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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비자 ㅣ 창비세계문학 36
안나 제거스 지음, 이재황 옮김 / 창비 / 2014년 8월
평점 :
본명이 안나 레일링인 안나 제거스는 지난 1900년 독일의 마인츠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네티'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요. 그녀의 부친은 유대인으로, 본명은 이시도르 레일링이었고 당시 꽤 유명한 골동품 및 유물 거래상이었습니다. 1920년부터 1924년까지 제거스는 퀼른 대학교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역사, 미술사, 그리고 중국학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1924년에 그녀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네티 레일링'이라는 이름으로 '렘브란트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유대인과 유대교'를 주제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이듬해인 1925년에 제거스는 헝가리 공산주의자이자 학자였던 라즐로 라드발리와 결혼했고, 헝가리 시민권을 취득합니다. 그리고 1928년에는 독일 공산당에 가입합니다. 1932년에 발표한 소설, 『동료들 Die Gefährten』은 나치즘의 위험성에 대한 예언적 작품으로 이 때문에 그녀는 게슈타포에 체포되었습니다. 또한 1933년에 다른 작품인 『산타 바바라 어부들의 반란 Aufstand der Fischer von St. Barbara』역시, 나치 정권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어 불태워지기도 했습니다. 이후 1934년에 유대인들에게 나날이 불온해져 갔던 독일을 떠나 파리로 이주하게 되는데요. 1940년에 독일군이 프랑스 제3공화국을 침공하자, 그녀는 유럽을 떠나기 위해, 남쪽인 마르세유로 피나을 떠나게 됩니다. 1944년에 발표된 이『통과비자』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소설은 파리에서 마르세유로 향하는 길에 '독일의 프랑스 비점령지역'을 거치면서 겪었던 그녀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 있습니다. 여기에 1939년 파리에 머물던 당시, 그녀는 『제7의 십자가 Das siebte Kreuz』를 쓰기도 했는데요. 이 소설은 1942년에 미국에서 영어로 번역 출판되었고,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미국 영화로 빠르게 각색되어 영화화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마르세유를 거쳐 멕시코로 이주했던 제거스는 1947년 독일로 돌아와 소련이 통제하는 독일 내의 고립 지역인 서베를린에 정착합니다. 이때 그녀는 소련이 점령한 지역의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에 가입하게 됩니다. 혼란스런 냉전 시기를 몸소 겪으며 살던 그녀는 1967년에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으나, 1977년부터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 1983년 6월 1일, 영면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작품은 원제, "Transit"으로 지난 1944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4년 8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제가 구입한 판본은 초판 2쇄로, 2026년 7월 출판되었습니다.
얼마전에 글을 쓰기도 했던 『히틀러의 복지국가』를 통해, 당시 유대인들이 처한 상황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이후 접했던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베를린이여 안녕』에 이어, 이 작품을 손에 잡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40년 이후의 분할된 프랑스와 이 곳을 탈출하려는 피난민들과 정치적 망명자들 그리고 적지 않은 유대인들이 히틀러에 협력하던 비시 정부 치하의 마르세유로 향하게 됩니다. 여기에 어떤 연유로 독일군에서 탈출해 '나치 강제 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주인공이 '라인강을 헤엄쳐 탈출해' 파리에 도착하게 됨으로써,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와 함께 수용소 생활을 했던 '파울 슈트로벨'에 대한 짤막한 인상이 극의 초반에서 등장하게 되는데요. 진행되는 서사에서 꽤 중요한 인물로 드러날 것으로 여겨졌던 파울 슈트로벨은 그 신비한 인상 만큼이나, 후반부에서 주인공을 둘러싼 진실을 독자들이 잠시나마 유추하게 만드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천연스럽고 낯을 거의 가리지 않는 특유의 '친화력'은 꽤나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주인공과 수용소 동기이자, 과거를 공유하는 파울이 특별하게 요청한, '보지라르 가(街)에 있던 한 호텔에서의 의뢰'를 주인공이 내치지 못하고 수용하게 됩니다. 주인공의 명목상 이름은 '자이들러'로 당시 독일과 나치 치하의 프랑스 정부에 기입된 신분증 이름이 바로 자이들러이기도 했습니다.
그 호텔에는 마치 현실의 발터 벤야민과 슈테판 츠바이크와 마찬가지로, '지역 내의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들을 강제 이송'하게 하는 정치 상황에서 아마도 심약한 내적 문제로 인해 '자살을 선택'한 바이델이라는 작가의 죽음을 그는 목도하게 됩니다. 이 죽은 작가의 존재는 초중반부 이후, 주인공이 마르세유로 향하게 되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거의 무연고나 다름없던 시신에게서 남은 작품 노트와 '통과비자'와 관련된 서류들을 마르세유에 있는 '멕시코 대사관'에 있는 관계자들에게 진실을 전하게 되는 '임무'를 그는 떠안게 됩니다. 더욱이 이 남자는 행방불명인 아내까지 존재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바이델이라는 작가의 죽음은 현실에서, 오스트리아 작가였던 에른스트 바이스 Ernst Weiss의 죽음에서 소설적 장치로 거듭났습니다. 특히 이 에른스트 바이스와 친분이 있었던 작가는 '그 처참한 심경'에서, 작품 내에 다시금 경종을 울린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보게 되는데요. 극에서 지나가는 화자를 통해, 작가인 바이델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당국의 추적을 받았고, 일반인들보다 더 내면의 감수성의 영향을 깊게 받았던 작가였음을 고려해 본다면, 그의 즉각적인 위태로운 삶을 향한 거부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특히 여기서 드러나는 마르세유에 횡행했던 당국의 '인간 사냥'을 떠올려 본다면 더욱 이 작가의 죽음이 얼마나 많은 점철된 비극으로 인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는 마르세유로 도착하자마자, 파리에서부터 친밀하게 알고 지냈던 비네씨 일가의 가족인 조르주 비네가 살고 있는, 코르시카 구역으로 향하게 됩니다. 전쟁과 강제 이송, 및 '인간 사냥'을 피해, 찾아온 수많은 외지인들의 '통과지역'인 마르세유는 개인적으로는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에 점령되기 전의 아슬아슬했던 상하이를 언뜻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곧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