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승자
자크 아탈리 지음, 유재천 옮김 / 다섯수레 / 199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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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자크 아탈리는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 이론가이자 작가로, 이외에 정치 고문과 정부의 고위 공무원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1943년 11월 11, 당시 프랑스 속령이었던 알제리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친인 시몬 아탈리는 오로지 독학으로 알제에서 향수 제조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는데요. 이런 그의 가족은 알제리 독립 전쟁이 시작된 지 2년 후인 1956년에 부친의 결정으로 말미암아 가족이 모두 파리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후 아탈리는 파리 16구의 고등학교인 리세 쟝송 데 세이 (Lycée Janson-de-Sailly) 에서 수학합니다. 뒤이어 1966년에는 에꼴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에꼴 데민, 파리 정치 연구소 (Sciences Po), 국립행정부 (É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를 졸업합니다. 2년 뒤인, 1968년에 니에브르에서 인턴쉽을 하던 중에 당시 학과장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을 만나게 되는데요. 미테랑은 모두가 알다시피 프랑스 제21대 대통령이었습니다. 아탈리는 결국 1972년에 프랑스 유수의 그랑제콜 중 한 곳인, 파리 도팽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됩니다. 자크 아탈리는 그의 전체 이력 가운데, 크게 두 가지 이력으로 분류해 볼 수 있을 텐데요. 미테랑 전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을 비롯, 내각의 특별 고문을 수락해 여러모로 조력을 한 경력과 다른 국제적인 차원에서의 이력은 영국 런던에 있는 유럽부흥개발은행 (EBRD)를 설립하고 초대 총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아탈리는 냉전 전후로 유럽에서 경제 정책과 각 정부의 조언자로 자리매김하고, 경제학 관료로서 활발한 이력을 쌓게 됩니다. 더욱이 그는 1969년부터 2023년까지 54년동안 총 86권의 책을 출판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그의 노력을 인정해 2009년, 미국의 국제 외교 잡지인 포린 폴리시 Foreign Policy)는 그를 세계 100대 '글로벌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선정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글은 원제, "Lignes D'Horizon"으로 지난 1990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1992년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현재 번역된 이 책은 절판된 상황입니다.

우연히 제게 발견된 아탈리의 이 오래된 논저는, 모 헌책방의 책들 사이에서 먼지만 먹고 있던 것을 힙겹게 찾아낸 것인데요. 이런 아탈리의 논저는 개인적으로 두 번째 일독이기도 했습니다. 가장 처음 읽었던 글은 '위기 그리고 그 이후'인데요.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책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전에 대충 읽다 접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번역한 역자 역시 꽤나 우리에게 알려진 인물인데요. 과거에 KBS 이사장을 역임했던 유재천 교수입니다.

자크 아탈리의 이 책이 쓰여진 시기를 고려해 본다면, 그가 21세기를 준비하며 예측한 내용들이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가 주시하는 21세기 국제 정치 및 세력의 동향 가운데, 일본이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정치경제적 배후지로 두고, 아시아 태평양 시대의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와는 상반되게 중국과 관련해서는 "만약 중국이 세계 경제와 시장 속으로 완전히 통합되기만 한다면, 자신의 예측이 대부분 뒤집혀 질 수 있다"고 언급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비롯 인도와 중동은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고 단언하기에 이릅니다. 사실 중국의 개혁 개방을 논하기에 앞서, 신자유주의적 금융 자본과 그에 따른 산업 개편에서 중국이 다국적 기업들의 현지 공장 역할을 하게 된 것이 그야말로 지금의 경제 성장의 원류가 된 것인데요. 2008년, 뉴욕 발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워싱턴과 런던이 중국의 이 정치경제적 대두를 과연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지 매우 궁금한데요. 일전에 지오바니 아리기의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들 서구 엘리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만 자크 아탈리 역시, 이런 그의 예측이 빗나간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지 마찬가지로 매우 궁금합니다.

글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1장 중반부터, 저자는 앞으로의 세계는 '폭력을 돈으로 조절하고 통제하는 세계'가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만큼 시장의 존재는 단순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 하에 경제적 번영을 이룩한 미국과 서구 유럽 국가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논법이기도 합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국제 정치 무대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여론을 주도하는 등의 '선도국'에 오르기 위해서는 일견 경제력과 군사력, 즉 양자 간의 균형 있는 투사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그리 판단하고 있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한계는 명확하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더욱이 앞으로는 미국 경제의 전반적인 위기는 세계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미국 경제의 건전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아탈리는 간곡히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1980년대의 미국 시민들이 일본에서 유입된 자금으로 '신용 카드 소비'라는 무절제한 신용 생활을 했으며, 이러한 측면의 서술은 훗날 2000년대 초중반, 중국이 미국 국채에 막대한 투자를 벌임으로써,미국 시민들이 마찬가지로 신용 생활을 반복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자크 아탈리가 강조하는 것은 '시장과 민주주의의 합치'였습니다. 이것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대등한 관계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가 같은 유럽인의 관점에서 앞으로 동유럽의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점과 모든 지역에서 군사적 기술의 발전으로 단순한 물리적 충돌을 떠나, 각 지역을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기에 무엇보다 권역 간의 힘의 분리 내지는 본질적인 권력의 분산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비판적 분석대로, "시장 만으로는 산업을 일으킬 수 없고, 건강과 교육 제도라는 기본적인 사회구조를 세울 수도 없고, 이런 시장만 가지고서는 원자재를 가지고 이윤을 낼 수 없다"는 진술은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민족주의 국가들이 더 나은 국가 체제를 위해, 보다 큰 노력을 기울였던 것처럼, 시장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확대는 그만큼 세계 평화(말 그대로 거창한 담론이긴 하지만)의 요구는 이론과 더 나아가 머릿속의 상상에 끝나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 국가 간에는 직접적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논법을 맹신할 필요는 없지만 민주주의적 가치와 그런 제도를 구축한 국가들이 핵무기와 화학 무기를 동원한 인류 절멸의 전쟁을 쉽게 용인하기란 그만큼 어려울 것이라 여겨집니다.

끝으로 콜린 크라우치의 경고와도 일맥상통한 '전체주의의 잔재'가 유럽에 여전하다는 저자의 우려는 단순한 억측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또한 가난한 국가에게서 민주주의가 굳건히 뿌리 내리기 어렵다는 것은 앞으로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처한, '뿌리 깊은 빈곤의 굴레'는 이제부터라도 북반구의 선진국들이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판단됩니다. 또한 현재 유럽에서 불고 있는 "이방인에 대한 공포증", "인종차별주의라는 망령"이 다시금 지구를 떠돌고 있다는 경고 역시 우리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요. 특히 인종차별주의를 기반으로 극단주의 세력이 정치 무대에 속속 등장하고 있는 이 현실은 그만큼 두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가 강조하는 "시장과 민주주의에 대한 이 시대의 요청"은 어떠한 진정성에 기반해야 하는지 이처럼 명확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런 선험적이고 무엇보다 선명한 요구는 모두의 경제적 안정과 그런 체제가 항유하는 가치에 기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말로만 내뱉는 것 만으로 위안을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크게 의미는 없겠지만 96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종교에, 다음에는 군사력에 좌우됐던 이전의 질서와는 달리, 새질서는 주로 경제력에 의존하여 이 폭력을 통제할 것이다.

확실히 경제적 성장과 사회적 정의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기는 하다.

이러한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체제는 합치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 형태를 파괴해 버릴 정도로 위협적인 적대관계를 줄이기 위해 인간은 서열을 존중하는 조직을 스스로 만들고, 그 조직의 우두머리에게 이같은 폭력을 조정하거나 행사할 권력을 부여했다.

만약 미국의 경제적 쇠퇴가 현실로 굳어진다면 유럽은 고통받게 될 것이다.

어쨋든 다음 세계경제의 중심지가 되고자 하는 모든 후보지가 갖추어야만 할 중요한 조건들이 있다. 그러나 일본이 그같은 조건을 갖추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일본이 과연 전세계 인류를 포용할 만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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