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그럽 스트리트 - 생계형 작가들의 배고픈 거리
조지 기싱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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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웨스트 요크셔 주의 웨이크필드에서 태어난 조지 기싱은 아버지의 적극적인 관심과 후원으로 공부에 매진해, 맨체스터 대학에서 수학하게 됩니다. 그는 당시 지성인으로서는 불명예스러운 절도 사건에 연루되어 유죄 판결을 받게 되는데요. 이후에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트리뷴에 단편 소설을 기고하는 등의 현지에서 불안한 생활을 이어 갑니다. 그가 미국에서 겪은 혹독한 생활고의 경험이 바로 이 소설의 자양분이 되기도 했는데요.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런던에서 가정 교사 일을 하며 틈틈이 글을 쓰다 차츰 몇 번의 실패를 딛고 오늘날 많은 영국인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는 작가로알려지게 됩니다. 특히, 조지 오웰은 기싱을 보며, "아마도 영국이 배출한 최고의 소설가"로 평가하기까지 했습니다. 덧붙여, 기싱은 영국 뿐만 아니라 유럽의 낭만주의적 문학 풍조에 반대하며 스스로 '사실주의 문학'을 연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기싱의 기념비적인 문학 가운데 하나인 이 작품은 원제, "New Grub Street"로 지난 1891년 초도 출판이 이뤄졌고, 코호북스의 이 번역판은 1968년의 펭귄출판사 판본을 토대로 2020년 2월 출간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995년에 나온 두 권의 '꿈꾸는 문인들의 거리'를 지난 날 우연히 헌책방에서 구입했으나 읽어보지 못하고 이사 중에 분실하고 말았습니다.   

기싱의 이 소설을 완독하고 든 원초적인 생각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을 고통에 처하게 만들고 그러한 진실을 전혀 돌아보지 않으려는 자는 현실에서 결코 행복을 이해할 수 없다는 교훈 아닌 교훈이었습니다. 일전에 프랑스 혁명 이후, 수많은 사람들을 단두대의 이슬로 만든 혁명가 로비에스피에르는 스스로 더할 나위 없이 무결점의 도덕적 인간이었으나 그에게 결여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타인의 욕망과 이익에 대한 관념'에 무지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의 주인공 중 하나인 에드윈 리어던은 누구보다 고결하고 지적인 인물이지만 속세의 알법한 규칙들을 경멸하는 이상주의자이면서 문학에서 만큼은 강고한 원칙주의자이기도 합니다. 당시 영국의 문학 혹은 비평을 포함한 출판 산업은 부와 명예를 거머쥘 기회를 제공하는 산파이기도 했는데요. 교육을 받은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출판계에 뛰어들어 큰 명성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리어던의 아내 에이미 율 역시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문학 자체가 부와 명성을 가져다 주는 수단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다른 주인공인 재스퍼 밀베인처럼 이 문예계 자체가 이 소설의 주요한 배경으로 자리하고 다소 이질적이지만 계몽주의 시기 사회적 진보의 첨병이 되기도 했습니다.

야심만만하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재스퍼 밀베인은 사회적 성공이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쟁취되는 것이 아니라는 꽤 현실적인 이해를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성공을 위한 명목으로 모친의 연금을 매번 사교에 쓰고 있는 약간 비틀린 인물이기도 합니다. 기싱이 여러 장에 걸쳐 강조한,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않는 자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평가에 어느 정도 들어맞는 경우가 재스퍼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는데요. 작품 자체에서 현실적인 사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의 문학적 목적을 고려해 봤을 때, 지금의 시대에서 바라봐도 이 재스퍼라는 캐릭터는 거의 속물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는 주변 인간 관계에서 자신 만만 하지만 꽤 신중하게 적을 만들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여 자신의 이익이라는 목적에 맞게 교활한 측면도 갖고 있습니다. 극중에서 문학적인 재능이 평범한 사람이라도 주변의 교양있고 명예로운 인간 관계를 통해, 가일층 대단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기도 한데요. 기싱이 그런 재스퍼와 메이런의 교제를 어느 정도 모호한 수사로 그려내고 있지만, 사랑에 있어서 조차 계산적인 재스퍼의 캐릭터성으로 보건대, '진정한 사랑'이라는 개인의 극적인 서사가 현실의 조건 앞에서는 그저 공허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또한 그의 사랑에 대한 어긋난 관념은 독자 자신이 관계에 대한 이상주의를 굳이 견지하지 않더라도 꽤 불편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는데요. 예를 들어 막대한 재산을 상속한 여자를 수계산을 통해 자신의 이익으로 삼고 수단화시키는 점은 당시 영국의 무분별한 배금주의를 감안하더라도 쉽게 이해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그의 연애에 대한 비틀린 조건들은 후에 밀베인의 결혼 시도에 있어 지극히 충격적인 반전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저는 무엇보다 기싱에 의해 만들어진 에드윈 리어던이라는 인물이 가브리엘 타르드의 독창적 관념을 넘어설 정도로 높은 개연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인간성에 대한 전반적인 타르드의 해석이 놀라울 만큼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고결하여 속세의 일반적인 것들을 경멸하고 거부하는 리어던의 다소 비틀린 성격은 주어진 현실을 도외시하는데 이르는데요. 그렇게 투영된 자신의 가치관을 통해 가족을 포함한 주변의 사람들을 참혹한 고통으로 이끄는 개인에 대한 서사가 그 자체로 비참한 속성을 띠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개연성을 답보하고 있었습니다. 글의 사건을 주도하는 인물이기도 한 그가 이런 극단적인 경험으로 끝내 몰락에 이르는 점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설정된 전반적인 서사를 감안하더라도 불편한 감정이 들기도 했는데요.더욱이 누구보다 고결해 보이는 그의 이상주의와 맞물려 현실을 제대로 헤쳐나가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와 연민이 도가 지나치기도 해서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재스퍼와 함께 양자가 극단적인 인물 구도로 극을 이끌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현실적인 측면에서의 삶을 규정하는 여러 부득이한 조건들을 그저 경멸하고 도외시하는 그의 태도에 안타까운 감정이 들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소위 합리적 사고 자체를 백안시하고, 주어진 현실에 맞게 대처하는 평범한 인물들의 행위 자체도 모멸적인 것으로 치부하여 어떠한 소통과 타협도 거부하는 행태 자체가 순수 문학이 가지는 비타협성과 연결되어 얼마나 소름이 끼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기싱은 둘이라면 서러울 정도로 매우 인간이 처한 현실과 그런 인간들을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할 수도 있는 현실적 제약에 관심을 가졌던 소설가로, 세상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다는 것을 자신의 소설로 녹여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결론에 이르러 이 소설의 두 가지 반전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절로 씁쓸한 느낌을 자아내게 했는데요. 자신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면 남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알뜰하게 챙기는 밀베인의 행동거지 그 자체가 독자들에게 무엇을 각인시키게 될지는 사뭇 명확해 보입니다. 전적으로 현실주의에 경도된 인물에 대한 서사와 더불어 그런 묘사가 독자들에게 해석 상에 어떠한 여지를 주게 될지는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또한 이 극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조금 소극적인 면모가 없지 않아 있지만 무엇보다 기싱이 만든 메리언 율의 행적은 후반부에서 조금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에드윈 리어던의 아내인 에이미 율의 인물 작업 역시 후반부에 너무 전형적으로 흐른 감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았는데요. 당시 영국 사회의 여성에 대한 관념 자체가 지금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글을 쓸 줄 아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터부가 어느 정도 반영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극에서 꽤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인 해럴드 비펜의 작위적으로 보일 정도로 충격적인 선택(아마도 후에 이어지는 에이미의 행복과 관련한 모종의 설정으로서도 읽히는)과 흡사 정상인의 사고를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편집증적인 집착을 보이는 부분,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인물인 엘프리드와 그녀의 딸 메이런의 뭔가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결론 또한 소설의 전체적인 인과성을 고려해 봤을 때, 상당히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부분이기도 했는데요. 이런 부분들을 제외한다면 글의 서사 전반과 생동감 있는 인물들의 행적이 극 전체에서 꽤 설득력 있게 맞물려 크게 긴장감을 더해가는 과정 자체는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에드윈 리어던의 심정적인 변화와 그것의 뜻하지 않는 충격적인 반전이 무엇보다 인상 깊었는데요. 에드윈과 재스퍼의 대비되는 인물 구조와 그에 따른 운명과도 같은 행적, 더불어 에드윈에 비견될 정도로 극단적인 캐릭터라고 볼 수 있는 엘프리드와 그의 인생사 자체는 제게 깊은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인간의 삶이 한낱 농담과도 같다는 구절도 깊게 공감이 되면서 비틀어진 인간 자체에 관한 기싱의 놀랄만한 묘사는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는데요. 그와 동시에 문학계 전반이 성공하지 못한 자들에게 끝모를 좌절과 고통밖에 없다는 그런 냉엄한 실체가 오늘날에도 거의 유효하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 번역은 크게 나무랄 데가 없었으나, 본문 525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있었습니다. 제가 구입한 판본은 뒤에 나온 개정판인데, 이런 오타조차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도로 출판한 출판사 편집자에게 실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성공의 첫 발판을 마련하려고 인생의 가장 좋은 시기에 죽자사자 일만 해야 합니다. 돈으로 쉽게 살 수 있는 그 발판을 말이에요

비교적 가난한 이들에게 (절대적으로 가난한 이들보다 훨씬 불행한) 교육은 대개 잔인한 조롱이나 다름없다

리어던은 가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뇌와 심장이 싸늘해지고 손이 덜덜 떨리며, 세상의 냉정한 무관심에 대한 공포와 수치심, 무력한 분노, 막막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모여든다. 가난! 가난!

세상에는 이미 사람이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만큼 많은 걸작이 있는데 여기서 그녀는 사람들이 한 번 이상 읽을 시늉도 안 하는 글을 생산하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다

"금전적 가치가 있는 걸 만들거나 혹은 그런 일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냉정하죠."

삶이 공허한 나머지 무덤에 묻힌 후의 보상을 믿어야만 하는 수백만 명의 비참한 인간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지긋지긋하게 계속 되는 남편의 실패에 질린 지금 그녀는 성공 가도를 달리는 밀베인을 보며, 그의 성격과 재능의 세속적 가치를 깨달았다. 다시 말하지만, 단순하고 당연했다

그녀와 같은 부류의 무수한 사람들이 그렇듯 율 부인은 타인의 의견 속에서만 살았다

"제가 누구에게나 하는 말입니다. 당신도 여러 번 들은 이야기에요. 천재가 아닌 이상 문필업은 안락한 삶과 명예를 얻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인생의 중대한 문제들이 그런 하찮은 사건에 좌지우지 된다는 사실이 어처구니 없지. 삶은 거대한 농담이야."

"자네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는 척도 안 하는 군. 글쟁이들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체하게 유도해서 돈을 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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