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 개정판
이언 매큐언 지음, 이민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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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햄프셔 주의 올더숏에서 태어난 매큐언은 군인인 아버지의 순환 근무 때문에 어린 시절을 동아시아, 독일, 리비아 등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러다 그가 12살이 되던 해에 비로소 영국으로 돌아오게 되는데요. 영국으로 복귀한 이후, 매큐언은 서퍽에 소재한 울버스톤 홀 스쿨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해, 서섹스 대학에서 영문학 전공으로 학사 학위 과정을 마쳤고, 노리치에 있는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에서 문학 석사를 취득합니다. 최초로 출간된 그의 작품은 1975년의 '첫사랑, 마지막 의식'으로 초기 그의 작품은 다소 어두운 분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작품 활동의 중기 초기작이라고 볼 수 있는 '견딜 수 없는 사랑 Enduring Love'는 비록 부커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평단으로부터 열렬한 관심을 받게 됩니다. 바로 이듬해인 1998년에 '암스테르담'으로 그는 비로소 '부커상'을 수상하게 되는데요. 또한, 2001년에 출간된 '어톤먼트' 역시 좋은 평가를 받으며, 2007년에 조 라이트에 의해 영화화가 됩니다. 다음 작품인 '토요일 Saturday'도 영어로 쓰여진 문학에 수여되는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 상' 수상하게 되고,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습니다. 매큐언은 지금까지 6번이나 부커상 후보에 올랐으며, 1999년 함부르크의 알프레드 퇴퍼 재단에서 주최한 연례 '셰익스피어 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 '더 타임즈'는 이언 매큐언을 "1945년 이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50인"의 한 사람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뒤이어 2012년에는 모교인 서섹스 대학이 주최하는 "문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50주년 기념 메달을 수여받습니다. 앞선 문학 경력과는 논외로 매큐언 역시 여러 정치적 의견 피력하기도 했는데요. 특히 동성애 대한 견해 차이 때문에 소위 '이슬람주의'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2016년 브렉시트에 대해서도 사실상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는데요. 그런 연유로 '정치적 의견을 내는 작가'에 대한 터무니 없는 비난을 가하는 사람들에 의해 백안시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작품은 지난 2005년 원제, "Saturday"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07년에 초도 번역이 되었고, 이번에 제가 구입한 판본은 2013년에 출판된 2판 1쇄본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헨리 퍼론은 런던에서 저명한 신경외과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친의 슬하에서 일련의 교육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내 입지전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직업적 커리어 역시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는데요. 또한, 수련의 시절부터 교제한 변호사인 아내로부터 사랑스럽고 다재다능한 일남일녀의 자녀들을 두고 있기까지 합니다. 그는 경제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이, 사회내에서 존경받는 의사이자, 여기에 내적으로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데요. 이미 도입부에서 작가인 매큐언은 이 헨리 퍼론이라는 의사가 사회로부터 적절하게 (관념적으로 혹은 영역적으로) 유리되어 있고, 그의 가정과 자신의 직업이 갖는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서구사회의 전형적인 의사의 삶을 표징하고 있는데요. 심지어 일부 묘사에서 서사적인 이외에, 영국의 의료 제도를 독자들에게 간접적으로 소개하는 듯한 인상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작가는 주인공인 헨리 퍼론의 인물 조성을 위해, 영국 런던 퀸스퀘어에 소재한 신경과 및 신경외과 국립병원의 신경외과장에게 적잖은 도움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었는데요. 극에서 드러나는 헨리 퍼론의 의료인으로서의 전문성은 바로 앞선 정보를 통해 얻은 상당히 기민한 묘사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일전에 일독한 미셸 볼드린과 데이비드 K. 러바인의 "지식 독점에 반대한다"는 논저에서 이들 저자들은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구 의료계의 의사들은 거의 철저하게 환자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 태도를 훈련받는다고 언급했던 바가 있습니다. 저는 그때 저 대목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로 이 작품에서 퍼론은 문학적 재능이 넘치는 딸인 데이지가 자신의 외할아버지의 지도 하에, 어려서부터 여러 소설 작품들을 접하면서, 이런 문학과 상당히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던 아버지에게 일부 고전 작품을 추천하기도 하는데요. 자신의 딸을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퍼론은 딸의 권유에 못이겨 카프카를 읽기도 하지만 스스로 이런 생각을 도출합니다. "내가 직면하는 수많은 삶과 죽음의 모습은 어떤 측면에서 일개 소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라고 말입니다. 특히 척추와 뇌질환을 두루 살펴보는 이 의사에게 있어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수많은 환자들을 의사라는 직업을 떠나 개인적인 관점에서 누구보다 생생히 접했을 겁니다. 그런 타인의 삶과 죽음의 기록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이 '토요일' 전후로 겪게 되는 치명적이면서 돌발적인 사건으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인생과 삶에 대한 양가적이고 동시에 복합적인 고유한 성찰로 나아가게 됩니다. 다소 개인주의적이고 사회 자체에 의식적인 거리를 두고 있던 한 개인이 말입니다.


퍼론이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시점은 조지 W. 부시에 의해 벌어질 '이라크 전쟁' 개전의 바로 직전인 상황입니다. 당시 사담 후세인이 통치하고 있던 이라크는 곧 딕 체니와 도널드 럼스펠드의 대통령에 대한 압박의 요인으로, 곧 벌어질 상황인데요. 이 지점과 관련해, 매큐언은 극중 후반부 데이지와 주인공인 퍼론의 서로 양보하지 않는 국제정치적 대화에서 데이지의 입을 통해, 작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아빠도 과격파 네오콘이 미국을 접수했다는 건 잘 아시죠. 체니, 럼스펠드, 울포위츠, 이라크는 이자들이 애지중지하는 비장의 사업이었어요." 이것은 미국의 군산복합체의 영향 뿐만 아니라, 이라크에 있던 원유 문제, 그리고 블랙 워터와 같은 PMC 사업과도 깊이 맞물려 있습니다. 이미 영화화된 딕 체니의 사실적 개인 전기라고 볼 수 있는 '바이스 Vice'에서 이는 잘 드러나고 있는데요. 국제적 대의와 인권으로 포장된 이러한 군사 작전의 이면에 무엇이 웅크리고 있었는지는 여러 글들을 통해 전세계에 밝혀진 바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전쟁 위기 속에서도 헨리 퍼론은 인류의 문명이 그만큼 나날이 발전되어 왔고, 다수의 사람들이 이 정도로 풍요로움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역시나 '문명이 진보'했기 때문'이라고 설파합니다. 물론 지그문트 바우만이 분석했던, "어떤 한 사회의 단면을 진정 살펴보고 모색해보기 위해선 겉으로만 드러나는 사건 자체만으로 가늠하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란 점은 거의 자명한데요. 그동안 시장 자본주의는 개인이 보유한 돈의 유무에 따라 사실상 사회계층화가 일어났고 더욱이 이 과정은 1980년 이후,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해 조장되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사회학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거의 명백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선 퍼론이 거듭 밝히는 견고한 입장과 유사한 주장의 걸게를 디드러 매클로스키의 글에서도 접한 바가 있습니다. 물론 단편적인 측면에서 이런 문명사의 과정과 현재의 모습이 이들이 말하는대로 완전히 터무니 없다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세상의 중요한 사건들에는 분명 그 이면의 목적성이나 영향이라든지 심지어 경제적 이익, 집단 내지는 국가 자체의 이득이 교묘히 숨겨져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삶과 스스로가 속한 사회의 소위, 사회적 의미가 어떤 교차점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영향력 있는 의사이자, 일개 개인으로서, 스스로의 안온한 삶이 어떤 기반에 놓여 있는지를 매큐언은 주인공 페론을 통해 우리에게 여실히 알리고 있었습니다. 국가의 안보, 그리고 국제적 평화, 이러한 토대 위해 함축적으로 펼쳐진 문명의 진보는 과연 일개 인간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작품을 통해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있었는데요. 주인공의 딸인 데이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직접 가리키며, "선진화된 민주 국가에서 직업을 갖고 일하고 있는 사람의 더할 나위 없이 좁은 식견"에 대해 비판합니다. 이것은 세계 패권 국가인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을 앞둔, 수많은 시민들의 인상과도 그 궤를 같이 한다고도 볼 수 있겠는데요. 핍박받는 이라크 주민들을 옥죄는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여, 이라크에 평화롭고 안정적인 민주 국가의 토대를 만들겠다는 저들 네오콘의 발언은 그저 무지하고 책임없는 메아리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게리 거스틀의 '뉴딜과 신자유주의'에서 여실히 밝히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후, 퍼론과 그의 가족에게 닥치는 안온한 일상을 범하게 되는 요지의 그 사건은 이미 죽음의 그림자와 한층 가까워진 벡스터라는 돌발 요인에 의해 자행됩니다. 시내에서 다수 시위대로 인해, 경찰력의 분산과 그로 인해 벌어진 퍼론과 벡스터의 아주 사소한 갈등, 퍼론 스스로 이를 온전히 해결하지 않은 결과가 치명적인 문제를 초래하게 되는데요. 그는 자신과 가족에게 가해진 이러한 응보를 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벡스터에게 (가히 신실하게) 갚게 됨으로써, 극의 대미는 보기보다 사소하게 마무리됩니다. 매큐언은 역시나 의사라는 사람들이 결코 신이나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님을 강조하고, 이들도 역시 내면은 평범한 인간일 수밖에 없으며, 그 한계적인 측면에서 그러한 생명의 존엄을 구현하는 '의학'의 구제 자체는 어쩌면 귀중한 문명의 진보의 산물이라고 사실상 결론 내립니다. 이것이 앞서 제가 설명해드린 '지식 독점에 반대한다'의 요지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자신이 사회와 괴리되어 있다고 여기는 다수의 '사회 부적응자들'과 달리 주변의 호의와 기대. 그리고 인정을 받고 있는 의사의 의도적인 '사회적 유리'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완전히 다른 사회적 개념일겁니다. 매큐언이 말하는 대로, 이 의사가 이제야 찬찬히 주변의 사회와 그것의 체제, 바로 이 속의 구성원들인 다수의 시민들에 대해 비로소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는 주제였는데요. 이미 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은 자신의 삶 자체에서 이런 폭력과 불안정에 놓여 있다는 것은 새삼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과거의 톨레랑스와 같은 직접적인 사회적 관용이 고도화 된 경제적 자유주의에 의해 서서히 쇠퇴했고, 심지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전쟁조차도 허위와 위선에 마치 선물 포장처럼, 꾸며져 있다는 현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그만큼 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일전에 읽었던 데이빗 코츠의 문장들이 절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의사 '퍼론'의 다수의 평범한 삶, 바로 앞에 놓여 있는 불안정성을 스스로 생각해보게 되는 그 특별한 장면은 우리 사회가 어떠한 문제에 놓여 있는지, 또한 동시에 철저한 자본주의적 계급으로 우리가 왜 급격히 분화되었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매큐언식의 서사의 진면목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 극중, 퍼론이 읇조리는, "지금은 관념의 시대가 아니다."는 부분에서 다소 복합적인 감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일전에 에티엔 발리바르가 간접적으로 피력한 바와 같이, 이 시장 경제주의가 초래한 진보가 과연 어떠한 의미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이 사소한 문장을 통해,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또 어떤 실존, 그의 야망, 가족이며 친구들과의 관계, 소중히 간직했던 모든 것, 확고하게 소유했던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쉽게 송두리째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목격한 죽음과 공포, 용기와 고통만으로도 소설책 대여섯권 분량은 되고도 남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죽음을 당하면 머잖아 그들에게 시련을 내린 바로 그 신에게서 위안을 구하는 목소리가 장례식장에 울려퍼질 것이다. 퍼론한테는 이러한 현상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윤리의 영역에선 해명이 불가한 인간의 복잡성이다.

퍼론은 신경쓰지 않는다. 탈주자는 가라. 딴 방으로든 건너 동네로든. 올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신경계 질병의 바다는 넒고도 깊다.

부모가 자녀의 성격에 거의 혹은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은 임신과 현대 유전학에서 번번히 확인된다.

환자들이 갑자기 시력을 잃거나 사지가 마비되었을 때 점차 적응해가는 것처럼 말이다. 돌아갈 수는 없다.

의사라는 직위에 통용되는 관대한 논리를 이용해 한눈팔 기회가 도처에 널렸음에도 심각하게 유혹당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아니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변태에 속한다.

자신은 결코 이룰 상상도 하지 못할 작품, 비인간에 가까운 비정함, 자기 폐쇄적 완벽함을 드러내는 작품,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천재성이다.

그는 사담이 스탈린을 추종하고 따라 했음을, 그 체제를 지탱해준 것은 사담 일가와 족벌의 충성스러운 관계망이었음을, 도 그들에게는 충성의 대가로 저택이 하사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뻔뻔스럽게도, 에어 필터가 작동하고 하이파이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일상에 비애감을 덧입히는 차 안에 앉아 이 도시를 구경하는 일을 언제나 즐긴다.

세계는 근본 바탕이 변한 것이 맞을 것이며, 문제는 서툴게 다뤄지고 있으며, 특히 미국인들 탓이 크다.

이런 생각을 확증하듯이, 벡스터는 전신을 퍼론 쪽으로 돌리더니 나긋이 말한다. "꼴같잖은 폭도들, 자기네가 증오하는 나라에 빌붙다니."

유럽이나 미국의 어느 한 도시가 공격을 받는 것을 불가피한 현실이라는 정부의 조언은 단순히 책임 회피가 아니라 하나의 들뜬 약속이다.

그는 글 읽기는 고사하고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는 환자들을 안다. 대부분 우반구 방추사회의 가운데 부위의 기능이 저하된 경우인데, 보통은 뇌졸중으로 유발된다. 신경외과의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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