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자서전, 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이기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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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_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은 폴란드계 유대인 문학비평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1920~2013)의 자서전으로 1999년 출간되었다. 처음 자서전 권유를 받은 1943년 이후 줄곧 외면했다가 반세기가 지난 1993년 집필을 결심하고는 6년만이다. 외면의 이유를 저자는 밝히고 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모든 사건들을 또 한번 마음속에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글을 쓰는 일을 내가 감당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p.498) 이 자서전이 개인적 삶의 기록으로 그치지 않은 이유는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 가운데 하나를 증언하기 때문(출판사소개인용)이다. 동시에 ‘1960년부터 2000년까지 40년 동안 그가 비평한 책이 무려 8만권이 넘는다’(p.503)니 문학을 향한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열정과 헌신은 그의 인생의 버팀목이었으며 책 속에 충만히 녹아난다. 언어학자 페터 폰 마트는 2002년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괴테 상 수상식 축하 연설에서 “그의 뛰어난 자서전은 한 세기의 죄과와 파렴치를 고발하는 기록이자 거기에 파괴되지 않은 독일어와 독일문학을 향한 사랑을 증언하는 작품”이라고 평한다. 2013년 가을, “권좌에서 내려와 자신의 유일한 고향이자 안식처인 ‘문학’으로 돌아간”(출판사소개인용)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그의 유례없는 삶을 따라가본다.

『나의 인생_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은 연대순으로 나뉜 총 5부 구성으로 각 5~10개의 소제목안에 하나의 주제를 밀도높게 담는다. 소제목의 징검다리를 집중해서 건너다보면 해가 바뀌고 그가 맞닥뜨린 세상도 그의 상황도 변해간다. 장과 다음 장 사이에는 틈이 없다. 독자는 몰입한채 소제목의 의미와 이야기의 핵심을 명료하게 깨닫게 된다. “가는 길은 멀었다. 부모님이 들려준 동화의 세계, 부모님이 약속한 꿈의 나라에 도착하려면 밤이나 돼야 할 것이다.(중략) 나는 흥분에 들떠 이제 맛보게 될 기적을 그려보았다. 베를린이라는 기적을.”(p.24) 어린시절, 경제적 불행에 처한 가족이 베를린 이주를 결정하면서 ‘내 삶에는 획기적인 새로운 장이 열렸다.’(p.29)고 술회한다. 그는 어렴풋이 다가오는 감정에 대해 쓴다. “독일에서 처음 수업을 받은 그날 나는 순식간에 무언가를 감지했을 뿐이다. 평생 동안 나를 따라다녔지만 한 번도 극복하지 못한 그 무엇을. 따라다녔다? 아니다. 아직도 따라다닌다고 말해야 옳다. 그건 두려움이었다. 독일인이 든 회초리에 대한 두려움, 독일의 집단수용소에 대한 두려움, 독일의 가스실에 대한 두려움, 간단히 말해, 독일의 야만성에 대한 두려움이었다.”(p.29) 동시에 그 두려움 위에 내려앉은 독일 문학과 음악의 마력, 현재형이 어울리는 여전한 행복을 이야기한다. 문학에 대한 열정은 열두 살 때 어머니에게 선물받은 「빌헬름 텔」입장권이 단초였다. 아동극이 아닌 정극으로 처음 본 그날 저녁, 문학과 연극, 실러와 싱켈이 건축한 극장에 대한 사랑까지, 자신의 ‘위대한 사랑이야기 몇 편’(p.74)이 한꺼번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38년 여느 때와 똑같은 베를린의 하루는 그에게만은 다른 하루가 된다. 폴란드로의 집단 추방길에서 그는 생각한다. 서류가방 한 개가 짐의 전부인 그는 “낯설고 낯선 이 나라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하지만 훗날 ‘눈에 보이지 않는 짐’을 가져왔음을 깨닫는다. “나를 내쫓은 나라를 떠날 때 가지고 나온 것은 바로 언어였다. 그리고 문학이었다. 그건 독일어였고, 독일문학이었다.”(p.143)라고.

2부는 참혹한 시간이다. ‘사냥의 향연’이라는 무서운 소제목은 ‘기록’한다. “야만과 잔혹함이 우연이나 자의와 한패가 될 때 의미와 논리를 따지는 질문은 현실을 모르는 한가한 생각이라는 것을 그때만 해도 우리는 알지 못했다.”(p.169) 게토의 기억, 그는 게토에서 가장 강인한 인물이었다고 역사학자 에마누엘 링겔블룸의 이름을 적는다. 이어 아담 체르니아코프를, 그리고 부모님, 현자 나탄의 반지를 가진듯한 형마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상세히 글로 기록함으로 애도한다. 애도의 행렬은 슬프고 길다. 또한 위험 중에도 있었던 미확인 인물의 음악평론, ‘독자에게 진실을 밝히자면, 그건 바로 나였다.’(p.204)에서 볼수있듯 저자는 어릴때의 꿈을 조금씩 실현하면서 음악에 의지한다. 어려운 시간이 흐르고 볼렉의 집을 거쳐 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는 뉴스를 듣는다. “그렇다. 우리가 느낀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었고, 행복이 아니라 강렬한 분노였다. 다시 한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어둡고 무거운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때 나는 느꼈다. 우리 머리 위로 몰려오는 저 구름은 영원히 걷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가 사는 동안 평생 우리 옆에 있으리라는 것을.”(p.282)

“나를 베를린으로 몰아댄 건 복수심이 아니라 그리움이었다. 내가 성장한 도시, 그리고 나를 만들어낸 곳을 다시 보고 싶었다.”(p.284) 폴란드에서의 배척 등 여전히 혼란하게 변하는 분위기들에 반응하며 그는 다시 베를린을 선택한다. 계속해서 평론을 발표하며 ‘읽기 쉽게 글을 쓰는 믿을 만한 독일문학 전문가’(p.304)라는 명성을 얻게 된 후 공적, 사적으로 작가들과 만남을 갖고 관계를 지속하며 쌓아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전한다. 독자는 그들이 대면하는 자리에, 대화의 장에, 긴장되는 또는 온건한 분위기에 함께 물든다. 브레히트, 하인리히 뵐, 지그프리트 렌츠, 귄터 그라스, 47그룹의 정체성과 역할 등을 알게 되는데 현재, 이미 고전반열에 있는 작품 탄생의 전후 에피소드와 공기를 역동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을 읽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마지막 세 장은 더 각별하다. ‘예후디 메뉴인과 문학 4중주’에서 메뉴인의 인상깊은 태도, 문학의 기능과 연관해 던지는 질문들, ‘문학 4중주’가 이룬 성취는 빛처럼 다가온다. “요아힘 페스트, 마르틴 발저 그리고 ’해금‘”에서는 역사가 논쟁이 불러온 갈등을 전하는데 ‘내가 가장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내게 가장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것을 나는 떨쳐낼 수가 없다. 잊을 수가 없다. 고마움도 고통도.’(p.492)라는 문장이 그의 슬픔을 숨죽이고 가늠케한다. 그리고 “꿈이야”에 이르러 비로소 가장 아름답게 착지한다. ‘꿈이야, 현실일 리가 없어. 우리 둘이 함께 있다니.’(p.497)

『나의 인생_어느 비평가의 유례없는 삶』은 거장이 걸어온 족적과 가장 순수하고 연약한 자의 발자국이 중첩되어 찍힌다. 폰타네에게서 인용한 ‘어른이자 아이인 사람’은 메뉴인 뿐만 아니라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삶에서도 발견된다. 극한의 고통에 내몰렸음에도 불같이 화를 낼 지언정 증오는 자신에게 생소한 감정이었다고 하는 그는 소년이었을 때의 첫 사랑, 바로 문학에 대한 사랑을 꺼트리지 않고 지켜나간다. 문학을 통해 삶과 인간을 바라보고 발언하고 돕는다. 『나의 인생』은 기라성같은 대가들의 작품을 8만권이 넘게 비평한 평론가의 자서전인 만큼 배경지식 없이 읽어내기 쉽지 않겠다는 예상을 깨는 책이기도 하다. 그의 문장은 편안하고 직관적으로 이해되며 간결하다. 익숙치 못한 작가들 이름이 종종 등장할지언정 어려운 용어나 현란한 수사법도 없다. 그가 염두에 둔 대상은 곧 대중, 일반 독자였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나는 독자에게 내가 훌륭하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책들이 왜 훌륭하고 아름다운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독자에게 그 책들을 읽히고 싶었다.”(p.480)고 말하는 문학의 교황이라니. 독자는 그만 숙연해진다.

그는 만남이 허락된 작가들, 사람들을 꿰뚫어본다. 책을 읽듯이 그들의 마음을 통찰하고 인정하며 때론 깊이 상처받고 아쉬워하지만 그 자체로 수용한다. 꾸밈없이 슬픔을 드러내기도 한다. 막스 프리슈의 사망소식을 들은 후 그와의 일화를 기록하며 ‘나는 그에게 내가 많이, 아주 많이 빚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으며, ’(p.471)로 시작하는 문단,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것도 말해주고 싶었다.‘의 반복은 한참을 머물게 한다. ‘원고는 좋지만 유대인은 나빠’(p.422)라고 할때의 뉘앙스가 자신에게도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의혹을 떨쳐버리기로 ‘굳게 결심’하는 그, 알면서도 견뎌야 했던 것들에 휘청이지 않고 전후 서독행을 선택했던 결정을 후회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다. 때론 자신을 ‘취미와 일, 열정과 직업이 완전히 일치한 사례’(p.442)로 들어 기뻐하면서 말이다. 발췌로 정리하려면 끝도 없는 책, 정의내리기와 개념 바로잡기의 연속, 인간의 다층적 면모를 담은 성실한 스케치, 책을, 결국은 인간에 대해 말하는 글, 헌사이자 애도의 서, 기록의 정점(특히 각 장의 마지막 문단은 한결같이 빼어나다, 따로 묶음을 만들고 싶을만큼), 문학으로부터 발견한 고향······『나의 인생』은 빛 바래지 않는 인상을 연속해서 등장시킨다. 이제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나의 인생』에서 눈을 돌릴 시간, 독자는 각자의 『나의 인생』을 생각하며 문학의 황제를 배웅한다. 이에 머물지 않고 그가 불러낸 작가들, 한 때 열렬했던 우리 마음속 작가들과 재회할 시간이다.

하이네의 말을 빌리면, 유대인들은 “제2예루살렘 성전이 불에 탈 때 자신들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금은 제기와 촛대와 등잔”은 내버려두고 성경만 가지고 나온 후 포로로 잡혀갔다. 성서는 그들의 ‘휴대용 조국’이 되었다. 어쩌면 나도 문학이, 그것도 독일문학이 내 ‘휴대용 조국’이라는 사실을 그때 확실히 깨달았는지도 모른다.(p.335)

내가 염두에 둔 대상은 대중, 곧 독자였다. 간단히 말하겠다. 나는 독자에게 내가 훌륭하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책들이 왜 훌륭하고 아름다운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독자에게 그 책들을 읽히고 싶었다. 나는 불평할 이유가 없다. 내 평론들은-적어도 일반적으로는-내가 원했던 영향을 독자에게 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영향을 주었다고 보지 않았다. 더 많은 것을 이룩해야 했다. 내용은 어렵지만 중요한 책들을 소수의 사람들만 읽는 현실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p.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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