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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이여 안녕 ㅣ 창비세계문학 46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성은애 옮김 / 창비 / 2015년 11월
평점 :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는 1904년 8월, 영국 북서부, 그레이터 맨체스터 스톡포트 인근인 체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인 프랭크는 케임브리지 대학과 흔히 '샌드허스트'로 불리는 샌드허스트 왕립 육군사관학교에 교육을 받았고, 보어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그는 이후에 벌어진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전사하게 됩니다. 모친인 캐틀린은 성공적인 와인 상인의 외동딸로, 그녀는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첫째 아들의 이름을 크리스토퍼 윌리엄 브래드쇼-이셔우드로 외가의 유산까지 승계하게 만듭니다. 이셔우드는 1914년부터 서리 주에 위치한 남녀 공학 교육 기관인 세인트 에드먼즈 학교에 등록했고 그곳에서 평생 친구이자 동료가 되는 영국계 미국인 시인이었던, 위스턴 휴 오든을 만나게 됩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18년이 되자, 더비셔 주 렙턴에 소재한 남녀공학 사립 기숙 학교인 렙턴 스쿨로 떠나게 됩니다. 그는 렙턴에서 평생 친구인 에드워드 팔레즈 업워드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초현실주의 작가로, 그는 1930년대에 영국 공산당에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이셔우드는 역사학 전공으로 케임브리지의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에 진학했지만, 2학년 학기 중 시험에서 농담과 반복된 라임을 구사하며, 시험지를 작성해, 1925년 학위 없이 떠나라는 힉교 당국의 요구를 받습니다. 케임브리지를 떠난 후 이셔우드는 개인 교사로 일하다가 바이올리니스트 앙드레 망조가 이끄는 현악 사중주단의 비서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자녀와 부모 사이의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 다툼을 다룬, 첫 소설인 『모든 공모자들 All the Conspirators』을 1928년에 출간합니다. 1929년이 되자 이셔우드는 오든이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던 베를린으로 향하게 되는데요. 그가 베를린으로 간 주된 동기는 바이마르 시대가 역설적으로 제공하는 '성적 자유'였습니다. 그런 그는 '코지 코너'라는 지하 술집에서 만난 독일 소년과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이때의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셔우드는 지금 소개할 작품인, 『베를린이여 안녕』의 모티브를 얻게 됩니다. 이때 베를린에서의 히틀러가 주도하는 나치의 정치적 확장이, 당시 가난과 실업, 점차 반유대주의가 확산되어 가던 도시의 분위기와 맞물려, 음울하고 사회 반항적인 향락주의 추구를 아주 생생하게 그려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작품은 원제. "Goobye to Berlin"으로 지난 1939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5년 11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이셔우드의 이 작품은 형식상, 6편의 중편이 함께 수록된 '소설집' 형태로 되어 있으나, 실상은 각각의 작품들이 서로 서사적으로 연결된, 일종의 '연작 소설'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의 화자가 '나'이고 나의 이름이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라고 해서 이것을 실제 이야기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못을 박고 있었는데요. '실제 인물의 정확한 묘사'라는 어구의 의미가 무엇인지 작품을 일독하기 전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게 되니, 작가가 왜 저런 이야기를 굳이 하게 되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주의 깊게 읽는 내내, 발터 벤야민과 알베르 카뮈가 공통적으로 언급했던, '추방된 사람들'에 대한 현실적 이미지를 아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는데요. 이 이미지는 여기에 작가의 성적 지향까지 맞물려, 소설의 주된 배경인 '베를린'의 세기말적 분위기를 좀 더, 숙고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캐릭터에 따라, '이시부 씨', '크리스', '크리스토퍼'로 불리게 되는 화자 '나'는 베를린에서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근근이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실제로 영국 출신 '캬바레 가수'였던 진 로스를 배경으로 만든, '쌜리 볼스'는 특유의 팜므 파탈적 분위기와 남자들을 향한 특유의 아이 같은 태도가 인상적인 캐릭터입니다. 작가가 설정한 그녀의 서사와 사연을 접하지 않는다면 그저 '자기 파괴적 인물'로 느껴질 만큼 무모하고, 동시에 순진무구한 매력을 풍깁니다. 다만 이셔우드는 쌜리에 대해 어떠한 성적 매력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니다. 그래서 쌜리와 작중 화자인 나의 만남과 의미심장하게 지속되는 관계가 왜 흔한 '연인 관계'로 이어지지 않는지 의문을 갖기도 했는데요. 쌜리가 삶에 대한 자유와 소위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도피처로 베를린을 선택했다는 부분과 그녀의 서사 전반이 어둡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배경으로 인해, 쌜리와 화자 '나'가 동일한 '추방된 인물'로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갖는 본질은 극에서 화자인 이셔우드의 모호한 성적 지향을 은연 중 짐작하게 만드는 소위 극적인 설정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수록된 후반부, '란다우어가 사람들'의 주요 등장 인물인 나탈리아 란다우어와 쌜리, 그리고 이셔우드가 갑작스레 대면하는 장면은 꽤나 흥미로운 순간이었는데요. 아마도 유대인 가정의 배경으로 인해, 성적으로 꽤나 보수적인 나탈리아는 쌜리와 이셔우드의 약간의 장난 같은 대화에서도 충격을 받습니다. 쌜리 역시 나탈리아와 상극임을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이 둘은 금방 데면데면하게 됩니다. 이 이전에도 이셔우드와 관련된 서사에서, 숱한 남자들과 만남과 대화를 지속하는 친밀한 분위기의 묘사들이 있었는데, 쌜리를 곁에서 아무런 '성적 긴장'없이 지켜본 과거의 이셔우드와 끊임없이 그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듯, 그의 주변을 맴도는 나탈리아의 행동에 무심한 듯 보이는 감정선 자체는 작가인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본인의 특별한 성적인 취향을 에둘러 예측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뤼겐섬에서'와 '노바크가 사람들'에 등장하는 오토 노바크와 화자 나와의 그 은밀하게 보이는 관계 설정은 소위 '서로 끌리는 두 남자'에게 보이는 특유의 긴장감이 엿보였습니다. 물론 이셔우드는 앞선 쌜리에게서나 여기 오토에게서나 느긋하고 차분한 태도를 일관하는데요. 쌜리가 만나는 남자들이 그녀를 매번 파국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그녀 옆에서 자리를 지키는 이셔우드라는 캐릭터의 존재는 단순히 전형적인 여성과 '게이'이라는 관계를 떠나, 극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쌜리가 이셔우드와의 초반 관계에서 "당신은 돈이 없어 보여서", 근근이 살아가는 내가 당신에게 다가갈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게이인 이셔우드'의 성적 지향을 교묘히 숨겨버렸지만, 그것 이상의 '여성과 여성 사이에서 보이는 우정'을 이 쌜리와 이셔우드를 통해, 드러내는 것과 같은 세밀한 묘사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쌜리와 이셔우드는 각자가 멀어지기도 했지만 '이 두 사람이 느끼는 우정의 빈자리'는 이어지는 서사로 잘 보여지게 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서사 자체를 이끌어 가는 이셔우드는 아주 직접적으로 인정된 성적인 표현 없이, 그와 만남을 지속한 남자들 간의 긴장감을 토대로 '뤼겐 섬에서' 이후부터는 확실하게 그가 '게이'임을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도인 베를린이 성적 소수자들의 해방구였다는 역사적 배경은 뭔가 아이러니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바이마르라는 과거의 공화국이 당시를 살아간 독일인들에게는 혐오와 철저한 망각을 가리키는 단어였다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다만 작가인 이셔우드는 1929년 이후의 도시 베를린의 진면목으로 다른 방법으로 여실히 폭로하고 있습니다. 즉, 유대인-공산주의-호모(성소수자를 가리키는)를 축으로 당시 독일 사회가 일반 시민들이 이들을 어떻게 차별하고 심지어 어떤 식으로 증오의 싹을 틔우게 되었는지를 작품 안에서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음울한 분위기를 내비치는 사회 곳곳의 모습이라든지, 총리가 어떤 연유로 교체되고, 특히 나치당의 여러 행적들을 서사에 포함해 서술함으로써,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체를 약간이나마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유대인과 관련된 인물들의 대화나 그 표현들은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유럽의 반대유주의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의사가 유대인은 아니죠.", "더러운 유대인이 그녀 몸에 손대게 하면 안돼요,", "그들은 늘 그런 직업을 가지려 한다니까요. 짐승 같은 놈들."과 같은 거의 냉소를 넘어 증오가 느껴지는 표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반유대주의에 작가는 '기율'이라는 단어를 끄집어 냅니다. 작중 뤼겐 섬에서 사실상 오토 노바크의 '성적 지향'을 거기서 만난 의사가 그를 '도와줘야 한다'는 말과 함께, 기율을 언급하며, "이런 아이들은 노동수용소로 보내야 해"라는 유대인들과 사회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성소수자들을 노동수용소로 보내는 식의 '기율'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사실 이 시대의 독일인들이 성소수자들을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구분해 분리시키고 이것이 나치가 '순수 아리안 사회'에서 존재할 필요가 없는 대상들을 '즉결 처분'했던 역사는 매우 유명합니다. 저는 그래서 저 기율이라는 단어에 유독 소름끼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글을 다 읽고 나서 들었던 생각이지만 작가인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는 자신의 조국인 영국에서조차 용납될 수 없었던 '동성애'와 당국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일종의 도피 여행을 실제로 떠났지만 그가 목도했던 베를린의 세기말적 분위기는 어쩌면 그에게 펜을 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독일인들의 그 자랑스런 제국이 대전에서 패해, 강요된 공화주의 국가는 어떤 식으로든 이들에게 모욕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프로이센에 의한 강력한 제국의 몰락은 그것대로 문제였지만, 여기에 귀족 계급의 몰락이라는 계급의 해체와 그리고 프로이센 대 바이에른과 같은 순혈과 지방민들에 대한 차별 구도 등은 더욱 바이마르 공화국을 나치라는 외길 낭떠러지로 몰아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치는 독일 내의 공산주의 세력의 척결을 명분으로 정치적 권력을 확대하기 시작해, 종래에는 유대인들을 참혹한 가스실로 보내 '즉격 처분'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를 저질렀으니 그 시대, 그 도시에 이방인으로 살았던 이셔우드에게는 그가 체험했던 사회적 맥락의 총체가 어쩌면 참혹한 두 번째 대전의 기시감을 느끼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셔우드의 이 작품이 단순히 바이마르 공화국에 좌절한 평범한 독일인들의 좌절과 냉소를 그려냈다는 차원을 넘어, 카를 슈미트 식의 '우리' 이외의 인정할 수 없는 다른 무언가를 배제하고 철저히 제거하는 것이 민족주의 이상의 다른 방편으로 여겼던 그 시대의 비인간화를 예견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독일인들이 과거 바이마르의 유산을 그저 경원시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과연 나치의 유산을 철저하게 제거했는지, 그것에 대해 먼저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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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자본과 사회와 종교와 섹스에 대한 그녀의 단호한 진술처럼, 거기 그렇게 서 있다.
"정치적, 경제적인 상황은," 나는 선생의 말투로 권위 있게 둘러댔다. "다른 유럽 국가보다 독일이 훨씬 흥미로워."
"그리고 가끔 데이트하는 끔찍한 유대인 노인네가 있어. 늘 계약을 주선해주겠다고 약속해. 그런데 그냥 나랑 자고 싶은 것뿐이야. 늙은 새끼가. 이 나라 남자들은 끔찍한 것 같아. 아무도 돈 있는 남자가 없고, 초콜릿 한상자나 주고 그냥 꼬시면 되는 줄 안다니까."
"베를린에 있는 모든 독신 남자와 자고, 그때마다 와서 나한테 그 얘기를 한다고 해도, 당신이 까멜리아의 여인이라고 나를 설득할 수는 없을 거야 - 왜냐하면, 정말로, 당신은 그게 아니잖아."
"이 거지 같은 우리 두 사람이 나중에 세계에서 가장 멋진 소설가와 가장 위대한 배우가 될 거라는 걸 알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궁금해."
며칠 있으면 우리는 세계 인구의 99퍼센트와, 생계를 유지하려 돈을 벌고 생명보험을 들고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남자들과 아무런 동류의식이 없게 될 거야, 나는 생각했다.
"의사가 유대인은 아니죠?" 마이어 양은 내게 단호하게 물었다. "더러운 유대인이 그녀 몸에 손대게 하면 안대요. 그들은 늘 그런 직업을 가지려 한다니까요. 짐승 같은 놈들!"
"나야 뭐 이런 정치란 전혀 모르지만요. 내가 늘 하는 말이 - 왜 황제가 다시 생기면 안되는 건가요? 뭐라고 하든, 그때가 좋았는데."
그가 말하길, 자신은 나치이며, 음탕한 반유럽적 위협에 대항하여 모든 독일 여성의 명예를 지켜주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느낀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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