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 - 우리의 자화상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98년부터 발간중인 월간 <인물과 사상>의 주필로도 잘 알려져 있는 강준만 교수는 날카롭고 간혹 통찰력 있는 글쓰기로 유명한 비판적 지식인입니다. 그는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위스콘신대에서 신문방송학 박사 학위를 받는데요. 이후 전북대 사회과학대학 언론심리학부(신문방송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글쓰기와 관련하여 두 가지 정도의 흥미로운 점이 존재합니다. 1995년에 출간한 그의 논저 "김대중 죽이기"로 비판의 성역이라고 볼 수 있는 민주화 운동의 대부격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다각도로 분석했고, 이후 인물과 사상을 통해 대상의 실명을 거론하며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등의 방법은 큰 학계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는데요. 더욱이 강교수는 자신의 이러한 글쓰기를 위해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단순의 어떤 주장의 근거를 위해서 일 뿐만 아니라, 이렇게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 그 스스로가 자신의 글쓰기에 얼마나 진정성 있는 태도로 임하고 있는지 대략 짐작할 만하다 생각합니다. 따라서 최근 윤 대통령의 발언으로도 유명한 '반지성주의'를 다룬 그의 이 책은 2022년 11월에 출간되었습니다.

우선 반지성주의를 기본적으로 논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기존의 지식 엘리트들이나 전문가들의 정치에 반대하고 더 나아가 이러한 시스템을 배격하는데 이르는 일반 대중들의 소위 탈지식주의적 이행을 다소 온건하게 해석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에 저자가 따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이 반지성주의가 극우 포퓰리즘과 깊은 연관성이 맺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1장에서 잠깐 언급되기는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사례가 이 양자 간의 인식적 맥락을 잘 드러내는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선 호프스태터가 분석한 미국 사회 내에서의 반지성주의와 최근 윤대통령이 언급했던 반지성주의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이 한국적 반지성주의는 아무래도 기본적인 인식과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연유로 저자는 가용성 편향, 확증 편향, 부정성 편향, 이야기 편향 등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여러 사례들을 제시하며 '한국적 상황'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런 인지적 편향에 쉽게 사로잡힐 수 있는 인간의 기본 맥락이 소위 말하는 합리성과 합리주의와는 어울리지 않는 분석에도 어느 정도 수긍이 될 정도였습니다. 더욱이 진영 논리는 자신이 인정하고 긍정하는 정치적 세력의 입장에서 현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편향에서 단순히 소위 '우리 편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금의 환경 상 저 역시 회의적으로 보고 있으며, 특히 양 진영 뿐만 아니라 다수 시민들과의 소통이라는 근본 가치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현실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이러한 가운데 정치를 얼마 해보지도 않은 대통령의 입에서 반지성주의가 나올 정도면 우리의 상황이 실로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합니다.

개인적으로 반지성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식의 추락',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요즘의 MZ세대가 다수의 책을 통해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불명확하고 편향적이면서 사실로 입증되지 않은 악의적인 프로파간다와 다름 없는 것들에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지식인들이 자본주의에 결탁한 것도 그렇고 소위 적지 않은 전문직이라는 자들이 비공개 익명 게시판 등을 통해 자신의 이익과 그것을 바라보는 일반 시민들을 경멸하는 것을 봤을 때, 이러한 한국 사회의 반지성주의의 흐름이 원인과 결과가 눈에 그려지는 일반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자인 강교수가 분석하고 있는 이런 반지성주의적 경향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분별한 물신주의화가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자가 꼭 집어 신자유주의를 언급한 것은 저에게는 큰 설득력을 갖고 있었는데요. 민주주의 자체에서 건전한 지식에 대한 반지성주의를 통한 배격은 무엇보다 자본주의의 극단적 이행, 그러니까 미국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과도하게 물질주의에 경도 된 사회의 왜곡된 현실에 그 책임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또한 1장 후반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일반적인 '팩트' 현실에 대한 저자의 분석도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었습니다. 단순 명료한 팩트로 사회의 복잡한 현실과 갈등 상황을 온전히 해석하기 어렵기에 역사와 그 구조를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 되었습니다. 다만 팩트와 그에 따르는 최소한의 진실성을 거부한다면 지금보다 더 가짜 뉴스가 넘치는 탈진실의 시대를 목도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탈진실은 오늘날 더 심각해지고 있는 극단주의와 맞물려, 끝내 민주주의를 종말로 이끌게 되는 병적인 징후이기도 합니다. 리 매킨타이어의 '포스트 트루스'에서도 드러나듯 자극적이고 규명되지 않은 거짓과 다름없는 이야기들이 무분별한 상업성과 만나서 언론을 비롯한 넷미디어 상에서의 돈을 위해 확산될 수밖에 없는 이런 풍조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호프스태터가 교육의 변화를 추구한 존 듀이를 비판한 것은 너무나 짧은 생각이라고 여겨지는데요. 포퓰리즘이 어느 정도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인들의 보다 큰 관심을 추동한다 하더라도 포퓰리즘 정치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없듯이, 마찬가지로 반지성주의로 인한 얼마간의 긍정적인 기대 혹은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더라도 조악한 이익 만을 위해 이들 양자를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2장부터 4장은 최근 우리의 현실 정치를 비판한 내용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의 탁현민 전 의전 비서관이 수행한 '홍보 정치','검경 수사권 분리'와 관련된 민형배 의원의 탈당 문제 그리고 현재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지금 대통령의 영부인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탁현민 전 의전 비서관과 관련하여,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의 일련의 홍보 작업들이 다소 적절치 못한, 더 나아가 위선에 가까운 것들을 저자가 논하고 있었는데요. 사실 문재인 정부의 여러 문제들은 저 역시도 심히 공감하고 있고 더욱이 촛불로 탄생한 정부가 확실히 정치적 원동력은 다른 정부들에 비해 대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정치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점은 상당히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검수완박과 관련된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과 관련해서도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일종의 배신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다만 검경 수사권 분리는 확실히 필요한 부분으로 과거 5공 시절 이후 탈권력화에 이른 국가 정보원을 고려한다면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검찰의 개혁은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여러가지 제도적 개선과 법적 적용이 필요해 보이긴 합니다만 실질적으로 많은 토론이 전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개혁은 분명 시급해 보입니다. 마지막 윤 대통령과 근래 영부인에 대한 여러 논란에 대해 저자는 윤 대통령에게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었는데요. 최근 대통령 부처에 대해 저자가 보이는 허탈함은 분명 이해가 되었습니다.        

끝으로 소위 잡지식을 표방한다는 <인물과 사상>의 전체적인 논조를 고려해 본다면 강교수의 이 책은 그야말로 일관성 없는 글 모음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장의 반지성주의에 대한 꽤 상세한 분석을 인정하더라도 이후 2장부터 이어지는 엄선된 주제들은 아무래도 1장과는 사뭇 거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크게 만족스럽지 않았는데요. 그리고 저자가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과 소위 문빠들에 대한 비판과 586 운동권에 대한 상당한 실망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만 그렇다고 진모 교수와 같은 사람을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는 것은 사뭇 동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앞으로 윤 대통령과 지금의 정권에 대한 글들이 쏟아져 나올 테지만 현재 보여지는 우리 정부의 모습이 과연 모두의 동의를 받을 정도로 국정의 난맥을 잘 조절하여 진정한 정치를 위해 나아가고 있는지는 굳이 대통령을 반대하는 59%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심히 우려스러운 건 사실입니다. 물론 저자의 의도와 더불어 스스로의 정당한 의견을 무조건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컸기 때문에 여러 정책적 패착에 대한 일부 시민들의 분노가 윤 정권을 낳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윤 정부 초기에 보였던 전 정권에 대한 '대결주의'를 우려스럽게 봤던 사람으로써 아직도 이 정부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것이 지금 정부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호프스태터가 "반지성주의는 미국의 민주적 제도나 평등주의적 정서에 바탕을 둔다"고 했듯이, 미국은 반지성주의에 매우 우호적인 건국 발전 과정을 거친 나라다.

나는 그런 두 가지 전제와 더불어 반지성주의를 "이성적 합리적 소통을 수용하지 않는 정신 상태나 태도"로 정의하면서 그 3대 요소로 신앙적 확신, 성찰 불능, 적대적 표현을 제시하고자 한다.

물론 평등주의, 물질주의, 지성의 자기소외는 반지성주의와 사회적 배경 중 일부일 뿐이다.

반지성주의는 사회 전반의 소통의 질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로서 그 의미를 갖는다. 반지성주의는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과 무관하지 않으며, 특히 지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지식인과 전문가 집단에 대한 불신을 온상으로 삼아 번성한다.

우리에겐 사회 구성원으로서 원할한 소통을 해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반지성주의에 대한 논의가 그런 당위를 환기시키고 실천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01-01 0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02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9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9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