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8
조지 손더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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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손더스의 『여우 8(문학동네)』은 사람의 말을 알게 된 여우가 인간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우화다. 전자책으로 먼저 출간되었다가 2018년 디자이너 첼시 카디널의 일러스트와 함께 종이책으로 나온 『여우 8』은 책의 아담한 크기, 화자의 담담한 어조와는 달리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조지 손더스는 “현존하는 영어권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 “영미문학계의 천재”, “작가들의 작가”라는 평을 듣는 작가로 2017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바르도의 링컨』은 “완전히 독창적인 이 소설의 구성과 스타일은 위트 있고 지적이며, 지극히 감동적인 내러티브를 보여준다”는 찬사와 함께 그해 맨부커상을 수상한다. 2016년 국내 출간되어 지금껏 특별한 인상을 남기는 동화 『프립 마을의 몹시 집요한 개퍼들(담푸스)』을 떠올릴 때 관계와 소통, 이기심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일지 기대는 더 높아진다.

“독짜게,

우선 이 말부터 할께요. 내가 글짜를 틀리개 쓰더라도 이해하새요. 난 여우라서 그래요! 그러니 쓰기도 글짜도 완벽카진 안쵸..“(p.5) 어떤 집 근처를 걷다 창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 음악 같은 낱말들에 반해서 귀기울인 끝에 맞춤법은 틀릴지언정 인간의 말을 배우게 된 여우는 자신과 친구, 잃어버린 여우 무리의 이야기를 전한다. “머지안아 트럭들이 연기를 뿜꼬 경적을 울리며 도착캣거든요! 트럭들이 우리의 원시림을 파헤쳣서요! 우리의 기우뚱 나무를 뽑아버렷서요! 그늘진 옹달셈을 파개하고 우리가 아는 가장 놉픈 곳, 비가 안 오면 모든 피조물을 구버볼 수 잇섯던 그곳을 완전이 평평하게 만들어버렷서요!”(p.13) 인간의 환경 파괴는 여우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서식지와 먹이를 잃고 사람들의 공간에 접근케 되고, 그러던 중 소중한 친구 여우 7이 잔인하게 목숨을 잃는 것까지 목격하게되는 여우 8은 충격에 고통스럽다. 자책하고 괴로워한다. “채악의 시간이었고, 채악의 시간이엇다‘(p.41) 잃어버린 친구들을 잊지 못한 채 새로운 만남을 이어갈 여우 8은 사람들의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고 싶다고 말한다. ”당신들의 얘기가 행복하게 끈나기를 원한다면, 좀 차캐지려고 노력카새요.“(p.58) 여우 8은 여전히 인간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작가는 많지 않은 분량 안에 중요한 이야기를 충실히 담아낸다. 여우의 서툰 글로 이어지는 사건의 전개는 감정에 매몰되는 법 없이 간결하고 객관적인데 오히려 그렇기에 여우 8의 아픔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빼앗기고 잃어버리고 사과받지도 못한 채 희망을 발견하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여우 8이 써보내는 편지는 브레이크를 잃어버린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장인 셈이다. 낱말과 이야기를 사랑하고 공상을 즐기며 친구를 아끼는 여우 8은 약하지만 소중한, 지켜내고 공존해야 할 다양한 타자로 확대되기도 한다. 챌시 카디널의 일러스트는 색을 배제하고 선으로만 그림을 완성하는데 여우는 붉게, 그 외에는 검게 표현했다. 간략한 삽화는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든다. 마치 글의 여백이나 자간처럼 묵묵해 이중의 이야기처럼 머물게 한다. 어려운 중에도 위트를 잃지 않는, 마치 인간을 대신해서 생각하는 듯한 여우 8과 여우 7의 우정은 어린왕자와 여우를 생각나게도 한다. 또 한가지, 왜 여우 8일까? 숫자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그들, 그리고 새롭게 정착하는 공동체가 취하는 그들만의 이름 짓는 방식. 이 의미는 논제로 나눠보자. 틀린 글자들로 바른 생각을,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여우 8에게 책을 덮은 독자는 여전히 귀 기울이게 될 것이다.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좋은 책이다.

칭구가 조타는 건, 무리 전체가 등을 돌리는대도 내게 와주는 칭구가 잇다는 것. 아까 말햇던 여우 7 말이에요, 내가 잉간의 말을 하는 걸 첨으로 들은 칭구, 그 칭구가 총총거리며 띠어와 내 엽페 섯서요.

여우 7이 그랫죠. 너와 함께 갈게, 여우 8.

나는 그랫죠, 칭구.

그가 어깨를 살짝 으쓱캣고, 그건 이런 의미죠. 별것도 아닌대, 멀.(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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