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심리 - 사회심리학의 고전!1895년 초판본 완역! 탑픽 고전 3
귀스타브 르 봉 지음, 김수영 옮김 / 탑픽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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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북부 로장르로트루에서 태어난 귀스타브 르 봉은 동시대 인물들 가운데, 가히 선도적인 지식인이었습니다. 그의 가족은 브르타뉴 인의 혈통을 갖고 있었고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정부의 지방 공무원이기도 했습니다. 르 봉은 후에 인류학, 심리학, 사회학, 의학, 생물학, 물리학 등 다방면의 지식을 쌓았던 인물인데요. 그는 1866년 파리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정식으로 의사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오로지 글쓰기에 전념합니다. 졸업 후에 르 봉은 파리에 남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각 언어로 읽었고 그런 연유로 영어와 독어를 독학합니다. 1870년 보불 전쟁이 발발하자 군의관으로 입대하기 전에 생리학 연구에 관한 여러 논문과 유성생식에 대한 서적을 저술하게 되는데요. 전쟁이 끝난 후, 1871년에 파리 코뮌을 생생히 목격한 르 봉은 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적 사고관과 더불어, 그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가 평생을 견지한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은 바로 위의 사건이 주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1870년부터 당시 프랑스 학계에서 새롭게 떠오르던 인류학에 르 봉은 열정을 보이게 되는데요. 심지어 1884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아시아를 여행하고 그곳의 문명에 대해 보고하라는 임무를 받게 됩니다. 이후 1890년에는 인류학에 다소 거리를 두고, X선 연구와 같은 물리학 현상에 관심을 돌리게 되는데요. 한참 뒤인, 1922년에 르 봉은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질량-에너지 등가성에 관한 서신을 주고 받게 됩니다. 이런 자신의 물리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아인슈타인에게 자신의 심경을 솔직하게 토로하기에 이르는데요. 그는 1908년부터 심리학에 관심을 두고, 1920년경까지 파리 대학의 심리학 교수로 일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다방면의 분야에서 학문적 업적을 쌓은 르 봉은 1931년 프랑스 서부 지역의 교외인 마른라코케트에서 90세의 일기로 여생을 마치게 됩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Psychologie des Foules"로 1895년에 출간되었고, 이 국내번역본은 2023년 11월에 출판되었습니다.

저는 군중심리에 대한 사회학 논문을 쓸 것도 아니면서도 또 이렇게 서평을 작성하고 있는데요. 제 기억이 맞다면 르 봉의 이 논저에 대한 서평은 벌써 3번째가 되겠습니다. 다시 르 봉의 이 군중심리를 일독하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마치 르 봉과 허버트 스펜서가 너무나 닮아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글의 1장에서 스펜서는 따로 인용되기도 하는데요. 또한 프랑스 철학자인 이폴리트 텐 역시 저자인 르 봉에 의해 몇 번이나 언급되고 있습니다. 큰 틀에서 르 봉은 자신의 이 글을 통해, 그의 시대에 대두하고 있는 군중들이 끝내 문명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가정하에 자신이 먼저 펜을 들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인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글의 2장에서 "여성과 원시인, 어린이 등"을 열등한 진화 형태로 규정하는 부분에서는 역시나 눈이 커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1장의 도입을 지나 본젹적인 '군중의 주요 성격'을 논증하는 2장 초반의 저런 논의는 지금의 가치관으로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에드먼드 버크와 마찬가지로 르 봉 역시 과거 프랑스 혁명에 관해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보게 되는데요. 본문에서 로비에스피에르가 언급되는 부분도 그렇거니와 1871년 파리 코뮌 시기 파리의 혼란도 그에게 있어 '군중'은 개념적 분석이 먼저 필요한 사회학적 파급의 대상이었을 겁니다. 특히나 군중을 논증하는 중후반부까지의 내용 대부분은 제가 보기에 최근 극우 포퓰리즘의 먹잇감이 되었던 '분노에 가득 찬 그 군중들"과 거의 유사한 형태로 인식되었습니다. 특히 르 봉 특유의 편협하고 굴절된 의식은 2부 1장, '군중과 교육'에 대한 부분에서 더욱 도드라집니다. 이 부분을 대충 요약해 보자면 군중에게 교육은 '전문 인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이면 되는 것이고, 교육 자체가 군중에게 어떤 '도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선 지극히 회의적인 입장을 표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비틀린 논리적 전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존 듀이와는 완전히 상반된 입장이기도 한 데요. 르 봉은 스스로 보기에 꽤 성공적으로 보이는 영국과 미국의 소위 직업적인 교육을 프랑스의 상황과 비교해 봤을 때, 상대적으로 내세울 것 없는 프랑스를 여실히 비판하고 있었는데요. 이에 "기계의 일개 톱니 바퀴가 아니라 기계의 모터가 되는 것"이라는 아주 직접적인 진술은 저런 직업 교육으로 젊은이들에게 인간 본연에 본성에 부합하는 교육에 이를 수 있을지 회의적인 판단이 듭니다.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의 전문적 직업 교육만이 군중에게 유용하다는 르 봉의 핵심적 분석은 유대인과 라틴 인종들에 대해 갖는 그의 다소 차별적인 인식과 마찬가지로 불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한 그를 탐독한 후대의 히틀러와 같은 파시스트에게 어떠한 영감을 주었을 지는 대충 추측이 되었습니다.


특히나 군중들은 피암시성과 맹신을 바탕으로 광범위한 폭력에 이른다는 결론에서, 르 봉이 보기에 그들이 앞서 말한 '문명의 적'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폴리트 텐과 더불어 수차례 등장하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도 군중을 특유의 카리스마로 휘어 잡고 끝내 프랑스를 손에 넣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황제는 더욱이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몰락했다가 엘바섬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해 파리로 돌아왔고, 다 쓰러져가던 프랑스 군을 단신으로 결집하기에 이릅니다. 르 봉의 언급대로, 당시 나폴레옹은 좌중을 압도하는 위엄과 아우라로 사람들을 휘어 잡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누구보다 죽음을 넘나드는 수많은 전투를 겪은 인물에게 그 정도의 위엄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나폴레옹이 독단과 편협함에 빠진 수많은 군중들을 끝내 제어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 공화국을 무너뜨린 과정은 르 봉의 서사대로 본다면 거의 운명이라 봐도 무방해 보이는데요. 글의 전반부에서 이성이 결여된 군중이 주축이 된 민족이 정치적 무대에 들어서면서 유독 독재적 성향에 있는 지도자들이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고 진술 되는데요. 프랑스 혁명 당시 이성을 잃은 군중들을 끊임없는 암시로 폭력에 이르게 한 소위 '위엄 있는 지도자'의 존재는 앞선 일반적인 군중과 가히 독재적 상황과 맞물려, 그 부정적 파급을 실로 짐작케 합니다. 여기에서 르 봉은 마찬가지로 일관되게 군중은 이성을 상실한 무리들로 오로지 감정적 감염을 통해 확산되고, 그러한 비정상적인 감정 고양 상태가 군중을 묘사하는 중요한 설정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이성을 상실한 이 군중들이 자기들만의 왜곡된 신념을 갖게 된다면 그만큼 사회에 끼치는 위험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되는데요. 이에 "민족은 언제나 일반적 신념을 얻어야 유리하다"는 그의 평가를 인정한다면 이성의 범주 밖에 있는 신념이 초래하는 파국이란 어느 정도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이 글을 통해 어느 정도 무신론자로 이해되기도 하는 르 봉은 기독교가 지난 천 년 간, 무지한 하층민들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고 언급하고, 이러한 '종교의 시대'에서도 군중의 그와 같은 굴절된 확신은 시대를 초월해 여전했다고 평가합니다. "종교적 확신은 반드시 편협함과 맹신이 따른다"는 앞선 1부 4장의 분석은 지금의 시대에도 어느 정도 이해될 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마도 이 종교적 확신이 군중의 타협할 수 없는 신념과도 쉽게 연결될 수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르 봉은 무엇보다 인간에게 있어 이성의 존재와 지식의 긍정적인 영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개인의 신념이 인간의 이성을 벗어나는 형태로 존재할 때, 그것의 위험성은 거의 부정할 수조차 없을 겁니다. 더욱이 신념 자체는 "그 신념이 철학적 부조리를 안고 있다 하더라도 신념이 승리하는 데 걸림돌이 된 적이 없다"고 르 봉은 냉정히 평가하고 있었는데요. 또한 뒤이어 나오는 진술인 프랑스 내의 정치 제도가 군중의 완곡한 다른 이름이라 볼 수 있는 민족의 정신 구조에서 기인한다는 그의 분석을 마찬가지로 동의하고 있다면 군중과 그것을 둘러싼 지도자들의 그 영향력까지 포함한, 군중이 사회에 끼치는 파급이 그만큼 가벼워 보이지 않은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르 봉이 "제도가 사회의 결함을 개선할 수 있고, 헌법과 정부가 완전해지면 민족도 진보하며, 법령으로 사회를 바꿔갈 수 있다는 발상이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고 먼저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이것에 대한 불합리성을 그동안 철학자와 역사학자들이 애썼지만 헛수고였는데, 왜냐하면 이런 굳건한 믿음이 나중에는 제도의 개변도 이뤄내지만 사실상 이런 장시간의 과정이 민족(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는 회의로 마무리 됩니다. 결국 앞서 상세히 열거한 개인과 다른 군중의 비이성적인 속성이 민족을 도출하고 사회와 제도를 변혁시키기에 이르지만 (물론 때에 따라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만큼 논증으로 도출된 '민족성'이라는 개념은 르 봉의 말마따나 꽤나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앞으로 사회를 좌지우지하게 될 사실상 군중의 대두는 르 봉에 있어 복잡한 문제였을 겁니다. 이 글을 통해 그가 민주주의에 대해 확신하고 있다고 볼 수 없는 진술도 몇 가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국가와 사회가 함께 만들어 온 전통의 관점에서 군중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과 그것의 기반이 된 충동과 터무니 없는 확신 그리고 막무가내의 자기 암시 등은 그야말로 위험한 문제일 겁니다. 결국 2부 3장에서 르 봉이 피력하는 대로 "결국 세상을 이끄는 것이 인간의 지성"이라면 군중의 불확실성을 조금이나마 회피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은데요. 이미 그가 인정하는 바대로 "붕괴의 시간을 일각이라도 늦출 수 있는 건 출렁이는 여론과 일반적 신념에 군중이 보이는 무관심일 것이다"라는 귀결 역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자신은 결코 군중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본주의가 조장한 엘리트 지배 체제에서 자신이 누구보다 그 계층에 속하는 사람이라 확신하고 즉시 군중과 자신을 분리하려는 사람도 존재할 겁니다. 그 무엇보다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자가 얼마나 스스로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을지는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거의 회의적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 면에서 르 봉의 공격적 발언들은 어느 정도 우리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군중에 이르는 과정을 터무니 없는 허언으로 취급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동시에 선동하는 정치인이 정치적 변별력을 갖추지 못한 다수의 시민들을 분노와 폭력으로 내모는 현실과 별 반 크게 다르지 않겠는데요. 이미 시민을 한낱 군중으로 취급하는 냉혹한 자본주의적 굴절과 시민을 그저 '노동에 처하게 만드는 현실'은 신자유주의 식으로 그것을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 연유로 우리는 르 봉의 반쯤 불쾌한 이 논저를 더욱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본문 96페이지에 인용된 부분의 따옴표가 편집상의 오류 때문인지 오직 하나만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기념비적인 1895년 초판 번역에 출판사의 이러한 편집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실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믿을 수 없게도 르 봉은 민주주의와 공화제(공화주의)를 서로 대립적으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의 지적 능력, 그러니까 그들의 개성은 집단정신 안에서 사라진다. 이질성은 동질성에 자리를 내어주고 무의식과 얽힌 특성이 주도권을 잡는다.

뛰어난 사람들도 모두가 지닌 열등한 자질만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군중 안에 축적되는 것은 지성이 아닌 우둔함이다.

동요하는 군중 속에 한동안 빠져 있던 개인은 군중이 내뿜는 악취처럼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현혹 상태에 놓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일상생활의 급선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조절장치 역할을 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결코 지속하지 못할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암시는 언제나 한 개인이 다소 모호하고 어렴풋한 기억으로 착각을 만들어내고 이 착각이 증언을 통해 전염되면서 시작된다.

나폴레옹이 모든 자유를 억압하고 춸권통치를 시작했을 때 가장 열렬히 환호한 사람들은 바로 자코뱅파 가운데서도 가장 오만하고 다루기 힘든 자들이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잔인하고 무질서하며 가혹한 측면에 경악한 텐은 이 위대한 시기의 영웅들이 그저 본능에 빠져 미쳐 날뛰는 광폭한 야만인 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제도가 사회의 결함을 개선할 수 있고, 헌법과 정부가 완전해지면 민족도 진보하며, 법령으로 사회를 바꿔갈 수 있다는 발상은 지금도 여전히 널리 퍼져있다. 이런 생각은 프랑스 대혁명의 출발점이었고 여러 사회이론의 근거가 되었다.

허버트 스펜서를 포함해 저명한 철학자들은 교육을 받는다고 인간이 행복해지거나 도덕 수준이 높아지지 않으며, 교육이 인간의 본성과 대대로 물려받은 열망을 바꾸지 못할뿐더러 잘못된 방향으로 게획되면 유용하기보다 도리러 독이 된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증명해 보였다.

또한 무관심하고 중립적인 사람들 무리가 어떻게 해서 이상주의자와 수사학자들의 암시에 언제라도 복종할 수 있는 불평분자 세력으로 서서히 변모해가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따라서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거나 신념이 바뀌어서 군중이 어떤 단어를 듣고 떠오르는 이미지에 극심한 반감을 느낄 때, 진정한 정치인이라면 가장 먼저 그 단어부터 다른 단어로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도 군중의 의견이나 신념은 이성적 추론이 아닌 전염을 통해 확산한다. 노동자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도 선술집에서 확언과 반복, 전영을 통해 굳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군중의 힘이 세졌기 때문에, 하나의 의견이 권위를 인정받을 만한 위엄을 획득한다고 해도 곧 전제적 폭군이 되어 모두를 무릎 꿇게 하는 통에 자유로운 토론의 시대는 오랫동안 중단되고 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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