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웨이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8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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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최애리 옮김/열린책들)』은 버지니아 울프(1882~1941)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20세기 현대문학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독보적 위치를 다시 한 번 되새겨줌은 물론 이전에 출간한 작품에서 선보였던 실험적 기법들이 처음으로 예술적 통일성을 획득한 작품이다.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 같은 뛰어난 문예 평론, 서평 등을 발표하여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출판사 인용) 버지니아 울프는 모더니즘 소설 기법인 ‘의식의 흐름’에 대해 『댈러웨이 부인』 발표 한달 전에 나온 평론집 『일반 독자』에서 명확히 한다. 작가는 사실주의 소설 기법에 반대해 마음속을 들여다 볼 때 삶이란 다른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마음은 갖가지 인상들을 받아들입니다-사소한 것, 환상적인 것, 덧없는 것, 또는 날카로운 강철로 새긴 듯한 것, 사방에서 그런 인상들은 마치 무수한 원자들의 그치지 않는 소나기처럼 밀어닥치고, 그런 소나기가 월요일 또는 화요일의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p.262)라는 십분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을 한다. 울프는 글쓰는 방식에 대해서, 독자에 대해, 『자기만의 방』 출간 이후로는 페미니즘의 기수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낸다.

“그런데, 하고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생각했다. 얼마나 상쾌한 아침인가. 마치 바닷가의 아이들에게나 찾아오던 아침처럼 신선했다.”(p.7) 소설은 1923년 6월의 어느 날 댈러웨이 부인이 파티를 장식할 꽃을 사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시작되어 저녁의 파티까지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이어지는 다음 문장은 곧바로 30여년 전 삶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했던 때를 소환한다. “얼마나 유쾌했는지! 마치 대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그런 느낌이었다.”(p.7) 열 여덟 살 그 시간은 ‘사람들’ 때문에 여전히 생생하다. 클라리사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자 매력이 넘쳤던 친구로 ‘무슨 말이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듯’(p.47)했던 샐리 시튼과 사랑도 논쟁도 나눴던 피터 월시, 꽃집을 향해 걷던 중 스쳐간 휴 휘트브레드도 있다. 하지만 클라리사가 선택한 사람은 피터 월시가 아닌 리처드 댈러웨이였다.

“왜냐하면 결혼해서 날이면 날마다 한집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약간의 방임, 약간의 독립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리처드는 그녀에게, 그녀는 그에게, 그런 여유를 허용하고 있었다.(중략) 하지만 피터와는 모든 것이 공유되어야 했고 모든 것이 설명되어야 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고, 그 작은 정원의 분수 곁에서 말다툼이 벌어졌을 때는 그와 절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둘 다 파멸해 버렸을 것이다.”(p.14) 클라리사는 이 선택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감당한다. 5년만에 인도에서 돌아온 피터 월시는 ‘무슨 낭비람! 무슨 객기람! 피터라는 사람은 평생 이런 식으로 실수 연발이다.’(p.64)식의 평을 들으면서도 그 마음은 여전히 클라리사에게 향한다.

“남자가 자살을 하겠다니 비겁한 말이야. 하지만 셉티머스는 전쟁에 나가 싸웠지. 용감한 사람인데. 하지만 이제는 셉티머스가 아닌 것만 같다.”(p.34) 루크레치아 워렌 스미스는 남편 셉티머스 스미스 곁에서 애쓰고 번민한다. 자원했던 군에서 절친으나 휴전 직전에 죽음을 맞았던 상관 에번스는 살아있는 셉티머스를 느닷없이 공포에 사로잡히게,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죽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끝모를 우울과 절망에 던져진 그가 결국 자신을 던질 때까지 의사들은 오히려 그를 옥죄고 방아쇠 역할을 하는데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었던 클라리사는 그를 단번에 이해한다. ‘영혼을 강압한다고나 할까, 그래 바로 그거야-만일 그 젊은이가 그에게 갔고 윌리엄 경이 그런 식으로 위세를 부리는 인상을 주었다면’(p.241) 인생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으리라고. 클라리사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 자신으로서는 아직도 너무 힘이 들었다. 전혀 즐기고 있지 않았다. 거기 서서 자기 자신이 아닌 그저 어느 안주인의 역할을 하는 것은 너무 힘이 들었다.”(p.222)라고. 그럼에도 그녀는 댈러웨이 부인으로써의 역할을 넉넉히 감당했으며 아슬아슬한 순간을 넘기고 그녀답게 ‘존재’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은 독자에게 그 명성을 이해시킨다. 소설의 첫부분부터 독자는 이야기의 복판에 떨어진다. 하지만 엇갈리는듯한 전개에 복잡함을 느끼다 어느 시점을 지나면 읽는 행위는 체험에 맞닿는 생생함을 불러일으키고 글로 박힌 문장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듯 입체적인 볼륨을 드러낸다.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그리 낯설지 않다. 작품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맞닥뜨리게 되는 캐릭터들, 그들의 청춘과 중년을 하루 행보로 잇대어 봄으로 독자 안에 질문과 나름의 답을 만들어 낸다. 또한 우리가 일상적으로 맞이하고 보내는 하루가 얼마나 특별한 것이며, 무수한 가능성을 내포한 역동적 실체라는 인식은 새삼스러운 놀람을 선사한다. 해설에서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견주고 작가 자신도 그에 대한 의견을 내고 있는데 필자는 1925년, 같은 해 출간된, 실험적인 기법으로 뉴욕의 본질을 그려낸 존 더스패서스의 『맨해튼 트랜스퍼(문학동네)』 를 떠올렸다. 인물, 사건, 시공간적 배경을 첩첩이 쌓아 맨해튼의 풍광을 삶과 긴밀히 연결시켰던 『맨해튼 트랜스퍼(문학동네)』를 두고 헤밍웨이는 유럽인이 실제로 미국에 와서 발견하게 되는 미국을 그들에게 보여준 작품이라 평했다. 이에 1차 세계대전 후 6월 어느 날, 제한된 하루 안에 무제한의 인생 의미를 작가의 런던 사랑과 조밀하게 배치해낸, 그녀의 행로를 따라 걷고 싶게 만드는 『댈러웨이 부인』은 흥미로운 연결점을 지닌다.

급격히 장면이 전환되고 더불어 화자의 잦은 변화로 시선이 연이어 바뀌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을 견디거나 버티고 있는, 즐기거나 의지를 다지는 인물의 심정에 이입하게된다. 작가의 예민하달 정도로 빼어난 개념정의들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늙는다는 것의 보상, 질투란, 건강이란, 균형과 전향, 삶과 죽음, 신비란, 자아는, 그리고 시간이란! 작가가 한동안은 ‘시간’을 잠정적 제목으로 삼기도 했(p.266)듯이 빅벤의 시종소리와 그 소리가 불러 일으키는 밀도 높은 생각의 파문, 시간을 주제로 하는 개념의 묶음들은 진지한 울림을 갖고 여운을 남긴다. ‘클라리사의 <더블>로 상정된’(p.273) 샙티머스의 몰락과정은 심리변화의 세밀한 조감도를 통해 심적 파동의 시각화를 완성한다. 증상과 징후와 이행에 있어서 의학서적을 보듯 적나라하고 작가의 마지막 선택과 중첩되며 고통은 물에 젖어들어가는 솜처럼 걷잡을 수 없다. 많은 밑줄들이 중요한 작품이다. 그래서 일독(一讀)은 아직 못 읽음에 가깝고 완독의 횟수를 늘려갈 때 독자는 비로소 빛나는 돌들을 수확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틀렸다. 그녀는 단지 삶을 사랑할 뿐이었다.

「난 바로 그 때문에 파티를 여는 거야.」 그녀는 삶을 향해 소리내어 말했다.(p.160)

그녀는 항상 그들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며, 그렇게 다들 흩어져 있다니 얼마나 낭비인가, 얼마나 유감스러운가 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모두 함께 모일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파티를 여는 것이다. 파니는 하나의 봉헌이었다. 조합하고 창조하는 것. 하지만 누구를 위해?

봉헌을 위한 봉헌이지, 아마도. 하여간 그것이 그녀의 재능이었다.(p.161)

언젠가 서퍼타인 연못에 1실링짜리 동전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 밖에는 다른 아무것도 내던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몸을 내던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겠지(그녀도 다시 가봐야 했다. 방들은 여전히 북적이고, 손님들은 계속해서 오고 있었다). 우리는(그녀는 온종일 부어턴과 피터와 샐리를 생각했다) 늙어 갈 거야. 중요한 단 한 가지, 그녀의 삶에서는 그 한 가지가 쓸데없는 일들에 둘러싸여 가려지고 흐려져서, 날마다 조금씩 부패와 거짓과 잡담 속에 녹아 사라져 갔다. 바로 그것을 그는 지킨 것이었다. 죽음은 도전이었다. 죽음은 도달하려는 시도였다. 사람들은 그 중심이 왠지 자신들을 비켜가므로 점점 더 거기에 도달할 수가 없다고 느낀다. 가까웠던 것이 멀어지고, 황홀감은 시들고, 혼자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죽음은 팔을 벌려 우리를 껴안는다.(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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