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네스 그레이 윌북 클래식 브론테 세 자매 컬렉션
앤 브론테 지음, 허진 옮김 / 윌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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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브론테는 1820년 1월, 잉글랜드 웨스트오크셔 주 브래드퍼드의 자치구 중 하나인 손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친인 패트릭 브론테는 아일랜드계로 당시 교구의 부목사로 재직했으며, 모친인 마리아 브론테 (결혼 전 성은 브랜웰)는 콘월의 상인 가문의 여식이었습니다. 앤은 이들 사이에서 여섯 명의 자녀 중 막내였습니다. 그녀는 샬럿, 에밀리, 브랜웰의 여동생이었는데, 이 중 샬럿과 에밀리는 영문학에서 거의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1824년 중반, 그녀의 부친인 패트릭은 마리아, 엘리자베스, 샬럿, 에밀리를 웨스트요크셔 크포프턴에 있는 크로프턴 홀 학교로 보냈고, 그후 랭커셔의 코완 브리지에 있는 성직자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로 보냅니다. 그렇지만 외부에 나갔던 엘리자베스와 마리아가 결핵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녀의 가족, 특히 아버지인 패트릭이 남은 아이들을 다시 멀리 보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샬럿과 에밀리는 코완 브리지에서 나와 5년 동안 이모 엘리자베스와 패트릭에게서 교육을 받게 됩니다. 아이들은 목사관 밖의 다른 사람들과 전혀 교류하지 않았는데 특히 앤은 이모와 같은 방을 쓰면서, 이모의 보살핌을 받게 됩니다. 앤은 집에서 음악과 그림을 공부했고 아버지의 잘 갖춰진 서재에서 호머, 버질, 셰익스피어, 밀턴, 바이런 등의 글을 접하며 문학에 대한 열망을 키우게 됩니다. 앤이 11살이 되자 가족으로부터 그녀가 "사랑스럽고 온화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동시에 이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기도 했습니다. 1839년 4월, 19세가 된 앤은 웨스트요크셔 주 커클리스 자치구에 소재한 미어필드 근처, 블레이크 홀의 잉엄 가문에서 가정 교사로 일을 시작하는데요. 잉엄 부부는 당시로서는 매우 부유한 축에 속했고, 그녀는 이곳에서 다섯의 아이를 교육하는데 애를 겪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때의 경험이 『아그네스 그레이』를 쓰는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후 1848년 9월, 언니인 브랜웰이 끊없는 음주로 건강을 잃어 사망했고, 그 직후 에밀리 역시, 큰 병을 앓게 되는데, 두 달 동안 악화되어 그녀 역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언니들보다도 앤은 에밀리에게 마음을 열고 크게 의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의 지나친 슬픔은 앤의 건강을 해치게 되는데, 크리스마스 기간에 심한 독감에 걸렸고, 이듬해인 1월 초에 의사로부터 폐결핵 진단을 받게 됩니다. 결국 5월 28일, 오후 2시경, 29세의 꽃다운 나이로 앤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유해는 노스요크셔 주 스카버러에 있는 세인트 메리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Agness Grey"로 지난 1847년에 출간되었고, 이번에 번역하게 된 원전은 1989년에 펭귄 클래식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최초 번역은 2007년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번의 번역본은 최근인 2026년 1월에 이뤄졌습니다.

앤 브론테의 이 작품은 많은 분량의 작품인 '와이드펠 저택의 여인'과 함께 그녀의 유일한 장편이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아그네스 그레이'는 앤의 언니인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같은 해에 출간되지만, 이 작품은 자매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 샬럿이 관여하여, 새로운 판본이 재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앤의 이 장편은 그녀 자신의 가정교사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이기도 합니다. 이 '아그네스 그레이'의 설정 상, 약간 흥미로운 부분은 극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아그네스의 수기(手記) 형태로 서사가 진행되고, 그녀의 언행과 내밀한 생각들은 그 자체로 작가인 앤 브론테의 이야기로 쉽게 감정 이입이 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정 부분 이 작품은 앤의 자전적 소설로 읽힐 수 있겠습니다.

아그네스의 부친은 영국 북부의 목사로 재직했고 모친은 지방 대지주의 딸로 결혼 전에는 그야말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이 결혼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대했지만 자신의 딸은 무엇보다 사랑을 위해 이 가난한 목사와 결혼을 감행하게 됩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입 초반의 상황은 그녀의 어머니와 외가는 거의 의절을 한 상태로 추측됩니다. 이런 아그네스에게는 위로 메리라는 언니를 두고 있는데, 이 둘의 나이 차이는 열 살 정도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목사의 살림살이라는 것이 그다지 풍족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현명하면서 검소한 태도를 지닌 모친의 절제력 있는 운영으로 필요한 하인들을 두는 등, 약간의 사치를 부릴 수 있었지만 부친이 신뢰하는 사람의 말만 믿고 투자한 상행이 망망대해의 난파로 마감됨으로써, 집안이 적잖은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아그네스가 18세가 되자, 그녀는 부모를 설득해 다른 집의 가정교사를 하겠다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부모가 모두 반대를 했지만 무엇보다 집에 경제적 도움을 주면서 어른답게 자신의 몫을 하겠다는 결심이 그들의 반대를 이겨냅니다. 이런 아그네스가 처음 일하게 된 '블룸필드 가'는 자신의 아이들을 전혀 객관적으로 성찰하지 않는 오만한 부인의 과욕으로 그 문제가 드러납니다. 특히 이곳의 큰 아들인 '도련님 톰'은 나이에 맞지 않게 '거짓 술수'와 오로지 자신을 위해 어른을 수단으로 삼는 '교활함'까지 갖춘 아이인데요. 이 소년은 자신이 집안에서 지배자로 군림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그저 반항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동생들 뿐만 아니라 가정교사까지 마음대로 하려고 곧잘 술수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가문의 등장하는 인사들은 전부 비틀린 인물들로 '어른의 마땅한 역할'이라든지, '겉과 속'이 매우 다르게 행동하거나, 지속되는 언사와 행동들이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들이 자신들의 돈과 지위를 바탕으로 소위 '왕국'처럼 오만하게 지낼 수 있다손 치더라도 당시 상업을 기반으로 대두하고 있던 '계급들'에 대한 실질적인 내실의 빈약은 아마도 영국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주인공인 아그네스는 이러한 혹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무기는 "인내심, 단호함, 끈기"로 순간의 감정으로 자신을 버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특히 네 아이를 지도하는 가운데(물론 한 아이는 매우 어리지만) 어른도 우습게 보는 쉽지 않은 본성에 이들에게 따귀라도 쳤으면 행동에 경종을 울릴 수 있겠지만 그녀는 그런 태도를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작가인 브론테는 극의 지문을 통해, 이 시대 아이들의 훈율을 위해, 손을 올리는 어른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대목에서 작가는 인간은 어렸을 때부터, 최소한의 분별력을 갖추려고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에 좀 더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자면 겸허함과 겸손을 갖추는 것을 인간의 의무로 여겨야 한다고 간접적으로 피력합니다. 마찬가지로 주인공인 아그네스 역시, 매우 신실하고 스스로 종교적인 면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사람에게 도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든지, 사람에 대한 진실한 태도를 중요시하는 점에서 말입니다. 물론 여기서 굳이 현대식의 교육 환경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블룸필드 가의 인물들 대부분이 스스로의 분별력이 있다고 볼 수는 없었기에 그 영향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부정적으로 이어졌다고 보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채 1년이 되지 않은 시간을 블룸필드 가에서 혹독하게 보낸 아그네스는 어머니의 우려와 연민을 뒤로 하고 다시금 가정교사 자리에 지원합니다. 아그네스는 이미 모친이 가르친 바대로 "피아노, 노래, 그림, 프랑스어, 라틴어, 독일어"까지 능통한 여성으로서도 보기 드문 교양인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녀가 오만한 본성을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게 공개 지원을 통해서 두 번째 가정교사로 일하기 위해, 집에서 110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인 호턴 로지의 '머레이 가'로 떠나게 됩니다. 이 머레이 가는 마찬가지로 당시 귀족 다음으로 사회적 힘을 얻고 있었던 '젠트리 계급'으로 꽤나 많은 부를 축적한 신흥 가문이었습니다. 이때의 관습대로 장녀에게 칭하게 되는 '머레이 양'인 로절리는 극에서 묘사되는 바와 같이, 상당한 미모를 갖춘 아가씨로 여겨집니다. "몸매가 완벽하고 살갖은 고우면서도 뺨에는 혈색 좋은 느낌"이 드러난다는 표현으로 어느 정도 미인임을 감안할 수 있었는데요. 다만 머레이 가의 로절리는 활기차고 낙천적인 성격 이면에 사람에 따라, "차갑고 오만하며, 거만하면서도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양면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부목사의 배경을 갖고 있던 아그네스에게 로절리가 간혹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분별이 있는 캐릭터라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노처녀 소리를 듣기 직전까지 철저하게 즐기면서 온 세상을 유혹"하겠다는 로절리의 강한 응답은 뒤이어, 모두가 바라는 숙녀를 얻지 못하는 남자들의 마음을 찟어 놓고 싶다는 식으로 첨언됩니다. 앤 브론테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본성에 대해, 아그네스의 입을 통해, "분별과 도덕성, 그리고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을 예로 듭니다. 분명 로절리는 앞선 진술의 반대쪽에 있는 인물로 단순히 미모를 갖춘 소녀의 허영심 이상의 교활함을 드러내는데요. 지역의 교구 목사인 햇필드의 외모를 칭찬하면서도 그녀 스스로가 통찰력이 전무하여 그의 지성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종이라 볼 수 있는 햇필드 역시, 종교적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본질적으로 매우 오만한 인물로 스스로 하찮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해 가차 없는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아그네스는 호턴 로지 지역의 영지민들 가운데 빈한한 삶을 살고는 있지만 신실하고 겸손한 낸시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햇필드는 그런 낸시를 경멸합니다. 더욱이 로절리와 햇필드 이 두 사람은 진실된 면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위선적인 인물들로 이들의 관계 역시 그 가벼운 본성 만큼이나 쉽게 종말을 고하는데요. 여기에 "자신의 위력을 발휘하고 싶어하는" 로절리가 스스로 "유용한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부목사인 웨스턴에 대한 아주 경박한 평가는 극의 전환에서 매우 중요한 서사로 자리매김합니다. 

그저 삶의 낙관적인 전망을 떠나 아주 안일한 결정으로 결혼을 하게 된 로절리에게 아그네스는 어떤 질투나 이죽거림의 태도가 아니라, 진실로 로절리의 혼인을 걱정합니다. 부유한 유지인 토머스와의 결혼이 그녀의 모친이 나서서 주도한 결과로 이어졌고 그녀가 평생을 함께할 한 남자의 본성과 도덕성, 그리고 진실됨의 여부에 크게 개의치 않고 오로지 '안락한 삶'을 위해서만 목표로 삼는데요. 이러한 과정을 지켜본 아그네스는 로절리에게 몇 번이나 조언과 우려의 빛을 보내지만 결국 소용이 없었습니다. 특히 겸허하면서 어려운 지경의 영지민을 보살피는 웨스턴을 자신의 매력으로 충분히 사로잡을 수 있다고 단언하는 로절리의 그 끝 모를 태도는 그녀의 불행한 미래를 예고하는 듯 보였습니다. 나중에 '애슈비 부인'이 된 로절리가 애슈비 파크로 아그네스를 초대해 이들이 몇 년 만에 재회했을 때, 이 신중하지 못했던 결정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는데요. 그저 보이는 것을 그대로 과신하고 사람의 값어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기적이면서 자기본위적 태도자체는 작가인 앤 브론테가 가장 경계했던 인간상이 아니었나 추측해 봅니다. 앞서 이미 언급했지만 앤 브론테 역시, 제인 오스틴이 그녀의 작품에서 중요시 여겼던 점인, "인간의 분별력"에 대해 마찬가지로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제인 오스틴은 분별력이 없는 인간들에 대해 가차 없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극의 골자를 구성하는 주요 인물들의 끊임없는 분별의 부재를 여실히 잘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극의 서사에서 후반부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대체로 예상되는 방향으로 흘러, 대체로 무난했다고 생각합니다. 아그네스의 결혼 역시 익히 예측이 된 모습이기도 했는데요. 특히 애슈비 부인과 재회하는 장면에서 머레이가 사람들, 그리고 호턴 로지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소식을 묻는 과정에서, 제일 나중에 언급되는 이의 뜻밖의 이주, 그리고 전혀 소개되지 않다가 드디어 드러나는 그의 풀네임은 이러한 정황이 소설적인 측면에서 다소 전형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아그네스와 그와의 재회 역시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되기도 했는데요. 다만, 사람을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겉모습이 가리고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는 통찰이 때론 필요하고, 마찬가지로 예나 지금이나 그 사람의 지위나 가진 부가 누군가에게 욕망의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면 그 결말 역시, 분별력을 잃은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이 작품은 남겨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인간의 본성에서 도덕적인 측면 혹은 종교적 측면에서 더 크게 다가오는 겸허한 속성, 그리고 훈련된 지적인 능력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과신하지 않는 태도와 중요한 선택의 문제에서 분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작품이 누구보다 갓 이십 대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유용한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무엇보다 작가인 브론테는 우리가 어떠한 인간들을 경계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 소설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이곳의 인물들이 오가는 자연 풍경이나 한가한 일상을 담은 서사 한 가운데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모든 인간들 가운데,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교훈을 다소 극단적이지만 이 작품이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 후반부, 로절리가 아그네스에게 햇필드과 관련된 가당찮은 욕망과 그에 대한 낮잡은 태도를 드러내는 장면에서, "그 매정한 허영심이 놀랍고 역겨웠다"는 꽤나 놀랄만한 표현이 나옵니다. 저는 이 장면의 서사를 거의 열 번 넘게 반복해서 읽게 되었는데요. 이 작품 전체의 묘사나 서사를 통틀어 가장 소름 끼치게 대단했던 전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저급한 측면의 본성이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도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 가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보니 노부인은 위선적이고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아첨꾼, 내 말과 행동을 염탐하는 사람이었다.

특정 계층에 속한 노부인들의 버릇이었지만 그 기묘한 버릇이 이렇게까지 심한 노부인은 처음 보았다.

로절리는 내가 처음 왔을 때 차갑고 오만하게 굴다가 나중에는 거만하고 고압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조금 더 알게 되자 거만한 태도를 내려놓았고, 나중에는 나 같은 신분과 지위의 사람에게 그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애정을 갖게 되었다.

로절리는 옳고 그름의 구분을 완전하게 배우지 못했고 동생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모와 가정교사와 하인에게 폭군처럼 굴어도 괜찮았다.

그러나 열일곱 살이 되자 그러한 성향이 다른 것들과 함께 더 큰 열정에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했고, 곧 남성을 매혹하고 싶다는 모든 것을 흡수하는 야망에 삼켜졌다.

"내 지위를 절대 잊지 않고 제일 훌륭한 남자를 만날 거라고 말했는데 말이에요. 당장 내일이라도 그런 남자와 무릎을 꿇고 아내가 되어달라고 애원하면 좋겠어요."

불쌍한 로절리! 그때 나는 로절리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가 나에게 준 모든 상처와 그 밖의 모든 일에 대해서 진심으로 용서했다.

"정말 이상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지위와 부가 최고라고 생각하죠. 자식들에게 지위와 부를 확보해주면 자기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나는 로절리가 무척 가여웠다. 행복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의무를 경시하는 것도 가여웠지만 그 끔찍한 동반자에게 운명이 묶인 것도 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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