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제이슨 브레넌 지음, 배니나.정연교 옮김 / 궁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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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F. 브레넌은 미국의 철학자이자 동시에 철학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경영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메사추세츠 턱스베리와 뉴햄프셔의 허드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뒤, 학부 과정으로 오하이오 주의 사립 연구 대학인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과 뉴햄프셔 대학에서 수학하고, 데이비드 슈미츠의 지도 하에 애리조나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이후, 브라운 대학의 철학 조교수를 거쳐, 현재는 조지타운 대학의 맥도노우 경영대학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철학 뿐만 아니라 정치철학적인 측면에서 유권자들의 고질적인 비이성적 측면과 선거 승리에 기반한 나쁜 제도와 정치인들의 개인적 이익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로 인한 전반적인 '민주주의의 취약성'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이 점들 때문에 그가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견지하고 있는 것보다는 민주주의가 좀 더 효율적이고 이성적인 측면에서 유권자들을 위한 실질적 실체화에 다가가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즉 이런 그의 취지는 일종의 정치적 진보를 위한 조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Political Philosophy : An Introduction"으로 지난 2016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4년 1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제이슨 브레넌은 그의 다른 논저인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로 미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바가 있는데요. 우선 현 시점에서 민주주의 체제 말고 실질적인 다른 대안이 가능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저 역시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적 자유주의자들이나 '시장의 자유', '경제적 자유'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이런 실질적 기반이 가능한 체제는 거의 민주주의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모두의 동의를 기반으로 구축된 헌법 체제와 그것을 통해 민주주의 정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국가 체계 자체는 이미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게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왜 우리에게 정치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지를 논하고 있는데요. 단순히 루소 식의 '모두가 모두를 통치하게 된다'는 탈계급적 논법 뿐만 아니라, 이전의 자유주의가 왜 인간의 권리와 자유에 대해 강조하게 되었는지를 조금 얄팍한 분량의 책이긴 하지만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설명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특히 정치를 좀 더 보편적이고 건설적인 이론에 기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치철학' 역시, 지식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로 이에 대한 사고의 폭을 확장시키는 것은 먹고 사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종래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각기 다른 이론에서 출발했으며, 여전히 이 두 가치는 경우에 따라 상반된 관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고 강조한 것은 새겨들을 만하다고 여겨집니다.

이에 저자는 우선 정의(사회적 정의를 포함해)와 시민들의 권리 문제를 분석하고 이 다음 등장하는 자유(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일종의 양자 관계로 이론적 해제에 나서고 있습니다. 저는 일전에 일독했던 그의 "민주주의에 반대한다"에서도 받은 인상이지만 그가 꼭 '자유지상주의자들'을 이론적으로 두둔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자유와 시장 자유에 대한 그 나름의 주장을 펼치는 것을 목도한 바가 있는데요. 물론 민주주의 체제 하에 시장 지위에 대한 그의 언급에 대해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대의적인 측면에서 개인들의 권리와 그것의 확대된 형태인 사회 보장에 대해, 자유지상주의자들이나 신자유주의자들이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았던 '완벽한 시장 자유에서의 공공재 제공'이 거의 실패로 끝났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브레넌은 각각의 개인에 대한 권리는 보장해야 하는 것은 확실하고, 설사 전통적 공리 개념에 대한 기존의 신자유주의자들의 공격에도 "우리는 대다수 국민의 권리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그러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다만 이런 그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많은 시민들에게 있어 도덕적 원칙에 대한 스스로의 자질이 부족한 케이스가 적지 않다는 현실은 '공리의 가치, 공리의 원칙'의 인식 결여, 뿐만 아니라 만약 법과 제도가 전무하다면 자신의 권리 주장과 다툼이 타인과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을 예측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결국 허버트 스펜서류의 '인간의 야만적 상황'과 같은 차별적 인식 또한 인간의 비합리성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말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브레넌이 언급한 사회적 정의와 권리 문제라는 직면한 인식은 충분히 숙고해 볼 만한 과제라고 여겨지는데요. 다만, 기존의 공리주의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완벽히 알 수 없다는 부분과 5장의 '평등과 분배정의'에서, 존 롤스를 언급하며, 그의 '차등의 원칙'을 열거하는 부분은 실질적인 공정한 분배를 위한 제도 구축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시장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진보주의자들의 역설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물론 앞선 롤스에게도 '사람들이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의사 결정을 해야한다"는 전제는 풀지못한 숙제였을 겁니다. 이는 조지프 슘페터 역시 고민한 부분이며, 우리의 민주주의 정치가 좀 더 건전성을 답보할 수 있는 (사활적) 전제 조건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는 정치 역사에서 우리가 가장 풀기 힘든 문제임은 분명한데요. 브레넌이 과거 자신의 논저에서 소위 '일반적 유권자들'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점에 기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일전에 존 듀이가 강조했던 '시민들이 스스로를 위한 교육'에 대한 당위와도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책의 다른 주제들 가운데, 6장, '사회정의론의 문제'를 보다 집중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브레넌은 이와 관련해, 자유지상주의자인 로버트 노직과 애매한 자유주의자인 존 롤스의 주장들을 비교하며, 이 사회 정의론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즉, 평등주의 사회, 국부 지향 사회, 공정 가치 사회라는 독립적 열거를 통해, 우리가 현실에서 어떤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지 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많은 분배정의 이론들이 그저 몇몇의 주장들로 현실에서도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는 비판과 더불어, 불평등 문제 자체를 용인할 것인가 아니면 만약 개선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지를 마찬가지로 살펴보고 있는데요. 저자인 브레넌 역시, 사회 정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과거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로부터 시작된 이 논점을 통해서 오늘날 '시장 자유'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숙고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민들이 강고한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시장 자유라는 관념이 단순히 세뇌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일전에 헨리 키신저가 언급했듯, 그저 신자유주의의 철저한 이행이 수반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끝으로 여전히 우리에게 공리의 문제는 사회를 변혁시키는 것 이상의 공감대를 필요로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를 '합리적 공리'라고 치환해서 생각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시민이자 유권자인 우리가 노골적인 신자유주의화와 함께, 사회가 파편화 단계에 이르러 우리 스스로 정부를 공격하는 데 앞장 서지 않았나 생각해 보기도 하는데요. 또한, 정부의 권위와 적경성을 논한 9장에서, 정부의 여러 목적들 가운데 하나인 '공공재의 공급'과 관련한 저자의 하이에크에 대한 언급은 그것의 논증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본문 밑에 역자의 주(註)로 여겨지는 "무정부 상태에서는 공공재가 제대로 공급되기 어렵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장은 저로서는 쉽게 동의하기가 어려웠는데요.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글, 9장의 논증은 거의 저자 본인의 주장에 불과하다고 판단됩니다. 정부의 권위와 이와 관련된 현격한 문제는 '대의 민주주의의 명확한 한계'를 전제하고 나서 접근해야지 그저 시민들의 정부에 대한 자발적 복종 정도나 그것을 강제하는 정부의 권위적 강제성 만을 나열하는것은 본질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서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인 그가 유구한 철학의 역사를 인지하고 있다면 철학에서 기반한 자유주의적 가치와 공공연하게 자유주의를 외피로 두르고 있는 신자유주의자들에 대한 명확한 구분 정도는 이 글에서 필요했다고 보여지는데요. 자유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적 언급을 통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해석을 대신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인용과 그에 기반한 주제들의 논증 자체가 아쉬운 점은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저자인 브레넌이 왜 롤스를 인용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롤스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만 아주 단편적으로 분배 정의와 불평등의 문제를 더 확고한 자유주의 내지는 왜곡된 신자유주의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기존의 처방이 어떠했는지 살펴보면 충분히 예측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최종적으로 그가 말한, 정치철학이 근본적으로 탐구하는 주제가 공리에 기반한 권리와 자유의 문제라면 말입니다.



 


사람들은 정의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우리가 정치적인 문제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각자가 무엇에 얼마나 가치를 부여하는지가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사실을 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가능한 한 우리는 대다수 국민의 권리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그러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평등에 병적으로 집착하지 않는다면 국부 지향 사회나 공정 가치 사회를 더 선호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코헨은 질서 정연한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정의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롤스가 말하는 정당화 가능한 불평등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노직은 한편으로는 역사적 과오를 바로잡아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존하는 제도적 결함을 보정하기 위해서라도 일정 정도 부를 재분배하고 사회안전망을 보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포용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회는 사회적 통념이나 종교적 규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을 배척하는 경량이 농후하다.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 다른 여러 방식에 비해 전반적으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판단될 때, 즉 행복을 전반적으로 증진한다고 판단될 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제한해서는 안 된다.

롤스가 시장경제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부합하는 자유를 허용하는 이유는 단지 그것이 차등의 원칙을 구현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현존하는 수많은 국가에서 롤스가 말하는 기본적인 자유권을 누리며 사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이 비참해진다면, 자유지상주의가 옹호하는 정의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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