 다 파멸해 버렸을 것이다.”(p.14) 클라리사는 이 선택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감당한다. 5년만에 인도에서 돌아온 피터 월시는 ‘무슨 낭비람! 무슨 객기람! 피터라는 사람은 평생 이런 식으로 실수 연발이다.’(p.64)식의 평을 들으면서도 그 마음은 여전히 클라리사에게 향한다.

“남자가 자살을 하겠다니 비겁한 말이야. 하지만 셉티머스는 전쟁에 나가 싸웠지. 용감한 사람인데. 하지만 이제는 셉티머스가 아닌 것만 같다.”(p.34) 루크레치아 워렌 스미스는 남편 셉티머스 스미스 곁에서 애쓰고 번민한다. 자원했던 군에서 절친으나 휴전 직전에 죽음을 맞았던 상관 에번스는 살아있는 셉티머스를 느닷없이 공포에 사로잡히게,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죽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끝모를 우울과 절망에 던져진 그가 결국 자신을 던질 때까지 의사들은 오히려 그를 옥죄고 방아쇠 역할을 하는데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었던 클라리사는 그를 단번에 이해한다. ‘영혼을 강압한다고나 할까, 그래 바로 그거야-만일 그 젊은이가 그에게 갔고 윌리엄 경이 그런 식으로 위세를 부리는 인상을 주었다면’(p.241) 인생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으리라고. 클라리사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 자신으로서는 아직도 너무 힘이 들었다. 전혀 즐기고 있지 않았다. 거기 서서 자기 자신이 아닌 그저 어느 안주인의 역할을 하는 것은 너무 힘이 들었다.”(p.222)라고. 그럼에도 그녀는 댈러웨이 부인으로써의 역할을 넉넉히 감당했으며 아슬아슬한 순간을 넘기고 그녀답게 ‘존재’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은 독자에게 그 명성을 이해시킨다. 소설의 첫부분부터 독자는 이야기의 복판에 떨어진다. 하지만 엇갈리는듯한 전개에 복잡함을 느끼다 어느 시점을 지나면 읽는 행위는 체험에 맞닿는 생생함을 불러일으키고 글로 박힌 문장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듯 입체적인 볼륨을 드러낸다.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그리 낯설지 않다. 작품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맞닥뜨리게 되는 캐릭터들, 그들의 청춘과 중년을 하루 행보로 잇대어 봄으로 독자 안에 질문과 나름의 답을 만들어 낸다. 또한 우리가 일상적으로 맞이하고 보내는 하루가 얼마나 특별한 것이며, 무수한 가능성을 내포한 역동적 실체라는 인식은 새삼스러운 놀람을 선사한다. 해설에서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견주고 작가 자신도 그에 대한 의견을 내고 있는데 필자는 1925년, 같은 해 출간된, 실험적인 기법으로 뉴욕의 본질을 그려낸 존 더스패서스의 『맨해튼 트랜스퍼(문학동네)』 를 떠올렸다. 인물, 사건, 시공간적 배경을 첩첩이 쌓아 맨해튼의 풍광을 삶과 긴밀히 연결시켰던 『맨해튼 트랜스퍼(문학동네)』를 두고 헤밍웨이는 유럽인이 실제로 미국에 와서 발견하게 되는 미국을 그들에게 보여준 작품이라 평했다. 이에 1차 세계대전 후 6월 어느 날, 제한된 하루 안에 무제한의 인생 의미를 작가의 런던 사랑과 조밀하게 배치해낸, 그녀의 행로를 따라 걷고 싶게 만드는 『댈러웨이 부인』은 흥미로운 연결점을 지닌다.

급격히 장면이 전환되고 더불어 화자의 잦은 변화로 시선이 연이어 바뀌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을 견디거나 버티고 있는, 즐기거나 의지를 다지는 인물의 심정에 이입하게된다. 작가의 예민하달 정도로 빼어난 개념정의들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늙는다는 것의 보상, 질투란, 건강이란, 균형과 전향, 삶과 죽음, 신비란, 자아는, 그리고 시간이란! 작가가 한동안은 ‘시간’을 잠정적 제목으로 삼기도 했(p.266)듯이 빅벤의 시종소리와 그 소리가 불러 일으키는 밀도 높은 생각의 파문, 시간을 주제로 하는 개념의 묶음들은 진지한 울림을 갖고 여운을 남긴다. ‘클라리사의 <더블>로 상정된’(p.273) 샙티머스의 몰락과정은 심리변화의 세밀한 조감도를 통해 심적 파동의 시각화를 완성한다. 증상과 징후와 이행에 있어서 의학서적을 보듯 적나라하고 작가의 마지막 선택과 중첩되며 고통은 물에 젖어들어가는 솜처럼 걷잡을 수 없다. 많은 밑줄들이 중요한 작품이다. 그래서 일독(一讀)은 아직 못 읽음에 가깝고 완독의 횟수를 늘려갈 때 독자는 비로소 빛나는 돌들을 수확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틀렸다. 그녀는 단지 삶을 사랑할 뿐이었다.

「난 바로 그 때문에 파티를 여는 거야.」 그녀는 삶을 향해 소리내어 말했다.(p.160)

그녀는 항상 그들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며, 그렇게 다들 흩어져 있다니 얼마나 낭비인가, 얼마나 유감스러운가 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모두 함께 모일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파티를 여는 것이다. 파니는 하나의 봉헌이었다. 조합하고 창조하는 것. 하지만 누구를 위해?

봉헌을 위한 봉헌이지, 아마도. 하여간 그것이 그녀의 재능이었다.(p.161)

언젠가 서퍼타인 연못에 1실링짜리 동전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 밖에는 다른 아무것도 내던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몸을 내던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겠지(그녀도 다시 가봐야 했다. 방들은 여전히 북적이고, 손님들은 계속해서 오고 있었다). 우리는(그녀는 온종일 부어턴과 피터와 샐리를 생각했다) 늙어 갈 거야. 중요한 단 한 가지, 그녀의 삶에서는 그 한 가지가 쓸데없는 일들에 둘러싸여 가려지고 흐려져서, 날마다 조금씩 부패와 거짓과 잡담 속에 녹아 사라져 갔다. 바로 그것을 그는 지킨 것이었다. 죽음은 도전이었다. 죽음은 도달하려는 시도였다. 사람들은 그 중심이 왠지 자신들을 비켜가므로 점점 더 거기에 도달할 수가 없다고 느낀다. 가까웠던 것이 멀어지고, 황홀감은 시들고, 혼자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죽음은 팔을 벌려 우리를 껴안는다.(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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