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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본 미국 정치 - 선거와 양극화 그리고 민주주의
박홍민.국승민 지음 / 오름 / 2023년 9월
평점 :
이 논저의 공저자 중 한 사람인 박홍민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를 마칩니다. 이후 미국 워싱턴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앨라배마 주립 대학을 거쳐, 현재는 위스콘신 주립 대학에서 정치학과 부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정치제도와 미의회 구조, 극단화 된 당파 정치 등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이에 그는 미국 하원과 상원에 대한 여러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공저자 중 한 사람인 국승민 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그리고 도미하여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UCSD)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존 국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현재 그는 미시간 주립 대학의 정치학과 조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국 교수는 미국 주택 임대 시장에서의 주거 분리에 대한 영속화와 공공 정책이 어떻게 인종 및 성 불평등을 강화하는지,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이 어떻게 인종에서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지 연구를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선거와 양극화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부제와 함께, 지난 2023년 9월 국내에 출간되었습니다.
모두가 익히 알다시피, 미국은 우리에게 있어 뗄레야 뗄 수 없는 동맹 관계이자, 외교 전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패권 국가이기도 합니다. 이에 두 공저자들은 우리가 미국의 국내 정치를 면밀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을 서두에서 밝히고 있는데요. 이와 동시에 "미국은 완벽에 가까운 선진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거의 진실과 다름없는 분석을 내리면서, 현재 미국 정치가 얼마나 심각한 병폐를 떠안고 있는지 이어지는 논증을 통해, 증명되고 있었습니다.
연방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을 선출하는 미국의 선거제도는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상이한 측면이 존재합니다. 일종의 간접 선출이라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의회에서의 상하원 양원과 특히 연방대법원의 지위는 미국 정치의 특수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미국은 선거에 있어서 만큼은 선거 운동과 정치 자금에 대해선 거의 예외적으로 제한이 없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현재 미국 정치를 인식하는 소위 '금권 정치'에 대한 폭넓은 인식은 의회에 로비하는 로비스트들의 존재와 선거를 통해 막대한 돈이 오고가는 그런 시스템으로 이해해 볼 수 있는데요. 특히 이 글의 전반적인 논증 가운데에서 제가 놀란 부분은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돈'은 부정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의견을 표시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라는 선거에서의 막대한 자금 투입에 대해 별반 거부감이 없이 언급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세계 민주주의의 동향과 그것을 나타내는 현격한 지표에 있어, 지난 2016년 미국 대선은 특별히 중요한 선거이기도 했습니다. 극단적인 인종주의자이자 전형적인 포퓰리스트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듯, 미국의 기존 정치 무대에 등장한 것도 충격이거니와, 그동안 소소한 문제는 분명 있었지만 그럼에도 최소한의 정치적 건전성을 답보하고 있었던 미국 양당 정치가 단순히 공화당이라는 일개 정당이 극단주의적 경향을 띠는 것을 넘어, 로버트 B. 탈리스의 분석대로 이 당(공화당)이 "트럼프에 의해 철저히 장악되었다"는 점으로 대변되는 양상은 현 미국 정치의 암울한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저는 무엇보다 공당(共黨)이라는 공화당이 스스로 내부에서의 자정능력을 여실히 잃었다는 점을 무엇보다 비판하고 싶습니다. 이를 간단히 말하자면 이 시대의 미국 민주주의는 소수의 극단적 포퓰리즘에 명확히 포획되었다는 점이 바로 본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이 글 3장에서 분석대는 바와 같이, 민주당은 1980년대 이후,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와 소수 인종의 연합체로 변질되었는데요. 제가 폭스 뉴스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레거시 미디어가 주구장창 미국 민주당을 저렇게 공격하는 연유에는 소위 소수 특권 정당이라는 정치적 서사가 그 배경에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과거 민주당의 전통대로 이 당은 더 많이 평범한 노동자들을 대변해야 했지만 오늘날 정치적 지지 기반의 변화는 그만큼 녹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분석대로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조 바이든이 연방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건, 평범한 미국 중산층이 다시 민주당 대선 후보에 표를 던진 결과로써, 그 의미하는 바가 가볍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양당 정치의 궤멸적 분화라는 현실 투영보다는 주 의회를 장악한 정당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선거 제도를 주도하는 '게리멘더링'과 다수의 미국 유권자들이 자신이 정당한 유권자임을 증명하는 '유권자 등록 제도 voter registration'가 사실상 투표를 제약하는 행정 처분으로 기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지금도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았는데요. 특히 후자의 선거인명부 등록을 위한 신분 등록 제도가 흑인과 저소득층에게 분명히 번거롭고 불리한 측면이 있어, 각 주에서 공화당이 이를 정치적으로 조장해 왔다는 증거들이 드러나는 부분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세계 민주주의의 맏형'이라고 불리우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조차 제대로 처리 못하는 지에 대해 느끼는 깊은 실망감과 그런 환멸이라고 해야 할까요. 단순히 복잡한 다인종 체계와 지역에 따라 행정 기반이 미약하다는 변명 따위로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지점이었습니다. 저는 이 언급에서 현재 미국 내부에 유색 인종을 향한 뿌리 깊은 인종주의를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는데요. 정치적 이익 만을 위해 미국 공화당이 주도하는 백인 유권자들이 아닌 같은 미국 시민권을 가진 유색 인종들의 투표를 사실상 방해하는 역겨운 행태는 국가 내부의 병폐가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 마찬가지로 충분히 이해하게 됩니다.
더욱이 양당을 견고하게 지지하는 미국 시민들의 극단적 정치 성향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2020년 대선에서 40퍼센트에 이르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당시의 선거가 '부정 선거'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도 예상치 못한 충격으로 다가왔는데요. 아마도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극단적 포퓰리스트인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 의회 불법 점거를 대놓고 획책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자가 어떠한 기소도 없이 공화당의 다음 대선 후보로 나서고 있는 현실은 미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 상황인지 이를 반증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또한 12장에서 저자들은 앞선 정치적 양극화에 대한 증거로써, 많은 미국인들이, "감정적 양극화가 더 심해져서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해석조차도 자기 정당이 선호하는 방향에 부합하게 왜곡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판하고 있었는데요. 이것은 작금의 우리 정치에 있어서도 별반 다를 게 없는 모습이라고 여겨집니다. 특히 사실을 더욱 비틀어서 정치 논리화 하는 일련의 궤변적 논법들은 평론가들 뿐만 아니라 일반 지식인들에게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부끄러운 행태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연방대법원의 문제도 꼬집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익히 알려진 바대로 과거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자신의 주도적인 정책을 위해 연방대법원에 개입하고자 했으나, 같은 당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가 있습니다. 현재 9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연방대법원은 본디 미국 사법 제도가 판사의 정치적 결정이 중요한 맥락으로 작용하는 판례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대륙법 체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조직에서 대법관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사회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판결이 다수 시민들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소위 법관의 양심'으로 판결되고 있는 점은 백번 양보하여 넘어가더라도, 이러한 판결들이 사회적 파급의 고려 없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은 상당히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약간 다른 맥락이지만 국민의 투표로 구성된 의회에서 제출된 법안을 '자격 시험'이나 그에 준하는 교육 과정으로 선발된 사법 관료들이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법적 구속력을 행사하는 일이 과연 정당한 일인지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는데요. 현재의 민주주의가 시민들의 직접 투표에 의한 권력 위임이 기본적 메카니즘으로써 그 정당성을 표면에 내세운다 하더라도, 실상은 이미 모두가 알다시피 현실 정치 자체가 위임된 엘리트 지배 체제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체제의 색채를 좀 더 옅게 만드는 것이 앞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소위 억압 받는 소수의 권리 보호라는 미명 하에 갖춰진 헌법적 체계와 그 이해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상 하원 양원 제도와 연방대법원의 특수한 체계는 많은 미국 시민들이 요구하는 바대로 개헌의 필요성이 시급해 보이는 것은 거의 자명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시민들이 이에 동의하고 있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왜곡된 미국 정치가 극명하게 시사하는 바는 극단주의적 인종주의와 정치적 자정 능력의 실종으로 말미암아 결국 사회가 반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후반부의 경고였습니다. 이는 과거 로버트 달이 주장했던 민주적 다원주의에 대한 공격이자, 동시에 소수 지지층의 이해 관계와 그 기반이 된 금권 정치가 더욱 민주주의를 벼랑으로 이끌고 있다고 봐도 무방해 보이는데요. 저는 당파적 이해관계에 아주 매몰되어 이것이 정치 전반을 아우르는 극명한 체제가 되었을 때, 과연 민주주의가 온전할 것인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정치에서 앞으로 있을 과두제의 위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동일한 우려가 있습니다. 이를 약간 달리 언급해 본다면 기존의 영국 양당제도와 오랜 의회주의의 기반이 되었던 서로에 대한 존중, 대립된 정치적 의견이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계몽주의적 기반이 그저 당리당략에 매몰되어가고 있는 부분은 나날이 중첩되어가는 이익 정치의 본질이라 설명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탈이데올로기의 새로운 정치 형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익에 우선한 정치적 본질의 매몰은 미국 정치 뿐만 아니라, 우리 정치까지도 파국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일전에 도널드 트럼프로 시작된 '대안적 사실 alternative facts'의 발명이 이러한 왜곡의 시발점이라고 언급한 바가 있는데요. 이는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인종주의를 대놓고 주장하는 정치인을 유권자들이 심판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저자들의 현실 판단은 단순히 반민주주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엄혹한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 있겠는데요. 이 모든 것이 소위 대안적인 정치와 그런 진실 회피의 진면목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많은 지식인들이 폭로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음 미국 대선은 미국인들 뿐만 아니라, 우리 정치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리라 예측해 봅니다.
그리고 2020년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부정을 주장했다. 그의 지지자들은 두 달 뒤 워싱턴 D.C.의 연방의회 의사당에 침입하는 ‘폭동‘도 일으켰다.
그런데 특정 집단에 소속감을 가지고 이와 같이 일방적인 투표 성향을 보이는 유권자는 미국 전체 유권자의 80~85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그러다가 70년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을 거치면서 민주당이 진보적인 하나의 색채를 띠기 시작했고, 80년대 공화당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 안보정책을 통해 공화당도 뚜렷한 보수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특히 흑인 유권자들은 기업에 대한 규제와 부유층 세금 인상과 같은 정책보다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즉각적으로 주어지는 사회보장책과 도시정책에 더 관심이 많다.
민주당, 공화당 할 것 없이 각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더 이상 상대 정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재선이 매우 유리했던 구조적인 환경에도불구하고, 2020년은 코로나 위기와 더불어 민주당의 투표율 높이기 전략으로 인해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했던 것이다.
과도한 게리맨더링이 위헌이라는 주장이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며 끊임없이 나왔는데, 이때마다 연방대법원은 ‘선거구 확정은 법의 해석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두 정당의 지지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슈도 판이하게 다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건강보험과 총기규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이미정책과 경제정책을 더 강조한다.
트럼프 등장 이전에는 유권자들도 노골적으로 인종주의 캠페인을 벌이는 정치인을 심판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 이후에는 노골적인 인종주의 캠페인이 마치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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