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웃
마크 엘스베르크 지음, 백종유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마크 엘스베르크는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전세계적으로 그의 작품은 수백만 부가 판매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이 '블랙아웃'은 독일어권에서 180여만부나 팔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또한 몇 년 간 슈피겔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랫동안 이름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간단한 이력으로 그는 비엔나 응용예술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광고 업계에서 자신의 전공을 살리기도 했는데요. 동시에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일간지 데어 스탄다드에 칼럼을 쓰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원제, "Black Out"으로 2013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6년 3월에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다만 국내 번역본은 현재 절판된 상황입니다.

제가 이 책을 다 일독하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엉뚱하게도 "각 국의 발전소와 발전 설비가 해킹 공격으로부터 과연 안전한 것인가?"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사실 그동안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는 측면에서 그들의 사회에 대한 기여와 능력을 어느 정도는 신뢰해야만 한다고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죠. 병원에서 담당 의사를 믿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작가인 엘스베르크가 가진 의문과도 동일해 보이는 발전소의 설비들의 아키텍처가 독립적이고 고유한 것으로서 자연재해나 혹은 불특정한 해커들의 공격에서 스스로의 안전을 지켜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엘스베르크도 글 한 자락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과거 일본의 후쿠시마도 그 문제가 터졌을 때, 원자력 전문가들은 일관되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이스라엘이 관여한 것으로 추측되는 이란의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공격도 짧게 언급이 되기도 합니다.


현재 유럽이 천연가스에 한해서는 파이프 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전 유럽이 그렇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요. 그러한 맥락에서 이 소설이 경고하는 유럽 전력망에 대한 공격은 꽤 신빙성이 있는 소재였습니다. 더욱이 "세상에 완벽한 시스템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대사는 크게 공감이 되기도 했는데요. 송전선이나 변전소와 같은 곳의 직접적인 공격도 위험하겠지만 오늘날과 같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 시대에서 해킹의 존재는 참으로 불안한 문제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엘스베르크의 이 소설에 대해 서평들을 남겨주셨지만 개인적으로는 스토리 라인 자체의 특별한 매력이 있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주인공인 만자노와 그와 엮이게 되는 몇몇 인물들의 개성, 그리고 유럽의 주요 도시를 넘나드는 서사는 매력이 될 수도 있겠으나 특별한 반전 없이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 자체는 크게 긴장감이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더욱이 극좌라든지 무정부주의를 언뜻 끄집어내며, 자본주의에 반하여 일종의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테러리스트들의 명분도 현실적으로는 크게 설득력은 없었는데요. 다만, 저들이 상당한 재산을 가진 부유층을 공격해서 자금 마련에 나서는 것과 일종의 발전소에 쓰이는 운영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독점 기업에 해킹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는 등의 일반적인 전문 해커들의 소재는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유럽 연합 차원에서 아무런 해결 방안도 꺼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상황을 어두운 과거를 가진 일개 시민이 유럽 전체를 거의 석기시대로 몰아가는 심각한 위기를 타파해 나가는 과정은 카타르시스 보다는 의구심을 갖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기자의 조력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소설 곳곳에 작위적인 설정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이기도 했고요. 

끝으로 이 작품은 대체로 무난한 스토리 라인에 어느 정도 예상되는 사건 전개가 대체로 수월하게 읽히는 글이기도 했는데요. 그렇다고 무미건조한 글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색다른 소재에 비해서 중후반의 긴장감이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저에게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블랙아웃이 전유럽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유럽 정치와 전형적인 기업 이기주의에 대한 꽤 흥미로운 서술이 인상적이기도 했는데요, 더불어 다수의 독자들도 느끼셨겠지만 원자력 발전소가 그런 심대한 위기에 처하면 국가가 과연 재빠르게 대처할 수 있느냐에 대해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겼는데요. 이렇게 유사시에 원자로의 냉각을 위해 가동되어야만 하는 디젤 발전기가 만약 제 기능을 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재앙이 될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잖아도 며칠 전에 이와 비슷한 우려를 담은 기사 하나가 어느 언론사를 통해 올라온 기사도 이런 우려를 자아내게 하더군요.



- 본문 535페이지에 등장하는 1986년 학생운동은 아마도 1968년의 68운동을 오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니면 소설 속의 고유한 장치로서 68운동을 오마주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정치가, 은행가 그리고 경영자라는 칭호를 달았지만 사실은 소수에 불과한 범죄 집단이 인간을 지배하고, 기만하고, 약탈을 자행하고 있잖아, 그런 현실 앞에서 절망을 느끼는 인간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에겐 언제라도 또다시 기회가 주어질거야,

"안전을 영구히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만일 현 상황에서 유럽의 원자력 발전소에 디젤유가 추가로 공급되지 않으면 며칠 후에는 비상 발전 시스템이 멈출 것이고, 이는 원자로 냉각 시스템 가동 중단으로 이어질 것이다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전면 중단시켰다가 신속하게 곧바로 재가동하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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