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친화력 을유세계문학전집 12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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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9년 8월 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난 괴테는 왕실고문관인 아버지와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시장의 딸인 어머니에게서 자라납니다. 부모의 신분이나 배경으로 보아 그는 꽤나 부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런 괴테는 부모에게서 유전적으로 좋은 것들만 물려받았는지 어린 나이에 신년시를 써서 조부모에게 선물했을 정도로 문학적 재능은 타고 났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후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1767년에 첫 희곡인 '연인의 변덕'을 쓰게 됩니다. 1775년에는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공인 카를 아우구스트에게 초청을 받게 되는데요. 바이마르 시절의 약 10년 간, 그곳의 정무를 담당하여 추밀참사관, 추밀고문관, 내각수반으로서 치적을 쌓고 심지어 광물학, 식물학, 골상학, 해부학 등의 연구에도 정진하게 됩니다. 뒤이어 1792년에는 프랑스 혁명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제1차 대프랑스 전쟁에 아우구스트 공을 따라 종군하고, 발미 전투와 마인츠 포위전에 참전했습니다. 바로 이 직후에 독일 문학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바로 괴테와 실러의 상봉이었습니다. 마치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와의 관계처럼 두 사람은 즉시 서로에게 매료되는데요. 1805년 실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들의 우정은 지속됩니다. 지금 제가 서평을 쓰게 될 이 작품은, 괴테가 1807년 예나에 잠시 체류했을 때, 그곳 서점 주인인 프롬만의 양녀인 민나 헤르츨리프에게 한눈에 반해 정열을 불태우다 그 연애체험의 감정적 침전물이 바탕이 되어 탄생하게 됩니다. 이 책은 1982년 뮌헨의 C. H. 벡 출판사에서 나온 함부르크 판 괴테 전집. 제6권에 실린 '선택적 친화력'을 참고로, 2023년 6월 국내에 번역 출핀되었습니다. 번역은 동의대 독어독문과 교수이자 한국괴테학회 회장을 역임한 장희창 교수가 맡았습니다.

오랫동안 유럽에서 결혼 제도의 근간이었던 기독교적 결혼관은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차츰 상실한 가톨릭의 도덕 가치 체계로서 마지막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당시 프랑스 대혁명 이후, 귀족이 중심이 된 계급 체제가 다소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귀족들이나 지주계층들이 따로 정부를 둘 지언정, 자신들의 결혼에 있어서 어느 정도는 엄격한 윤리관을 유지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개인의 욕망은 어느 정도 절제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 가톨릭이 요구하는 인간관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혼외 관계 자체를 자신의 평판과 명예를 위해 조심하는 귀족들도 물론 적지 않게 존재했습니다. 다만, 부부의 연을 맺는 두 사람이 기본과 다름없는 인간적 신뢰와 호감 혹은 존중 없이 그저 가문 간의 결합이나 부모의 이익에 따라 맺어지기도 하고, 여성의 권리 역시 기대할 수 없는 시대였기에 무엇보다 여성들이 겪었던 고통은 이루 말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한, 부유한 남작인 에두아르트는 열렬한 구애 끝에 자신이 원했던 샤를로테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초혼이 아니라 두 번째 결혼이기도 했는데요. 한편 에두아르트는 전부인이 막대한 재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남부럽지 않은 재산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의 처인 샤를로테는 천성이 온화하고, 사람에 대한 편견이 적으며, 신중한 여자입니다. 안살림을 도맡을 정도로 꼼꼼하기도 하고 남편과의 일반적인 대화에서도 그의 감정을 잘 배려하고 성숙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꽤나 현명한 아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에두아르트가 한결 같은 열정으로 오로지 샤를로테만 바라보며 두 사람이 결합할 수 있을 때까지, 긴 시간을 인내했기에 비록 두 사람이 서로에게 재혼이긴 했지만 소설의 도입부인 1부의 3장까지 이 두 사람의 이런 배경에 대한 꽤 상세한 설명이 잘 드러나 있을 정도로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의 초기 인물 구도는 뒤이어 나오는 사건들에 있어 그만큼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특히 샤를로테라는 작명은 실제 괴테가 큰 감화와 애정을 보인,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이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물론 이에 대한 증거는 다소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에두아르트에게는 오토라는 이름의 대위인 친구가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가 한 몸일 정도로 깊은 우정을 보이고 있는데요. 괴테가 간접적으로 계급 갈등을 서술했던 4장의 "귀족과 제3신분, 군인과 민간인의 대립"과 같은 사회의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에두아르트와 대위의 우정은 그만큼 견고하고 중요합니다. 대위를 위해 아내인 샤를로테를 끈질기게 설득할 정도로 에두아르트의 그에 대한 태도는 진실일 정도인데요. 약간의 복선처럼 샤를로테는 대위의 집 방문을 달가워하지는 않지만 결국 4장에서 이 세 사람은 죽이 잘 맞게 됩니다. 그러한 가운데 오틸리에라는 샤를로테의 조카가 성급한 자신의 딸에 의해 기숙학교에서 일종의 괴롭힘과 그녀를 위한 교육의 재검토 등을 이유로 두 사람의 집에 오게 되는데요. "차분하고 편견 없는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샤를로테가 자신의 남편을 향해 보이는 깊은 애정과 다름 없는 진술인, "무관심과 혐오의 감정이 보란 듯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진실한 애정이 얼마나 소중하게 평가되어야 하는지"가 마치 뒤의 큰 파국을 예견하면서, 에두아르트가 드디어 눈을 뜨게 된 그 사랑의 대상이 역설적으로 그녀의 아내가 아니었다는 진실은 뼈아프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뒤에 연이어 나오는 샤를로테와 대위의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도 젊은 남녀가 가까이 몇 날 며칠을 함께하며 쌓는 신뢰와 깊은 이끌림은 일종의 진정한 사랑에 대한 본질을 괴테가 마치 독자들에게 오히려 묻고 있는 듯 보입니다. "우리는 깊게 사랑했지만 결국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화자를 통한 괴테의 짧은 소회는 샤를로테와 이 관계에서 다소 냉정함을 되찾은 대위의 태도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가 살고 있는 지역의 많은 분쟁과 갈등을 몸소 나서 해결한 미틀러는 기존 기독교적 결혼관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다만 여러분이 괴테의 이 장편에 무엇보다 편견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부분은 각기 다른 네 남녀의 파국을 견지하면서 판에 박힌 도덕 관념과 그것을 강요하는 세태에 대해 우선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오틸리에의 행적과 그녀의 감정선을 이 곳에서 전부 다룰 수는 없겠지만 괴테가 보이는 오틸리에에 대한 애정은 어느 한 사람을 그저 오해와 편견으로 평면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흡사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오틸리에가 얼마나 진정으로 에두아르트를 사랑했는지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충격적으로 드러나기도 하는데요. 소설의 서사적 관점에서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를 그저 단순한 혼외 관계로 치부할 수 없는 여러가지 이유가 마찬가지로 극에서 존재합니다. 물론 샤를로테와 에두아르트의 친우인 대위의 거의 불륜이라고 볼 수 있는 그 관계를 빗대어 공격적으로 분석할 수도 있겠지만 앞선 에두아르트와 오틸리에, 두 사람의 사랑은 서로 간에 깊은 본심이 바탕이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괴테는 의도적으로 오틸리에에 대한 인물 묘사와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를 통해 약간의 함정을 설치해 놨기에 소설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성녀'를 배경으로 나오는 회화극과 그것에 대한 설정 자체를 독자들이 유심히 살펴봐야 할 부분이 분명 존재합니다. 덧붙여 사견이지만 이 오틸리에라는 괴테의 인물 조성은 어떻게 보면 여성 작가가 그린 다른 여성 캐릭터의 인물 설정보다도 더 여성에 가깝고, 내면의 놀라울 만한 도드라진 감수성을 엄청나게 만들어 낸 점은 아마도 괴테의 특출난 점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는 그의 다른 작품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도 이러한 부분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저는 이 작품의 결말에서 드러난 에두아르트에 대한 오틸리에의 애달픈 진심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앞선 부분에서 치밀하게 짜놓은 괴테의 서사적 판에 감탄을 금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더욱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부분은 주변에서 선한 의도를 내세우며 관계를 맺고 있는 가운데, 그저 재미와 호기심 따위로 사람들 간의 관계를 파탄으로 내모는 인간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선택적 친화력이라는 작품은 인물 간의 관계와 이들이 나누는 대화와 행위 전반이 맹목적인 관념으로 흐르지 않아 어떻게 보면 극을 이루는 흐름이 꽤나 명료하고 단순합니다. 그 와중에 등장하는 백작과 그의 불륜 상대인 남작 부인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조종하면서 스스로의 의도에 맞게 그저 호기심과 재미로 터무니 없는 조언과 조정을 일삼는 인물"인데요. 이러한 행동을 벌이는 그녀와 같은 인간들은 자신의 행동을 무엇보다 선의로 포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못지 않게 오틸리에에 대한 판단도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 놔야 할 것 같은데요. 아마도 이 작품을 쓴 괴테 역시, 이 부분에 있어 해석 상의 여지를 자신의 의도대로 따로 만들어 놓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런 인상을 받았는데요. 물론 이 소설은 무엇보다 '사회적 소설'답게 모두에게 인간 관계 전반에 대한 열띤 토론과 대화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1부 4장에서 화자인 샤를로테가 "여기서 말하는 친화력이 라는 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요?"라고 묻는 장면이 있는데요. 앞선 대위의 발언이 구체적으로 친화력을 뜻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초입부터 그녀가 친화력이 무엇이냐는 질문 이전에는 이 '친화력'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샤를로테의 저 질문이 맥락 상 무조건 뜬금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번역상의 문제로 여겨집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누가 더 보태 주고 더 받았는지 계산할 수 없을 만큼 서로 간에 신세를 많이 지고 있소."

"당신네 여자들은 이런 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당해 날 수가 없소. 처음에 조리 있는 말로 우리가 반박할 수 없게 하고, 이어서 사랑스러운 말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따르게 하고, 다정다감한 태도로 우리가 당신네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만들고는, 마침내 예감 운운하며 우리를 숨막히게 만들고 마는거요."

무관심과 혐오의 감정이 보란 듯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진실한 애정이 얼마나 소중하게 평가되어어야 하는지를 그녀는 살아오는 동안 충분히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자신긔 바깥에 있는 모든 것을 그런 식으로 다루지요. 인간은 동물과 식물, 원소와 신들에게도 자신의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제멋대로 같다 붙이고 말아요."

"부부 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가는 자, 말이나 심지어 행동으로 윤리 사회의 근본을 해치는 자는 내가 그냥 두지 않을 거요."

이 여자는 누구보다도 잘 자제할 줄 알았는데, 이러한 자제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주 특별한 경우에도 평범해 보이게끔 위장해 주는 법이다.

샤를로테는 천성이 온화하고, 결혼 생활에서도 의도적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는 일 없이 사랑스러운 연인의 태도를 지키는 여인들 중 하나였다.

순결한 감정에 싸인 채 바라 마지않는 행복의 길을 가는 오틸리에는 에두아르트만을 위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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