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9
케빈 패스모어 지음, 이지원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케빈 패스모어는 영국 워릭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맨체스터 대학에서 강사로 경력을 쌓은 뒤, 현재 카디프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현대 유럽사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지난 유럽 제국주의 역사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갖고 있기도 한 데요. 여기에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전체주의, 즉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왔고, 프랑스의 경우는 1945년 이후에 진행된 프랑스 정치의 전반적인 맥락을 영국 지식인으로서는 드물게 꽤 해박한 이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최근까지 준비 중인 대전 당시, 마지노선을 아우르고 있는 '알자스-로렌 지역에서의 프랑스 군인과 민간인 연구'는 이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또한, 그는 1870년 이후 유럽의 극우라는 다소 민감한 주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거침없는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Fascism : A Very Short Introruction, Second Edition"으로 지난 2014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6년 9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패스모어의 이 글을 일독하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히틀러의 나치즘이 등장한 배경에는 제국주의 경쟁에서 뒤쳐진 후발주자라는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비롯된 굴절된 분노가 그 원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요. 또한 4장에서, 히틀러가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이 절멸되어야 전쟁이 끝난다"고 공언했던 점과, 5장에서 히틀러가 "영국의 인도 지배"를 인종주의적 차원에서 이해했다는 분석은 어느 정도 짐작되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런 진술을 접하게 되니 정치 전반에 대한 깊은 회의가 들었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저자는 히틀러가 어느 정도는 무솔리니의 그림을 참고하기는 했지만, 다소 명백하게 그와 무솔리니가 다른 점은 지극히 인종주의적이었다는 점입니다. 600만이 넘는 유대인들을 '가스실 절멸'로 처분했던 역사는 그 자체로 충분히 비극적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프랑스의 극우 정치를 이끄는 자들이 '히틀러의 이 유대인 절멸'을 수정주의적 시각으로 재편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작금의 현실이 실로 믿겨지지가 않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글 후반부에 저자는 유럽에서 불고 있는 '극우 정치'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기도 합니다. 1945년 이전의 파시즘이 지금의 극우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명백하게 구분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들 일부가 "훌리건과 스킨헤드의 정치학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는 패스모어의 평가는 실로 암울한 유럽 정치를 끄집어 드러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외에도 패스모어의 이 논저는 다른 어떤 글보다 과거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에서의 정치적 대두와 집권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진술하고 있는데요. 특히 무솔리니의 파시즘은 주변의 국가들에게 참고 사항이 되었고, 당시에 공산주의 혁명에 두려움을 갖고 있던 비슷한 부류의 정치인들을 포함한 유럽의 정치 지형에 있어 매우 불행한 역사가 되었습니다.특히 오랫동안 유대인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지독한 편견인 "반유대주의"에 있어, 파시즘 정치가 동일한 연대를 취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극우 포퓰리즘 내지는 극우 정치가 드러내는 이슬람 이민자들에 대한 배타적 편견, 내지는 전자와 다를 바 없는 인종주의에 경도되어 있다는 점은 단순히 지금 정치가 파시즘이냐 그렇지 않느냐를 따져 물을 계재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특히 당시에 '코포라티즘'으로 교묘히 포장된 파시즘이 거대 자본가들을 포함한 자본가 계층에 있어 '사회주의 혁명'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지렛대로 삼았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그 모습 자체'가 더 악랄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지금 시점에서는 파시즘과 파시스트라는 단어 자체가 일종의 멸칭으로서 쓰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파시즘과 전체주의 정치에 경도되었거나 지지하는 세력들이 오늘날 극우가 내포하는 폭력의 문제와 인종주의를 희석하는 데, '실체가 없다'는 식으로 나아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다음으로 놀라웠던 점은, 최근 이탈리아에서 베를루스코니와 연합했던 AN, Allenza Nazionale의 전신, 이탈리아 사회운동당 (Italian Socal Movement, MSI)이 무솔리니의 그늘에서 시작된 정당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의 역사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한 이탈리아 정치가 마치 '극단적인 돌연변이'처럼 현재에도 이르러 이탈리아 정치를 베를루스코니와 함께 막장으로 이끈 것인데요. 우선 이탈리아의 민주주의를 과연 어떻게 인식해야 될지도 문제지만, 여기서 분석되고 있는 유럽의 뉴라이트 New Right 처럼, 극우 정치의 토양이 먼 외부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패스모어는 최근의 미국 네오콘이 극단적인 시장 자유주의를 옹호했다는 점에서 극단화 된 보수 정치의 양상이 유럽과 미국에서 상이하다는 해석도 첨부되어 있었는데요. 최근까지 프랑스의 신자유주의가 극단적인 양상을 띠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이들 극우세력이, "민주주의에 대해 적개심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현 상황이 실로 근심이 되었습니다.

끝으로 과거 독일에서의 나치즘은 이것을 수행한 대부분의 나치들이 인종주의와 더불어, 동성애 혐오에 빠져 있었던 점은 그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과거 대부분의 나치들이 '부르주아의 도덕성'을 여실히 경멸해 마지 않았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계보를 이은 작금의 극우 포퓰리즘도 그와 같은 전제로서 거의 일치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더불어 '우생학'적인 맥락에서 인간을 분류했던 점도 동일하고 앞서 언급한 반유대주의와 이슬람 혐오를 비교해 본다면 과거의 파시즘과 지금의 극우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 있는데요. 나치와 전체주의적 폭력은 자신의 지난 과거를 전혀 반성하지 않은 카를 슈미트와 같이 오만한 태도로 점철되었습니다. 이에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성찰하는 존재'로서의 모습이 여실히 결여된 수정주의적 입장과 같은 왜곡된 현상이 극우 정치의 계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후반부에 도출되고 있는 저자의 조언처럼 우리가 '정치적 변별력'을 통해, 20세기 파시즘이 남긴 정치에 있어서 그런 침식을 과연 유럽과 민주주의 정치 전반이 극복할 수 있으리란 희망은 아직 아득하기만 합니다. 특히 여전히 사회진화론을 비롯한 사회다윈주의를 옹호하는 세력들이 있고 그러한 영향력이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는 우리의 민주주의와 작게는 기본적인 학문적 입장에서 사회학의 건전성을 해치는 경우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는 단순히 학문의 자유라는 측면에서의 막연한 권리가 아니라 이를테면 교육 받은 시민이 이를 구분해 내고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여겨지는데요. 따라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현실 정치를 보다 건전하고 올바르게 만드는 시민의 의무를 잊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파시즘의 정의는 파시즘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수만큼이나 많고, 그중에서 어떤 정의가 옳은지에 대해서도 합의된 바가 없다.

파시즘은 기본적으로 산업혁명 이전의 엘리트 세력과 프티부르주아지, 그리고 농민의 결속에 기반을 둔 반 근대 운동이었다.

전체주의 권력은 (가족, 교회, 노동조합 등) 모든 대안적 연대를 파괴하여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고자 한다.

보편적 법칙으로부터 도출된 설계도에 따라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고 보는 계몽주의 사상은 분명 파시즘에 일정 부분 반영되었다.

그때까지 대학의 교수 사회를 지배하던 변호사들과 의사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는 경향이 특히 심했고, 앞서 살펴본 인종주의, 우생학, 심리학, 역사학 분야의 사상들에 관심이 많았다.

의사들과 변호사들은 그들에게 신적 권능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인 우생학 이론을 옹호했다.

반면에 파시즘은 대중에 기반을 둔 새로운 엘리트 계층의 부상과 이들이 이끄는 대중 정당을 전제로 한다.

유럽 보수주의의 새로운 특징으로 부상한 이들 대중 정당은 파시스트를 모방하고 그들과 경쟁했지만, 기존의 권위 주체에 복종했고 독점적 지위를 얻지 못했다.

르 펜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수정주의적‘ (즉 홀로코스트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시각에 동조한다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뉴라이트는 한 민족의 고유한 특질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소수족에 대한 차별이 불가피하며, 그것은 모든 인종이 자신의 순수성을 지킬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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