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사회의 정치사상 - 루소와 스미스로 읽는 18세기 지성사
이슈트반 혼트 지음, 김민철 옮김 / 오월의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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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4월 1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이슈트반 혼트는 헝가리 태생의 영국 경제사상 및 정치사상을 연구한 역사가였습니다. 그의 부친인 혼트 야노시는 1949년에 수립된 헝가리 인민공화국의 농무부 차관을 지냈으며, 모친인 케메니 클라러는 헝가리 최초의 여성 공학 교수였습니다. 1965년 일 년 정도의 군복무를 마친 혼트는 아버지의 남다른 조력에 힘입어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1974년 '데이비드 흄과 스코틀랜드'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곧 헝가리 학술원의 연구관으로 부임합니다. 그에게는 안정된 직장과 안락한 삶이 보장되었지만 스코틀랜드 정치경제사 연구에 대한 열망으로 말미암아 1975년 부인 안나와 함께 단기 일정으로 영국을 방문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영국의 망명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근대사 석좌 교수였던 휴 트레버-로퍼의 지도 하에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1978년부터 1984년까지 혼트는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의 펠로우로 선출됩니다. 그리고 그는 1988년에 컬럼비아 대학의 정치사상 교수로 초빙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다른 역사가들과는 다르게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18세기 근대 국가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는데요, 특히 그는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와 같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와 상업, 민족주의, 국가 부채, 사치 사회 및 정치경제학과 같은 주제들로 여러 학술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Politics in Commercial Society : Jean-Jaques Rousseau and Adam Smith"로 지난 2015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5년 9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혼트의 이 글은 자신이 탐구한 필생의 연구 실적과 마찬가지로, '근대 정치사상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을 학문적으로 통과해야 한다는 서문의 믿음으로 출간의 목적을 간접적으로 피력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저자인 혼트는 애덤 스미스 (1723-1790)가 장 자크 루소 (1712-1778) 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일독해, 추후 소감을 남긴 것에 주목하고, 당시 18세기에 비약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뤄냈던 소위 '상업 국가'에 따른 루소와 스미스의 생각을 비교하여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장으로 구분할 수 있겠는데요. 일반적으로 당시 대두하고 있던 상업사회에 대한 정치 및 사회에 대한 분석의 장은 1장부터 4장까지, 그리고 경제와 관련된 루소와 스미스의 논의는 5장과 6장으로 나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제 서평을 논외로 하더라도 5장과 6장은 여러분이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와 관련해, 5장과 6장에서는 스미스를 끊임없이 오독을 하고 있는 교조화 된 자본주의자들과 이데올로기와 다름 없는 경제학계의 그를 향한 편협한 해석의 원류를 간접적으로나마 살펴 볼 수 있습니다. 혼트가 6장에서, 사람들이 여전히 국부론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점을 꼬집고 그것의 일례로 "스미스가 국가의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식민지 체제를 이용하는 것에 반대했다"는 진술 자체는 작금의 학계가 이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여겨집니다.

퀜틴 스키너가 이미 밝혔듯이,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시작점은 아마도 홉스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홉스의 사상에 반대하려는 목적 그 자체 뿐만 아니라, 협소하게는 홉스가 펼친 국가론 (내지는 정부론)에 대한 명백한 이견을 제시하는 것으로, 정치와 정부에 대한 인식의 '다른 의견'은 소위 계몽주의의 초석으로 이어졌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홉스 사상의 영향력은 여전히 지대하여, 1장에서 저자가 "일부 정치사상가들은 영어권 정치사상사 서술에서는 홉스에게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탄한다는 내용으로 갈음하고 있었는데요. 홉스는 아주 간단히 말해, 자연 상태의 인간들은 서로에게 늑대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모두를 통제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홉스는 '인간의 원천적 사회성'이라는 관념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는데요. 여기에 고전 그리스 철학에 대한 당시 유럽의 맹신에 대해서도 반대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 아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는데요. 그러므로 앞선 계몽주의의 맥락은 이런 홉스의 사고와 완전히 상반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혹여 계몽주의가 후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영감이 되었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말입니다.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로 대표되는 그 당시 스코틀랜드의 사상은 "인간은 자기애에 기반하여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며 그런 욕구가 사회 내에서 남을 존중하고 규칙을 지키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합니다. 사실상 인간이 자신 말고 타인을 신경 쓴다는 것 자체는 뒤이어 존 스튜어트 밀을 필두로 자유주의적 사상의 기반이 되기도 했는데요. 이에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사회 내에 합리적 가치 책정에 따른 효용에 대한 감각을 가진 시민들이 적절한 용역을 교환하는 행위를 통해 유지"되는 맥락의 '효용에 기초한 사회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스미스가 생각하는 사회의 규범과 질서 유지 및 도덕성의 관철에 이러한 시민들의 효용에 대한 가치 유지가 일정 부분 기여할 것으로 여겼는데요. 또한, 대표적인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저자인 혼트가 분석하는 바대로, 그것이 신의 전능과 그 영역에 관련된 내용이라면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자들이 이 보이지 않는 손을 어떤 식으로 왜곡해 이에 "전지전능한"이미지를 부여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상업사회의 구조적인 안정은 "정념과 이익의 대조보다는 효용과 자존심의 상호작용이야말로 근대 상업사회의 안정화 요소"라는 부연 설명으로 개념화 할 수 있겠습니다. 더불어 이 점은 애덤 스미스의 남다른 통찰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렇게 애덤 스미스로 대표되는 18세기 상업사회의 정신적 기반은 바로 효용과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와 관련된 자존심의 발현이 그 근간이 되었습니다. 혼트는 이 점을 명확하게 밝히고 우리가 18세기의 상업사회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어야만 한다고 조언합니다. 다만, 애덤 스미스가 상업사회를 도덕성의 원천으로 분석하고 있었다면 (도덕감정론에 근거하여) 홉스주의자나 혹은 에피쿠로스주의자로 분류될 위협을 무릅쓰고 있었던 셈입니다. (스미스와 같은 계몽주의자에게 홉스주의자라는 타이틀은 분명 상당히 모욕으로 여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물론 홉스가 상업과 그 이익에 관련된 이해를 분명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러한 상업사회의 확장 가운데 '도덕철학의 역사' 또한 이 시기에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의 '도덕감정론'이 요약하기 어려운 논저라는 인식은 모두의 불만을 사듯, 스미스는 분명하게 도덕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사상가였습니다. 현재까지 자유 세계의 이론가들과 경제학자들이 스미스를 소위 '자본주의의 시조'쯤으로 여기며 자신의 논리대로 스미스를 잘 써먹고 있는 현실은 반대로 그를 도덕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철저히 배제시키는 쪽으로 나아갔습니다.

장 자크 루소는 우리에게 '자유 의지'와 공화국에 관련된 아이디어를 제공한 유력한 사상가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 역시도 상업사회에 따른 사회의 전반적인 이기심 추구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인물입니다. 그의 '인간불평등 기원론'이 그런 연장선상에 있는 논저이기도 했고, 그 가운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공감과 이입의 본성'이 어떻게 '이기심의 본성과 그 체계'에서 양립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왔던 것인데요. 바로 이 부분의 내용에서 루소는 애덤 스미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저자인 혼트는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의 방향성의 단초를 루소에게서 얻었던 것으로 첨언하고 있었는데요. 개인적으로 저는 루소의 '인간불평등 기원론'을 육문사 판으로 1998년쯤에 읽을 수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어떠한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또한,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역시 따로 접하지는 않고 부분적으로 발췌한 적은 분량의 텍스트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혼트가 간단한 주석으로 요약하고 있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의 일부 내용들이 이 글의 2장에서도 인용되고 있어 계급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루소의 기본적인 생각들을 간접적으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루소와 스미스 이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공감의 세계'로 비롯되는 공감의 내용은 뒤이어 5장에서, 이 두 사람이 완벽한 현실주의자임을 저자의 입을 통해 드러나고 있음에도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스미스가 "인간은 타인의 의견과 비판을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임을 강조하고 이것은 그 자체로 인간의 근원적 본성이라는 분석은 그가 얼마나 상업사회의 기반에서 조화로운 사회를 추구하게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는데요. 인간 심리 분석의 대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스미스 역시, "사회화, 수치심, 위선"등을 어느 정도는 중요한 의미로서 탐구했다는 면모가 일련의 사고에서 중요한 증거로 도출되기도 합니다. 이에 스미스의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사고인 "우리 자신의 이기심을 다른 이기적인 행위자들이 용납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감소시켜, 원초적 이기심과 그것의 자기강화를 완화해야 한다"는 일종의 당위였습니다. 홉스는 인간의 이기심을 그저 필수 불가결한 어떤 필연적인 문제로 봤지만 스미스는 이 이기심을 어떻게 타인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는지에 대해 면밀한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루소 역시도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오독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였고 악과 부패를 초래하는 것은 오직 상업사회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자기애, 즉 자존심에 기반을 둔 사회)일 뿐이라고 주장했다"는 오독이 대표적인데요. 루소와 스미스 양자가 그런 면에서, "상업사회란 선천적인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이기적인 존재들이 서로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는 필요성에 의해 모든 것을 (정의상으로는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를) 만들어내는 사회 형태라는 도출된 결론을 크게 인정했다"는 분석은 앞선 효용과 인정에 대한 맥락을 간접적으로 이해하게 만듭니다. 즉, 이 둘은 상업사회가 갖고 있는 '한계'에 대해 공통적으로 인식했으며, 이렇게 불안한 요인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혹은 그것을 안고 나아간다면) 홉스주의적 결과인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혁명'을 방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둘 다 혁명이 일어나선 안된다고 강조했는데요 그럼에도 2장에서 스미스가 인간이 내적으로 심리적 균형을 추구하면서도 외부로부터는 인정을 추구함으로써 이것이 불평등의 씨앗이 되었다고 진술합니다. 즉, 이 불평등의 문제가 홉스주의적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 스미스는 꽤나 진지한 어조로 상업사회에서 종래의 계급적 분화와 마찬가지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가 양립하며, 사회에 넘치는 부로 인한 현격한 상황에서 가난한 자들이 평범한 소비생활을 통해, 전반적으로 나아진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나아진) 삶의 조건이 어느 정도는 상업사회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기에 그는 대두하는 불평등의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런 완화를 위해 스미스는 자신이 도덕적이지만 이론에 가까운 토대를 마련하고자 고민을 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자애와 타애라는 감정의 적절한 성립 가능성을 너무나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인간의 인정 추구라든지, 사회 내에서 스스로 기여하거나 단독으로 쟁취할 수 있는 영광 추구가 엘리트를 포함한 모든 계급의 고통이 되었고, 그것에 지배당하게 되었다는 서술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5장 이후에 등장하는 기본적인 가계 경제에 따른 상업사회의 진면목이 "가장이 주도하는 권위"와 이에 대한 가족 구성원의 복종이라는 기본적 행태가 이러한 문제를 애초에 내포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본질적으로 루소와 스미스 모두는 이런 상업사회의 이행 가운데, 원초적으로 인간이 사회성과 도덕성을 타고났다는 점을 부정했습니다. 3장 도입의 이와 같은 저자의 단언은 그동안 논증 가운데 예견될 만했는데요. 루소는 과거 가혹해진 전제정과 삶의 유지가 어려워진 빈자층에 대한 일종의 제한적인 배려에서 평등에 대한 관념이 잠깐 솟아나기도 했지만 중앙 집권이 미약했던 과거 봉건 정치에서 획기적인 권력 집중의 전제정치가 나아갔던 방향과 그 면모가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가혹했다는 점을 먼저 명시해두고 싶습니다. 루소는 이미 이렇게 권력 집중을 통한 중앙 집권적 전제정이 무력을 통한 타국의 침략에 거의 무방비한 상황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는데요. 점차 살을 붙여가는 진술 가운데, 저자가 14세기의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이 그 나름대로는 진보적인 체계를 갖고 있었지만 이웃의 프랑스나 신성 로마 제국의 군사적 공격에 취약했던 것은 전제 군주들의 탐욕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없었던 연유일 겁니다. 아니 동원령을 내려 (귀족과의 타협이든 간에) 대규모 원정을 꾸릴 수 있었던 '왕권'에 실효적으로 대항하기란 어려웠을 겁니다.그런 의미에서 몽테스키외와 마찬가지로 이 당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에 대한 스미스의 "전체 역사에서 보면 지엽적인 것에 불과했다"는 평가는 단순한 감상 정도는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앞의 진술로 돌아가서, 상업사회의 의도치 않은 이면이 스미스가 예견했던 대로 이것이 인간의 자유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고 여기에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규칙들과 타인의 이익까지 고려할 수 있는 합리적 이기심의 추구와 같은 전제가 중요한 요소로 함께 실현되었다면 (그저 도덕적 맥락이 아니라) 이 상업사회는 그 파란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공익에 가까워질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숱한 전쟁들로 말미암아 기존의 봉건 국가가 낱낱이 파괴되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후로 이어지는 18세기의 상징적 단상은 공화주의의 발견이 아니라 어쩌면 더 가차 없는 개인들의 이익 추구의 사전 작업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간에, 스미스의 이런 노력은 거의 실패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저는 오늘날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이 유명무실해진 이유에는 스미스의 순진함과 더불어, 그의 다른 측면을 세인들이 전혀 인정하지 않은 그 의도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부론이 그만큼 편파적으로 이해된 측면 말입니다. 수세기에 걸쳐서 말이죠. 루소를 일정 부분 받아들인 스미스가 지위 추구에 여념이 없는 문화를 거대한 기만이라고 인식한 것처럼 지위와 타인의 인정 추구에 매몰되어 이것이 심각한 불평등을 유발할 때, 루소나 스미스 양자 모두가 특별한 강구책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은 인간을 너무 만만하게 본 연유일지도 모릅니다. 어리석은 측면의 무모함과 저열함을 너무나 우습게 본 것이죠. 아주 늦은 판단이긴 하지만 루소 역시도 "애초 사치와 불평등 위에 세워진 절대주의가 사치를 멈추거나 바로 잡을 수 없다"고 단언하기까지 했습니다. 스미스와 달리 루소는 인간에 대해 사회성을 촉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을 해본 것 같지만 그 역시도 현실의 조건을 가볍게 본 것 같습니다.또한, 루소는 경제에 관여할 수 있는 정부의 재량권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으나 이는 근본적으로 개혁의 의미가 아니라 단순한 사회 조정에 불과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애덤 스미스와 루소 역시, 이들의 최종 목표는 상업사회가 주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법치와 경제적 번영"이었으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대로 역사에서 이 양자는 쉽게 양립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끝으로 국가의 번영을 위해, 인간이 갖고 있는 시기심과 질투를 조정해, 좀 더 진보한 단계까지 나아가려 했던 스미스는 이후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건설과 그에 따른 제국주의의 출현을 전부 목도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이때의 절대 왕정은 과거 로마 제국의 그것과 유사하게 단일 패권을 추구하게 되었고 이것의 파급은 스미스나 루소조차 제대로 예견하지 못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즉, 방대한 생산 시설과 그에 따른 자원 보유를 통해 이러한 메커니즘이 국내의 복리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패권과 국가적 위신을 위해 영국을 포함한 절대 왕정들에게서 직간접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국왕과 귀족들의 지향과 스미스와 같은 계몽주의자들과 그 궤가 확연히 달랐다고 볼 수밖에 없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스미스는 어쩌면 대의로서 상업사회의 일면과 그것을 점차 개선해, 시스템과 인간의 모순을 조정하고, 요즘식으로 다음 단계로의 건설적 이행을 바랬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속이 검은 왕들과 자신의 이익에 골몰한 귀족들에게는 국가는 그저 자신들의 위신과 이익을 채울 수 있는 수단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 전의 구귀족들이나 나폴레옹 전쟁에서 부역한 영국이나 오스트리아의 귀족들 역시, 함께 갖고 있는 공통된 이익은 일차적으로 현상 유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스미스의 아이디어들은 몇세기를 거치며, 오용되어 금세기 신자유주의자들에게 공익에 대한 자신들의 허구성을 철저하게 숨기는 데 있어 여실히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루소는 이 점을 몇 세기 전에 신랄하게 비판한 바가 있는데요. 물론 이들에게는 과거 극심한 이념 대결에 따른 배경적 이익도 한몫했고, 정치인들을 구워 삶는데 교조주의적 수단도 서슴치 않은 이유도 있습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스미스가 절대 왕권을 설득할 수도, 또한 그런 위치에 있지도 않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에 영합하는 정치인들을 손쉽게 다룰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시대의 세계와 우리 시대의 지향성이 이처럼 완전히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글의 후반부인 6장에서, 저자는 "18세기 근대국가의 군사-상업 복합체"라는 문구를 드러냅니다. 저에게는 저자의 표현이 기시감을 불러일으켜 소수의 그룹이 사회적 헤게모니를 손쉽게 획득하기 위한 그런 일련의 작업이 국가를 불법적으로 통제하게 된다는 서로 중첩된 의미를 의도치 않게 도출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루소가 경고한 대로 이 시점에 혁명은 없을지 모르겠지만 이기적으로 조직된 사회 구조가 결국은 과두제와 형식적 민주주의를 번갈아 반복하거나 아니면 시민들이 권력에서 배제된, 변형된 과두제로 진행될 수 있는 가까운 미래를 예견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상업사회가 지칭하는 대상은 실제로 이뤄지는 물질적 거래가 아니라 해당 사회에 속하는 사람들이 지닌 도덕적 성질이었다.

일부 정치사상가들은 영어권 정치사상사 서술에서는 홉스에게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볼 수 없다며 한탄하곤 한다.

사회성 개념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지점은 사회가 ‘욕구‘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정념과 이익의 대조보다는 효용과 자존심의 상호작용이야말로 근대 상업사회의 이른바 안정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스미스가 정말로 상업사회를 도덕성의 원천으로 분석하고 있었다면, 그는 홉스주의자나 에피쿠로스주의자로 분류될 위협을 무릅쓰고 있었던 셈이다.

‘애덤 스미스 문제‘를 해명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 연민의 본능을 이처럼 도덕성의 원형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유의미한 도덕이론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을지, 아니면 그저 잘못된 토대에서 출발한 실패에 불과한지 평가해야만 한다.

스미스는 루소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모든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현재의 불평등을 유지시키는 정의의 법칙은 본래 타인에 대한 비자연적이고 부당한 우월성을 유지하거나 얻으려 하는 교활하고 힘 있는 자들의 발명품이다."

서구에서 논의되는 ‘근대 대의제 상업공화국‘의 사상적 기원을 살펴보면 그것이 루소와 스미스의 작업을 종합한 결과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스미스)는 근대 도덕철학 논쟁이 홉스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 후 홉스와 플라톤주의자들 사이의 논쟁을 거쳐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루소가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였고 악과 부패를 초래하는 것은 오직 상업사회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자기애, 즉 자존심에 기반을 둔 사회)일 뿐이라고 주장했다는 오독이 그 단적인 예이다.

상업사회란 선천적인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이기적인 개인들이 서로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는 필요성에 의해 모든 것을 (정의상으로는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를)만들어내는 사회 형태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즉각적인 관심은 사회적 자아에 대한 루소의 이론적 역사 서술과 스미스의 그것이 나아가는 궤적이 아주 비슷하거나 동일한데도 어째서 그 사실이 그토록 오랫동안 독자들의 눈에 띄지 않았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루소는 이러한 사회가 홉스주의적 결과를 피할 수 없으며 일단 사회가 상업적으로 조직된 뒤에는 홉스주의적 장치들조차 그 사회를 안정시킬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끝없는 혁명의 파괴적인 반복과 순환 속에서 유럽에 카이사르주의와 민주주의가 번갈아 도래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부를 경배하는 마음, 그리고 물질적인 화려함을 통해 개인의 영광을 외적으로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은 모두 철저하게 부패한 정서로서, 타락한 인간의 마음에 거역할 수 없는 힘을 발휘했다.

루소는 자신이 18세기 ‘정치의 걸작‘이라고 불렸던 사상, 즉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 행위자들의 행동이 사회적 응집력 혹은 적어도 안정된 사회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그들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기적 행위들 자체의 효과로 인해 공익에 기여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사상을 비판했다.

스미스는 중상주의가 경제정책의 한 형태로서 국제적으로는 타국을 향한 민족적 적개심에, 국내적으로는 국가의 권력 확장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루소는 애초 사치와 불평등 위에 세워진 절대주의가 사치를 멈추거나 바로잡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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