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감독의 이 영화가 곧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저는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퇴근 길에 집 인근, 조용한 상영관을 골라 이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각하의 혁명이 꼭 성공할 줄 알았고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극중 전두광의 발언은 마치, 국가를 보위하는 군인으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마땅히 이 땅의 소위 군부 엘리트들이 다른 누구보다 권력을 쥘 자격이 있다는 식으로 저에게는 들렸습니다. 흡사 국가의 위기는 선택 받은 군인들인 오직 자신들이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해석 말입니다.


지금의 시진핑이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중국 인민 해방군을 실제로 통제하고 있듯, 과거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종신 집권의 욕망과 더불어, 권력 유지를 위해 무엇보다 군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확신했을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과거 육군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라가 남과 북으로 분단 되어 있는 상황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시기에 적지 않은 국민들이 안보와 평화를 위해 군 엘리트들이 어느 정도 정치 권력을 통제하는 것이 아직 필요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을 텐데요. 어차피 이 시기는 우리 나라가 엄연히 민주주의 국가로 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 즉 더 이상 배를 곯지 않고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국가를 위해, 아직은 이 땅에 민주주의는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들이 당시에도 여전했고, 박정희 정권의 실체가 알려진 지금에야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미 많은 국민들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지만 권력은 사실, 국민과는 별 관련이 없는 어떤 무언가이기도 했습니다.


극에서 그려지고 있는 전두광의 카리스마와 함께 그의 권력욕은 정말 어떻게 보면 역겨울 정도였는데요. 마찬가지로 시사회에서 이 작품을 본 많은 분들이 "너무 극에 몰입이 되어, 여기서 나타나는 군의 요직에 있는 자들에 대해 분노가 치민다"는 후기가 여럿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국가 권력을 '탈취'하기에 이릅니다. 다만 여기에서 입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전두광은 단순히 권력에 미친 인간은 아닌 것이, 자신을 저지하기 위해 이태신 장군이 직접 행동에 나서는 걸 보고, "저 자는 명분을 갖고 행동하고 있다"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고도화 된 훈련과 교육을 받고 군내 사조직까지 결성한 이 정치 군인들이 단순히 권력에 미친 집단이라고 호도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회 조직 내의 숱한 대령들에게 전두광이 일갈하면서, "너희들도 별을 달아야지"라고 그 욕망을 부추기는 화법은 당시 군 조직에 '이태신'과 같은 정상적인 군인들이 희박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반증이라고 해석되는데요.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정적인 생업을 지키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자들이 결국 사욕을 채우기 위해 불법적으로 군대를 움직였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권력은 면밀히 관리되고 통제되어야만 한다는 금언을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영화가 끝나고,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익숙할 수밖에 없는 어느 군가가 새롭게 어레인지 되어 흘러나올 때, 서서히 긴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이때 같은 공간에서 영화를 봤던 많은 분들이 좀체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느 영화의 마지막과는 확연히 다른 오랜 침묵과 무거운 분위기가 극장 전체를 잠식하는 듯 보였습니다. 저 역시 가슴 한구석이 너무나 답답했고 영화에서 읊어지던 전두광의 진정 역겨운 나레이션들이 쉽사리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는데요. 김성수 감독의 연출은 이만큼 나무랄 데가 없었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아주 명확히 이해되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다시 한 번 되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렇게 힘겹게 쟁취한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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