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1 사일로 연대기
휴 하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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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하위는 1975년생으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샬럿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작가로 데뷔하기 이전에 서점 점원, 요트 선장, 지붕 수리공, 오디오 기술자 등, 많은 직업을 전전했는데요. 지금 이 소설의 원전이기도 한. '울 Wool'을 단편 소설 형태로 독립 출판이 되었고, 아마존 킨들에 소개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결국 이 작품은 장편 시리즈로 재탄생을 하게 되는데요. 더욱이 이 시리즈에 대한 영화 판권은 '20세기 폭스'에 매각되고, 결국 2023년, 애플TV에서 '지하창고 사일로의 비밀'이라는 TV시리즈로 방영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원제, "Wool"로 지난 2013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3년 9월 초도 번역을 거쳐. 현재는 개정판 1쇄가 2023년 4월 새롭게 출판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유튜브를 좀 살펴보다 어떤 영화 유튜버가 1시간이나 넘는 분량으로 이 TV 시리즈를 소개하는 것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영상을 보자마자 지난 2008년에 개봉한 영화 "시티 오브 엠버"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 작품도 SF 디스토피아적 암울한 주제를 다루면서 공동체 권력의 붕괴를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는데요. 더군다나 양 작품에 팀 로빈스가 출연하는 점도 그렇고 미래의 음울한 인간 사회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어 이를 흥미롭게 지켜봤습니다. 그렇게 유튜버의 나레이션에 좀 집중을 하다 순간 이 TV시리즈를 찾아보는 것보다 먼저 원작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요 배경인 '사일로 silo'는 평시에 핵 미사일이 잠들어 있는 일종의 격납고를 지칭합니다. 다만 이곳에서의 사일로는 많은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편의 시설을 비롯한, 각종 기능적 공간이 구축되었고, 크기는 수직으로 나선형 형태의 144층이나 되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제목은 '청소형'을 구형 받은 사람이 형 집행을 위해 외부 바깥으로 나가, 사일로에서 일종의 광장 역할을 하는 '식당'에서 볼 수 있는 큰 화면으로 연결된, 외부 '렌즈'를 닦을 수 있는 '울 수세미'에서 인용되었는데요. 이미 바깥 대기는 인간이 숨 쉬고 살아갈 수 없는 '8가지의 독성 물질'이 만연된 상황으로 다만 지구 환경이 이렇게 된 정확한 연유는 아직 극에서 드러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폐쇄된 소규모 사회라 볼 수 있는 '사일로'가 하나의 도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할 텐데요. 다만, 이전 시대의 도시와는 달리 최적화 된 인구 조절을 위해, 아이의 출생을 법의 공인을 받는 부부 만으로 한정해, 추첨으로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일로가 자급 자족으로 연명하는 공동체이다 보니, 산소와 물, 먹을 것까지, 어느 하나 법의 통제 안에 놓이지 않는 것이 없다고 봐야 했습니다.     

이 사일로를 이끄는 시장인 '잔스'는 자신을 옆에서 수행하는 '만스' 보안관과 함께, 내부 치안을 오롯이 책임졌던 전임 보안관인 '홀스턴'의 후임으로 내정된 인물인 '줄리엣'을 직접 만나보기 위해 최심층부에 있는 발전실로 향하는 여행에 나섭니다. 제가 봤던 TV시리즈 영상에는 사일로의 전체 규모가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 인류 공동체는 아마도 꽤 거대한 규모라고 짐작됩니다. 굳이 비교해 보자면, 일전에 전세계적으로 히트한 워쇼스키 자매의 영화 '매트릭스'에서 나왔던 지하 도시 '시온'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사일로에는 여느 도시 기능과 마찬가지로 일반 법률로서 자리하는 '협정'과 이를 수행하는 사법부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사실상 도시 전체를 총괄한다고 볼 수 있는 특별한 'IT부서'가 있습니다. 이 IT부서는 심층부 석유 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의 총 4분의1 정도를 소비하고 있다고 언급되는데요. 이 부서를 책임지는 버나드 홀랜드의 전언에 의하면, 자신과 이 사일로를 위해, 여기에 구축된 서버 컴퓨터와 그 기반 시설의 중요성은 그만큼 진지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하는데요. 이것의 중요한 이유는 TV시리즈에서 자세히 나오지만 여기에선 따로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버나드의 저 진술의 주요한 배경이 1권 후반부에 비로소 드러나기는 합니다. 마지막 장면은 저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앞선 잔스 시장과 만스 부보안관은 서로 자애하고 동시에 가족과도 같은 관계입니다. 시장의 죽은 전 남편과 만스 부보안관은 서로 친구이기도 했고, 그런 친구의 홀로 남은 부인을 챙기고 보듬어 나가는 것이 어쩌면 그의 고귀한 의무로도 읽혔는데요. 나중에 드러나지만 그가 얼마나 그녀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했는지 그 비극적인 사건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다만, 극의 전개 과정에서 TV시리즈와 원작은 전반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는데요. 전임 보안관인 홀스턴과 줄리엣의 얽힘도 그렇고, 극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인 심스의 역할이 원작에서 조금 축소된 측면이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2권에서는 과연 어떨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합니다. 극을 이끌어가는 '잔스 시장-만스 부안관-후임 보안관인 줄리엣'의 따뜻한 유대감이 중요한 요소로, 여기에 대척점인 인물이 바로 IT부서 버나드 홀랜드 세력의 양자 구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엄밀히 말해 선의와 음모의 대결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버나드는 스스로가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세상에 대한 비밀과 이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계산적이고 냉혈한에 가까운 인물인데요. 아마도 그에 대한 복선이 상당히 많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것은 아마 2권에서 많이 해소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저는 극에 등장하는 소재인 'IT부서'의 본질적인 면을 엿보고 나서, 우리의 민주주의 정체에서 시민의 안보를 위해 노력한다는 소위 정보 조직 혹은 정보국이 떠올랐습니다. 이를테면 미국의 CIA 정도가 되겠지요. 우리의 경우, 1980년에 전두환 보안 사령관이 국가의 정보와 수사를 다루는 등의 국가 권력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그에 대한 면밀한 견제가 제대로 되지 않은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부분인데요. 제가 뭐 미국의 정치를 일일이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인들 자신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CIA를 비롯한 중요한 정보 기관이 투표로 선출된 하원 의장의 강력한 감시와 견제를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의회가 이들 특수 정보 기관들을 면밀하게 감시해야만 미국 민주주의의 건전성을 지켜내는 길일 겁니다. 이 작품의 경우도(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자세히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IT부서의 독단과 전횡은 아주 큰 비중의 서술로 드러나고 있는데요. 물론 이 IT부서가 사일로 내에서 조직이 비대 해진 이유는 '과거 지구에서 벌어진 어떤 중대한 사건' 때문이겠지요. 조지 오웰도 그렇고 올더스 헉슬리도 그렇거니와, 시민을 보위한다는 명목으로 급격한 위기 상황에 자신들의 권력을 키우려는 세력들이 분명 '인간 세계'에 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는데요. 한 번 그렇게 구축된 권력은 쉽게 철회되지 않는다는 측면의 교훈과 함께 말이죠.

이 작품의 여실한 배경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 하에 투표로 선출된 대표자 뒤 장막에 숨어, 조직의 전체적인 흐름과 시스템을 통제하고 사법마저 손 아래 두고 있으며, '언제나 겉을 미소로 포장하고 은신한 어둠의 권력'이라는 소재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기도 합니다.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는 바로 이러한 측면의 불행한 서사를 섬뜩하게 보여준 작품이기도 한 데요. 저는 이 작품이 주장하는 그 무엇보다, 여기에 등장하는 지구가 왜 그 모양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참을 수 없는 의문을 갖고 있어 이 소설을 계속 읽게 될 것만 같습니다. 휴 하위의 이 야심 있는 소설이 저에게 어떠한 교훈을 줄지 이 부분도 크게 기대하면서 하루빨리 다음 권이 도착하기를 바래야겠습니다.



"당신 말은 누군가 우리 역사를 지운 이유가, 우리가 그 역사를 반복하지 않게 막기 위해서였다는 건가."

사일로 시민 모두가 품고 있는, 말하지는 않지만 막을 수 없는 희망이 있었다. 우스꽝스럽고, 근거도 없는 희망이었다. 그들 자신에게는 안 될지 몰라도 자식들 세대에는, 아니면 자식들의 대에는 다시 바깥세상에서의 삶이 가능해질지도 모르고,

그녀는 문득, 이 여자를 보안관으로 얻고 싶어 하는 이유에 얻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층에서 심각하게 전력을 규제해야 했던 것은 주로 IT부가 지닌 면제권 때문이었다.

부부 사이에 오간 삭제된 이메일들에 초점을 맞추고, 이메일이 폭발적으로 오간 시기가 앨리슨이 삭제 복구 방법에 대한 책을 출간한 무렵이라는 점을 알아차린 줄리엣은 제대로 길을 찾았다고 느꼈다. 앨리슨이 서버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더욱 강한 확신이 들었다.

줄리엣은 이 뒤틀린 공정성의 개념이 다른 이유 못지 않게 가엾은 만스를 갉아머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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