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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우엘벡 지음, 김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미셸 우엘벡은 1956년 인도양 마스카렌 제도의 일부인 레위니옹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생후 5개월부터 1961년까지 외할머니와 알제리에서 보내게 되는데요. 그의 부친은 의사였고, 모친은 공산주의자로 남친과 브라질로 떠났기에 일찍이 외할머니와 함께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엘벡은 할머니의 결혼 전 이름이었고, 이를 필명으로 사용했습니다. 이후 우엘벡은 파리 북동쪽의 모에 있는 고등학교인 리세 앙리 무아장에 입학하고, 프랑스의 엘리트 전문 교육기관이기도 한 그랑제꼴 NAPG에 합격합니다. 1994년에는 비로소 그의 첫 처녀작이 출간되는데, 그 작품의 이름은 '투쟁 영역의 확장'이었습니다. 1998년에는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다 준, '소립자들'이 출간되는데요. 이 소설은 즉각적으로 허무주의적 고전이라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다만 작품 활동과는 논외로, 그는 이슬람 혐오 작가라는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요. 2015년, 그 유명한 샤를리 에브도 총격 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같은 해에 '복종'이라는 작품을 발표하고, 이슬람에 대한 거의 신랄한 정도의 공격을 퍼붓기에 이릅니다. 지금 서평을 쓸 이 작품은 그의 두 번째 장편으로 원제, "Plateforme"으로 지난 2001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02년 11월에 초역이 이뤄집니다. 현재는 2015년에 개정판이 나와 있는 상황입니다.

우선 우엘벡의 이 작품을 일독하기에는 몇 가지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 묘사되어 있는 성애(姓愛) 장면이 상당하면서도 남녀의 성기를 직접적으로 포함하는 서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지금도 용납하기 어려운 '섹스 관광'이라는 소재와 비백인 인종 여성을 종속적인 성적 대상으로 삼으며 심지어 자본주의적 상품과 같이, 거의 거래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는데요. 특히 이 부분은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게 합니다. 또한, 소위 '쓰리썸'을 비롯 근친과 같은 상당히 터부시 되는 성적 묘사는 물론, 앞선 섹스 관광에 대한 서구인들의 비상식적이고 비도덕적인 가치관이 여러 문장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데요. 이 부분도 충분히 불쾌할 만한 묘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도 우엘벡 특유의 직접적인 반이슬람주의도 엿보이고, 여기에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소위, 신자유주의적 물신주의도 드러나는데, 이는 어느 정도 냉소와 비꼼의 소재로 쓰이고 있는데요. 다만 모든 인간들이 평등하다는 법적인 인식을 거의 무색해 하는 극명한 인종주의까지도 상당히 표면화 되어 있어, 소설을 읽는 각자가 이 부분을 고려하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시 문화부의 공무원으로 재직중인 미셸은 삶 자체가 권태롭고 자신의 하루하루가 냉소에 가득 찬 인물입니다. 그는 소위 배설과 같이 성욕을 돈으로 충족하고, 이러한 생활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는 인물이기도 한 데요. 인간의 성조차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는 현대 자본주의의 일상을 작가가 비판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삶의 목적성이 설사 그것이 어떤 개인에게는 전혀 고려할 만한 사항이 아니더라도 여자의 성을 도구화하고, 이성 간의 관계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계몽주의적 기반이 결여되어, 어느 정도 이성의 간여가 불가능하다면 아마도 이 점은 동물의 그것과 거의 다를 바가 없을 지도 모릅니다. 다만, 미셸이라는 인물 자체가 개인의 삶에 대한 논조 뿐만 아니라, 사회 인식 전반에 전반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비틀려 있고, 단순히 개인주의에 매몰되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삶을 둘러싼 관계에 대해, 거의 대부분 타산적인 관념으로 사고하고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 있는 점은 어쩌면 이어지는 작가의 통찰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즉, 여성의 성을 사고 팔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됨으로써, 그러한 비인간적인 관념 하에, 철저히 인간적인 측면 대부분을 상실하게 되고, 이것에 대한 어떠한 숙고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주변에서 솔찮게 볼 수 있는 '비틀린 인간'의 바로 그 전형일 겁니다. 자신은 스스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극적인 비틀림 말입니다.

이런 그에게 한줄기 서광 과도 같은 여자가 우연히 나타나게 됩니다. 미셸은 태국에 소위 '섹스 관광'을 나갔다가 발레리라는 스물 여덟의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극중에 드러나는 그녀는 일견 조신해 보이지만, 비키니를 입은 그녀의 몸매가 너무나도 눈부시게 매력적일 정도로 육체적 매력이 다분하고 무엇보다 사람을 자기의 이익과 같은 타산으로 판단하지 않는 이 시대에선 꽤나 보기 드문 인물입니다. 이는 미셸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고, 그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고 본질적으로 어떤 남자인지 미리 인식한 것인데요. 미셸 스스로가 자신이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그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과 같이, 작가의 교묘한 배치처럼, 발레리는 이에 완벽히 대응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에 기반한 발레리의 인물 조성은 평범한 남자들을 비롯 다수의 여성들이 보기에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인데요. 그녀는 자신의 꽤 이기적이고 피곤한 잣대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의 모습을 바라 볼 줄 알기에, 미쉘은 그녀를 통해, 드디어 자신이 행복을 찾았다고 확신하기에 이릅니다.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이들 커플들이 벌이는 '난교'와 같은 행위들이 농염한 에로티시즘과 같은 해석으로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 커플의 '섹스'는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너무나 친밀한 교감의 한 형태이기도 했고, 또 다른 어떤 장면에서는 '이들이 너무나 서로를 사랑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개인적으로 받을 수 있었는데요. 물론 이러한 서술들을 제가 단순히 동의한다기보다 그러한 성교 장면에 있어, 어느 정도 납득될 만한 서로 간에 짙은 감정적 전이와 충만감이 엿보였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후반부에 다소 충격적으로 벌어지는 사건과 자신의 사랑을 산산히 부숴버리는 파국이 미셸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는 슬픔과 공허함이 새어 나오는 문장들의 서사를 따라가게 되면, 한 인간의 붕괴를 우리가 직면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이 점을 통해, 작가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의미를 충분히 부여할 수 있었는데요. 설사 스스로 불완전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사랑은 그 사람에게 기적이 된다는 흡사 진정한 사랑의 진면목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인 우엘벡이 작품 전반에 녹아 있는 인간의 성을 사고 팔게 끔 하는 자본주의적 실상과 그것이 만연된 작금의 세계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싶었는지는 다소 불명확한 부분이 있습니다. 분명 끔찍한 결말을 고려해 본다면, 이러한 세계가 그에게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만한 무언가가 되지 않는다는 추측이 들기도 하는데요. 다만, 새뮤얼 헌팅턴 식의 비서구인에 대한 차별적인 인종주의와 끝내 서구인들과 달리 하등의 인종이라는 해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후반부의 어느 과학자들의 인용은 작품성을 떠나, 쉽사리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많은 평론가들은 이러한 설정이 비틀린 한 인간의 내면을 더욱 드러내게 한다는 식의 긍정적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는데요. 결국 이슬람인들에 대한 혐오를 더욱 드러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참혹한 결말과 마찬가지로 극을 이끌었던 미셸이라는 캐릭터의 소멸은 '분노가 의미하는 확정성'을 강화시킨다고 여겨집니다. '이성이 결여된 집단의 인간이 증오를 먹고 살 수밖에 없는 괴물'이라는 문답의 고리들을 다시금 여기에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우엘벡은 한 인간이 비로소 이해한 '진정한 사랑'이 이 시대에는 가히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꺼내고 싶었던 것인지 참으로 의문이 듭니다.





- 큰 의미는 없겠지만 글 10페이지에 띄어쓰기 오류, 20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미셸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종종 읽게 되었던, 존 그리샴의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와 '태국'은 미셸 개인의 삶이 극적으로 변하게 되는 장치 그 자체로 드러나게 됩니다. 휴가지에서 스릴러 작품을 읽는 미셸에게 다른 글을 권유한 발레리의 존재는 이러한 구도가 가히 극적으로 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개인적으로 이 부분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에 이미 마가렛 대처에 대한 경의와 구 소련을 악의 제국에 빗대는 엽기적인 암시로 가득한 이 머저리의 작품을 하나 읽은 적이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그가 어떻게 그곳을 빠져나왔는지가 궁금했다.

‘여기 한 무리의 바보천치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 있는 게로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누가 프랑스를 상스런 농담과 방탕의 나라라고 소문을 냈단 말인가? 프랑스는 음산한 나라, 음산한데다 행정에 찌든 나라다.

"인종차별주의의 특징은 우선 타 종족 남성들간에 적개심이 커지고 경쟁심이 더욱 거세지는 것으로 얘기할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이 경우 자기와 다른 종족의 여성에 대해 성적 요구가 높아지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오."

그녀들이 원하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단순합니다. 끊임없이 그녀들은, 꾸준한 직업을 가지고 사랑스럽고 이해심 많은 ‘남편‘이며 ‘아버지‘이고자 하는 남성과 ‘영원히‘정착해서 살 수 있다면 행복할 거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삶에서 어느 정도 변함없이 만나온 단 두 명의 여자인 발레리와 마리 잔느도 켄조 블라우스와 프라다 가방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내게 등을 돌린 적이 없었고, 결코 성을 내지 않았으며, 종종 여자들과의 관계를 그토록 숨막히고, 그토록 비장하게 만들어버리는 예측 불가능한 신경질을 낸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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