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 전쟁의 기억과 분단의 미래
브루스 커밍스 지음, 조행복 옮김 / 현실문화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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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을 진지한 학술 연구의 시초로 닦은 ‘한국 전쟁의 기원’의 저자이자 미국 시카고대 석좌 교수인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최근 출간작인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전쟁’ 을 일독했습니다. 그는 80년대에 미국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한국전쟁에 대한 수정주의적 입장을 견지했는데요. 박명림 교수를 비롯한 국내의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한국 전쟁에 대한 ‘실제 역사’가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최근에 러시아가 공개한 구소련 시절의 스탈린과 마오쩌둥, 김일성 간의 외교적 대화와 기록들이 공개되면서 당시 김일성의 행적이 낱낱이 검증되어 논란이 불식되었습니다. 1950년 초에 스탈린이 김일성의 요구를 잠정적으로 인정하면서 김일성이 주도한 북한군의 38선 이남 남진이 사실로 밝혀졌죠.

지금도 한국의 많은 관련 학자들은 커밍스 교수의 한국 전쟁론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밍스 교수는 특유의 노력으로 미국이 보유했지만 그동안 잊혀져 있던 수많은 한국 전쟁 자료들을 발굴해 내었기에 이 부분 만큼은 인정 받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1999년에 공개된 남측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사진 자료들이 일부 실려 있고, 책 후반부에 이 주제에 대한 글이 다뤄지고 있습니다.

제가 고교 시절에 배웠던 국사 교과서에도 나와있던 소쉬 ‘애치슨 라인’ 이 간접적으로 북한의 남침을 제공한 것으로 설명되는데, 커밍스 교수는 ‘한국 자체로서 대 공산주의 대결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는 것을 애치슨을 비롯한 트루먼 대통령이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것을 표면적으로 밝히는 것이 어려웠다. 그 이유는 이런 미국의 입장을 내세워 이승만이 겁없이 전쟁을 시작할까 두려웠기 때문” 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전쟁 기간 내에 맥아더와 트루먼의 대립은 익히 알려진대로 그러했지만, 숨어있던 내막은 트루먼이 맥아더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렸던 이유는 미국 정부가 핵폭탄 사용을 결정하면 햔직에 더 신뢰할 만한 지휘관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번역 출간된 데이비트 핼버스탬의 ‘콜디스트 윈터’에서 보여지는 맥아더, 트루먼의 일련의 갈등의 본질을 잘못 끄집어 냈다는 것으로 여기는 모양입니다. 그외에도 핼버스탬이 미국 정부에 있어서 한국 전쟁에 대한 실제적 이해에 대해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커밍스는 받아들이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이에 애치슨의 표현대로 ‘한국 전쟁은 발발하여 우리(미국)를 구한 위기’ 였다고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봐야겠죠. 당시 매카시즘의 광풍에 휩싸여 있던 미국 정계에서도 이 한국 전쟁의 의미는 단순히 먼 아시아의 내전으로만 한정하기에는 어려웠을 겁니다. 더욱이 자신들의 태평양 안보에 있어서 중요한 일본을 재건하는데 한국전쟁을 십분 이용함으로써 미국의 정치권에게는 실로 적절한 위기였다고 해석하고 싶군요.

그리고 미국인들이 우리에게 갖고 있던 인종주의적 편견에 대해서도 2008년에 출간된 커밍스 교수의 공저 ‘악의 축의 발명’에서 언급된 공통된 인식이 들어가 있는데요. 특히 당시 남한에서 군정을 수립하고 거기에 참여했던 미군과 그 수뇌부들이 갖고 인종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데요. 제가 느끼기에는 제주에서의 사건, 여수와 대전, 수원 등지에서 자행되었던 한국군과 경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이러한 인종주의적 편견으로 인식되어 정치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은 당시 현지의 (권력을 지닌) 미국인들에 대한 비판입니다.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이승만 정권과 그에게 부역했던 권력이 무고한 민간인들을 확인되지도 않은 사상의 껍데기로 싸잡아 처단해 아직도 진실과 화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는 미국에게도 공통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근리 사건에서 보여졌던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대응을 봤을 때 이러한 화해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지나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외에도 한반도 전체를 ‘달 표면’과 마찬가지로 만들었다는 미 공군에 의한 무차별 폭격과 먼 미래에 이라크에 대해 1945년의 한국과 거의 동일한 과오를 저질렀다고 자기 고백하는 미국인 커밍스 교수의 언급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한국 전쟁의 진실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지만 커밍스 교수의 용기가 느껴지는 이 단행본은 조금이나마 우리가 과거의 동족 상잔의 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약간의 논외지만 미일 동맹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많은 미국의 연구자들과 학자들과 달리 일본에 의한 냉혹한 한국 식민 통치와 ‘아베는 근본적으로 고노 담화를 거부한다’ 고 평가하는 그의 진심은 약간의 학자적 양심을 느껴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정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역사와 진실을 날 것 그대로 마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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