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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투스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9월
평점 :
이언 매큐언은 1948년 6월 21일 영국 햄프셔 주 올더숏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은 스코틀랜드의 노동계급 출신으로 군에 투신해 소령 계급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싱가포르, 독일, 북아프리카에서 보냈는데, 그의 가족은 매큐언이 12살이 되던 해에, 비로소 영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후 매큐언은 잉글랜드 동부 지역 도시인 서퍽의 울버스톤 홀 스쿨에서 교육을 받게 되는데요. 그리고 1970년에는 서섹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뒤이어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그의 첫 출판 작품은 1975년에 출간한 단편 소설집인 '첫 사랑, 마지막 의식 First Love, Last Rites'으로 이듬해인 1976년에 '서머셋 모옴 상'을 수상합니다. 그리고 1978년에는 그의 두 번째 단편 소설집이 무사히 출간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초기 작품의 어두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가 1998년에 부커 상을 수상한 '암스테르담'입니다. 더욱이 2001년에 출간한 작품, '속죄 Atonement'가 성공리에 영화화 되면서 원작이 큰 주목을 받게 되는데요. 이후 2010년에 출간한 '솔라', 2012년의 '스위트 투스', 2016년의 '넛셀'이 연이어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매큐언은 지금까지 6번이나 부커 상 후보에 올랐고, 이후 영국 문학 협회 (FRSL), 영국 예술 협회 (FRSA)의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으며, 마찬가지로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이름을 올리는 등 작품의 성공에 걸맞는 사회적 명성도 얻게 됩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바대로 메타픽션 역사 소설로 알려진 이 작품은 원제, "Sweet Tooth"로 지난 2012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0년 9월에 번역 출판되었고, 제가 구입한 판본은 같은 해에 출판된 1판 2쇄 본입니다.
소설은 주인공인 세리나 프룸이 대략 65세 전후의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 회상은 1969년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는데요. 당시 그녀는 자신의 소박한 바람과는 상관없이, 사실상 어머니의 강권에 의해 케임브리지 대학의 두번째로 오래된 여자 대학인 뉴넘칼리지에 수학 전공으로 입학하게 됩니다. 원래 그녀는 지방 대학의 영문학과를 목표로 인생에서 읽고 싶은 책들과 소일하는 것을 희망으로 삼는데요.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과 아주 동떨어진 수학과로 진로를 잡게 되어 그녀의 인생 행로 전반은 적당히 보이는 혼란과 내면의 방황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당시 1960년대는 영국을 포함한 전유럽이 정치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냉전의 갈등 시기와 맞물려, 직간접적으로 사회적 분화가 이뤄지는 시기였습니다. 60년대를 통과한 그 당시의 세대들은 다가오는 1970년대에 마땅히 꿈꿀 수 있는 희망이 불확실한 채, 국제 정세의 불안과 내부에서 노동 계층의 삶의 불안정성으로 말미암아,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젊은 세대의 혼란과 방황의 시대상을 잘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세리나는 완고한 어머니와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크게 반항하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이런 소녀가 자신의 내면을 확고히 정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채, 스스로 적성에 맞지 않은 공부를 그저 힙겹게 이어가고 있었는데요. 바로 이때 여느 평범한 커플처럼 교제하고 있던 남자 친구인 제러미의 소개로, 그의 지도 교수였던 토니 캐닝을 대면하게 됩니다. 그녀에게 있어 52세의 교수였던 토니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인물입니다. (극중에서 숨겨진 의미와 안배로 잘 드러나게 되는데요.) 단순히 세리나와 토니의 불륜 관계를 그저 단편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이런 류의 스토리 진행상 어떤 예상된 결말을 짐작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시 21살이었던 아름답고 생기가 넘치는 세리나에게 이 토니는 첫사랑이라는 의미를 넘어, 그녀의 남은 인생에서 가히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이 작품 후반부에서는 토니와 관련된 숨겨진 복선, 그리고 토니와의 갑작스런 이별과 그로 인한 스스로의 허무함에 빠진 한 인간의 채워질 수 없는 '애정에 대한 욕망과 갈구'를 작가는 이를 진지하게 드러내고 있는데요. 꼭 주인공인 세리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아직 삶의 지향성이 정해지지 않은 그 시절의 젊은 영혼들이 결핍으로 겪게 되는 혼란과 방황은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대학 시절을 마친 세리나는 반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영국의 국내 정보를 담당하는 정보국인 MI5에 지원하게 됩니다. 물론 이는 토니의 안배이기도 했는데요. 소설 후반부에 세리나에 대한 그의 애정과 관심이 얼마나 지대했는지 속속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 MI5를 둘러싼 영국의 정치적 혼란, 특히 북아일랜드의 가톨릭과 신교의 극명한 대립은 심지어 런던에서의 폭탄 테러와 같은 양상으로 나타나기에 이르는데요. 이런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작가인 매큐언은 냉전 시기의 첨예한 진영 대결과 심지어 같은 자유주의 진영인 미국과의 문화적 각축전까지 소설의 설정으로 대입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항간에 떠돌고 있던 조지 오웰과 버틀란드 러셀의 음모론까지 약간 각색하여 이 MI5의 국내 첩보 부분을 소개하고 있었는데요. 이 뿐만 아니라, 당시 영국 노동 계급과 이들의 사회적 불안,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영국 지식인 계급의 동향까지, 자유주의 사회 내부에서 소련에 부역하는 스파이들을 색출하기 위해, 과거 매카시즘의 음울한 그림자를 가히 '매큐언 식' 수사로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주인공인 세리나에게 마찬가지로 겹쳐져, 혼란스런 시대를 살아갔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는데요. 자본주의가 우리에겐 월등하고 유일한 이데올로기이자 반대로 사회주의 진영과의 피할 수 없는 대결에서도 양자가 소모적인 체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어떤 운명론적인 체념까지 곁들이며, 그 시대의 자화상을 거의 맨눈으로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극명한 비극처럼 자유를 지키기 위해, 평범한 사람들을 감시하고 더 나아가 이용할 수밖에 없는 흡사 안티 테제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 측면에서 이언 매큐언의 냉소는 작품의 여러 곳에서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MI5의 행로를 모색하는 수뇌진에 의해, 작품의 제목과도 같은 작전,'스위트 투스'에 세리나는 참여하게 되는데요. 그녀는 자신의 어정쩡한 태도로 말미암아 서구 최고의 정보국에 걸맞지 않는 행동과 처신을 정보국에 노출하게 됩니다. 여기에 당시 남성 지배 계급이 여성들에게 갖고 있던 '직업적 충실성'에 대한 뿌리깊은 의심과도 맞닿아 다소 문제를 키우게 됩니다. 작가인 매큐언은 이러한 점층된 문제를 비꼼과 동시에, 조직 내의 불안 요소, 혹은 조직에 걸맞지 않은 인사에 대한 조직 전체의 적대적인 태도를 흡사 냉전 시기의 노골적인 비인간성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결국 조직 내에서 의도를 가진 노련한 인간들에 의해 세리나는 하나의 소모품 취급을 받고, 이러한 쓸모없는 작전 자체는 그녀와 감정적으로 얽힌 '한 남성'에 의해 유린 당하지만 그 결과의 온존한 책임은 오로지 세리나에게 향합니다. 이 스위트 투스 작전중에 그녀는 진정으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작가 톰 헤일리를 대면하게 되는데요. 물론 다소 이질적이고 냉소적인 캐릭터인 톰 헤일리 역시, 소설 대미에서 스스로에게 뿐만 아니라 두 사람에게 있어 상당히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됩니다. 특히 극중 톰 헤일리는 작가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로도 읽히는데요. 작품 활동에 대한 주변의 기대와 그 와중에 스스로에게 갖는 불신과 체념, 그리고 이로 인한 창작의 고통 등을 작가의 입으로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작품 활동에 대한 내면의 고난이라고도 볼 수 있겠는데요. 그리고 후반에 드러나는 '뼈아픈 진실'을 무엇보다 위선을 통해 뼈저리게 체험한 캐릭터가 결국엔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비합리적인 행동에 대한 합리화를 강요받게 되는 것은 결코 남의 일로만 볼 수 없었습니다. 이 소설의 주제가 그저 배반과 복수라는 틀에 박히 요소로 오독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바대로 '고통과도 같은 진실의 목도'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세간의 교훈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인생의 진실을 긴장된 서사의 틈바구니에서 절묘하게 드러내는 점이 바로 작가의 재능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어떻게 보면 우리 같은 독자들이 단순히 외면하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이러한 진실을 그야말로 날것으로 목도하고 싶어하는 충동 역시 인간 내면의 불합리한 요소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물론 작가의 의도가 그렇지 않든 그렇든 간에 말이죠.
따라서, 매큐언의 이 작품은 과거 그 시대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과 당시의 숨겨진 진실을 낱낱이 드러냄과 동시에, 그 시대를 살던 세리나라는 한 여성을 통해, 자신이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인생'과 그런 숱한 결핍에서 비롯된 애정에 대한 열망, 더 나아가 진정한 사랑에 대한 맹목적인 열망이 어떻게 개인을 추락을 이끌고, 그러한 과정에서 시대의 불안정성과 맞물려, 그런 늪 속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불신과 비합리적인 행태가 왜 일개 개인이 쉬이 극복할 수 없는 이를 작품속에서 잘 드러내고 있는데요. 노년이 되어 지난 날을 회상하는 세리나에게 있어, 작품의 도입과 결말이 묘하게 대치되는 장면 또한, 매큐언의 장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었습니다. 과연 노년의 세리나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구축하고 굳건한 지향점을 찾았는지는 불명확합니다만 그녀의 회상은 저에게는 다소 후련한 느낌을 갖게 했습니다. 이렇게 작가인 매큐언을 그린 듯 보이는 톰 헤일리, 그리고 작중의 이 헤일리의 단편 3작품이 아주 절묘한 복선을 이루어 나가고 그렇게 세리나의 행적과 교묘히 중첩되는 서사 자체는 정말 탁월하다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저는 작가에게 찬탄을 금할 수 없었는데요. 그가 왜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위장된 자서전을 쓸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했는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매큐언은 작중의 토니 캐닝을 통해, 핵무기 경쟁에 대한 특유의 생각을 드러내는데요. 이는 한편으론 납득할 만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위험한 생각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러한 아이디어는 국제정치학자인 케네스 월츠의 '핵확산 안정론'에 기댄 것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작품을 통해, 영국 사회의 뿌리깊은 귀족 계급(그 잔재)과 노동 계급의 현실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영국 사회에서 상류층의 연원과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경멸하는 이 상류층의 태도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어머니에 대해 미처 몰랐던 건 관습적인 겉모습 아래 페미니스트의 작고 단단한 씨앗이 깊숙이 묻혀 있다는 사실이었다.
1815년 빈회의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했다. 토니는 국가들 간의 균형이 평화외교라는 합법적 국제체제의 토대라고 주장했다. 국가들의 상호 견제가 핵심이라는 것이었다.
내 동생이 경찰에 체포되고 임신하도록 만든 성적 해방이라는 새로운 정신이 이 가게들도 허용한 것이다.(뿐만 아니라 내가 나이 많은 남자와 불륜에 빠졌던 일도 덧붙일 수 있겠다.)
우리는 결점 많은 지배 권력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고 우리의 자유는 불완전했다.
주위의 반체제 군중이 우리가 MI5라는 ‘건전한‘ 잿빛 세계에서 온 궁극의 적임을 알게되면 얼마나 겁에 질릴까.
다음 총선에서 노동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노동당 좌파가 급진적 노조 분자들과 손잡아 의회 민주주의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고 가정해보자. 분명 모종의 비상대책이 적절할 것이다.
이 무시무시한 신무기들은 오로지 힘의 균형, 상호 간의 두려움, 상호 간의 존중을 통해서만 저지 될 수 있어.
우리는 불운한 여자 형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행복에 주목하고 현실에 단단히 발을 붙일 수 있었다.
셜리는 마지막 순간 내게 맞서 노동자 계급의 고결함이라는 관념을 더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억센 코크니 말씨를 썼다.
중도 좌파 유럽 지식인들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도록 꾀어내고, 자유세계를 옹호하는 것이 지적으로 높이 평가되도록 만드는 거지.
나는 작가를 알때, 혹은 알게 될 때 독서 체험이 왜곡된다는 걸 알아가고 있었다.
그는 편안한 상대였다. 데이트(이제 데이트가 되었다.) 중에 많은 남자가 드러내는, 빈번이 상대를 웃기고 싶어하거나 무언가를 가리키며 근엄하게 설명하거나 일련의 정중한 질문으로 여자를 구속하려는 욕구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소수의 팝스타를 제외하면 젊은이들은 아직 수중에 돈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손님들이 우리 테이블을 훔쳐보며 눈살을 지푸리는 것도 우리의 즐거움을 고조시켰다.
그 모든 일이 일어나고 몇 달, 또 몇 년이 흐른 뒤에도 나는 밤중에 잠이 깨어 위안이 필요할 때면 그 초겨울 저녁을 떠올렸다.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고, 그는 내 얼굴에 키스하며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자기가 얼마나 미안한지, 그리고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거듭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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