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시대 (양장) 앤의서재 여성작가 클래식 4
이디스 워튼 지음, 신승미 옮김 / 앤의서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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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의 이름이 이디스 뉴볼드 존스였던 워튼은 1862년, 미국 뉴욕시의 브라운스톤에서 태어납니다. 그녀의 부계 쪽은 부동산으로 돈을 많이 번 부유층으로 사회적으로도 꽤 저명한 가문이었습니다. 남북 전쟁 기간 중에 태어난 워튼은 그녀의 가족들을 따라 1866년부터 1872년까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을 장기 여행 목적으로 방문하면서 전쟁과 자연스레 멀어졌습니다. 이미 어렸을 적부터 글쓰기에 소질이 있던 워튼은 15세가 되던 해에, 중편 소설을 썼고, 1878년에는 24편의 시를 포함해, 몇 가지 글을 비공개 출판하기에 이르는데요. 이처럼 초기 성공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나 사교계의 격려를 받지 못했고 그녀 나름대로 글쓰기는 지속했지만 1889년에 그녀의 새로운 시가 출판될 때까지는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10대 시절을 보낸 뒤, 그녀가 23세가 되던 1885년에 12살 연상의 에드워드 로빈스 와튼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녀의 남편인 테디 워튼은 보스턴의 유력한 가문 출신으로 만능 스포츠맨이자 그 시대의 존경 받는 신사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며 정신적 문제를 끊임없이 드러내자 이 부부는 결혼 28년만인 1913년에 비로소 갈라서게 됩니다. 이후 그녀는 전세계를 돌며 여행을 하다 곧이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바로 프랑스 파리로 돌아와 정력적으로 전쟁 구호 활동에 나서게 됩니다. 이에 왕성한 집필 활동을 병행하며, 평생에 걸쳐 수십 편의 소설을 발표했고, 또한, 이 시기에 워튼은 헨리 제임스, 조셉 콘랜드 등의 당시 문호들의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 출간하는데 관여하고, 이러한 활동은 당시 미국 대통령인 시오도어 루즈벨트의 관심을 받기도 합니다. 바로 그녀에게 1921년, 미국 여성 최초로 퓰리처 상을 안겨 준 작품이 바로 이 '순수의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1920년, 미국에서 초도 출간되었고, 이 새로운 국내 번역본은 2023년 5월 출판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워튼의 소설을 일전에 1부를 일독하고 나서, 오늘에서야 2부를 마저 소화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일 때문에 여태 까맣게 잊고 있다, 이제야 겨우 완독을 할 수 있었는데요. 그렇게 쉼 없이 2부를 완료하고 나서, 워튼이 절묘하게 배치한 스토리 상의 예측 못한 사건들로 인해 정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2부 후반부의 서사는 당시 복잡한 시대상 만큼이나 구조적으로도 거의 탁월하다고 볼 수 있었는데요.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아처 뉴랜드와 엘런 올렌스카 백작 부인(극중 내내 신분상 유부녀이기에)과의 안타까운 -관점에 따라- 엇갈림이 그러한 복선 이후, 생각지도 않은 흐름으로 이어질 줄은 거의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작품 후반부에서 더욱 드러나는 워튼의 탁월한 필력과 연달아 터지는 사건의 흐름 상, 예측 불가능하면서도 그 특유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묘사와 특히 유럽의 흔적이 묻어 나오는 뉴욕 시에 대한 설명도 대체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워튼의 이 작품 역시도 오래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미국 뉴욕의 명문가 중 한 곳인 '뉴랜드'가의 촉망받는 청년인 아처 뉴랜드는 이 신대륙에서 보이는 과거 유럽의 귀족적 유산과 다른 말로 관습이라는 본질을 때론 비판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겉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행동거지와 '뉴욕의 신사'를 잘 연기하고 있지만 여느 젊은이들처럼 이 시기에 홍역처럼 겪게 되는 '남녀 간의 열정'에 대해서도 무지하지 않은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그는 곧, '가문 대 가문'으로 맺어지게 될 메이 웰랜드와의 약혼과 이 둘을 진정으로 이어지게 할 결혼에 대해서도 본질적인 열망을 갖고 있습니다. 작가인 워튼이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결혼하게 될 메이와의 육체적 관계를 기대하고, 이를 통한 서로 간의 뜨거운 사랑을 어느 정도 원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다만 이러한 스스로의 본심을 가문의 적장자로서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더불어 뉴욕을 대표하는 가문의 일원으로 그가 다소 경멸하는 '뉴욕의 일반 시민들'이 행동할 법한 그런 무모성과 충동을 비판적으로 언급하는데요. 하지만 그런 그도 엘런을 극적으로 대면하고 나서 일전의 사고와 행동이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극 서사를 이끄는 인물이라 볼 수 있는 엘런은 아처와 약혼을 한 메이 웰랜드의 사촌 언니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메이의 모친과 올케 사이인 밍고트 부인의 손녀로 그녀 역시, 뉴욕의 상류 계층 가문의 일원입니다. 일찍이 그녀는 폴란드의 백작가에 시집을 가, 현재는 위태로운 결혼 생활에서 염증을 느끼고 도피하여 뉴욕으로 온 상황인데요. 뉴욕의 명문가를 구성하는 각각의 이름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이혼'자체를 모욕으로 여기기에 웰랜드 가를 비롯한 저명한 인물들이 엘런의 '조기 복귀'를 매우 애타게 바라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처는 미래의 아내 될 사람의 사촌이 상류층이 한 몸으로 원하는 그녀의 이혼 방지를 위해, 설득을 위한 대리인으로 나서면서 엘런과 특별한 연을 맺게 되는데요. 결국 엘런은 아처의 바람대로 이혼 자체를 무기한 연기하게 됩니다. 물론 이는 두 사람 사이에 점차 깃들게 되는 흠모와 애정에 기댄 결과물이기도 했는데요. 극 초반에 아처와 메이 이 커플의 약혼에 대한 일련의 과정과 근본적으로 아처가 간절히 원했던 메이와의 즉각적인 결혼으로 1부는 그렇게 마무리 되고 되고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기인한 구 시대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는 귀족 특유의 소산들과, 거의 구태에 가까운 경직된 규범과 이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사교 모임과 각종 파티는 이 소설에 있어 주요한 사건의 근본 원인이 됩니다. 이미 여기서 그려지는 뉴욕은 점차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귀족적 유산이 사라지고 있었고, 신문 지상을 오르내리는 몇몇 가문들의 밀접한 교류를 제외한다면 빠르게 퇴색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소위 뉴욕의 상류 계급들은 자신들만의 법칙과 사교적 틀을 유지하고 있었는데요. 바로 이런 범주 바깥에 있는 인물로 그려지는 것이 엘런입니다. 그녀는 진정 예술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특별한 감각을 가진 인물인데요. 더불어 결혼 제도와 여성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결혼 생활을 잠정적으로 거부하고, 경제적 독립을 비롯, 스스로의 진정한 '자유'를 원하는 여성이기도 합니다. 아처에게 있어 엘런이라는 캐릭터는 자신의 어머니나 여동생처럼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던 여성으로서 해서는 안될 사회적 금기와 대척점에 있는, 소위 다른 세상에 서있는 여성이기도 한 데요. "여기서는 아무도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아요."라고 꼬집어 말하는 엘런은 뉴욕 사교계의 염증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이런 사교계와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데요. 그녀가 삶을 대하는 태도, 사람을 보는 시선, 사소한 집안의 인테리어 마저 엘런은 여느 여자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런 엘런과 여러모로 얽히고 비교되는 캐릭터가 바로 메이 웰랜드입니다. 그녀는 이 상위 계층의 여성들이 마땅히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등을 여실히 인식하고, 여기에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여 상대방에게 원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메이의 이 모든 지침은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비롯 되었고, 그녀의 부모가 그리 원만한 부부가 아니었음에도 어머니가 노력했던 것처럼 메이 역시 아처와의 결혼 생활에서, 미소 속에 자신의 감정을 곧잘 숨깁니다. 메이는 아처가 본질을 깨닫는 여러 대사들을 통해, 그를 향한 그녀의 배려와 이해심, 다른 한편으로 그녀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또한 남편인 아처에게 때론 무감한 태도와 아내의 절제를 보이기도 하지만 엘런과 남편 간의 감정에 대한 실체를 누구보다 재빨리 깨닫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이를 아처에게 직접적으로 내색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결혼 드레스를 통한 소심한 복수를 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치기 어린 반항에 지나지 않았는데요. 후에 뉴욕 사교계의 갈등 원인들 중 하나로 언급 되지만 뉴욕을 떠나 워싱턴에 임시 거처를 두고 있던 엘런과 이런 그녀와 만나려는 아처의 행동을 아내의 입장에서 극렬하게 저지하지 않고, 오히려 겉으로 나마 자신이 두 사람의 재회가 집안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여, 그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위선을 잘 감추지도 못합니다. 그럼에도 지난 시대의 귀족 계층이 중요시 여겼던 부부간의 덕을 인정하고, 특히 부부간에 눈빛과 표정의 변화 만으로 이를 짐작하고,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어떻게 보면 메이는 가정의 평온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것인데요. 무엇보다 스스로 느끼는 감정을 오롯이 남편에게 이해 받으려고 도를 넘게 되거나, 자신이 익히 인지하고 있는 아내의 의무를 망각하게 되는 것을 경계한 메이는 작가가 살았던 현실 세계의 결혼관과 맞물려, 어떻게 보면 워튼 본인의 경험을 글에 녹여낸 것으로도 읽히는데요. 다만, 극의 후반부로 다다를수록 저 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봤던 장면은 이런 뉴욕 상류층의 극도의 위선과 허울을 작품 전반에 덧대고, 이를 여러 인물들의 행적과 굴절된 대화로 드러내는 서사 전반이 갓 결혼한 상류층 계급의 남성과 주변으로부터 홀대 받는 유부녀와의 거의 통념을 벗어나는 애정 행각과 대비되는 서사 자체는 뭔가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일정 부분 금기에 대한 인간 본연의 욕망과 더불어, 이와 상반되는 사회가 현격히 통제하는 이런 관습적 틀을 평소에 경멸해 마지 않던 인간도 이를 쉬이 벗어나기란 어려운 것이 그 실체라는 측면에서 말입니다.   


이처럼 '성가신 가족의 의무'라는 명목으로 남편인 아처가 엘런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를 바랬던 메이는 자신 또한, 그의 아내로서의 의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엘런의 이혼 문제와 관련해, 많은 유럽인들이 자신들과 같은 미국인들을 일컫는 '신대륙의 상류 계급'을 경멸할 수도 있는 문제였기에 아마도 자신 역시 그런 남편과 사촌 언니의 벌어질지도 모르는 불미스러운 일로 인한 이혼은 전혀 해당 사항에 없었을 겁니다. 물론 워튼이 아처와 엘런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졌는지는 여러모로 불확실하게 보인 점은 사실인데요. 작가인 그녀 역시, 자신의 삶에서 불륜을 경험해 봤지만 이미 거듭된 몇 번의 대화와 나레이션을 통해, 엘런이 어느 곳에 가더라도 '사랑의 도피'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스스로 몸서리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에 엘런이 아처를 향해, 자신의 입으로 '정부 情婦'라는 단어를 입에 담아 아처를 몹시도 당황하게 만들지만, 당시 뉴욕 상류층이 누구보다 정직과 도덕률을 지켜야만 했던 것을 고려해 본다면 아처에게 그와 같은 선택지는 거의 가능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결국 누구보다 남편으로부터의 자유를 원했던 엘런의 운명은 사실상 거부되는데요. 다만 이 지점에서 아처 이전에, 웰랜드가를 비롯, 뉴욕 사교계가 그녀를 체제를 흔드는 터무니 없는 여자로 취급하고, 그녀를 향한 굴레 자체는 거의 지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녀가 뉴욕과는 어울릴 수 없는 외부인과 다름없는 내부인으로서, 이 엘런이라는 캐릭터는 아마 작가가 자신을 투영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보게 되었는데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처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도피를 꿈꾸게 되지만 아처 부부의 갑작스런 변화로 말미암아 극은 예기치 않은 흐름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훗날 아들의 입을 통해, 지난날 엘런과의 이뤄질 수 없었던 사랑을 다시금 듣게 된 아처는 세상을 먼저 떠난 메이의 짤막한 소회를 접하게 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큰 감동을 받았는데요. 결국 메이는 누구보다 자신의 남편을 신뢰했고 또한 경애했음을 간접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뜻하지 않게 쉽게 부서짐을 극명하게 드러냈던 워튼을 잘 알고 있던 저로서는 이 소설에서의 결말 만큼은 정말 의외이기도 했는데요. 한 남자를 둘러싼 두 여성의 극명한 인물상, 여기에 뉴욕 상류층을 배경으로 제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시대와 관계의 진정성을 고찰하여 극에서 도출된 여운은 참으로 한편으로 이디스 워튼 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랑에 대한 개인의 원초적인 열망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작용되고 때론 예기치 않게 불행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사랑에 대해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는 지난 시대의 금언은 어떻게 보면 철지난 문답 정도로 취급되는 시대를 워튼은 마지막으로 그려냅니다. 어쩌면 이는 누구보다 결혼 자체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를 살았던 한 여성으로서, 후반부에 언급되는 아처의 소회와 그런 의미에서 결말 부분의 '시대가 바뀌었다'는 독백은 한때 나마 그런 자유로운 열망을 몸소 경험했던 작가와 가정을 지켜낸 주인공과 묘하게 오버랩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성장한 아들의 보다 유쾌하고 자유분방한 삶과 맞물려 주인공 아처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극적인 엘런과의 재회는 그만큼 보다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 '책 읽는 남자'에 대한 워튼의 일관된 묘사는 이 작품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미 환락의 집과 버너 자매에서도 책 읽는 남자에 대한 작가의 특별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성을 이해하는 남자에 대한 묘사와 그런 설정은 이미 여러 여류 작가들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는데요. 지식이 한때 남자들의 전유물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이해해 본다면 이는 여러모로 상당히 복잡한 의미가 아닌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들이 속한 세상의 사람들은 은근한 암시와 섬세한 배려가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살았고, 젊은이에게 그와 그녀가 한 마디 말도 없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사실은 어떤 설명보다도 두 사람을 가깝게 해주는 듯했다.

약혼녀에게서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점은 두 사람 다 자라면서 배운 대로 ‘불쾌한‘것을 무시하는 관례를 최대한 따르려는 단호한 의지였다.

‘품위 있는‘ 남자로서 자기 과거를 숨기는 것이 그의 의무이고 혼기가 찬 아가씨로서 숨길 과거가 없는 것이 그녀의 의무인 마당에, 그와 그녀가 서로에 대해 무엇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예절에 따르면 숙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신사들이 차례대로 옆에 앉을 때까지 우상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기다려야 했다.

인간의 비열함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감과 인간의 약함에 대한 본능적인 동정심을 조화시키려다 보니 골치가 아팠다.

언제나 아처는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데는 자신에게 일어나게 하는 타고난 기질이 우연과 환경보다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는 아마도 그녀가 일이 벌어질 때마다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해결하면서 삶을 헤쳐나가겠지만 슬쩍이라도 미리 내다보고 생각해 두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 판단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난 당신에게 완전히 솔직해지고 싶어요. 나 자신에게도 오랫동안 이런 기회가 오기를 바랐어요. 당신이 날 얼마나 도와줬고 어떻게 바꾸어놨는지 말할 기회요."

그녀의 선택은 그가 더 가까이 오라고 부탁하지 않는 한 그의 근처에 머무는 것이 될 터였다.

하지만 아마 메이는 마담 올렌스카가 별거한 아내보다는 불행한 아내로 사는 것이 더 낫고, 돌연 제일 기본적인 일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되어 골치가 아파진 뉴랜드와 이 일을 상의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가족의 의견에 공감했을 것이다.

"꼭 엘런을 만나러 가요."메이가 그늘 하나 없는 미소를 짓고 아처를 똑바로 쳐다보며, 성가신 가족의 의무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권하는 것 같은 말투로 덧붙였다.

그가 자신의 운명과 싸우는 동안 그녀도 자신의 운명과 싸웠고,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배신하면 안 된다는 결심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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