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교유서가 어제의책
퀜틴 스키너 지음, 조승래 옮김 / 교유서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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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11월, 영국 맨체스터 근처의 올덤에서 태어난 퀜틴 스키너는 부친인 알렉산더 스키너와 모친인 위니프레드 스키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특이하게도 서아프리카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습니다. 스키너는 7세가 되자, 7세부터 18세의 남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베드퍼드 스쿨에서 본격적인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의 친형과 마찬가지로, 케임브리지 대학의 곤빌 앤드 카이어스 칼리지에서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여, 1962년 역사학과에서 최우등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졸업 후, 케임브리지 대학의 크라이스트 칼리지의 교수로 일하기 시작했고, 2008년 런던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그곳에서 일하게 됩니다. 스키너는 1981년부터 영국 아카데미의 회원이었고,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1986), 유럽 아카데미(1989), 미국 철학회(1997), 오스트리아 과학 아카데미(2009), 덴마크 왕립 아카데미(2015) 등을 포함한 여러 국가 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으로 참여합니다. 지금까지 그는 정치사상사의 '케임브리지 학파'의 설립인 중 한 명으로 여겨지며, 정치적 글쓰기를 학문을 탐구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고전 텍스트를 연구하고 이를 자신의 글에 자발적으로 인용하며,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 명확한 근거에 의해, '텍스트의 원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텍스트가 문화 및 정치 담론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으로, 그가 단순한 강단의 지식인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연구 방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Liberty Before Lberralism"으로 지난 1998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6년 2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인식하고 있듯이 자유라는 단어의 기본 의미와 어쩌면 정치적 신념이 투영되어, 좀 더 확장된 함의는 이를 받아들이는 개인의 차이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역사상, 과거 첨예한 냉전 시기에서 구 소비에트 연방에 맞선, 소위 자유로운 미국과 이를 따르는 서유럽의 '자유'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데요. 이는 이 글의 역자와 더불어 저자인 퀜틴 스키너가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바대로, 냉전 시기에 '자유라는 관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이제이아 벌린 (다른 말로 이사야 벌린)의 '소극적 자유'를 비판의 틀로 다루고 있습니다. 벌린의 이 소극적 자유는 아주 간단히 말해, 누가 나를 방해하거나 어떤 간섭이나 제약 없이 하고 싶은 바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자유'라는 이름으로 확산되어 왔습니다. 특히 저로서는 1980년대부터 경제적 헤게모니인 동시에 사회 지배적인 관념이 되었던, '신자유주의자들'이 그토록 '내재된 신념'처럼 부르짖었던 것이 바로 이 '자유'였습니다. 물론 이들에게는 '우선하는 시장의 자유'를 포함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의미심장한 벌린의 '소극적 자유'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유럽의 그야말로 자유라는 의미의 '확신하는 자기 결정'이 됨으로써, 이것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사회학과 정치학의 구조적인 기준과 잣대로 시대에 맞게 분류하고, 더 나아가 앞선 틀로 '재의미화' 할 수 있는 학문적 가능성 마저 원천 봉쇄되어 왔던 것이 이 자유라는 가치를 둘러싼 싸움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정도 필립 페팃과 인식의 궤를 같이 하고 있는 '역사학자' 퀜틴 스키너는 페팃의 '공화주의적 자유'에 많이 경도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세세한 명칭에 있어서, 과거 찰스 1세 시기에 등장했던 '신로마적 이론'에 그 연원과 한때 신로마적으로 해석된 자유가 어떻게 당시 영국 지식인들의 주제가 되었는지를 저자는 논하고 있었는데요. 도입에서 설명한 벌린의 '소극적 자유'가 그저 자신의 행동 자유, 즉 어떤 제한이나 간섭 없이 내가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그것이 자유의 본질이라는 해석에 저자는 몇 가지 반론을 제기합니다. 만약 과거의 노예주들이 남들보다 좀 더 선의와 아량을 갖고 자신이 소유한 '노예'에게 약간의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면, 이 노예는 과연, "자유로운 상태인가, 혹은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가" 라고 명확히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보탭니다. 이는 그저 '자유롭게 행동할 자유'만을 강조하고 이것이 인간 자유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을 비관적으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벌린의 자유가 명확한 인식의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소극적 자유에 극적으로 대비된 인식이 바로 '신로마적 자유'입니다. 이를 아주 간단히 언급해 보자면, 진정한 자유란 타인은 물론, 어떤 권력이나 체제에 지배 당하거나 예속된 상황을 극복한 '대의'로서의 자유를 뜻합니다. 우리의 가까운 역사에서, 5공화국 시절에 그나마 알량하게 누려왔던 시민들의 자유, 그리고 스포츠와 같은 허접한 취미,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던 것을 그 사회의 개방성이라고 지칭했던 당시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의 답습된 발언 등을 기억합니다. 민주주의와 하등 상관 없는 정권이 시민들에게 배려하는 듯 보이는 알량한 자유란 바로 그런 의미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18세기 공리주의의 역사가 태동하기 전까지, 영국이 찰스 1세의 처형을 계기로 아마도 진정한 자유, 즉 왕의 권리나 권의에 예속되지 않는, 자유의 본질에 대해 당시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그 시절의 논란을 일으켰던 토머스 홉스는 지금에야 대단한 사상가로 추앙받고 있지만 그 괴랄하기 짝이 없는 '리바이어던'에서 "국가의 권력과 그 신민들의 자유 사이의 관계"를 드러냅니다. 모두가 행하는 총체적 소산의 무언가인 리바이어던의 핵심은 법의 규제가 어느 정도 명시적으로 규명된 상황에서 소위 이 체제하에 놓인 신민들의 자유가 어떠한 맥락을 갖고 있는지 냉정하게 분석했던 것이 바로 홉스였습니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법의 강제력을 부과하는 것이 일종의 자유라고 여긴 것이 확실히 그라면, 약간의 상상을 보태어, 소극적 자유와 신로마적 자유를 긍정하는 양쪽의 세력에게는 결과론적으로 악몽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여기서 소개되는 홉스의 또다른 결론인, "일치해야 하는 법이 존재하지 않는 한, 신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대로 의미심장합니다. 강력한 주권자가 존재하고 그 주권자가 다수의 신민들을 지배하지 않는 경우, 신민은 그의 재량대로 무엇을 할 수 있거나 혹은 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것으로, 홉스 역시 이율배반적이지만 자유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런 연유로 저자가 소개하는 니덤의 사상은 그 시대의 진보적 관념을 엿보게 합니다. "모든 정부의 목적은 인민이 지배자나 다른 동료 시민들에게서 압박과 억압 없이 그들의 권리를 확고히 누리게 하여 이익과 편안함을 누리게 하는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일종의 명시는 자유와 또다른 자연권에 대해 겸허히 숙고하게 만듭니다. 사실 저자인 스키너가 발굴한 그 시대의 저술가들이 거의 공통된 목소리로 말했던 것은 자유라는 본질적 의미가 결국엔 시민들(혹은 신민들)의 자연권 개념과 맞닿아 양자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점입니다. 그래서 절대 왕정의 국왕의 권리 내지는 권위가 그 신민들을 사실상 옥죄게 될 때, 귀족을 비롯한 중간 계급의 헌정적 함의에 대한 요구 역시, 비슷한 강도로 도출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자유라는 개념이 그저 일개 인간의 제한적인 행동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집중된 권력의 왜곡이 오로지 한 인간으로부터 체제적 종속으로의 폭력으로 시발되어, 결국 왕의 목조차 베어 버릴 수 있는 '목소리들의 요구'가 역사의 어법으로 '인정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의 행로에서 그 이전의 수많은 사람들의 요구가 지배와 예속의 굴레에서 억압되어 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맥락으로 '역겨운 obnoxius 조건'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는 누군가의 선의에 의지해야만 할 정도로 쉽게 곤경을 벗어날 수 있는 상황 등을 뜻하는 것인데요. 이렇게 신로마적 자유의 정의는 아주 명백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지배나 예속, 혹은 종속 상황에 놓여져 있는데도 그저 알량하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유만이 주어져 있다면, 그 사람이 과연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이냐는 물음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개인적 자유에 대한 시대적 고찰, 혹은 사상의 분기에 따른 분석을 거쳐, '자유국가'에 대한 이미지인 "자유국가 안에서만 개인들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일종의 유토피아적 시각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때의 국가들은 정복이나 전쟁을 통한, 국가의 영광 내지는 승전의 열매를 쟁취하기 위한 노력들로 국한되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언급된 바와 같이, 개인의 자유는 체제 안에서 확실히 부차적인 문제였을 겁니다. 이러한 가운데 니덤의 진술로 보건데, 자유의 또다른 부분이 모든 사람의 시민적 권리와 수준의 향상에 있다는 것을 주지한다면, 자유 국가에서 개인이 시민적 자유를 구가할 수 있다는 홉스적 이해는 어느 정도 그 개념적 이해가 가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전의 대부분의 왕정 국가들은 왕이 신민을 자신의 재산으로 인식하고, 신민들은 왕의 예속된 상태로 그런 상황에서 왕은 총신의 발언에만 주목하여, 대체로 권력의 방향은 일방적이었습니다. 여기서 국왕은 신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자신의 임의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짐은 하늘의 명령을 받은 국왕이다"와 같은 절대 왕권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선 엘리자베스 여왕조차도 폭군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왕의 임의적 재량권이나,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광범위한 조세 권리를 가졌던 것처럼, 국가는 어쩌면 국왕의 소유물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역사 과정을 헤쳐 나오는 가운데, 시민들이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이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거나, 혹은 입법에 관여하는 수 밖에는 그 인식과 현실의 합치의 유일한 대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설사 그것이 유토피아적 발상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여기에 더해, 신로마적 자유의 퇴행과 원래 신로마적 이론이 강조했던 공공선에 대한 후퇴 내지는 공공성의 상실 역시, 자유국가에 대한 맹목적 요구가 그 파급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서야 언급하는 것이지만, 앞선 벌린의 '자유'와 대비되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공공선에 이바지하게 되는 공적인 자유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최근에 68혁명의 실패로 좌파가 지녀왔던 공공성의 가치 추구와 공공선에 대한 개념적 혹은 실제적 가치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을 목도했습니다. 흘러간 샹송 가수인 에디트 피아프의 애처로운 목소리 만큼이나, 공공선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지리멸렬을 넘어, 그저 애처로운 수준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분명하게 '역사가'로 지칭하는 퀜틴 스키너가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자유에 대한 소위 변질된 신자유주의자들(제한된 권력으로서의 자유를 사실상 특정 계급에게만 용인하자는)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 상황에서 기본적인 시민적 권리마저 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신자유주의자들의 대대적인 사회 부조와 정부 지출을 철회한 시점에서, 그 이유는 무엇보다 자본의 이익을 위해) 작금에, 과거 공화주의의 부활을 외치는 여러 학자들과 그 중에, '공화주의적 자유'를 도출한 필립 페팃이 주목 받는 이유는 이처럼 그럴 수밖에 없는 맥락을 갖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명백한 신자유주의 이론조차도 망상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자리를 비켜나고 있지만 그 대폭락의 2008년 이후에도 여전히 그 체제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락에서 언급한 공공성의 추구와 공공선을 통한 공적인 자유의 복귀 내지는 부활은 이만큼 수많은 시민들의 삶을 위해 필요한 선제 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샹탈 무페가 떠오르긴 합니다만 벌린을 위시한, 제한적이고 다른 매개로 시장 친화적이면서, 부를 가진 계급에게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하는 민주주의에서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것들을 치워버릴 수 있는 혁명적인 진보 세력(허위의식에 사로 잡힌 자들이 아닌 알짜배기와 같은)의 부활이나 대응 세력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나, 앞선 자유로 대표되는 제한적인 자유 담론은 이미 극단적 헤게모니가 된 지가 이처럼 오래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스키너의 이 책을 통해, 제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부분은 "공화주의만이 진정한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는 문구였습니다. 다만, 겉으로 자유주의와 자유 세계로 포장하는 국가나 사회의 자유로서, 그 한계를 명확히 한 것도 인상이 깊었는데요. 일전에 다른 책에서, 권위주의 체제에 놓여 있는 국가의 시민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자신이 자유를 누리고 있고 또한 자유롭다"라고 조사된 어떤 설문을 보면서, 자유의 헤게모니적 차원의 비극적 운용 방식은 정권의 차원에서 차등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후반부에서, 저자인 스키너가 "현대 정치철학에서 자유주의 이론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위치에 오르면서, 신로마적 이론은 시야에서 너무나 멀리 사라져 오로지 자유주의적 분석만이 관련된 개념들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논리정연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진 것이다"라고 일침을 가하기에 이릅니다. 이처럼 벌린이 의도치 않게 확산시킨 '강제의 제거'로서의 자유가 궁극적인 지배와 예속 상태로서의 해방에 가까운 자유를 압도하게 됨으로써, 벌린 자신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떠한 명성을 얻은 점은 분명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물론 이 지점에서, 민주주의 체제하의 자유의 본질이나, 국가가 시민들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할 수 있겠느냐와 같은 건설적인 논쟁이 필요한 것은 거듭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여기에 권력의 분립으로 인한 분명한 이득, 혹은 '모두가 평등한 자유'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적 가치의 실체적 복귀만이 시민들에게 더 확실한 자유를 보장하는 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이러한 "공화주의적 자유론을 발굴해 내는 작업이 가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에 도전할 수 있는 소중한 사유의 방식을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제언은 더욱 귀담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91페이지에 띄어쓰기 오류 한 곳이 있었습니다.            



적극적 자유가 비합리적인 것과 부도덕한 것을 행할 수 있는 자유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좋은 것을 올바른 방식으로 행해야 된다는 목적론을 내재하고 있다면, 소극적 자유는 그러한 목적론을 배제하는 다원적 개방적 개념이다.

예를 들어 인자한 주인 밑에서 사는 노예는 아무런 간섭 없이 살아갈 수 있지만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노예는 주인의 재량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그의 자의적 지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이 종속되어 있는 사람의 의지에 거스르는 언행을 했을 때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무서워서 스스로를 검열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국가의 정부는 이상적으로는 각각의 개별적 시민들이 입법에 참여할 수 있는 평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자유는 국가 안에서, 국가 주권의 권위에 의해 안전을 보장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신민의 자유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홉스가 말하는 자유는 소극적 자유일 수밖에 없다.

홉스의 또다른 결론은, 일치해야 하는 법이 존재하지 않는 한, 신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든 정부의 목적은 인민이 지배자나 다른 동료 시민들에게서 압박과 억압 없이 그들의 권리를 확고히 누리게 하여 이익과 편안함을 얻게 하는 것이다."

정치체라는 메타포의 좀 더 심오한 헌정적 합의는 자유국가의 정부는 이상적으로 각각의 개별적 시민들이 입법에 참여할 수 있는 평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헌정 제도 아래에서 산다는 것은 정치체가 의회 안에서 대표되는 국민의 의지가 아닌 다른 의지에 의해 행동할 수 있는 위험에 빠지기 쉬운 상태로 산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이론가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국가의 자유였지 개별적 시민들의 자유는 아니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자유국가에서 사는 것의 공통된 혜택은 "자신의 소유물을 자유로이 그리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구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마키아벨리는 선언했다.

단지 정치적으로 종속되거나 혹은 의존하기만 해도 그로써 정부가 생명, 자유, 재산을 강제로 혹은 강압으로 박탈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기만 해도 자유는 상실된다는 것이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역사가들은 그들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진지하게 과거에 대해서 서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현대 정치학에서 자유주의 이론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위치에 오르면서, 신로마적 이론은 시야에서 너무나 멀리 사라져 오로지 자유주의적 분석만이 관련된 개념들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논리정연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진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는 언제나 그렇게 해주는 것과 동시에, 시민들이 피할 수 있도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선의에 종속되는 것을 막아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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