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세계대전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6
마이클 하워드 지음, 최파일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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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하워드는 영국 런던 브롬턴 출신으로 그의 부친은 제조회사의 소유주였습니다. 그리고 모친은 독일에서 온 유대인 이민자의 딸로 나중에 기독교로 개종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부족할 것이 없는 가정 환경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후 그는 버크셔 크로손에 있는 웰링턴 칼리지와 옥스포드 대학의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교육을 받습니다. 이에 그는 1946년에 학사 학위를, 2년 뒤인 1948년에 석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그런 와중에 하워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에 입대하여 1942년 12월, 콜드스트림 근위대의 소위로 임관합니다. 그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싸웠고 1944년 1월 27일, 몬테카시노 전투 동안,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군사십자훈장 (MC)을 수여 받습니다. 옥스포드를 졸업한 후, 그는 영국 런던에 소재한 공립 연구 대학인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교수직을 시작했으며, 이곳에서 전쟁학과가 개설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학문적 수행 과정에서, 전쟁사에 대한 부분, 특히 1870년 보불전쟁에 대해 천착했고 무엇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해석하는데 누구보다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이런 군사 연구의 공로로 지난 2002년 명예 동료 훈장 (CH)을 받았고, 2005년에는 공로 훈장 (OM)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그 이전인 1988년에는 스웨덴 왕립 전쟁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992년에는 미국의 군사 학회인 군사 역사 협회에서 수여하는 평생 공로상인 새뮤얼 엘리엇 모리슨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이렇게 왕성한 군사 연구를 지속해 오던 그는 2019년 11월 30일, 영국 윌트셔 주의 스윈던에 소재한 병원에서 영면에 들게 됩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The First World War : A Very Short Introduction"으로 지난 2002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5년 10월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이에 제가 구입한 판본은 제6쇄본입니다.

개인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문구는 E.H. 카의 핵심적인 분석인데요. 그것은 20세기 초 유럽 문명의 진보로 인해 전쟁에 대한 낭만주의적인 분위기가 사회에 팽배해 있었다는 평가였습니다. 아마도 그런 연유로 이 대전에,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저는 마이클 하워드의 이 책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새로운 몇 가지 해석을 접하기도 했습니다. 이 부분은 글을 쓰면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14년 당시, 소위 열강이라고 불리는 유럽 각국의 정치체제는 크게 민주주의와 제정, 즉 제국주의 체제로 구별될 수 있겠는데요. 여기에 해외 식민지를 운영하는 경제 체제가 혼합된 정치제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와 더불어 당시 민주주의 체제의 일각으로 여겨졌던 영국은 소위 '입헌 군주제'의 형태이지만 인도를 비롯, 해외에 여러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는 본질적으로 제국주의 국가였습니다. 이러한 이해를 기반으로 마이클 하워드 역시, 유럽 열강들의 이 제국주의 체제에서 숨길 수 없는 '팽창주의적 욕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미 여러 논저에서 1차대전 개전의 시발점으로 묘사되는 '사라예보의 총성'이 이 대전을 이해하는 근본적인 접근이 아니라, 이런 군주제에 속한 열강이 스스로 영토에 대한 야욕을 제어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선 E. H. 카의 전쟁에 대한 낭만주의적 접근이 사회에 팽배해 있었다는 분석은 다른 한편으로 보다 개방된 자유주의적 국가들에게서 평화와 평화주의에 대한 인식이 소위 독일과 같은 지역에서는 '도덕적 타락 징후'로 여겨졌다는 하워드의 해석 만큼이나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저는 일전에 카를 슈미트가 바이마르 공화국의 계몽주의적 자유주의, 그런 정치사회적 풍조에 더할 나위 없는 공격을 넘어 거의 경멸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슈미트의 의도는 아주 명백합니다만 그만큼 프랑스와 영국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 정치가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있어, 표면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어느 정도 이질적이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즉, 자신의 제국민들을 통치 대상으로 보는 전제 정치의 수뇌부들에게 있어 이런 생각은 보편적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전 중에 러시아에서 발생한 '소비에트 혁명'에 대해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반응은 그것대로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었을 겁니다. 더욱이 독일이 대전에서 패망하게 된 근본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각지에서의 소요와 노동자들의 파업이 한몫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팽창주의적인 군주제에 있어 이 '체제 유지'라는 것이 그만큼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과제였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1914년 7월,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최후 통첩을 하면서 이 소국을 확실히 손을 보려고 합니다. 자신들의 이런 영토 야욕이 포함된 정치적 행위에 동맹국인 독일이 효과적으로 러시아를 저지해주길 바랍니다. 그들은 손쉽게 세르비아를 제압해 제국의 위상과 그에 따른 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아마 확신했을 겁니다. 독일 역시 이런 오스트리아의 군사적 행태를 냉정하게 자제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쯤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독일의 카이저인 빌헬름 2세, 특유의 완고함도 작용했을겁니다. 이에 마이클 하워드는 빌헬름 2세로 대표되는 독일 제국의 문제점을 1장에서 드러내기도 합니다. 독일 제국 이전의 프로이센이 보여줬던 구식의 군국주의와 솟구치는 야망, 신경증적 불안감이라고 그는 증언하고 있는데요. 내치를 사회주의와 보수주의 중간에서 절묘히 타협하며, 비교적 이를 잘 수행해 왔던 카이저의 평가와는 달리, 전쟁 즈음의 외치와 그 무력한 결단은 그가 후세에 왜 나폴레옹 3세와 사뭇 다른 평가를 받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데요. 물론 독일 제국이 제국 총리와 참모부로 이어지는 권력 분립의 형태가 외형상 유지되고 있었지만, 제국을 이끄는 정점인 '황제의 오판'을 이러한 분립 체제가 결국 제어할 수 없었다는 점은 역시나 자명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후 독일의 벨기에에 대한 진공과 서부 전선의 지리멸렬한 대처, 1916년 이후의 극심한 인명 피해가 발생한 '대량의 소모전'은 이 1차 대전을 수식하는 문구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참호전과 양측을 가릴 것 없이 비인간적인 '독가스 살포'는 그야말로 인간성의 말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그것이 손쉬운 군사적 이익에 기반해 있다 변명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해에 있었던 베르됭 공세와 아미앵 인근의 솜 강 전투는 이를 명백히 드러내는 결과로 자리매김 했는데요. 여기에 더 오스트리아의 회첸도르프가 수행한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대실패는 이듬해인 1917년의 미국 참전과는 별개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프랑스에게 굴욕적인 '강화 간청'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즉, 독일의 루덴도르프와 힌덴부르크로 대표되는 유능한 군사 지도자들의 면면과는 반대로 대다수 장성들의 고질적인 무능으로 전선을 궤멸시키기도 했으며, 더 나아가 자신의 완고한 고집으로 부하들의 막대한 희생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당시 효과적인 군사 기술 발전과는 별개로 이를 다루는 인간들의 무능이 얼마나 위험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세계 1차 대전의 본질적인 측면은 과거 나폴레옹과 같은 일부 장성들의 우월한 군사적 능력이 전쟁 전반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산업 사회의 지구력 싸움과 얼만큼 보급과 물자를 전선에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겠는가로 판명되었습니다. 특히 영국과 비해 일천한 해군 전력을 가졌던 독일이 전략적인 '무제한 잠수함전'을 통해, 연합국에 피해를 안겨, 발트해 봉쇄에 대한 약점을 극복하려고 했지만 이러한 작전은 사실상 실패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마이클 하워드가 평가한 바대로 대전의 3번째 겨울을 이미 경험한 독일인들이 다시 4번째 겨울을 겪게 되었을 때, 이를 모두가 격렬히 부정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카이저의 정치적 추락 정도가 아니라 독일의 전쟁 수행 의지가 내부에서 처절하게 꺾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이토록 전쟁을 직접 끝내기 위해 나섰던 다수 독일인들이 어떻게 후에 전체주의적 괴물의 본류 그 자체가 되었는지는 지금도 쉬이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저자인 하워드는 보수 우파에 대한 독일인들의 뜻모를 지지가 후에 나치즘의 시초가 되었다는 식으로 간접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만 히틀러의 인종적 균질주의와 순혈 게르만주의라는 괴물이 어떻게 독일 사회에 지속적으로 웅크리고 있었는지를 설명하기란 지금에도 매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미국의 참전으로 패권적 야심과 잔혹한 전쟁 수행 방식을 추구하는 독일 국가에 대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동맹이라는 저자의 야심찬 분석은 익히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대전 이후, 그 강화 과정에서 케인스가 우려했던 독일에 대한 강고하고 야멸한 정치적 압박은 독일인들의 민족적 분노를 자아내게 한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더욱이 우드로 윌슨의 소위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제안이 자신의 의회에서 거부당한 것과 본질적으로 한계를 갖는 '민족 자결주의'가 발칸반도를 비롯 동유럽에 전쟁의 씨앗을 남겨 놓은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어떤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국제 연맹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위해, 의회의 공화당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 윌슨의 정치적 무능은 두고두고 '평화'에 대한 해법이 되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가 당시에 심각한 지병을 앓고 있어 그것이 이런 한계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새삼스레 조명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또한, 후에 루스벨트에 의해 사실상 분쇄되기는 했지만 2차 대전 당시 처칠의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일종의 '회귀주의'는 이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 내지는 그것에 따른 국가적 이익을 일부 정치권이 여전히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만큼 서구 정치 역사 전반에 있어 계몽주의적 자유주의의 이행이 그만큼 겉모습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반증하는 사례라고 여겨집니다. 그들의 자유주의에 대한 소위 헌신과 숭배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카이저의 개인적 성격은 압도적으로 중요했고, 이 시점에서 호엔촐레른 왕가가 빌헬름 2세라는, 당시 독일 지배 엘리트의 특징을 규정했다 할 수 있는 세 가지 특성을 체현한 인물을 배출했다는 것은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불운이었다. 세 가지 특성이란 구식 군국주의, 솟구치는 야망, 신경증적 불안감이었다.

영국의 정치가들은 미국의 막대한 자원을 감안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국과의 대결은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국의 경우, 발칸 반도와 관련된 이해관계는 미미한 반면 국내 문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유럽 전쟁이 일어난다면 영국이 팔짱을 끼고 프랑스가 독일에 패하는 꼴을 방관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오스트리아는 필요하다면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세르비아를 확실히 제압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동안 동맹국 독일이 러시아를 저지해주길 바랐다.

슐리펜 본인은 앞서 본대로 러시아의 위협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1914년에 이르자 위협이 워낙 크게 느껴져, 독일 군사 계획가들은 자신들이 파리에 닿기 전에 러시아 군대가 먼저 베를린에 입성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우려했다.

자유주의적 평화주의는 서구 민주주의에서 여전히 영향력이 있었지만 특히 독일을 비롯하여 도처에서 도덕적 타락의 징후로 여겨졌다.

회첸도르프의 처참한 겨울 공세 이후 1915년 봄까지 오스트리아 군은 앞서본 대로 10역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군대를 하나로 묶는 직업 장교 대두분을 비롯해 200만명이 넘는 병력을 잃었다.

특히 동부전선에서의 승전들로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의 명성이 한없이 높아져, 1916년 8월에 총사령관 팔켄하인을 교체했을 때 두 사람은 군부뿐만 아니;라 사실상 나라까지 장악했다.

미국의 참전은 패권적 야심과 함께 잔혹한 전쟁 수행 방식을 추구하는 독일 국가에 대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동맹을 완성시켰다.

독일과 주고받은 통고문에서 윌슨은 자신이 더이상 자비로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니라, 완강한 전승국 동맹의 지도자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 의회가 대통령이 요구한 조건 대로 국제연맹에 가입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작품이 파괴되는 상황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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