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락의 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1
이디스 워튼 지음, 전승희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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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의 브라운스톤에서 태어난 이디스 워튼은 부유한 가정에서 거의 부족할 것 없이 자라납니다. 여기서 워튼이라는 성은 결혼한 남편의 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결혼 전, 그녀의 성은 존스였습니다. 그녀의 부친은 조지 프레데릭 존스로 뉴욕에서 이미 존스 가문은 부동산으로 큰 돈을 벌게 되었는데, 그러한 일련의 과정은 세인들의 큰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1866년부터 1872년까지 존스 가족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으로 여행을 하게 되는데요. 그때 젊은 이디스는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하게 됩니다. 1872년 가족이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 뉴욕과 뉴포트를 오가며 지내게 되었고, 이 시점에 가정 교사로부터 면밀한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녀는 11세가 되던 해에 처음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어머니의 소설에 대한 부정적 의견으로 인해, 결국 시를 쓰는 것으로 타협하게 되는데요. 1882년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그녀의 가족이 유럽으로 떠나지만, 결국 그녀의 아버지는 1882년 칸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합니다. 뒤이어 1885년 4월에 당시 23세였던 이디스는 12살 연상의 에드워드 로빈스 워튼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 시기부터 그녀는 습작이나 다름없는 여러 단편을 쓰기 시작했고, 동시에 유럽을 오가며 인생의 여러 체험들을 하게 됩니다. 특히 이디스는 당대의 문호인 헨리 제임스와 친밀한 우정을 유지하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여러 자선 활동에도 끊임없이 힘을 보탰던 그녀는 1920년에는 순수의 시대로 소설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녀는 수년 동안 이어졌던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프랑스 제국주의의 헌신자'로 칭하기도 했는데요. 그녀가 상류 계급 여성에게 주입하는 편견을 거부했던 점을 고려해 본다면, 프랑스의 철지난 제국주의를 나서서 옹호했던 점은 뭔가 잘 매치가 되지는 않습니다. 1930년 이후, 그녀의 말년에는 여러 지식인들과 교류하고 특히 F. 스콧 피츠제럴드와의 만남은 큰 유명세를 타기도 했는데요. 1937년 6월, 프랑스에서 체류하고 있던 이디스는 갑자기 찾아온 심장마비로 쓰러져, 같은 해 8월, 자신의 부친과 마찬가지로 뇌졸중으로 굼을 거두게 됩니다. 이후 그녀의 유해는 프랑스 베르사유 인근에 있는 묘지인, 시메티에르 드 고나르스의 미국 개신교 구역에 묻혔습니다. 그녀의 이 작품은 원제, "The House Mirth"로 1905년에 미국 뉴욕에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2년 4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워튼의 이 소설은 19세기 말 뉴욕 상류사회에 속한 다소 복합적인 인물인 릴리 바트를 주요 시점으로 두고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막 서평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저는 미국의 어느 리뷰어가 남긴, "오 가련한 릴리! 그렇게 삶에서 발버둥을 쳤으면서도 돌아온 건 그렇게 원하던 행복이 아니었구나."라는 문장이 유독 생각 나는데요. 이제 1권을 소화했지만, 워튼이 구축한 릴리 바튼의 인물 조성에 절로 감탄이 나왔습니다. 더불어 버지니아 울프와는 달리 주요 인물에 대한 배경과 극을 이끄는 인물들의 서사가 이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는 점도 마음에 들었는데요. 극의 초반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6장은 비로소 주인공인 릴리의 진면목을 독자들이 대면함과 동시에, 이 소설의 중요한 축이기도 한, 로런스 셀든의 존재감을 마찬가지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릴리는 여기에 등장하는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뛰어난 미모와 아름다운 몸매 그리고 확실한 언변까지 갖춘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또한 지난날의 힘든 유럽 생활에서 체득한 신중함이든지, 주변의 인물들로부터 자신의 평판을 관리하고자 하는 노력까지, 그저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라고 볼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뉴욕의 소위 상류 계층에서 자라난 그녀는 비극으로 이어진 아버지의 파산과 그로 인해 미망인이 된 모친과 함께 어린 시절, 유럽을 돈 없이 전전하게 되면서, 상류층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그녀에게 무엇보다 자신을 드러내고 운신의 폭을 갖게 해주는 '돈'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것이 자신의 행복과 미래의 결혼 생활과 결부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되는데요. 여기까지 드러난 그녀의 이런 내력은 과연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에서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럼에도 릴리라는 인물이 전형적인 캐릭터성에 치우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이디스 워튼의 특별한 작업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릴리 자신은 유럽에서 돌아와, 어떻게 보면 조금은 까다로울 수 있는 고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했고,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거래도 할 줄 아는' 영악함도 갖고 있습니다. 더욱이 버사 도싯, 그레이스 스테프니를 비롯, 극에 등장하는 뉴욕 사교계의 여성들로부터 어느 정도 견제와 드러나지 않은 질시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인간의 명예에 대한 최소한의 금도'를 인정하고. 후에 등장하는 버사 도싯의 함정을 알면서도, 스스로가 판단해 입을 다물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남자를 잘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을 어느 정도 분산해 보려고도 하는데요. 다만, 퍼시 그라이스와의 애매한 관계는 결국 뜬금없는 그녀의 노름빚으로 흐지부지 되는데요. 이 노름빚과 함께 거스 트레너의 호의는 후반부에 그녀에게 어쩔 수 없는 파국으로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줄곧 그녀에게 견실한 우정을 보이는 주디 트레너의 존재와 사교계에서 자신의 평판을 지키고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은 아마도 그 시대 젊은 여성들의 욕망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렇지만 앞서 말한 6장 이후, 그녀가 안고 있는 인간 관계의 본질을 파악한 로런스 셀든의 진지한 충고는 아마도 13장의 파국을 예견한 것으로도 읽혔습니다. 더욱이 릴리가 무분별하게 노름빚을 지게 되는 설정 자체는 그녀가 가진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매번 그녀가 적절한 판단의 시점을 놓치게 되는 일도 발생합니다. 이런 릴리 주변의 억눌리고 비틀린 남성 캐릭터들과 달리, 사색을 즐기고, 교양을 갖춘 남성으로 여겨지는 셀든은 후반부 그 문제의 활인화 무대 이후, 릴리와의 짧은 욕망 직면했음에도 처한 현실을 고려해. 누구보다 이성적인 결정을 내린 인물입니다. 이렇게 후반부에서 나타난 릴리와 로런스의 극명한 엇갈림은 어느 정도 2권의 파국을 담은 장면들을 예상케 하는데요. 워튼은 릴리가 거스 트레너와 그 '위험한 거래'를 자기본위적으로 생각하는 여주인공의 캐릭터성 자체와 마찬가지로 2권에서 그녀의 불행이 어느 정도 예상되기도 했습니다. 

누구보다 뛰어난 미모를 갖고 있는 여성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교계에서 자신을 어필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운명과 비슷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주인공인 릴리는 누구보다 이 판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절박한 욕망을 갖고 있는데요. 거기에다 그녀는 어린 시절 혹독한 경험으로 인해 스스로를 감추면서 시의적절한 언변을 구사하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물론 워튼은 그녀를 전형적으로 영악하고 계산에 능한 단순한 캐릭터로 치부하지는 않았는데요. 그렇지만 부유한 남성을 선택해, 그것을 기반으로 자신의 행복과 연계하려 하는 전형적인 메커니즘이 지금 시대에서는 크게 설득력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의 현실에서도 사회가 관습적으로 결혼 전반에서 결혼할 남성의 소득이 중요한 문제라고 은연 중에 이를 인정하고 있기에 행복에 돈이 연결되는 구조는 시대를 넘어서는 화두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미 로런스 셀든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돈 없이 사는 방법도 다양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러한 속물적 사고에 거리를 두고 있는 부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결국 이 두 남녀 주인공은 (후반부 릴리의 진정한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엇갈린 길로 나아갑니다. 워튼이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대로, 셀든은 아마도 돌아가는 상황에서 그 답게 이성적인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워튼이 만들어내는 교훈과 그녀 특유의 나레이션과 함께한 인간 본질의 탐구는 작품 속의 인간 사회의 군상들과 맞물려, 여주인공인 릴리의 행적을 제 나름대로 예상해 보게 됩니다. 끝으로 인간 내면의 본질을 절로 의심하게 만들었던 후반부 거스 트레너의 술수로 겪은 위기로 릴리는 이제야 세상을 떠난 부친의 현실적 고난을 여실히 이해하게 되는데요. 이러한 여주인공의 성찰이 과연 2권에서 어떠한 변화를 맞게 될지 몹시 궁금합니다.    

-극중에서 셀든이 자신의 사촌을 통해 간접적으로 피력하는, '착한 여자'에 갖는 의미는 작가의 서술로 어느 정도 드러납니다. 육체적 매력이 전무하고 그저 선한 본성의 여자가 아름다운 미모와 현란한 언변을 구사하는 아이콘에게 대적할 수 없음은 우리도 대충은 인정하고 있는데요. 다만, 그런 미모를 무기로 가진 여성이 스스로가 만나는 남자들의 성의가 마땅히 있어야만 한다는 식으로 단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극에서 릴리가 친구의 남편을 통해 얻게 되는 '이 사소한 금전적 이익'은 마치 앞선 맥락의 소위 현실적 풍자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후반부에 릴리에게 가해지는 끔찍한 사건은 그것을 인과응보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겠지만 극 전반의 신중한 여주인공의 긴밀한 서사가 무력해지는 인상을 심히 받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그녀의 부드러운 흰 눈꺼풀 끝에 달린 검은 속눈썹이 쭉 고르게 난 모습, 그리고 그 바로 아래 보라빛이 순수한 백색의 뺨으로 녹아드는 모습을 순수하게 객관적으로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해 놓고 스스로 놀라서 자신의 불편한 심정을 목격한 사람을 냉대한 것은 거짓말을 한 것보다 두배나 더 멍청한 것이었다.

바트 양은 겉으로는 대화의 표면을 매끄럽게 항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동안에도 물밑에서 별도의 사고를 진행시킬 수 있는 재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릴리는 어떤 여자는 남자를 데리고 놀다가 마음껏 자신의 계획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는 존재로 내쳐버릴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를 선한 목적을 위해 쓸 수 있는 힘으로, 세련됨과 훌륭한 취향을 막연하게나마 전파하는 일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위를 획득할 기회를 주는 자원으로 생각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자신들 주변의 다른 꼭두각시들의 모든 행위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따라 하며 삶을 영위하는 수많은 자동인형 같은 인간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성격상 불편한 진실들은 그때그때 대면하는 편이라 자신의 우행의 대가로 받아들일 만한 사정에 대해 공정한 진술을 듣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건 모든 기혼녀는 해도 괜찮고 처녀는 하면 안 되는 것 사이의 구별이라는 지긋지긋한 사실로 귀착되었다.

미모의 여성이 유부남과 연애 놀음을 한다면 다만 그녀에게 다른 기회가 거의 사라져 버렸을 정도로 그녀가 궁지에 몰린 것으로 간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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