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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1
마지 피어시 지음, 변용란 옮김 / 민음사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을 쓴 마지 피어시는 미국의 진보주의 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1936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친은 비교적 종교적 색채가 적은 인물이었으나, 반대로 모친은 정통 유대교 신자로 자신의 딸에게 정석적인 유대교도로서의 정체성을 가르쳤습니다. 여느 문학가의 유년 시절처럼 그녀 역시,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책을 통해, "거기에 다른 세상이 있고, 내가 볼 수 있는 것과 완전히 다른 모든 지평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소회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후 미시간 대학에서 학사를 마치고, 1958년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문학 삭사 학위를 취득하게 됩니다. 이렇게 대학에서 배움을 마친 후, 그녀는 본격적으로 시민권 운동과 신좌파적 사회 지향, 그리고 민주 사회를 위한 운동에 참여합니다. 특히, 1977년에는 여성 언론의 자유를 위한 여성 연구소 (WIFP)의 준회원이 되었는데, 이곳은 여성 간의 소통을 늘리고, 여성 기반 미디어를 대중과 연결시키는 데 힘쓰는 미국의 비영리 출판 기구입니다. 이런 그녀의 문학 작품 활동은 총 17권 이상의 시를 쓰기고 했으며, 소설도 17편을 쓰기도 했는데요. 특히 1993년에 "그, 그녀 그리고 그것 (He, She and It)"으로 아서 C. 클라크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그녀의 작품 전반은 페미니즘에 기반한 평등한 사회와 사회 정의, 인종 평등 등을 주제 의식으로 담고 있는데요. 특히 윌리엄 깁슨이 지금 서평을 쓰게 될 이 작품을 '사이버펑크의 발상지'로 인정한 부분은 약간 놀라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작품은 원제, "Woman on The Edge of Time"으로 지난 1976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0년 8월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 소설은 현재 절판된 상황입니다.
마지 피어시의 이 작품을 제 북플의 읽고 싶은 책으로 올려놓고 한참 동안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마침 알라딘 중고 서점에 재고가 뜨는 것을 보고 겨우 주문을 해서,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우선 마지 피어시의 이 작품은 가깝지 않은 미래인 2137년의 문명과 현재 우리 세계를 인간의 권리와 사회 협력의 측면에서, 이 양자를 소위 '미러링'합니다. 여기에 전형적인 히스패닉인 여주인공인 콘수엘로 라모스, 즉 코니의 험난한 삶을 소설의 기본 배경으로 삼아, 현 사회에서 정의가 실종되었음은 물론, 가족마저도 서로에게 명백한 타인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가혹함을 구조적인 비판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통해 여실히 느꼈던 부분은 미국 사회 내에서 소위 인정이라곤 없는 공권력이 '한 사람의 굴곡진 인생'에 대한 깊은 고려 없이,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행정 처리로 모성애 마저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는데요. 더욱이 코니는 전 남편과의 이혼을 법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해 (서류를 정리하는데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관계로) 그토록 사랑했던 클로드가 자신의 딸의 법적 양육권자로 인정받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여기에는 판사와 보호 감찰관이 클로드가 흑인이면서 맹인이기에, 그녀로 하여금 그와 동거한 사실을 수치로 여기기를 종용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이렇게 이 작품 전체에는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주의가 가감 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인 코니는 그야말로 굴곡진 인생을 갖고 있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멕시코 계통의 히스패닉으로 미국의 사회 피라미드에서 가장 밑의 계층을 차지하는 사람입니다. 더욱이 그녀에게 있어 앞선 두 번의 결혼(혹은 사실혼 상태)은 사실상 실패였고, 그녀의 유일한 자식인 앤젤리나는 당국에 의해 강제로 생판 모르는 백인 가정에 양육 위탁되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된 연유에는 마약 전과와 알콜 문제로 인한 폭력이 주된 원인이 되었는데요. 아런 과오에 대해 그녀는 끊임없이 반성을 하고 있고 스스로를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백인 남자들이 히스패닉과 흑인, 그리고 아시안 여성들의 섹스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적나라한 해석과 자신의 친오빠의 딸인 돌리가 자신을 배신하고 강제로 정신 병원에 입원시키게 되었을 때, 이 주립 정신 병원이라는 곳이 불법적인 인권 침해와 당국에 허가를 받지 않은 각종 인체 실험 및 입원된 환자의 죽음 마저도 그 사망 원인을 서류에 적시해놓기 위해, 무조건 부검한다는 설정은 이것이 실제인지 상상속의 산물인지 기시감의 혼란을 느끼기도 했는데요. 이런 와중에 코니는 매우 이상하면서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미 서두에서 저는 윌리엄 깁슨이 마지 피어시의 이 작품을 사이버펑크의 시작점이라고 언급했다는 점을 인용하기도 했는데요.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강제로 입원하게 된 정신 병원에서 코니는 먼 미래로 육신과 함께 일종의 전이(轉移)를 매개로 놀라울 만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곳의 문명 세계는 2137년의 어느 시간으로 그녀를 이끈 사람은 루시엔테라는 식물 유전학자입니다. 이 시기의 세계는 우리가 익히 경험하고 있는 "화폐 경제 시스템"을 퇴출시켰고, 삶을 위한 여러 제반 생산을 자동화와 공동 생산으로 대체했습니다. 또한 사회 보존에 있어 마찬가지로 공동 육아 시스템 및 체제 유지를 위한 공동체의 참여 및 일종의 추첨 민주주의의 요소를 제도로서 채택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조직했습니다. 다만 이들이 현존하는 '해빙기'의 시대가 지구 온난화가 원인인지 아니면 부분적 혹은 인류 종말의 핵전쟁으로 인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과거 유럽의 문화적 유산이 더이상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으로 보아) 어느 시점에서 지구 생태계의 변화도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 연유로 자신들은 그때 그때 필요한 것을 생산하고 부족한 것은 소규모 무역을 통해 충당한다는 일련의 설정들은 백인들이 도달하기 전, 북아메리카 대륙의 아메리카 인디언의 극히 자연 친화적인 문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렇게 1권의 주된 서사는 여주인공 코니가 현재의 엄혹한 세계와 미래인 2137년의 시대를 넘나들며, 작가는 우리에게 현재의 우리가 2137년에 그리고 있는 '타인과 타인과의 신뢰'와 공동체적 가치를 단지 이상 따위가 아닌 실질적으로 이뤄낼 수 있을지를 오히려 되묻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2137년 이전에 정세를 오판한 어느 강대국의 핵전쟁으로 시발된 인류 전체 문명의 궤멸 가능성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믿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코니가 자신의 삶과 그녀가 속한 세계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각성을 하게 되고 그런 그녀와 같은 사람이 더욱 많아진다면 불행한 다음 대전은 어쩌면 한낱 머릿속의 걱정으로 끝날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이것은 너무 나간 생각이고 이 세계가 단순한 평행 세계가 아니라면 2권의 내용은 더욱 흥미진진하리라 예상됩니다.
그들은 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꺼리는 태도가 정신병의 징후라고 말하며,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순환 논법을 적용해 사람을 병들었다고 가정했다.
"고모는 자신을 미워하고 그 재주를 미워하는 거야. 나는 그런 온갖 재주를 미워하지 않는 여자는 만나 본적 없어."
그녀 역시 난소가 적출되었다. 낙태 후 에디에게 맞아 하혈했을 때 찾아간 메트로폴리탄 병원에서 그들은 그녀의 자궁을 적출했다. 불필요한 일이었는데도 그들이 자궁을 완전히 적출한 이유는 담당 레지던트가 실습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파른 현관 층계를 오르며 코니는 자신이 원했던 건 어머니의 인정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적잖은 아픔과 상처와 억눌린 분노를 지녔지만 천성이 착하고 타인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있는 존재예요."
"당연히 우리도 짝을 짓죠. 하지만 돈을 위한 것도 아니고, 생계를 위한 것도 아니에요. 사랑, 쾌락, 위안을 위한 것이고, 습관 호기심, 욕망의 발로예요. 당신도 그렇지 않아요?"
인류가 자멸 끝에 이제 암흑의 시대로 되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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