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세계의 극단주의 - 광신, 인종차별, 분노
애덤 클라인 지음, 한정라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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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애덤 클라인은 미국 메릴랜드 주의 공립 대학인 솔즈베리 대학을 거쳐, 마이애미 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워싱턴 D.C에 소재한 사립 대학인 하워드 대학에서 매스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특히 그는 혐오 표현과 온라인 극단주의, 비주류 인종주의 운동 등에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데요. 이와 관련해, 그는 미국 정치계에서의 인종 혐오적이고 극단적인 발언과 여론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현재는 미국 뉴요의 연구 중심 종합대학인 페이스 대학의 커뮤니케이션 연구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Fanaticism, Racism, and Rage Online ; Corrupting the Digital Sphere"로 지난 2017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3년 6월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현재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보이는 유대인과 흑인을 향한 극심한 인종 혐오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내수 부진과 그에 따른 경기 하락,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미국 이민 정책의 사실상 실패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미국 시민들의 대다수가 정치적 변별력을 포함한, 건전한 민주주의적 여론 형성을 위한 역량 구축에 실패한 점도 미국 내부의 극단주의를 더욱 부채질 하였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헐리우드 발 영화에서 희화화 된 인종 혐오 단체로 자주 언급되는'KKK단'은 현실 세계에서 직접 그 유산을 계승했다는 돈 블랙에 의해 오늘날 새롭게 변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히 제2의 부활을 알립니다. 블랙은 일반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에 의해 자행된 600만 이상의 유대인들을 가스실에서 절멸시킨 사건 즉, 홀로코스트를 "유대인들의 음모"로 몰아갔습니다. 지금도 구글에서 홀로코스트 음모라고 치면 여러 자료들이 검색됩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많은 시민들이 이런 유대인들의 음모에 속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터무니 없는 맥락의 발언들을 과연 한 막의 코미디 정도로 취급해야 하는지는 작금의 인터넷 여론이 매우 심상치 않은 점을 먼저 고려해야 될 것 같습니다.


소위 페이스 북과 같은 근래의 'SNS 혁명'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좀 더 여론 친화적이고, 시민들을 위한 공개된 발언의 기회가 크게 확장될 것이라고 모두가 기대했던 점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면밀한 인터넷 커뮤니티와 시민들 간의 온라인 연결성을 배후로 오히려 과거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민주주의 내부의 '병리적 현상'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여러 소설과 영화 등으로 잘 알고 있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세계 지배 전략'과 같은 입에 담기에도 저열한 음모론들이 이제 온라인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사실상 '유대인들의 세계 금융 지배 전략과 그로 인한 세계 경제 통제"라는 삼류 소설과 같은 것으로 현재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의 평범한 미국 청년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적인 수법들은 이 글에서 애덤 클라인 교수의 논증을 통해, 여러 방향성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특히 '흑인들은 백인보다 덜 진화되었다'라든지, '유대인들은 종교의식에 기독교 어린이들의 피를 사용한다'는 식의 모략을 이용하는 등 전근대적인 행태들이 여전히 미국의 보통 가정에 침잠하고 현실은 참으로 두렵기도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은 정치적으로 자유 민주주의의 큰 형이면서, 헌법이 보장하는 '총기 소유의 자유'는 조장된 혐오 발언의 부추김이 시민들에게 어떤 식으로 악영향을 끼치게 될지 예견이 되는데요. 이것은 결국 저자의 언급대로 극단주의와 인종혐오에 포획된 일반 시민들이 미국 사회에 가하는 참혹한 폭력이 결국 무고한 사람들을 향하기에 이릅니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2장의 '시온 장로 의정서'에 대한 역사적 근원을 논증하는 과정에서, 이 완벽한 '가짜'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해악을 유대인의 그것과 연결시켜, 마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유대인이 전세계에 퍼트리고자 한 '거대한 음모'로도 읽히는 부분은 이러한 반유대주의가 얼마나 뿌리 깊은 연원에 기인하고 있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는데요. 사실 제가 이러한 내용을 키보드 자판으로 기록하고 있는 지금도 이 거짓된 논답들을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미국이 가진 대학의 훌륭한 저변을 통해, 질 높은 교육을 받은 미국 청년들이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이성을 잃고 동조하는 몇몇의 사례들은 더욱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인터넷에 접속한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노출과 미러링을 시도하는 세련된 웹 페이지 구축은 물론 유사 과학이나 다름 없는 거짓된 논변을 좀 더 고급스럽게 포장하여, 소위 '대안적 사실'과 같은 기법 등으로 극단주의자들이 끝내 고안했다는 실정은 여기서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런 거짓 선동과 극히 차별적인 인종주의, 미국 내부의 만연된 반이민 정서로 나날이 세력을 얻은 '대안 우파'와는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한 데요. 특히 이 글의 5장에 수록된, "평균 웹 트래픽에 따른 혐오 웹사이트 검토"라는 하나의 증명된 도표는 미국 온라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혐오 커뮤니티들의 월간 방문자와 링크하는 웹 사이트 수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구글과 같은 거대 인터넷 검색 기업의 사실상 '의무와 윤리의 실종'이라는 측면과 오로지 기업의 이익 만을 추구하는 비윤리적 기업의 행태를 반증하는 사례로도 읽히는데요. 즉, 단순히 인터넷 검색으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블로그와 SNS으로 상호 연결되는 상황까지 이르러 그것의 폐해가 가히 심각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009년 6월 10일 제임스 본 브런 James von Brunn은 "홀로코스트는 거짓말이다. 오바마는 유대인들이 만들었다. 오바마는 그의 유대인 주인들이 시키는 대로 한다. 유대인들은 미국의 돈을 빼앗았다. 유대인들이 대중 미디어를 통제한다."는 그런 자신의 생각을 메모로 남기고, 박물관 경비원으로 6년 동안 일해온 39세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존스의 가슴에 곧바로 총을 발사했습니다. 이 아프리카 계 경비원은 바로 그 자리에서 숨졌고, 그 외 신원을 알 수 없는 1명은 중상을 입었으며, 총기 난사범 브런은 경비원들과 총격전 끝에,얼굴에 총을 맞고 중상을 입었습니다. 저자는 이 브런의 백그라운드를 면밀히 체크하고 그가 얼마나 혐오에 찬 수사법의 노예가 되었는지 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는데요. 일전에 네이딘 스트로슨은 이 혐오 발언이 미국 헌법에서 보장하는 '시민들의 생각과 발언의 자유'의 일종으로 현재 유럽 여러 국가에서 제정된 '혐오표현금지법'이 과연 이슬람 이민에 대한 증오와 인종주의 철폐에 있어 어떠한 효과적 대응이 되었는지 자신의 논저를 통해 의문을 표시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소위 시민들이 '대항 표현'을 통해, 저 왜곡된 극단주의 세력과 맞서 싸워야만 한다고 주장하기 이르렀는데요. 더욱이 시민들 사이에 '정치적 이성'과 나날이 소원해져 가는 현실은 광범위한 혐오 발언의 대상이 되는 무고한 LGBT, 유대인, 아프리카 계 미국인들에게는 더 이상 '도덕적 건전성'에 기반한 시민들의 정치적 변별력을 마냥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애덤 클라인의 이 글은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 차별 집단과 극우주의자들, 이민 반대와 일부 공화당 정치인들과 관계를 맺는 등의 일견 온건해 보이기까지 하는 광범위한 혐오 운동까지 포함해 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상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터무니 없는 혐오 발언과 그것을 교묘히 구축하고 있는 수사적 기법들은 나날이 많은 시민들을 포섭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간의 저열한 속성에 끊임없이 호소'하거나, 자신의 마땅한 권리를 다른 이민자들에게 갈취당했다는 식으로 사회적 권리에 대한 왜곡된 수사까지 미국에 유입된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를 키우는 데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저자의 묵시록적인 어감으로까지 읽히게 되는 지난날 히틀러 치하의 독일 시민들이 유대인들에 대해 벌였던 일상적인 증오 등을 논하면서, 이러한 파시즘적 기법들이 시민들의 내면에 파고들 때, 민주주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를 우리에게 되묻고 있는데요. 여기서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는 점은 이런 극단주의 세력들과 이를 지지하는 현상 자체는 이미 주류 정치 무대로 올라왔으며, 단순히 일부의 지나지 않거나 혹은 현상에 대한 과대 평가 같은 것은 분명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저자는 결론에서 이 21세기의 편협한 현상들이 과거 우리 인류에게 남은 어두운 잔재들 가운데 하나이며, 이것들의 후예들이 그 이전보다 세련되고, 평범하고, 교활하다는 점 역시, 이것을 우리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절망적인 파국은 보다 가까이에서 현실화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유사 과학에 빠진 인종 혐오주의자들과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을 단순히 정신병에 걸린 '병리적 인간 무리'로 취급할 수 없는 명확한 근거는 문명의 운명과 계몽의 유산을 뒤집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저자의 비판적 분석은 바로 이들이 "정치와 소위 커뮤니티로 가장하여 이런 복잡한 분열들과 맞물리려고 하는데, 오직 진보의 궤도를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다."는 폭로로 논증은 사실상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이 악은 여태까지 구축한 인류 문명의 붕괴를 필연적으로 초래한다는 셰익스피어 식의 논법이 절대 과장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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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시민들이 비록 디지털 방식이지만 참여 민주주의에 직접 관여하여 변화를 가져오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공 영역 public sphere‘의 현대적 구현으로 종종 생각되었다.

혐오 발언의 새로운 목소리는 이제 아래 깔린 실제의 인종차별적 신념 체계의 언어가 아니라, 우리 대중문화와 정치의 언어로 말해지고 있음이 명백해진다.

유대인들은 종교의식에 기독교 어린이들의 피를 사용한다고 수세기 동안 주장된 악명 높은 "피의 비방 blood libel"이 있다.

그것은 깔때기처럼 오늘날의 급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웹사이트로 검색자들을 집합적으로 이동시키는 검색엔진, 뉴스 아울렛, 정치 블로그, 소셜 네트워크의 상호 연결 시스템이 지닌 합법화 요인이다.

이 맥락에서 이러한 콘텐츠들은 주의 깊게 선택되고 강도되며, 어떤 경우에는 오직 뚜렷한 인종차별주의적 관점만을 전달하기 위해 작성자가 이를 추리기도 한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 네트워크를 혐오집단과 개인들에게 매우 매력적이게 만든 것은 아마도 청년 공동체가 모든 문화를 손쉽게 환영하기 때문일 것으로, 새로운 친구와 생각들 모두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거의 유보없이 "받아들여지고""좋아요"가 된다.

페이스북 경영진은 서비스 이용 약관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 없었다는 이유를 들며 궁극적으로 홀로코스트 부인 단체들을 제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혐오발언을 둘러싼 풀뿌리 논쟁은 전국적으로 상당히 분열되어 있으며, 대체로 이것은 법적으로 정의되어 있든 아니든 실제의 혐오발언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다양한 이해 탓으로 여기는 게 타당하다.

나치 운동이나 현대의 어느 (혐오) 이데올로기에도 쉽게 영향받는 자들의 경우, 사회학습 이론은 그들이 문화적으로 편협의 메시지와 동일시함으로써 사실상 그들이 자기 자신의 유혹 과정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현실 세계의 폭력으로 분출되는 인터넷 편협의 어떤 단일 사례보다 훨씬 더 공통적인 것은 온라인 혐오발언의 확산이 오늘날 공공 담론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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