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문제의 시대 - 젠더와 교육의 정치학
다가 후토시 지음, 책/사/소 옮김 / 들녘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가 후토시는 일본 시코쿠 지역의 에히미 현 우와지마 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91년 규슈 대학의 교육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의 교육학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박사 논문의 제출 및 심사를 받지 않고 과정만 졸업하는 만기퇴학을 하게 되는데요. 소위 이 제도는 일본에서 취업 연한 이상으로 퇴학하여, 기존의 논문박사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이후 그는 후쿠오카현의 쿠루메시에 소재한 사립대학인 쿠루메 대학 문학부 조교수와 간사이대학의 문학부 준교수 등을 거쳐, 현재 간사이 대학의 문학부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교육 사회학 전공자답게 남성학, 가족 사회학, 노동 사회학, 젠더론 등을 가르쳤고, 특히 현대 일본인의 라이프 코스, 즉 교육과 사회화 전반의 양태를 다각적으로 고찰해 온 학자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그는 일련의 사회적 활동으로 남성의 폭력성을 일종의 '비폭력 계발 운동'으로 재사회화 하는 연구를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男子問題の時代? 錯綜するジェンダーと教育のポリティクス"로 지난 2016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7년 1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내용에 조금 기대를 하면서 일독을 하게 되었는데요. 표면적인 가부장제도의 여러 모순과 문제점을 떠올리면서, 이 '남자문제'가 과연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어떠한 해결책을 통해, 다수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겠는가가 저의 관심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젠더 이론하에 이러한 남자문제를 남녀 갈등이나 이를 통한 근본적인 인식 부정론에 근거해, 아주 소모적인 논쟁으로 귀결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책의 내용 전반은 합리적인 개론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교육계의 현실과 초등학교 이후, 남녀 교육과 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젠더에 기반해 어떻게 하면 통합적이고 균형적인 사회화가 가능할지에 대해, 논증되는 것으로 글 전체는 꽤 명료하게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도입부에서 저자는 현재 일본 사회를 비롯한 자본주의 체제 내지는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에 기반한 사회들이 일종의 변형된 남성 지배 사회라고 규정하고 있었는데요. 물론 2장에서 논의되는 내용들은 원론적인 남성 지배적 체제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많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이러한 전통적 남성 지배 체제가 대부분의 여자를 평등한 인간이 아니라, 소위 체제 유지의 필수 구성 요소로 억압해 왔다고 보고 있기도 한데요. 물론 2차 대전 이전의 일본 사회가 여성 대부분을 현모양처나 가정을 건사하는데 있어 여성의 의무를 강조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역시, 1980년대 이전까지는 이러한 맥락의 성역할이 여성들에게 지속적으로 강요되어 왔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여기서 일본 헌법에서 '남녀의 동등한 권리'를 저자가 몇번이고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이러한 헌법적 가치가 현실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하게 된 건,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역시, 채 몇 세대가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남성 지배적 상황에서도 일부 남성들은 전혀 인간적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더 괴로운 상황이라는 점을 저자는 주목하고 있었는데요. 기존의 남성들이 교육과 사회 진출이라는 측면에서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고 개인의 능력이 뒤쳐지는 적지 않은 수의 남성들이 사실상 체제의 바운더리 바깥으로 밀려나, 스스로의 삶을 건사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저자의 분석대로,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의 어두운 측면이거나 혹은 더 노골적으로 '직면한 폐해'라고 일컬을 수 있을 텐데요. 이런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 하에, 지속적으로 강요된 신자유주의의 사고방식은 "개인의 실패는 오로지 그 개인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전통적인 자본주의가 오로지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권력의 집중과 자본의 축적을 위해,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단호하고 가차없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출중한 능력의 '인면수심' 남성들이 선호된 것은 분명합니다. 여기에 신자유주의는 이를 더 가혹하게 실현시킨 것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런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도태된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결혼 자체를 포기하게 된 과정을 저자는 논증하기에 이릅니다. 여전히 남성의 부양을 수용하려는 다수 여성들의 존재와 그러한 사회 체제는 여전했고, 이것은 신자유주의가 만든 철저한 남성 지배의 또다른 양상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인식하에, 저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표면적이고 꺼내기 쉬운 남성 지배 체제 혹은 선연한 가부장 헤게모니를 비판하는 것보다, 신자유주의가 변질시킨 민주주의를 먼저 회복하여 이를 통해 남녀간의 동등한 권리와 평등한 관계를 실질적으로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바로 이런 부분에서 로버트 달의 체계적인 다원주의가 충분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믿고 있습니다.

앞선 문단의 내용을 좀 더 설명해 보자면 종래의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가 어찌됐든 사회 내부의 고용 불안의 한 원인이 되었고 남자의 수입과 여자의 기여라는 측면에서, 전통적인 가정의 결합 형태가 경제적인 측면과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붕괴되어 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남성성의 해체라든지, 남성 내부의 폭력적 요인,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근본적인 남녀 갈등 등, 기존의 사회가 시민들을 위한 최소한의 버팀목이 되지 못하게 일련의 신자유주의화가 가속화 되었다는 점을 저자는 근본적인 분석을 통해 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능력주의화가 가속화 되었다 하더라도 남성 지배의 균열이 이런 체제의 종말과 무조건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저자는 이런 헤게모니적 멸망이 무조건 남성 지배의 종식으로 귀결된다고 보지는 않았는데요. 더군다나 체제 내부의 더 많은 이익과 권력을 획득하려는 일종의 경쟁 차원에서 남성들이 서로 상호 감시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는 저자의 분석은 이처럼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결국 2장 후반부에서 논증되는 바와 같이, 이러한 모습에서 남자의 괴로움과 여자의 괴로움은 그 원인의 조각이 다를지언정, 그 고통은 서로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남성 고용의 불안정성'이 여성 고용의 확대나 남성 지배의 후퇴로 이어지기는 커녕, 더 확고해지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라 여겨집니다.


뒤이어 4장에서는 젠더와 교육현장이라는 주제로 남자와 여자의 각 개별적인 인식 체계와 그런 사회화 과정에서의 여러 상이한 측면을 저자는 다루고 있습니다. 기존의 젠더 인식하에, 젠더 보수주의와 젠더 평등주의 및 젠더 자유주의를 살펴보고, 이들의 입장차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는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뒤에 나오는 '이성애중심주의 heterosexism'가 지배하는 상황하에 어린 친구들의 '성적 지향'을 어른들이 과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가 진정한 당면한 숙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저는 분명 젠더 이론에 기반한 이런 성적 지향들을 사회에 납득시키는 데 있어, 페미니스트들의 건전한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앞서 언급한대로, 많은 여성주의 운동가들이 남녀의 극심한 대결과 그런 헤게모니 싸움에 집중하는 것보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일종의 폭력적 문답에 이 여성주의가 적극적으로 화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금의 강고한 신자유주의 체제가 왜 남성 권력적 지배 체제를 더 강화시켰는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모든 대안 운동들은 다소 그릇된 인식 하에, 어느 정도 잘못된 방향성을 그 머리 위에 두고 있다 볼 수 있을 겁니다.

끝으로, 기존의 남성다움 혹은 여성다움은 그저 이론 논쟁으로 쉽게 치부할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복잡한 사회성을 차치하고 그저 사회진화론 정도로 국한 시켜버린다면 근본적인 교육의 진보에 있어 상당한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또한 기존의 젠더학이 남녀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드려는 선명한 목적을 망각하지 않았다면 이제 소모적인 논쟁을 좀 더 뒤로 물리고 우리 어른들이 앞으로 자라날 세대와 이들이 서로 융합하고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장을 만들수 있어야 한다고 여겨지는데요, 여기 저자인 다가 후토시가 자신의 제자들인 3,4학년들 학생들을 기반으로 벌이고 있는 여러 세미나와 친교 활동은 교육의 기본 철학 뿐만 아니라 젠더 기반의 건전한 남녀 간 이해를 촉진한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교육자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것의 긍정적인 영향은 지대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단순한 종속된 지배체제를 넘어, 사회 변혁과 교육의 긍정적 기여 등을 기대할 수 있는 도서의 출간들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기를 개인적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여기서 어른 남자란 가족을 부양하는 남성, 즉 충분한 경제력을 갖고 여성과 결혼하여 가장으로서 책임을 지는 남성이다.

따라서 영국을 비롯한 서양 국가들에서는 학령기 남자의 존재양태를 문제 삼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까지, 청년기 남성의 자립 곤란이라는 문제는 이미 상식화되어 특별히 새삼스러울 게 없었다.

또한 남성은 여성과 달리 소득 수준이나 정규고용 여부에 따라 연애관계를 맺거나 결혼할 수 있는 확률이 크게 좌우된다.

그리고 결혼할 수 없는 남성이 는다는 것은 역으로 결혼할 수 없는 여성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여성에 비해 남성이 압도적으로 이익과 권위에 접근하기 쉬운 사회체제하에서도 일부 여성들이 대단히 많이 이익을 얻거나 높은 권위의 지위에 오르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역으로 남성이 평균적인 여성에 비해 이익과 권위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그렇게까지 많은 이익과 권위를 바라지 않는 남성들에 대해서도 그것들을 둘러싼 경쟁에서 ‘내려오지 않도록‘하기 위한 남성끼리의 상호감시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사실, 남성들이 경험하는 이러한 박탈감 자체는 남성의 특권의식과 표리일체의 관계를 이루는 것이며, 모종의 여성경멸에 기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들이 지금까지의 작동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여성에 대한 직업적 기회는 열리지 않고, 노동시장에서 남성지배는 그대로 유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