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스퀘어 을유세계문학전집 21
헨리 제임스 지음, 유명숙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헨리 제임스는 미국 뉴욕 주의 올버니 출신의 은행가이자 투자자였던 부친과 오래전 뉴욕시에 정착했던 부유한 가문 출신인 모친 사이에서 자라납니다. 그의 양친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출신이었습니다. 그가 한 살이 되기 전에 그의 부친은 뉴욕의 워싱턴 스퀘어를 마주보는 워싱턴 플레이스에 있던 집을 처분하고, 가족 전부를 한동안 영국 윈저 그레이트 파크에 있는 별장으로 이주시킵니다. 가족은 1845년에 뉴욕으로 돌아왔고, 헨리는 올버니에 있는 친할머니 집과 뉴욕 맨해튼에 있던 본가 사이에서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내게 됩니다. 이후 1855년과 1860년 사이에 제임스 가문은 아버지의 즉흥적인 관심과 출판 사업에 따라 런던, 파리, 제네바, 불로뉴 쉬르메르, 본 등을 여행하다 자금이 부족해지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1862년에 비로소 헨리는 정규 교육 과정으로 하버드 법학대학원에 다녔으나, 곧 스스로 자신이 법 공부에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런 연유로 보스턴에서 그는 작가이자 비평가였던 윌리엄 딘 하월스와 마찬가지로 작가이자 평론가였던 찰스 엘리엇 노턴과 교류를 지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1871년에 이르러 비로소 그의 첫 단편 소설인 '부단한 경계 Watch and Ward'가 출간됩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문학적 명성은 당시 미국 독자들뿐만 아니라, 유럽의 유구한 독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요. 특히나 '리얼리즘 소설'의 개척자로 불리며 당시 소설의 구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의 개인적인 생활에서 주위에 지속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끝내 평범한 결혼에는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언뜻 쉽게 믿지 못할 내용이기도 하지만 그가 섹스에 대한 신경질적인 두려움이 있었다는 평가는 실로 충격이었는데요. 그럼에도 주변에 많은 여성 지인들과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언어로 서신을 비롯한 간접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부분은 그에 대해 뭔가 아이러니한 감정을 갖게 합니다. 그런 연유로 그의 작품에서 대체로 비극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사랑의 본질은 어쩌면 이런 배경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 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 장편은 원제, "Washington Square"로 지난 188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09년 6월 번역되었고, 제가 구입한 판본은 2019년의 초판 2쇄였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캐서린'은 의사이기도 한 부유한 아버지 밑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납니다. (캐서린이라는 여주인공의 작명은 작가인 헨리 제임스의 실제 여동생의 이름과 동일한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을 제외한다면 그녀 삶이 크게 굴곡 없는 원만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녀는 아버지에게 있어 대체로 순종적인 딸이었고, 한 집에서 살고 있는 '미망인'인 둘째 고모와도 별반 갈등 없이 잘 지내고 있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다 캐서린은 사촌의 결혼 상대였던 남자의 종형제인 모리스 타운젠드라는 청년을 우연히 파티에서 만나게 되는데요. 작가인 헨리 제임스의 특별한 언급대로 이 타운젠드라는 청년은 남의 '환심을 사는데'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는 일종의 나르시시즘이 가미된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작품의 스토리 전개에 있어 모리스의 외모에 대한 일관된 찬사는 여러 곳에서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만큼 그는 외모와 화술에 대해 남다른 자신감을 갖고 있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이런 그와는 상반되게 여자로서 적절한 매력이 보이지 않아, 작중에서 거의 '못생겼다'고 언급되기까지 하는 캐서린에게 직접적인 애정을 내비치는 모리스는 어느 정도 숨겨진 의도가 있었는데요. 그는 얼마간의 돈을 유럽 여행과 자신을 위해 거의 소모했고, 혼자 자식들을 키우는 친누나의 집에서 얹혀 살고 있는 실정이었는데요. 그런 가운데 우연히 관심을 가진 캐서린이라는 여자가 작고한 모친로부터 거의 1만 달러에 이르는 유산을 상속 받았고 더불어 여전히 왕성한 진료를 통해 수입을 올리고 있는 부친의 존재, 그리고 미망인인 여동생마저도 스스럼 없이, 건사할 수 있을 정도로 유복한 집안이라는 설정은 어느 정도 극의 전개를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평범한 외모의 또래 청년들과 대비되는 화려한 외모와 물 흐르듯 막히지 않는 언변을 갖고 있던 모리스는 그야말로 '본능적인 감각'으로 캐서린에게 돈 냄새를 맡게 됩니다. "처음부터 호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처럼 쉽게 사랑을 언급하는 남자를 경계해야 한다."는 오래된 금언은 보통 여지가 없이 들어맞기 마련인데요. 캐서린에 대한 모리스의 일방적인 관심과 애정 표현은 이러한 것에 달리 면역이 없었던 순수한 처녀의 눈이 멀게 되는데요. 연애 경험이 전무한 평범한 여성이 오지랖 넓은 고모라는 캐릭터와 만나 사건의 전개는 급격한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이 대목과 관련해, 작중 '페니먼 부인'에 대한 헨리 제임스의 인물 조성이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왜냐하면 남편을 잃고 그저 소일 하는 미망인이 조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 커플 사이에서 적극적인 '연애 거간꾼'의 역할을 자임하면서도 그 결과가 분명 조카에게 이롭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해볼 수 있음에도 그것에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 '천연의 인물'을 창조해 낸 것은 한편으론 작가의 역량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모리스 타운젠드가 이 페니먼 부인과의 대화에서 언급한 '도덕적 편안함'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고찰해 보게 되는데요. 사실상 자신의 안락이라는 목적을 위해, 당시 나날이 경제적으로 팽창하고 있던 신생 국가 미국의 사회적 단초를 어떻게 보면 앞선 욕망과 연계한 것이기도 한 데요. 이는 사익에 기반한 행위 자체에 있어 기본적인 양심의 견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일종의 자기 합리화로도 읽혔습니다. 그래서 이 '도덕적 편안함'이라는 작품을 관통하는 비판적 주제 의식이 이처럼 의미심장한 것인데요. 이처럼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 여인의 부유한 부친이라는 그다지 매혹적이 않은 문제와 더불어, 마치 먹잇감처럼 노리고 있는 오로지 재산에 대한 관심 뿐인 그 지독한 이기심이 모리스라는 인간 자체와 비판적 이성을 결여한 속물 근성의 페니먼 부인과 그리고 그를 처음부터 경계했지만 결국 자신의 어리석음 만을 폭로한 부유한 의사는 결국 나중에 있을 복선을 위한, 점층된 갈등의 근본적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즉 이 세 인물을 여주인공인 캐서린에게 절묘하게 배치하여 일정 부분 어두운 시대상과 그로 인한 인간 관계의 본질을 작가 자신의 회의적인 시선으로 명확히 드러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고래로 사랑을 일종의 조건으로 삼아 순진한 사람을 소위 '자신이 원하는 감정의 노예'로 만드는 의도 자체는 그 당사자에게는 마치 지옥과도 같은 경험을 초래할 겁니다. 다만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주변인들에게 자신과는 일절 상관없는 그저 인생의 귀중한 경험 정도로 관심을 끊을지도 모르겠는데요. 진정한 사랑도 아닌, 노골적인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위장된 사랑이,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과 그 주변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완연히 다른 사람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이 작품은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 작품에서 저 사랑 놀음을 입에 달고 있는 모리스뿐만 아니라, 그녀의 잘난 아버지 역시 이러한 파탄에 한 발을 걸치고 있기도 한 데요. 특히 이 시대에서 누구보다 고도로 교육 받은 지성인이자 의사인 이 사람은, 많은 시간을 자신의 서재에서 보내면서 스스로의 삶과 인간 본성 자체에 내밀한 천착, 그리고 그런 사유를 통해 세계를 직관한 그가, 딸을 거의 '놀이 상대'로 밖에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는데요. 이후 모리스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굳건히 하고 그런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자신의 딸을, 경멸하고 과소 평가하고 비웃는 과정이 점차 심화되면서 앞선 언급한 그의 장점들이 거의 쓸모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예측대로 순진한 딸을 돈으로 여기고 접근한 모리스의 의도를 간파했으면서도 일생에 처음 경험한 그 '사랑'에 인질이 된 딸을 아버지로서, 자애하고 사려 깊은 방법을 거의 도외시한 채, 그저 강압적인 언설과 비하와 모멸감을 가하는 방식으로 일관된 것은 헨리 제임스 특유의 인간에 대한 회의적 분석으로도 읽히게 됩니다. 특히 딸과 함께한 계산적인 유럽 외유에서, 캐서린을 향한 성마른 태도와 일방적인 언사, 그리고 비꼼과 비난은 그녀로 하여금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상황에서 그의 보호를 즐길 권리가 없다"는 식으로 자포자기하게 만듭니다. 이 대목에서 실로 비정한 부정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소위 자신의 의사와 그 의지 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실로 배려와 성찰이 결여된, 근본적으로 영악한 인간의 말로는 이처럼 극중에서 어느 정도는 예견되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결국 딸의 진정한 행복이 아닌 자신의 주장과 의지를 관철시키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승리했다는 얄팍한 감정에만 취해 행동한 결과가 과연 어떠했는지는 후반부에 명확히 드러나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요구만 강압적이었던 아버지와 그녀의 재산에만 관심이 있었던 위선자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캐서린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녀가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고 봐야 하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원초적인 삶의 열정과 충만한 애정에서 완전히 배제된 채, 주변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존재감이 옅어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슬픈 일일 겁니다. 캐서린이 항유하고자 했던 아주 평범한 삶의 열망과 누군가를 사랑하고 때론 사랑 받고 싶어하는 평범한 기대가 앞선 두 사람에 의해 완전히 부서졌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작가인 헨리 제임스는 결국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떠한 교훈을 남기고 싶었는지는 다소 불분명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극이 전개될수록 제가 기대했던 여주인공의 행로가 완전히 예상을 벗어나 개인적으로는 꽤나 복잡한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어떤 수사를 들이밀던 간에, 순수한 사람의 미래를 파괴하기에 이른 초기 자본주의적 근대로 대표 되는 이기심과 바로 이런 인물들과의 폭력적 교차는 단지 소설의 얄팍한 주제로 치부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진심이 결여된 행동이 타인의 인생에 부지불식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섬뜩한 교훈을 우리에게 안겨줍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일독하고 나서, 일부 독자들이 다소 답답하게 여긴 여주인공의 체념과 가까운 선택에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다는 후기들을 접하기도 했는데요. 아마도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의 삶 속에서 사랑을 매개로 한 관계 자체에 그만큼 더 영악해졌거나, 아니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충분히 고민해야만 하는 '진정성'에 대해 역시 대수롭지 않게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는 흔한 남녀 사이에서 온전치 않은 애정이 그릇된 의도대로 한 사람의 일생에서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게 되었는데요. 이 작품을 그저 에밀 졸라 류의 인간 세계의 극단적인 희극 정도로 치부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의 회의적이고 음울한 본성 자체에 대한 경고는 결코 허위나 거짓 따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캐서린을 두고 이어지는 각기 두 캐릭터의 이기적인 본성과 그로 인한 비뚤어진 욕망, 그리고 그것이 배경이 된 작위적인 결과물 자체는 작가의 일관된 주제 의식이기도 한, 내재적인 회의주의와 극사실주의와 맞물려, 인간의 불확실성과 사람을 도구적 이익의 수단으로 추락시킨 왜곡된 사회 풍조를 이 작품에서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가급적 언급하지 않으려 했지만, 캐서린과 그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서로를 향해 건네는 후반부의 그 의미심장한 대화는 아마도 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모리스 타운젠드는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인물로, 놀라운 풍자의 힘을 가졌고, 날카롭고, 단호하고, 똑똑한 성격의 젊은이라 요령 있게 대처해야 할 것 같았다.

그녀가 물려받은 재산은 두 명의 분별있는 사람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고, 빈털터리라 하더라도 괜찮은 남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구혼자가 있다면 그의 개인적 자질로 평가할 용의가 있었다.

모리스는 사양을 모르는 젊은이였고, 보르도산 적포도주가 고급이라는 사실에 충분히 고무되었다.

"쉽게 단정한 것이 아니란다. 30년간 관찰로 세월을 보낸 결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그런 판단을 하루 저녁에 할 수 있기 위해 나는 서재에서 평생을 보냈다."

그녀는 허세를 부릴 재주가 없었고, 타운젠드가 그녀에게 보이는 관심에 아버지가 반대하는 눈길을 보낸다고 느끼자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우연이 불편할 따름이었다.

"모리스 타운젠드가 향락을 위해 자기 재산을 써버렸다면, 네 재산도 써버릴 것이라고 믿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고모가 1년 내내 그녀의 연인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짓눌렀고, 그 젊은이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양 그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을 듣는 일도 유쾌하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