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의 탄생 - 일본, 그리고 조선이라는 경계 아이아 총서 106
권혁태.차승기 엮음 / 그린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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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 그리고 조선이라는 경계'라는 의미심장한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일종의 논문 모음집으로 권혁태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와 차승기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의 편저로 이뤄진 논저입니다. 이 글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여러 논문들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주목해봐야 할 관점은 일본의 전후가 일본인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패전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 되는 원인들이 있었고, 특히 1945년 맥아더가 주도했던 GHQ의 소위 일본 통치 계획 가운데 일왕제(일본인들이야 자신들의 국왕에 대한 호칭이 대내외적으로도 천황이 맞다고 주장하겠지만 앞 글자인 '천天'자의 의미를 그저 종교적인 측면에서의 의미로 국한한다 하더라도 천황이 주도가 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은 한국에게 있어서는 마땅히 '일왕'이라 칭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를 온존시키는 소위 '국체國體'의 문제와 그에 따른 당시 일본 지식인들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제한적인 인식은 아마도 제국주의 침략이라고 볼 수 있는 태평양 전쟁과 미국에 의해 패전에 이른 1945년 8월 15일을 완벽하게 분리시키는 결과 초래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따라서 이 논저는 왜 일본인들의 역사에서 식민지 조선이 삭제되었고, 오히려 자신들이 사실상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게 되었는지를 사상사적인 측면과 역사 및 철학적인 부분에서 이를 명백히 고찰해보고자 하는 기획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의 서지 정보는 2013년 4월, 그린비 출판사에 의해 국내에 출간되었습니다.

일전에 시라이 사토시는 현재 학계를 비롯 일본 국민 대다수가 과거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의 종결을 패전이라 지칭하지 않고 그 의미가 의심스러운 '종전終戰'이라는 단어로 전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분석한 바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전후' 사건을 바라보는 많은 일본 지식인들에게 결여된 것이 있는데 ;일왕의 전쟁 책임'에 대한 인식입니다. 이 책에 이름을 올린 일본 도쿄외국어대학 종합국제학연구원 교수인 나카노 도시오는 맥아더가 일왕제를 존치시킨 것은 미군에 의한 일본 통치에 있어 전반적인 협력과 순조로운 권력 이양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는데요. 1945년 8월 이후에 소련의 위협이 얼마나 가시화 되었는지는 불확실합니다만 미국 입장에서 일본의 빠른 정치적 안정화와 그에 따른 일본의 정상 국가화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일임은 거의 분명해 보입니다. 이후에 도쿄 전범 재판도 그렇고 일본의 전후 처리 과정이 그처럼 졸속으로 처리된 이유는 이처럼 명확한데요. 그래서 2차 대전의 전범국임에도 불구하고 정상 국가로 향하는 데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되었던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의 발발은 뭔가 역사의 아이러니처럼 느껴지기 까지 합니다.

근래 일본 내애서 사상적으로 재조명을 받고 있는 마루야마 마사오는 국민의 개별적 사상과 직업 등을 균질화 시키는 나치즘을 제국주의와 구별하여 비판하면서도 이상하게도 일본 제국주의에 있어 식민지 조선에 대한 문제를 아예 기억에서 소거 시킨 그의 역사적 태도는 어떻게 보면 현재 일본 내의 소위 '리버럴 지식인들'의 전후 인식과도 상당히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과거 일본 제국주의로 인한 여타 아시아 국가들의 막대한 피해와 이를 말도 안되는 이유로 합리화 시킨 야욕을 선선히 인정하는 인사들이 일본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은 매우 특이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지금 일본 내부의 극우적인 움직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유주의적 구분법인 소위 리버럴한 계층 역시 전후 역사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인사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더욱이 빠르게 역사수정주의적 입장에 매몰되고 있는 일본 내부 인식이 대내외적인 정치 상황과 맞물려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도 우려할 만한 일인데요. 이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 시절에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지낸 아베 요시시게의 조선 식민지 인식에 대한 태생적인 한계가 지금의 일본인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황국신민화 혹은 내선일체를 통해 일본인들과 일왕의 통치하에 있는 조선인들이 서로 평등한 조건이라고 당시 제국 일본인들은 그렇게 여겼으나 실상은 조선인들 자체가 일본 제국주의에서 그저 이등 국민에 불과했던 것이 명백한 사실인데요. 여기서 수차례 인용되고 있는 그 '자유 의지'에 따라 적극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한 조선인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식민지 조선인들은 그저 착취와 지배의 대상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더욱이 당시 조선에 있었던 대략 60만 이상의 '재조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조선인들에게 어느 정도 가혹했던 존재들이었으며, "실제로는 역사에 등장하는 조선 식민자의 삶의 방식은 놀랄 정도로 섬뜩하고 변호의 여지없이 사악하다. 서민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서민이 관헌 이상으로 강력한 국가주의자였다. 그들은 조선인에 대해 국가의 논리로 완전무장한 냉혹한 에고이스트였고, 거리낌 없는 편견을 가진 차별과 가해의 실행자였다."라고 이 책의 1장과 2장에서 재조 일본인들의 이중적인 행태를 이처럼 증언하고 있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마루야마 마사오가 죽을 때까지 일본 제국주의를 분석하는 걸 거부했다는 일화는 참으로 우리에게는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전에는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폐쇄 국가'였던 일본은 미국에 의한 강제 개항 이후,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근대화에 성공하게 됩니다. 지금도 일본인들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차이가 나는 이 특별한 역사적 성취에 대해 지금도 큰 자긍심을 갖고 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당시 근대 일본 지식인들이 떠오르는 국수적 내셔널리즘과 팽창주의를 불가피한 것으로 취급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우면서 역사의 후퇴라고 여겨집니다. 동아시아의 유교 문화권에서 중국과 조선의 영향을 받았던 일개 왕조내지는 봉건 국가가 30년도 채 안되는 시기에 자신들을 서양인의 그것으로 동일시한 점은 관념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내셔널리즘 자체를 아무리 특수한 국가주의라고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주변의 전근대적인 왕조들을 정복할 명분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볼 수 있는데요. 저들이 서양의 제국주의를 경멸하면서도 스스로 탈아적인 제국주의 국가 된 것은 그것대로 아이러니한 사건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이것은 조선과 청나라에 행했던 자신들의 명백한 침략을 지금으로선 '소각'과 '단절'로 치부해버리는 국민성을 과연 어떻게 분석해야 될지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일본 내의 대표적 자유주의적 사상가로 알려져 있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한계와도 일치하며, 일본이라는 국가의 정체가 자신들이 일으킨 침략의 역사에 진정으로 맞닥뜨려 보고자 하는 용기조차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사회 전반과 그 인식이 반쪽 자리 국가와 국민들로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러한 비정상적 관념들은 많은 일본인들이 '민주주의'에 갖는 뿌리 깊은 인식의 한계와도 연계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여기에 일본인들이 구축한 민주주의 자체가 애초에 미국에서 도입된 것으로 해석되고, 더 나아가 요시다 독트린과 같은 이중적인 정치적 타협이 공개적으로 도출된 것은 어떻게 보면 과거 민족주주의에 대한 그들 스스로의 이중적인 인식과 다름이 없는 것이 아닌가 판단해 봅니다.


끝으로 조선인들에 대한 강제 징용과 그것에 대한 한국, 일본 양국의 인식 차이는 물론이거니와, 소위 조선 역사를 오랫동안 연구한 일본 연구자들 중에도 어떻게 보면 인종차별적인 인식론에 근거해, 과거 조선을 해석하는 일도 거리낌 없이 나타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한중일 간에 역사학자들이 모여 동아시아 역사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려는 노력이나 더욱이 일본 제국주의 시기의 일본의 침탈과 침략에 대해 지금까지 아무런 소기의 성과가 없는 것은 일본인들의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이 부재하기 때문일 텐데요. 역사 문제를 국가의 정체와 끊임없이 연결시키는 저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조차 '반일 민족주의'로 몰아가는 인사들이 한국 내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문제 해결을 위한 큰 걸림돌이기도 합니다. 일전에 아베 총리가 고노 담화를 무력화시키려고 했을 때, 당시 오바마 행정부가 일본에 압력을 넣은 것은 익히 잘 알려져 있기도 한데요. 어떻게 보면 우리의 위안부 문제나 강제 징용 문제에 있어 일본 정부 자체거 '식민지 조선'이라는 역사적 지점을 아예 삭제하고 방기하고 있는데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국가체제가 표방하는 ‘민주주의‘는 헌법 제1조가 가리키는 것처럼 ‘천황제‘라는 군주제를 여전히 떠받들고 있다. 그런데 이 나라는 과거에 천황의 이름으로 제국주의를 발동해 침략전쟁을 행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말한 사실로 비추어 볼 때, 패전 직후의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구체제를 유지하려는 힘, 변혁을 자신에 유리하게 왜곡해 돌리려는 힘, 혹은 변혁을 회피하고 이를 이용하려는 힘이 여기저기 현실에 강하게 작동되고 있었다.

전쟁이라는 악의 근원이 "거칠고 흉포한 군인"에 있고 힘없는 자들은 그 폭력에 대항할 수 없었다는 것이 되면, 많은 일본인들은 피해자의 얼굴을 하면서 전후에 등장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모두가 피해자였다면 폭력에 굴복해 전쟁에 협력한 과거가 있어도 특별히 부끄러운 일이 아니게 된다.

식민지 제국으로서의 일본의 식민주의가 일본인들을 오히려 그 저변에서 포섭해 침략전쟁과 식민지 경영에 동원해 나간 방법은 그대로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을 봉인하는 장치와 연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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