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트루스 - 가짜 뉴스와 탈진실의 시대
리 매킨타이어 지음, 김재경 옮김, 정준희 해제 / 두리반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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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매킨타이어는 근래 미국에서 주목 받는 철학자로 웨슬리언 대학에서 사회과학 학사를 그리고 미시건 대학에서 철학 석·박사를 취득합니다. 이후 그는 미국 보스턴 대학의 철학 및 과학사 센터의 연구원이자 일반인들을 위한 평생 교육원의 기능을 하는 하버드 익스텐션 스쿨의 윤리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킨타이어는 스스로를 철학자로서의 정체성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과학을 훼손하려는 시도와 그러한 시도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과학자들에게 제공하고 있기도 한데요. 그런 측면에서 그는 여러 사회 철학 방법론을 담은 에세이들과 더불어 인간 행동 과학과 일반적인 순수 과학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 글도 출간하기에 이릅니다. 최근에 나온 그의 저서, '과학 거부자와 대화하는 방법'은 그의 이러한 관심사를 잘 드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그의 이 책은 원제, "Post-Truth"로 지난 2018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9년 5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매킨다이어의 이 글은 제목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오늘날 정치권을 비롯한 소셜미디어 등에서의 광범위한 탈진실 상황을 분석하고 이러한 사회병리적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탈진실 즉, 사적일 뿐만 아니라 공적인 무대에서 거짓말을 무분별하게 일삼는 행태는 우리의 민주주의에 있어 커다란 위협임은 분명합니다. 이 같은 거짓말과 날조된 이야기들이 범람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있어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인지는 많은 토론이 있어야만 할 듯 싶은데요. 다만 글 초입에 저자가 통찰로서 밝히는 '진실이 개인의 정치적 입장에 종속된다'는 문장은 오늘날의 세태를 아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봐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특히 최근에 우리 역시 앞선 탈진실의 상황을 직접 목도하기도 했는데요. 분명한 진실에 대해 정치인들이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세법, 사적 이익, 당파적 이득에 몰두한 점은 과거 트럼프 시대에서 창출한 '대안적 사실 Alternative Facts과 같은 탈진실이 잉태된 시작점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현재 전세계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탈진실의 원인에 있어 과학부인주의와 인지편향이 자리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뒤의 6장에서 강하게 주지하고 있듯, "과학은 '가치'가 아니라 '사실'에 몰두하는 학문"입니다. 특히 많은 인문학 전공자들에 의해 '과학적 사실'에 대한 비틀기와 왜곡이 과학 자체를 경멸하고 부인하는 흐름을 만들어냈는데요. 앞 장에서 언급되고 있는 "폐암에 있어 흡연의 관련성"과 '지구온난화에 대한 본질" 등은 자신들의 이권이 달려 있는 거대 기업과 그들과 유착된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에 의해 부정 되기에 이릅니다. 위의 두 가지 사례는 더 이상 입증될 필요도 없이 수많은 근거 자료들이 넘쳐 나고 있음에도 소수의 알량한 이익을 위해 진실이 마치 이데올로기적 정치 토론과 같은 접근법으로 오도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이 책에서 드러난 저자의 논증을 조금 확대 시켜 "기업들의 이익을 해치지 않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불사할 수 있다는 반사회적인 관념 체계가 무분별하게 기승을 부린다면 탈진실의 시대에 우리 정치는 파시즘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생각합니다.

저자는 인간 행동학의 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실과 거짓을 냉정하게 구별 짓기 어려울 수 있는 '인지 편향'과 가치적 확증 편향에 대해 여러 실제 실험 자료를 첨부하여 앞선 논지를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앞선 부분의 핵심 사항인 '의도적 합리화'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는데요. 우리가 믿고 싶은 사실이 진실을 인식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의도적 합리화는 인지부조화와 확증 편향과 함께 작용될 정도로 그것의 사례는 매우 광범위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일전에 리차드 J. 번스타인은 자신이 믿고 있었던 사실이 분석을 통해 거짓임이 밝혀졌을 때 인간은 그것을 마땅히 수정하고 바로잡아야만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그것이 철학이 추구하는 건전한 방법론이면서 진실에 대해 수긍하고 인정하는 인간의 중요한 의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번스타인의 마땅한 주장과는 달리 현재의 탈진실의 시대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적 당파의 권익을 위해 마땅히 사실을 맹렬히 거부하여 근거가 희박한 거짓말을 그것의 대체로 삼을 수 있어야만 한다는 꽤 노골적인 가치 조작이 자의든 타의든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개인의 정치적 의견이나 발언 그리고 그러한 의도들이 현대 정치에서 중요한 부분임은 거의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세대와 세대를 거쳐 우리 사회가 축적한 지식들이 소수의 정치적 편익과 셈법에 따라 비틀고 망가뜨리고 편의적 수용이라는 현란한 기술이 방조된다면 그것은 사회 계층의 최상위에 있는 힘과 돈을 가진 기득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시민들을 입맛대로 다루고 싶어하는 의도에 부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도널드 트럼프를 향해 '인종차별과 여성 혐오, 반지성주의와 같은 정치인이라면 결코 겉으로 태연히 드러낼 수 없는 것들을 가급적 내색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취지로 언급한 바가 있는데요. 후쿠야마가 기본적인 정치인의 품위에 대해 말한 것인지는 불명확합니다만 어떤 누군가가 뼛속 깊은 KKK 일원이거나 혹은 민주주의를 극심하게 혐오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자신이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는 식의 가식이나 위선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물론 후쿠야마의 저런 그럴듯한 논법에 제가 긍정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는 별개로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은 정치인들을 비롯한 공적인 무대에 얼굴을 내미는 인사들이 겉으로 나마 '일반적인 상식인의 기준을 견지한다'는 암묵적 룰과 같은 알량한 위선마저도 쓸모없게 만들기에 이릅니다. 사실상 트럼프가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한 '대안적 사실'과 같은 것들은 저자가 비판하는 대로 "진실과 거짓의 중간 지점도 역시 거짓"일 수밖에 없는 확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러한 특정 이데올로기적 주장과 반대편의 정치인들을 터무니 없는 '가짜 뉴스'로 공격하는 행태가 일부 언론들에 의해 '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 기존 언론들의 출처가 불명확한 가짜 뉴스의 보도와 여러 SNS에 범람하는 누군가를 향한 악의적인 왜곡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죠. 이에 매킨타이어는 언론들이 '진실 만을 보도한다는 일종의 직업적 윤리관'이 사주와 기자들의 사적 이익으로 치환되면서 이러한 흐름이 가속화 되어왔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떠한 지경에 처해있는지는 이미 모두가 목도하고 있다 생각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자는 언급하는 대로 우리가 거짓과 가짜 뉴스에 왜 치열하게 저항해야만 하는지 이 글의 전체적인 논증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앞선 트럼프와 같이 '여성 혐오'와 '인종차별'이 누군가의 정치가 될 수 있다는 극단적 병리가 어쩌면 진실을 거부하는 탈진실과 과학부인주의와 같은 반지성주의에 확실히 근거하고 있다 여겨집니다.


끝으로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극단주의 정치의 새로운 시작은 전 유럽과 미국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느 사회든 상당한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과 먹고 사는 것이 나날이 힘들어지는 계층들이 극단주의와 극우 포퓰리즘을 지지하면서 우리가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여러 문제들의 책임을 이민자들과 여성들, 성소수자 및 더불어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에게 분노를 돌리고 있습니다. 일찍이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분노의 정치가 초래하는 그 파멸적인 끝이 어떠했는지 이미 뼈저리게 체험한 바가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경고를 인류에게 남기고자 그녀가 어떠한 노력들을 기울였는지 우리도 이미 대략적이나마 인지하고 있는데요. 이처럼 탈진실이 더욱 만연되어 가는 시대 자체가 저자의 경고대로 단순한 민주주의의 위기 뿐만 아니라 끔찍한 전체주의의 재래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특정한 견해가 옳다고 주장하는 행위 자체가 파시즘을 부를 수 있다는 점도 우리가 인식해야만 될 것 같습니다. 또한 범람하는 가짜 뉴스에 대해 변별력을 키울 수 있도록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어느 교사의 가짜 뉴스 식별법을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리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1. 저작권을 확인하라
2. 여러 출처를 통해 확인하라
3. 출처의 신뢰성을 평가하라 (예컨대, 충분히 오래 인정받았는지 확인하라)
4. 정보의 게시 일자를 확인하라
5. 주제에 대한 지은이의 전문성을 평가하라
6.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일치하는가를 확인하라
7. 현실성 있는 내용인지 의심하라




- 이 글 마지막 부분에는 우리에게 여러 티비 프로그램들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는 정준희 교수의 해제가 담겨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만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진실을 왜곡하는 정치꾼들은 그저 ‘개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중에 특정한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명확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지낸 타보 음베키 Thabo Mbeki는 항레트로바이러스제가 서구권 국가들이 꾸며낸 계략에 불과하며 에이즈를 치료하려면 마늘즙과 레몬즙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진실을 부정하는 정치인들이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 세상이 만들어진 이상, 탈진실은 이미 어느 한 사람을 넘어서는 문제로 발전했다.

하지만 인지부조화의 특성 가운데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주위에 동일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을수록 인간의 ‘비합리적인‘ 경향이 더욱 강화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특정한 주제에 감정적으로 몰두한 경우 올바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영향을 받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진보주의자나 보수주의자나 위협적이지 않은 거짓 진술에 대해서는 평가에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는 위협적인 거짓 진술을 훨씬 더 높은 확률로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셜미디어가 주목을 받으면서 이러한 정보 대혼란은 더욱 심각해졌다. 인터넷상에서는 사실과 의견이 뒤죽박죽 섞여서 나타나는데 무슨 정보를 믿어야 할 지 누가 알겠는가?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탈진실은 파시즘의 전조 pre-fascism나 다름없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일반적인 사회과학자들은 과학 이론이 실패한다면 그 이유는 과학자들의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념적인 편견이 개입해 충실히 증거에 고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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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2 23: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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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3 0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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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3 00: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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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3 16: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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