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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즈 ㅣ 웨이워드파인즈 시리즈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 변용란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윌리엄 블레이크 크라우치는 1978년생으로 2015년에 TV 드라마화 된 작품인, 『웨이워드파인즈』시리즈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그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스테이츠빌 인근에서 태어나, 같은 주의 올린에 소재한 공립 고등학교인 노스 아이레델 고등학교와 채플힐에 위치한 공립 연구 대학인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이런 그의 재능은 중학생 시절부터 발휘되어 이 당시에 단편 소설 및 글쓰기 준비를 하게 됩니다. 크라우치는 2004년과 2005년에 각각 첫 소설인 『사막의 장소』와 『잠긴 문』을 출간합니다. 그리고 2011년에는 『런』을 자비로 디지털 출판을 하기에 이릅니다. 이후 최근작인 『30일의 밤 Dark Matter』역시, TV 드라마화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이외에 그의 개인사로는 1998년 6월, 레베카 그린과 결혼했으나 두 사람은 2017년에 이혼했고, 2019년 당시에는 재클린 벤-제크리와 교제중이었습니다. 또한 팬들을 위해 자신의 개인 사이트를 운영중이고 이곳에서 글과 방송에 대한 소통에 나서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Pines"로 지난 2012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4년 9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출판사의 사정으로 절판된 상황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015년 당시 이 작품이 TV 드라마화가 되었을 당시, 시즌 2까지 접한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찾아보게 되었는데요. 에단 버크 역을 맡은 맷 딜런의 다소 부족한 연기와 극의 진행에 따라 일부에서 보이는 개연성 실종에 어느 정도 실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당시로서도 서사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류의 완전히 다른 끔찍한 진화"는 꽤나 보기 드문 주제이기도 했는데요. 이 소설의 맨 끝에 인용되어 있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종래의 태도와는 별개로, 작가인 크라우치는 "인간이 지구에 저지른 짓거리"에 따라 인간 게놈이 변형되었고 더 나아가 오염되는 과정에 놓여 있다는 경고를 이 작품을 통해, 밝히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과학적 연계의 설득적 근거는 차치하더라도 말입니다.
주인공인 에단 버크는 2012년, 미국 재무부 비밀 요원으로 (통칭 시크릿 서비스) 이 극의 흑막인 젠킨스가 이때 벌이고 있던 일을 수사하던 중, 실종됩니다. 결국 모종의 연유로 그는 다시 등장하게 되는데, 그곳은 바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아이다호의 외진 지역인 웨이워드파인즈였습니다. TV 드라마에서는 에단 버크와 관련된 과거 행적 가운데, 제2차 이라크 전쟁에서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알카에다에 의해 포로가 된 사항을 삭제했습니다. 아예 나오지가 않는데요. 원작을 읽어보니 영상에서 보았던 '에단 버크'의 정신적 문제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습니다. 보통 전쟁 포로를 경험한 끔찍한 기억은 삶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이기도 했던 존 매케인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5년 6개월 동안 전쟁 포로로 억류된 경험이 있기도 합니다. 그는 그동안 많은 언론을 통해, 그때의 경험들을 진심으로 토로하며, 미국 시민들에게 나누기도 했습니다. 극의 에단 버크 역시, 회상하는 장면을 통해, 그가 전쟁 포로로 어떠한 참혹한 경험을 겪게 되었는지 접할 수 있었는데요. 이러한 기억은 그의 행동 전반에 미치고 있었습니다. 특히 부정적인 측면에서 말이죠.
물론 그 전쟁 포로의 기억이 아니더라도 그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난 웨이워드파인즈라는 작은 마을이 본능에 있어서도 가히 정상이 아닌 곳임을 직감합니다. 마을에 실제로 통용되는 지폐가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쓰이던 달러화였고 서술되는 마을 사람들의 일견 모습들이 억눌려 있거나 부자연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를 내부의 사람들이 무슨 괴물 보는 듯한 시선은 차치하더라도 작가인 크라우치는 이 사람들을 어쩌면 "자유에 대한 기본적 욕구"가 거세된 어떤 군중상, 혹은 집단성을 그려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극 후반부의 에단과 젠킨스와의 대화에서, 에단은 젠킨스에게 "당신은 이 마을을 거의 폭력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일침하고 그것을 비판하고 있지만, 이에 화답하는 젠킨스는 "자유란 그저 21세기에 나온 관념" 정도로 일축합니다. 지금은 자유가 아니라 시급한 대책이 필요한 시기라고 언급하면서 말이죠.
적지 않은 작가들은 예를들어, 핵전쟁 이후의 아포칼립스적 시대상을 그려내면서, 자유주의적 질서를 잃어버린 인간 군중의 폭력적 상황을 서사의 주제로 삼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 작품 역시, "거부할 수 없는 폭력적 질서에 일방적으로 노출되고, 심지어 무비판적으로 순응한 인간들"에 대해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었는데요. 후반부에 젠킨스가 말하는 아주 중대한 시기의 인간종의 보호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이러한 계획의 전반은 그가 무고한 사람들을 납치했듯이, 최소한 '계획의 대상자'들에게 앞으로의 문제를 위해, 많은 토론과 대화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시간 낭비일지라도 말입니다. 자신의 삶이 통째로 날아가고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그 이전의 삶에 대한 대부분을 재조정해야만 하는 시점에서, 9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을 감행하거나 탈출을 해서 목숨을 잃었다면, 기존의 체제를 넘어서는 일부 혹은 전반적인 대안이 필요했습니다. 그저 생물학적인 인간종을 유지시키기 위한 아주 본능적인 수준의 대처, 그리고 인간성 말살에 가까운 억압과 폭력, 그리고 프로파간다가 주가 된다면 그것은 수단이 목적을 배반하고 말살시키는 행위에 가까울 것입니다. 극중 어린 아이들이 아무런 도덕적 제재 없이 폭력에 물들어 있는 장면은 역겨운 부분이기도 했지만 그런 식으로 매몰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러한 경종을 울리기 위한 작가의 주제 의식이 어느 정도는 엿보여서, 답답한 주인공의 행보를 어느 정도 인내심을 갖고 지켜 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드라마를 못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시즌2와 시즌3으로 이어지는 미성숙의 어린 소년들의 인간성 말살의 전체주의적 개조화도 충격이지만 주인공의 비참한 몰락 역시 보는 내내 음울하고 이후에는 한동안 불쾌한 상념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만, 저는 이번에 원작에 있던 요소를 드라마가 제대로 연출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았기에 이후 절판된 시리즈의 나머지 작품들을 구해서 읽고 싶지만 그것이 쉽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에게 있어, 자유 의지와 선택의 문제에 대한 스스로의 결정이 아닌 외부의 개입 같은 것이 얼마나 인간 사회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는데요. 이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외부 세계가 처참히 무너지는 소위 아포칼립스 상황이 인류의 직접적 위협이 된다기보다 그런 '비상 상황'을 이유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기본적 가치와 권리를 무참히 압살하는 어떤 권력이라든지 맹목적 믿음과 같은 일련의 폭력적 과정들이 더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심히 경고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웨이워드파인즈 바깥세상에 대해선 서로 이야기 하지 않아요. 그게 하나의 규칙이죠."
"바로 그거야, 1971년에 데이비드 필처라는 젊은 유전학자는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발견했네. RNA 재배열이나 DNA 다형성 같은 개념이 생겨나기도 전의 일이라는 걸 명심하게. 그 친구는 우리 인간의 유전적 정보가 담긴 근본적 총체이자 세포의 성장을 담당하는 인간 게놈이 변형되고 있으며, 점점 오염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네."
"한동안 여기서 지낸 후에는 사람들이 빠짐없이 현실에 동조하는 게 두려움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뭔지는 나도 몰라요. 물어본 적도 없고요."
에단은 컴퓨터 모니토를 흘끔 쳐다보았다. 아주 크고 오래된 고물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 쓰던 것 같은. 그렇게 육중한 모니터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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