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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망스 ㅣ 세계문학의 숲 52
스탕달 지음, 임미경 옮김 / 시공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격동기의 프랑스를 살다 간, 스탕달은 1783년 1월 23일,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 본명은 마리-앙리 벨 (Marie-Henri Belye)로 부친은 고등법원 변호사였던 세뤼벵 벨이었고 모친은 앙리에트 가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스탕달은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매사 강압적이고 몰이해적인 부친과의 생활은 그로 하여금 "억압적인 유년 시절"이라는 혹독한 기억을 새기게 했습니다. 이는 모친과의 관계가 끔찍했던 이렌 네미롭스키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스탕달 역시, 사랑하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자신의 아버지를 경멸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혼란스런 프랑스 혁명기에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자, 보수왕당파인 부친이 반혁명혐의로 투옥되었다가 석방됩니다. 그 유명한 로비에스피에르의 공포 정치기에 그는 몇 차례의 투옥과 석방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런 혼란한 가정사를 뒤로하고 스탕달이 16세가 되던 해에 나폴레옹 군에 입대하게 되었으나, 1814년 나폴레옹이 권력을 잃게 되자, 군대를 떠나게 됩니다.그는 이 시기에 정렬적인 이탈리아의 문화와 국가 자체를 사랑하게 되는데요. 자신과 같이 어떤 구속도 없이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그러한 가운데 애정을 포함한 감정을 따라가는 인물에 대한 본인의 굳건한 지향을 수립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적과 흑』과 『파르마의 수도원』의 주제 의식이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821년 6월, 그전까지 지내던 이탈리아를 떠나 파리로 돌아온 그는 1827년에 그의 첫 장편인 『아르망스 Armance』를 출간했으나, 그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1830년 무렵에 다시 이탈리아로 떠난 스탕달은 이듬해인 1831년 파리로부터 교황령 치비타베키아 주재 영사로 임명되어, 4월에 부임하게 됩니다. 그는 이때에 영사직을 수행하면 로마와 밀라노 등지를 여행하면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1939년 후반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나폴레옹에 관한 전기 등을 쓰기 시작하며 소일을 하다, 뇌병변이 발생해 1940년 1월 1일에 갑자기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병의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던 그는 결국 1942년 3월, 뇌출혈로 사망하기에 이릅니다. 일생의 대부분을 이탈리아에서 보냈던 연유로 그의 묘비에는 다른 수식어보다 "밀라노인"이라는 단어가 함께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Armance"로 지난 1827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8년 7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현재는 출판사에 사정의 따라 절판된 상황입니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빈 체제에 의해 프랑스에 다시 왕정복고가 이뤄지는 시점으로 이야기는 진행됩니다. 여기에 혁명기를 온몸으로 경험한 스탕달이 구체제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는 그의 다른 작품으로 충분히 짐작할 만합니다. 과거 루이 16세 시절에 그 위세를 짐작할 수 있는 드 말리베르 후작가의 유일한 아들인 옥타브가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이제 갓 20세를 넘긴, 홍안의 청년으로 고결하고 분별력을 갖고 있으며, 후반부 부친인 드 말리베르 후작의 평가대로 "그저 평범을 넘은 비범한 청년"이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이 말리베르 가문은 과거 루이 7세가 십자군 원정을 떠나던 시점에 왕과 함께 종군했던 조상을 유산으로 갖고 있습니다. 이는 가문의 역사에 대한 충분한 자긍심을 갖게 만들었을 겁니다. 다만, 이 시점에서 말리베르 가는 매우 중대한 고비를 앞두고 있었는데요. 프랑스 대혁명 기간에 망명했던 귀족들의 재산 피해를 보상해주기 위한 일종의 '배상법'이 의회 통과를 앞두고 있던 즈음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남다른 감수성을 갖고 있던 옥타브는 차라리 이 법이 부결되기를 온 몸으로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법이 정당하지 않고 그로인해 발생한 재산의 일부 복귀가 자신을 결혼에 내몰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후반부에 별일 아닌 듯 드러나지만, 옥타브는 그가 아직 "소년일 적에 했던 그 무모한 맹세"가 자신의 삶을 옭아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이대로는) 어떤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다는 자신에 대한 맹세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옥타브에게는 러시아 계 혈통을 갖고 있는 사촌 누이인 아르망스 드 조일로프와의 만남과 그녀와의 우정이 한 가닥의 위안이 됩니다. 옥타브는 모친의 명예로운 사촌인 드 보니베 후작 부인을 비롯, 배경이 되는 앙디이의 사교계의 거의 대부분의 인물들에게 경멸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한때 몰락한 귀족들이 다시 왕정이 돌아오자 이제는 기댈 것이 '돈에 대한 욕망'밖에 없이 그저 하릴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어쩌면 과도한 감수성의 발현일 수도 있겠습니다. 바로 이런 자신을 겉으로나마 이해해주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바로 아르망스였습니다. 작가인 스탕달이 옥타브의 그 가치관을 언급하면서, 그가 인간에 대한 혐오와 지극한 염증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르망스에 대한 우정을 깊이 생각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진행되는 서사 도중에 언급하는 부분은 어쩌면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극중에서 옥타브가 자신에 대한 구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르망스가 옥타브를 향한, 진지한 눈빛과 진정한 태도는 누구보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옥타브에게는 자신의 충동과 폭력성을 자기도 모르게 제어하게 되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이처럼 작가인 스탕달이 이 작품을 왜 '아르망스'로 정하게 되었는지는 해석에 대한 극명한 부분이 있겠습니다. 옥타브와 아르망스 이 두 사람이 겪게 되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뜻하지 않게 주변인들이 불러들이는 파국들로 인해 이들이 어떠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지를 짐작하게 만듭니다. 스탕달이 옥타브의 입을 통해 브루투스의 비극을 언급했던 것처럼, 앞으로 이어질 옥타브의 뜻하지 않은 불행은 이를 예견하는 것으로도 읽혔습니다.
이 때의 아르망스는 부모와 그 친지가 거의 남지 않은 상황으로, 그녀 자신이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처럼, 이제는 거의 '평민 계급'이나 다름없는 처지였습니다. 이런 그녀는 자신이 현재 아무런 배경이나 귀족가의 여식에게 으레 있어야만 하는 선의의 조력이 더 이상 없기 때문에, 항상 내면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그때 그때 만나게 되는 인물들과 상황을 조심스럽게 분석할 수밖에 없던 그 나름의 치열한 삶을 살고 있던 소녀였습니다. 즉, 이 둘은 가치관의 동일 선상에서 옥타브가 돈을 쫓는 소위 몰락한 귀족들을 경멸하는 것처럼, 아르망스 역시, 자신이 남자의 돈으로 안락한 결혼생활을 '따내려는' 주변의 시선을 일견 증오합니다. 그래서 스탕달은 서사에서 아르망스가 어떠한 '교태'도 몸에 익지 않았고 그것을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는데요. 아르망스와 달리, 남편이 있던 아니면 그저 부인으로 불리는 소위 귀부인들이 옥타브와 같은 전도유망한 청년에게 어떠한 교태와 눈웃음을 흘리는지 장면 장면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옥타브가 반쯤 자신의 치기 어린 결정으로 만남을 지속하게 되는 도말 백작 부인의 인물 조성 자체가 아르망스와는 완벽하게 대척점에 있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도말 백작 부인의 처음 등장에서, 중후반부 이후의 전개에서 극을 갈등으로 이끄는 어떤 원인이 될 인물로 짐작하기도 했는데요. 그만큼 자기애적인 인물의 표상이자, 더 나아가 주변의 시선을 온몸에 받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아는 캐릭터였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그녀에게서 의심의 냄새가 풍겼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예민한 감수성이 충만한 옥타브를 매개로 작가인 스탕달은 극중에서 구 귀족들의 행태와 여전히 놓여 있는 프랑스 사회의 폐해와 논란 등을 여실히 잘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특히, 옥타브의 부친과 모친을 통해 드러내는 18세기 계몽주의에 대한 이들 계급의 거부감, 그리고 후반부 서술에서 은연중 나타나는 귀족 계급의 "자유주의에 대한 뜻 모를 배격"은 혁명 시기의 자코뱅의 행적을 몸에 새긴 그들이 알아채는 거부감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작가인 스탕달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자코뱅과 같은 공화주의자들을 완벽한 극단주의자들로 묘사하고 있는 몇몇의 설정들은 그 시대가 남긴 흔적들로 여겨지기까지 합니다. 즉, 이런 측면에서 옥타브가 느끼는 시대가 불러일으키는 아픔은 단순히 구 귀족 계급이 여전히 답습하는 하등 쓸모없는 인간 관계 내의 '부질없는 거래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이 귀족들이 지난 과거의 유산을 더 역겨운 것으로 대체하려는 몰염치한 의도 때문일 것입니다. 아르망스 역시, 자신의 몸과 젊음을 어떤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두려워하는데요. 저는 당시의 왕정이 돌아온 의회의 철지난 귀족 정치와 그 속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계급 내부의 정치 투쟁 같은 것이, 일말의 자유주의가 스쳐간 프랑스 사회의 흔적들을 사람들의 마음에서 지워내는 동시에, 명예와 상관없는 아주 완벽히 다른 돈과 이익의 추구라는 모습으로 변질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 귀족 여성들이 보이는 계몽주의 철학에 대한 혐오도 그렇거니와, '철학을 하거나 배우는 사람들'에 대한 일관된 의구심도 그런 일련의 모습 속에 당시 프랑스 사회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관념의 혼란'과 계급의 몰락 속에서도 이들이 기득권적 이익을 지키고자 하는 몸부림을 이 소설을 통해,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귀족 계급의 철지난 유산이라는 명예의 불필요한 존재 때문에, 옥타브가 반쯤 자초하고 반쯤 받아들이게 되는 드 크레브로슈 후작 과의 희극적이면서 동시에 치명적인 사건은 그와 아르망스 사이를 좀 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옥타브는 비로소 어리석은 자신의 감정을 반성하고 진심으로 아르망스와의 사랑을 받아이들이게 됩니다. 아르망스 역시, 다시금 옥타브가 없는 삶이 자신에게 지옥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게 되는데요. 이런 두 사람을 향한 옥타브 모친의 조력과 점차 이들의 사랑을 인정하게 되는 어쩌면 순진한 과정이 앞선 '과거의 명예를 그저 수단으로 삼고 오로지 개인의 이익'에 혈안이 된 모친의 오빠이자, 외삼촌인, 드 수비란 기사단령원장은 결국 이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고 맙니다. 통과된 귀족 재산 배상법을 바탕으로 이 기사단령원장은 스스로 느끼기에도 하찮은 이익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것은 옥타브를 구슬려서 자신이 원하는 증권에 돈을 투자하게 만드는 것으로 노년의 안락을 쟁취하려고 하는 무책임한 시도였습니다. 물론 이런 노망난 늙은이를 그럼에도 존중했던 아르망스의 노력을 비웃을 필요는 없겠지만, "다른 이들의 교활함을 확인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르망스의 순진무구함을 확인한다"는 감정이입된 스탕달의 언급과 함께, "어떤 계층이든 간에 어리석은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라는 절로 피부를 따갑게 만드는 잔인한 교훈 때문에 이어지는 결말을 곱씹게 만들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이 알량한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삼아 파멸에 이르게 한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분명한 경고이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르망스는 몇 번이나 옥타브를 향해, 자신의 주저하는 마음을 돌려보고자 재차 그에게 확인 받고 싶어했고, 그 역시 이런 아르망스를 사랑한다고 확신했으나 이들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순진함과 분별을 동시에 지닌 저들 연인에게처럼 그 미세한 틈조차 칼로 찌를 수 있는, 무분별하고 양식이 없는 자들의 그야말로 충동적인 행동이 어떠한 파국을 이끌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는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등장했던 인물들 중에, 지극히 오만하면서도 아무런 양식이 없고 그러면서도 의도대로 주변을 조종하고 더 나아가 극명한 파국의 사건을 나름대로 조롱해 마지 않던 도말 부인의 캐릭터 성에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이 인물은 한편으론 교활한 인물의 전형이면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캐릭터로, 그동안 스탕달이 추구했던 리얼리즘 (물론 후세의 평가이지만) 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이해될 수 있었습니다.
-극중에서 스탕달이 옥타브와 아르망스를 가리켜, '우리의 두 사람'이라고 난입해(?) 일컫는 부분은 웃음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특히 서사 가운데, '독자들'을 운운하며,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일말의 애정을 드러내기까지 합니다. 그런 면에서 스탕달의 이 작품은 여러모로 인상적인 소설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식견 높은 의사들은 드 말리베르 부인에게 말하기를, 그녀의 아들이 앓는 병은 다름 아닌 그 나이 때 그와 같은 신분의 청년들을 특징짓는 증상이라고 했다.
맙소사! 나는 거만하게도 스스로 우월하다고, 한 인간을 덮칠 수 있는 온갖 위험, 온갖 종류의 불행을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도, 눈앞에 닥친 이 고통을 향헤 빌고 있구나. 이 고통이 다른 형태로 나타나주기를, 그래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이 되기를.
러시아 제국 끝자락에서 태어난 드 조일로프 양은 더 없이 온유한 외양 아래, 유년 시절을 함께한 그 매서운 기후에 어울리는 굳은 심지를 감추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라도 겉으로는 친근한 태도를 꾸며 보이면 좋으련만, 드 조일로프 양은 그러지 못했다.
그녀가 그와 친밀한 대화를 나누지 않으려고 그토록 조심했던 것은 마음을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지 그를 경멸하게 되어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신은 스물여섯 살이 되기 전까지는 단 한 여인만을 찬미해야 하는 일을 삼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화려한 나의 친척은 명문가 출신이라든가 대단한 재산 같은 것에 만족할 사람이 아니야. 나무랄 데 없는 처신과 신중한 두뇌, 선행의 능란한 과시가 뒷받침이 되어 내로라하면서 살고 있지만, 그런 당당한 삶도 부인에게는 수단일 뿐 목표가 아니야.‘
인생의 정수는 가슴을 느끼는 감정에 있으며, 사랑은 숭고한 만큼 숭고하지 못한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터라, 우리는 긴 세월 속에서보다 단 얼마간의 순간 속에서 더 많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족 내에서 서로 터놓고 지내다 보면, 게다가 큰 고통을 당해 걱정에 잠겨 있다 보면, 행동을 조심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 경우 겉치레를 위한 엄격한 예절에는 다 소홀해지면서 인격의 본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될 때가 많다. 드 수비란 기사단령원장은 이 친척 아가씨가 가난하다는 점과 외국 이름이어서 발음할 때 매번 애를 먹는다는 점 때문에 그녀를 한 수 낮춰 대하곤 했다. 그 점은 때때로 드 말리베르 씨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지키는 극도의 예의, 오늘날에는 18세기의 유산으로, 증오할 게 없던 저 행복한 시대의 유물로 취급되는 이 예절 바름을 두고 건조하다고 트집을 잡을 것인가?
민중이 감히 이것을 읽다니 말도 안 될 일이지요! 민중이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할 눈이나 있다는 건지! 우리 왕당파의 신문들조처 이런 식인데 자코뱅 신문들에 무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귀부인들과 가까이 지내다 보면 매사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또 이를테면 불쾌한 말에 더욱 깊이 상처받고 돌이킬 수 없이 감정이 격해지곤 한다.
"어떤 사람이 가문이 좋고, 프랑스 의회 의원이고 게다가 꽤 부유하기만 하다면 궁정의 호의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시대가 이제 곧 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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