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경 일본에 화제를 일으킨 시라이 사토시 교수의 책이 최근에 번역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전 구해 일독하게 되었습니다. 전후 이후 이뤄진 일본 정치체제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요. 덕분에 매우 흥미롭게 행간을 읽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제목에 나와 있는 ‘영속패전론‘이라는 것은 간단히 설명하면 2차 대전 패전 이후 미국에 종속되어 자신들이 패전했음에도 속으로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후반부에도 이 영속패전론에 대해 심도있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일단 간단한 설명은 이렇구요. 저자는 3. 11 동일본 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사실상 전후 체제는 종말을 고했다고 선언하는데요. 이는 오에 겐자부로가 외치듯이 작금의 시대는 ‘모욕의 시대‘ 이며 이런 모욕적인 일상에 일본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정치 권력의 책임이라고 못박고 있습니다. 저도 일전에 후쿠시마와 오키나와 그리고 핵발전에 관한 여러 책을 이곳을 통해 리뷰했는데요. 즉, 이것은 후쿠시마 사태 때 일본 기상학회 이사장이자 도쿄대 교수인 니노 히로시가 말한 ˝따르게 하되, 알게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에 전부 응축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일본의 거대한 정치권력이 원자력 마피아 들과 연합해 책임 회피와 변명으로 일관해 결국에는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을 우선해 국민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본심을 드러냈고 그동안 일본의 정치가 주장하고 건설해왔던 전후에 구축해왔던 일본의 민주주의는 그야 말로 참혹하게 끝났다고 여기는 통탄할만한 자기 고백이라고 하겠죠.

그러면서 전후 천황제의 존속을 댓가로 이뤄진 일본 평화헌법체제 하에 미국의 안보 편입에 아베는 전후체제의 탈각을 외치며 평화헌법을 개정해 교전권을 갖는 일본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지만 이것은 미국에게 역시 모욕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죠. 물론 부시 행정부 시절 리처드 아미티지를 비롯한 저팬 핸들러 들에게 일정 부분 동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역할을 강조했으나 오바마 행정부 들어 이렇게 더 나아가 일본 정치권 수뇌들이 역사 수정주의에 나서자 미국의 정치권이 이를 매우 혐오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미국은 그동안 자신들의 국익에 따라 일본을 방치하거나 방관하거나 내버려 두었지만 언제까지 미국이 자신들이 구축한 현 세계체제와 밀접히 관련된 전후체제를 부정하는 일본을 두고만 볼지는 앞으로 지켜 볼일입니다. 더욱이 교전권을 확보한 일본이 다음 단계는 무엇이 될지는 그것의 미래가 결코 긍정적이지 않은 것에 답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전후 대외적인 측면에서 일본의 자기 기만의 행태에 대표적인 것으로 센카쿠/댜오위다오와 독도 문제 인데요. ICJ에 가자고 하는 중국의 요구에 ˝센카쿠에서 영토 문제는 없다˝고 거절하는 일본 당국이 독도 문제에 관련해서는 한국 정부에 ICJ에 가자고 요구하지만 이렇게 국제사회에 기만적이고 이중적으로 보이는 행태에 설사 독도가 일본의 요구대로 그렇게 된다 한들 국제 사회에서 그것을 옳다고 여길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다만 독도에 관련된 저자의 주장에 논리적인 문제가 있는데요. 굳이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 맺은 조약들이 불법화가 되었기에 1905년 강압에 의해 외교권을 박탈할 당시에 무주지라는 핑계로 독도를 자신들의 영향권에 강제로 넣은 것을 점유권의 증거로 삼아서는 안되는 것이죠. 우리나라에게 역사 문제 아무리 내밀어 봤자 의미없는 일 아닌가 반문하면서 증거로 삼을 수 없는 불법적인 일을 갖다 들이대는 것은 자기 모순이 아닌가 싶습니다. 애초에 일본의 조선 병탄이 국제 사회에 의해 불법화가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유감스럽다고 느낄 수 밖에 없더군요.

한국 전쟁의 연구로 유명한 시카고 대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한국과 대만이 없었다면 일본이 그와 같은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을 누릴수 있었겠는가˝ 라는 언급을 현재의 일본인들이 인정하고 냉전 시대에 한국이 없었다면 지금 일본의 민주주의는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예상치 못한 이익, 자국의 300만명 희생에 몰두해 피해자로 둔갑해가며 대동아공영권으로 인한 2천만의 주변 아시아인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지 않는 것은 그 근간에 이러한 영속패전론적 인식이 있는 듯 합니다. 진주만 폭격과 그와 동시에 미국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면서도 자신들조차 이 전쟁은 안된다고 여겼지만 그 책임을 통감하지 않는 다수의 일반 일본 국민들의 태도는 지금까지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간의 아베 정권을 지지하고 자신들도 역사적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죠.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일본 지식으로서는 꽤 보기드문 글인것만은 사실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속마음을 철저히 분리해서 표현하고 해석하는 일본인들의 관념적인 특성상 일체론적으로 전부 받아들이기엔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이런 현실적 모순을 이해하고 매번 반복되는 역사적 문제에 관련해서 진솔하게 밝힌 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특히 독도 문제와 관련된 일본 지식인들의 이상한 잣대를 너무 많이 접해와서 좀 진전된 내용이 있을 줄 알았으나 그런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끝으로 오독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되어 조만간 또 한번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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