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영역의 확장 블루 컬렉션
미셸 우엘벡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미셸 우엘벡은 1956년에 스키 강사이자 산악 가이드인 부친과 의사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곳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프랑스 레위니옹인 코르시카 섬입니다. 여기서 그를 대표하게 된 우엘벡이라는 필명은 자신의 할머니가 결혼 전 쓰던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그의 작품들 가운데 필히 관통하는 주제는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사회에서 이러한 사랑을 위한 경쟁이 어떤 식으로 개인들을 더 인간의 근본적인 측면이기도 사랑과 멀어지게 되었는가에 대해 천착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투쟁 영역의 확장'이 이런 그의 작품 세계에 있어 두드러진 주제 의식을 보이고 있는데요. 이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는 그간의 세계에 있어 미덕으로 이어져 내려온 인간 본연의 온 관계와 인간성 자체를 붕괴시켜 왔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런 인식에서 가장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작가가 아마도 여기 미셸 우엘벡이 아닐까 싶습니다. 약간의 논외로 그의 작품 세계 이외에 사회정치적인 측면에서 민주주의 체제의 버팀목이라 볼 수 있는 사법에서 판사들을 국민의 투표로 뽑아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전반적으로 엘리트 지배 체제와 기득권 정치를 비판하고 있지만 이러한 아이디어는 꽤 의외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원제, "Extension du domaine de la lutte"로 지난 1994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03년 1월에 초도 번역되었고, 제가 읽은 이번 판은 열린책들의 '블루 컬렉션'으로 2017년에 재번역이 이뤄졌습니다. 현재 이 번역판은 절판된 상황입니다.

현대 산업의 맹아라고 볼 수 있는 정보 기술을 전공한 이 작품의 주인공 '나'는 우엘벡의 여느 남자 주인공 인물 조성 답게 시니컬하고 매사 의욕을 잃은 사람입니다. 저자는 다른 화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서술하고 있듯이 주인공의 내면은 꽤나 독특한 편입니다. 직접 최신의 기법을 다루면서도 기술 만능에 빠져 있지 않은, 그러면서 동물을 소재로 독특한 소설을 쓰고 있는 취미를 갖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대목은 초반부에 주인공의 입을 통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의미를 잃어가는 시대'에 그나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끊임없는 독서 뿐이라는 언급은 제게도 뭔가 마음의 공명이 되었습니다. 이미 주인공은 인간 관계 그리고 사회 전반에 대해 극심한 회의주의를 갖고 있는데요. 자신을 포함한 대다수의 남자들에게 그럴듯한 삶이 주어지지 않기에 이런 세상에서 독서가 그나마 의미가 될 수 있겠다는 체념 아닌 체념을 하고 있는 것이겠죠. 이러한 주인공의 우울한 회색빛 사고는 이어지는 2부에서 사랑이 인간의 근원적인 부분이라고 거듭 강조하면서도 섹스를 포함한 애정과 감정이라는 양가적인 정보의 교류와 이에 제외되어 있는 다른 남성들을 에둘러 언급하는 듯 보입니다. 특히 십대를 지나 젊음의 상징처럼 열정에 빠지게 되는 섹스 자체를 좀 더 노골적으로 해석한다면 '남성이 경험해야 할 권리'로도 읽히게 됩니다. 이는 경우에 따라 꽤나 지나치게 보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엘벡이 섹스에 대한 지나친 의미 부여와 적나라한 묘사를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여러 상징들과 복잡한 복선의 의미를 고려해 봤을 때, 엘리엇 로저와 같은 소위 인셀 Incel의 아류와 같은 것으로 그의 이 작품을 취급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인 '그'는 일 때문에 부득이하게 출장으로 방문한 루앙에 대해 무질서한 도시 전반을 언급하며 저렇게 사람들이 모였던 옛 광장에서 성녀 잔다르크를 화형에 처하게 했던 뼈아픈 역사적 사실을 끄집어 냅니다. 지난날 루앙의 이 비극적 연대기는 바로 그런 도시에 삶을 뿌리내리고 있는 어쩌면 사람들에 대한 비꼼으로 이해되기도 하는데요. 또한 혁명으로 왕정을 무너뜨리고 루소의 공화주의적 맥락을 현실로 옮긴 지난 역사에서 마찬가지로 '무정부주의'를 언급하는 우엘벡의 상당한 거친 도발은 마치 작금의 민주주의가 '시장 자유'의 손아귀에 있는 것으로도 읽히는데요. 더욱이 급격한 서사와 전개에 따라 막다른 길로 치닫는 3부에서,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로 다리를 다친 노인을 진정제로 안락사에 이르게 하는 '의사들'의 존재와 오로지 돈만 밝히는 듯한 치과 의사들의 행태 또한 현실에서 드러나는 신자유주의의 그림자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는 간접적으로 사회가 이렇게 비굴해지는데도 어떠한 문제 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다수의 사람들을 향해 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바로 이런 충격과 다름없는 굴절된 사회의 단면을 자신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가톨릭 신부에게 '고해 성사'와 같은 진배없는 고백으로 접하는 부분은 프랑스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 점을 달리 말하자면 현시대의 사회가 맘편히 대화도 나눌 수 없고, 과거에 숱하게 기록되었던 애정의 기억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소실된 것과 유사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작가인 우엘벡이 주인공의 회의주의적인 시각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거의 명백합니다. 자유 시장주의, 즉 신자유주의가 앞서 잠시 언급한 대로 인간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사랑마저도 쟁탈의 방식인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내몰았다는 점입니다. 남자가 여자의 구애를 얻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돈과 지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과 이처럼 물질적 허영을 충족시킬 수 있는 실질적 조건 자체가 과거의 연애 담론과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소위 현대의 사랑일겁니다. 이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도태된 평범한 남자들은 인간의 본질로써 작용하는 연애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요. 전반적으로 이러한 원인과 그것의 책임이 오로지 개인의 문제로만 국한 될 수 없다는 것이 우엘벡의 일관된 주장이기도 합니다. 만약 우엘벡의 서사대로 사랑이 예전 자유주의 시대의 낭만적인 소산이라면 지금과 같은 시장 자유의 시대에서는 그런 과거의 법칙과 여유를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해 보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러한 문제적 인식 하에 저자는 이 '완전 자유 섹스 체계'가 본질적으로 사랑이 가미된 인간의 관계를 '자유 시장주의'가 요구하는 물질적 조건과 인간성이 결여된 경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요. 이는 마찬가지로 체제 비판의 성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엘벡이 지난 언론 인터뷰에서 이슬람 교를 신랄하게 비난했던 것처럼 일견 스스로 오해를 사는 듯한 여성의 몸에 대한 정돈되지 않은 표현과 섹스를 남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는 점은 여전히 수용하기가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끝으로 일반적인 남자들은 단순히 말하자면 여성의 몸에 관심이 많고 남녀 간의 육체적 관계에 대해 열망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아무리 앞선 인식을 기본 바탕으로 잡고 주인공을끊임없이 이해해보려고 해봐도 여전히 한계는 노출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후반부에 예견되는 몰그의 락을 위해, 동료인 라파엘 티스랑을 추한 외모와 공감할 수 없는 인물로 설정해, 비극적인 죽음으로 모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섬뜩했는데요. 그의 죽음에 절반쯤 관여했다고 봐야 하는 극단적인 주인공의 행태와 그 상황 묘사는 계속 곱씹어 봐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는 사르트르의 언급대로 어떤 한 사람의 파멸을 누군가 직접적으로 겪는 것은 그것 자체로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이 지극히 냉소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관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쳐도 스스로 공감할 능력을 상실한 소시오패스의 전형과 같은 모습과 언행을 수차례 보이고 있는 점은 그가 속한 사회에서 한발 물러서서 현실을 비웃고, 평범한 인간 관계조차 거듭 회피하고자 하는 그 자체로 굴절된 인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시대와 사회에서 평범한 인간이 때에 따라 마음의 병을 얻을 수밖에 없다는 비참한 분석과 더불어, 그러한 수많은 삶들의 비틀어지는 그 근본적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우엘벡은 특유의 시선으로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원제와 한국어 제목은 의미상 상당한 차이가 있기도 한 데요. 역자의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2부에 언급되는 "자유주의 경제는 투쟁 영역의 확장이다"에서 기인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소 집중해서 읽지는 못했지만 우엘벡 특유의 귀납법 방식의 서술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번역된 제목이 저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차츰 불가능해지고, 그런 만큼 인생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줄어 간다. 온갖 화려한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고 있다. 21세기가 어떨지 뻔하다.

인간에게 사랑에 대한 욕망은 근원적인 것이다. 그 욕망은 놀랍도록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리고 많은 잔뿌리들이 마음이라는 물질 속으로 파고든다.

사랑이라는 개념은 그 존재론적인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힘의 속성들을 가져왔고, 또 지금도 가지고 있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는 분명히 섹스도 차별화의 또 다른 체계를 보여준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돈과는 전혀 무관한 문제이다. 그것은 또한 냉혹한 차별 체계인 것이다.

정신분석가들의 손에 맡겨진 여자는 결국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이 된다는 것을 나는 여러 차례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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