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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과 주권 - 토머스 홉스의 정치사상 입문
헤어프리트 뮌클러 지음, 공진성 옮김 / 마농지 / 2026년 2월
평점 :
1951년 독일 헤센 주, 라인-마인 지역의 프리드베르크에서 태어난 헤어프리트 뮌클러는 유럽의 정치 이론과 사상사를 전문으로 하는 독일의 저명한 정치학자입니다. 뮌클러는 특히 마키아벨리 연구로 유럽 학계에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이에 뮌클러는 1977년,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 소재한 종합 대학인 요한 볼프강 괴테 대학에서 독일어학, 정치학, 그리고 철학을 공부하여, 독일어와 사회 과목의 중등 교사 자격을 취득합니다. 이후 그는 현재 유럽에서 표준 연구로 일컬어지는 『마키아벨리 : 피렌체 공화국의 위기에서 본 근대 정치사상사의 기초』라는 제목의 박사 논문으로 학문적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후 1992년 3월에 그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의 사회과학부 정치 이론 교수직을 수락합니다. 그는 1992년부터 1993년까지 학과장을 역임했고, 2002년부터 2003년까지 같은 대학의 사회과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게 됩니다. 또한 1988년부터 1999년까지 뮌클러는 독일 정치학 분기별 학술지 (German Political Science Quaterly)의 정치 이론 부문을 담당했고, 1993년에는 비엔나 고등연구소 (Institute for Advanced Studies in Vienna)의 객원 강사직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그는 독일 외교부와 연계하여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으며, 2024년까지 단극 세계 질서 시대가 끝나고 5대 강대국 (미국, EU, 러시아, 중국, 인도)이 지배하는 세계 질서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럼에도 뮌클러는 전세계에서 민주주의 확대와 발전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으며, 2018년 은퇴 이후에도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는 여러 방안들과 현실적 가능성 등을 언론과 지방 자치 단체에 이론적 초안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최근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도 독일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더 강력한 지원을 주장하는데, 그의 의견이 중요한 근거로 제공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Thomas Hobbes, Eine EinFuhrung"으로 지난 2001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6년 2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뮌클러의 이 글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토머스 홉스의 생애와 주요 저작들인, 『시민론』, 『리바이어던』, 『법의 기초』, 그리고 『베헤모스』등을 통해, 그만의 고유한 사상을 분석해 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영국의 정치 이론가인 리차드 턱의 같은 성격의 글인『홉스』를 일독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글 역시, 서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뮌클러의 이 책 역시, 홉스에 대한 제법 면밀한 이해를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는데요. 특히 앞의 리차드 턱의 논저와는 달리, 뮌클러의 이 글은 각각의 논저들에 대한 명료한 분석과 입체적이면서 좀 더 주도 면밀한 관점이 마음에 들기도 했습니다. 홉스가 이미 그의 논저들에서 부정적으로 언급한 소위 '내전 상태'에서 모든 시민들의 '자기 보존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고 쉽게 파괴될 수 있다는 점을 특별히 부각시키고, 논저 리바이어던의 '모든 사람에 대한 투쟁', 그리고 "인간이 자연상태에서는 늑대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일종의 연역의 방식으로 포함하여 논증하고 있었습니다.
이 글의 4장 이후의 논증에서 결론적으로 홉스는 자유주의자들과 절대 왕정주의 혹은 절대 권력 옹호자들에게 무언의 영감을 준 사상가로 도출됩니다. 이에 필연적으로 홉스가 언급하는 자유는 이사야 벌린에게 사상적 단초를 제공했고, 여전히 논란의 인물인 카를 슈미트와 심지어 아돌프 히틀러에게까지 그는 일정 부분, 권력 집중에 대한 편의적인 이론 제공과 절대화 된 권력의 이론적 해석에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다만 우리가 이 지점에서 우선 인식하고 있어야 되는 부분은, 이 책의 저자인 뮌클러가 분석하고 있듯, 후자의 소위 '절대 권력'의 목적이 다수 시민의 '자기 보존'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입니다. 이는 과거 홉스가 살았던 영국에서의 내전 상황과 그에 따라 얼핏 인식적 연계에 따라 드러났던 '공화주의'에 대한 아이디어의 우려와 공포도 함께 언급하고 있는데요. 심각한 내전 전후로 이어지는 공화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홉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부분이었습니다. 즉, 책의 1장에서 광범위하게 언급되는 바와 같이, 홉스에게는 시민들 사이에 덕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는 것보다 '인간의 합리적인 이익 추구'에 기대어, 자신이 분석하는 그 특별한 '권력'의 조율된 원칙이 기반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 부분은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앞선 '덕의 부재'에 대한 관념적 해석은 이후에 등장하는 데이비드 흄에 의해, 토머스 홉스의 합리적 이익 추구의 신민들이라는 독창적 개념이 일견 부정 되기는 했습니다만 '왕의 목을 치게 되는' 심각한 내전 상황에서의 권력 붕괴와 그에 따른 대다수 신민들이 맞게 되는 위태로운 정치적 상황, 그리고 인간의 중요한 목표이자 욕망인 자기 자신을 (야만의) 자연 상태에서 보존하기 위한 노력들이 무산되는 정치적 현실을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가 올리버 크롬웰과 연관이 있었다는 내용도 나옵니다만 신민들의 자기 보존이라는 이익에 기대어, 정치적 파행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시도는 그가 궁정 정치인이 아니었음에도 일종의 사활적인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그의 후기 저작인 『베헤모스』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먼저 자기의 진정한 이익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공공연히 피력하기도 합니다. 이는 그의 후기 사상이 어떤 식으로 강화되었는지 깨닫게 되는데요. 전반적으로 홉스의 이러한 관심은 실질적인 권력을 쉽게 조망할 수 있는 '가정 교사'였다는 점도 감안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파리를 떠나 영국으로 돌아오게 되는 1961년까지, 기피 되고 거부 당하는 인물이었으며, 귀환한 뒤에는 철저하게 영국 공화정에 복종함과 동시에, 런던에 살면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학문에 바쳤다는 점은 그것대로 홉스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엿 볼 수 있게 해줍니다.
리바이어던으로 통해, 드러난 홉스의 주요 관점은, "모든 권력을 주권자에게 양도하고 주권적 권력과 경쟁할 수 있는 어떤 집단과 단체도 허용하지 않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는 "오직 신민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장할 수 있는 통치자에게만 복종해야만 한다는 견해"와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홉스가 '사회 계약'이라는 개념을 처음 밝히기도 했습니다만, 이 책의 저자인 뮌클러가 후반부에서 새롭게 밝히는 바와 같이, 이후에 사회 계약의 효시가 된 장 자크 루소에게 철저히 부정 되어야만 했던 역사로서의 의미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현재에 이르러, 우리가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통해 개인의 권리와 사회 보장에 따른 안전과 재산권 보호를 인정하고 수립했지만, 여전히 전세계의 실효적이고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제한적이라는 현실은 과거의 토머스 홉스가 왜 강력한 권력을 빗대어, 소위 '성서와 하늘의 권리'로 승화시켜, 절대 왕정에 부여하게 되었는지 그 노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의 이런 수사와 정치적 맥락을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 사회에 누적된 지식 발전이 더불어 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신뢰한다면 이를 뒤집어 '그 역'에도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후반부에 언급되는 '정치 신학'에 대한 홉스의 특별한 기여와 그가 평생에 걸쳐, '무신론자'라는 누명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일화도 역시, 이처럼 인지부조화에 가까운 서로 충돌 되는 관념의 투쟁을 짐작하게 만듭니다.
이 글의 1장, 2부부터 3부까지의 주요 논증이 토머스 홉스의 정치 사상적 고찰에 의해, 그가 어떻게 고대 그리스 철학과 같은 전통적인 철학과 왜 단절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저자는 거듭 밝히고 있었는데요. 홉스에게는 늑대들과의 전면 투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자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과거 그리스 철학의 전통과 길을 달리하는 방법이 거의 유일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기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철학적 이론이 거의 '홉스식으로' 부정되기에 이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이기도 한, "소위 사회적으로나 지적으로 극단들 사이의 중간을 지향하는 시민 관념을 포기하고, 이 시민을 복종 의무를 지닌 신민으로 대체"했습니다. 특히 정치적 불안을 심각하게 야기하는 것이 과거 그리스 전통에서의 평가와 점차 점진하는 정치인들의 명예욕이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더욱이 그가 말하는 야만적인 자연 상태를 분석할 때, 모두가 평등하게 태어나고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일반적인 평등 이론'이 더욱 '자연 상태'를 조장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홉스는 신분 상의 차이나 계급적 차별을 수용하고 이것에 반하는 평등 관념에 대해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글 1장의 2부에서, 이들 자연 상태에 적나라하게 제시되는 "가장 약한 자조차 가장 강한 자를 죽일 수 있다"는 논리는 계략과 음모라는 매개는 물론, 거기에 동원되는 살인 무기 등을 통해, 그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여실히 논증하고 있었는데요. 이처럼 홉스는 그 시대에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관념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현대의 이 세계에서도 어떤 한 사람을 매장시킬 수 있는 모략(물론 심히 거창한 표현이지만)과 술수는 여전히 가능하며, 이러한 전제로 인해 인간의 선의와 도덕적 선행에 대한 인식을 매번 긍정할 수 없는 이유라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홉스의 분명한 인식처럼 수많은 개인들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합리적인 측면에서의 이익 추구가 절대 권력의 방만과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을 (견제할 수 있다거나)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날처럼 사실상 도덕이 붕괴된 상황에서 '연계된 개인들의 합리적 이익 추구'가 과연 홉스가 그토록 바라던 사회 질서와 안전 유지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는 최근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장담해 마지 않던 자유 시장의 터무니 없는 관념과 일맥상통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홉스는 2장에서, "인격적 유대와 필요 지향적 노동의 자리에 들어선 시장 매커니즘에 사회적 통합이 고착된 것을 인간 본성의 산물로 묘사"한 귀결은 홉스가 "시장이 매개하는 사회는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관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다만, 그는 '법의 기초'에서 철저한 '법의 보장'만이 신민들의 방종을 방지하고 이러한 법의 토대가 결정적으로 정치적 및 사회적 안전에 기본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는 있습니다.
앞서 강조했단 바와 같이, 홉스가 규정하는 주권자는 "시민 일반의 복지를 염두에 두어야한다"는 원칙과 그것을 지킨다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일종의 선결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세금 문제가 결부된 영국의 찰스 1세의 처형이나, 이후의 루이 16세가 단두대에 의해 목이 잘리게 되는 점도, 자기 보존성과 연계된 시민의 복지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절대 왕권의 몰락을 비극적으로 증명하는 역사적 사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홉스는 그러한 전제 정치 내지는 왕권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붕괴시켜, 한 국가를 내전에 빠트리게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 못 박고, 동시에 이러한 주권적 권력의 태만에 대해서도 경종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홉스가 자신의 후반부 논저에서 상당히 누그러진 태도를 보이기는 했으나, 2장 5부에서, 그의 리바이어던을 통해, "주권적 통치자를 갖춘 정당한 권력 구조"에 대한 논증은 그의 사상이 어떤 관점으로 어떤 맹목적인 위치에 놓여 있는지, 설득은 안되지만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홉스의 시대 역시, 도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쉽게 야만에 빠질 수 있었던 정치적 위기의 순간들이었지만 그가 일관되게 서술하는 국가의 선결 과제와 그런 틀로 규정된 정치적 권력과 이 정점에 위임한, 이 '주권'에 관련된 내용은 현대에 살고 있는 저에게도 적잖은 고찰을 요구했습니다. 일반 신민들에 대한 다소 냉정한 평가와 이들의 방만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법의 단호한 대책과 같은 일련의 논리적 연계들은 '주권'을 온전히 발휘하고 그것을 권력화하여, 국가 통치에 나서는 소위 '존귀한 세력'에 대해서는 다소 관대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부분은 특별히 주목할 만합니다. 특히, "반왕권주의적이고 친공화주의적인 결론을 피하기 위한 홉스의 노력"은 2장의 초입에서도 일관된 진술로 드러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그의 논점들은 정치 구조와 그것의 행위자들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역설적으로 추동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시 요즘으로 돌아와, 홉스가 작금의 극단주의 세력에 어느 정도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고, 또한 제한적인 자유 관념과 그 정치의 목적이 오로지 사회 질서 유지와 그로 인한, 신민들의 자기 보존에 우선한다는 맥락은 그것의 서사적 전개 및 요지 자체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한편으론 지금의 현실과 비교하여, 어쩔 수 없이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글의 1장 중후반부에서 자유 평등의 상태가 홉스에게는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는 점과 이 자유와 평등을 근본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결론, 그리고 그 효력 범위에 대한 촉구는 여러모로 그가 전면적인 계몽주의 시대 이전의 사람임을 깨닫게 만듭니다.
- 행동의 동기를 이익으로 환원하고 그것을 인간 행동의 여러 요인들의 주된 목적으로 삼는 등의 이익 본위의 행동 원리는 지금까지도 그 역겨운 인상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인간의 합리적인 이익 추구'를 거의 신뢰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능한 한, 최대의 이익추구만이 인간에게 있다고 믿는 편인데요. 바로 여기에 왜 오늘날 도덕 관념이 불필요한 관념으로 추락하고 그것을 백안시 했는지, 이를 통해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홉스 이론의 한계는 바로 이 부분에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력과 가까운 거리 덕에 그는 평범한 지방 성직자의 아들로서는 쉽게 가질 수 없었을, 정치적 사건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을 일찍부터 갖출 수 있었다.
홉스의 관점은 정치 질서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 적어도 안정화하는 것이었다.
정치 분석가 홉스의 탁월한 점은 내전의 영향 속에서 이론을 발전시켰는데도 권력을 결코 폭력으로 축소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명시적이기보다는 묵시적으로) 복합적 권력 개념을 가지고 논증했다는 것이다.
홉스가 그 저작들에서 발견한 것은 그의 시대에도 여전히 불안과 갈등을 낳는 요소들, 무엇보다 선동 정치가의 명예욕이었다.
플라톤의 대답이 철인의 지배였다면, 홉스의 대답은 모든 권력을 주권자에게 양도하고 주권적 권력과 경쟁할 수 있는 어떤 집단과 단체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홉스는 주권자에 대한 시민의 충성을 확보하는 데 국가의 효용, 즉 생명의 보장과 그에 근거한 부유한 삶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확신했다. 거기에 더해 국가와 그 꼭대기에 앉은 통치자로부터 압도적인 두려움과 공포가 흘러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권자의 지배가 때로 억압적일지라도 그것이 어떤 경우에도 내전으로 추락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이야기한다.
하느님 앞에서 그들이 어떤 지위를 보유하는지가 오로지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결정에 달려 있을 뿐,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자들은 자유를 가치라고 말하고, 과두정 지지자들은 부나 좋은 혈통을 가치라고, 또 귀족정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탁월성을 가치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불평등이 본성의 차이로부터 도출된다고 본 반면, 홉스는 불평등이 오직 주권자의 결단을 통해서만 강제적으로 확립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홉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의 이상, 즉 사회적으로나 지적으로 극단들 사이의 중간을 지향하는 시민 관념을 포기하고, 이 시민을 복종 의무를 지닌 신민으로 대체한다.
자유, 평등, 정의가 각각 무엇을 의미해야 하는지는 각각의 주권자가 그 의미를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홉스는 주권자에게 의무와 임무보다는 주로 권리와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에 플라톤과 마르크스보다는 딜레마에 덜 얽매였다.
몇몇 사람은 공격적이고 불의하므로 악하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진술은 공화주의적 맥락에서 왕과 그의 신하가 가진 권력을 제한하거나 부수기 위해 흔히 사용되던 논거였다.
명백히 반왕권주의적이고 친공화주의적인 결론을 피하기 위해 홉스는 맹수의 성격을 부여하는 대상의 사회적, 정치적 한계를 없애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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