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통령들은 거짓말을 하는가? - 시민 권력을 위한 불온한 정치사史 울도 담도 없는 세상 1
하워드 진 지음, 김민웅 옮김 / 일상이상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노엄 촘스키와 함께 미국 내에서 '실천하는 양심'으로 불렸던 하워드 진은 매우 진보적인 역사가이자 사회사상가였습니다. 본인을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칭하는 것을 즐겼던 그는 가난한 이민 노동자 가정에서 자라나, 소위 '계급적 인식'을 여러 독서와 사색을 통해 수용하게 됩니다. 일생을 외로운 진보주의자로 살아온 그는 뉴욕대학을 거쳐 컬럼비아 대학에서 석박사를 취득하고, 조지아 주 애틀란타에 있는 사립 흑인 여성 대학에서 첫 교편을 잡게 됩니다. 이곳 스펠만 대학에서의 여러 기억은 하워드 진에게 깊게 각인되는데요. 당시 미국의 혼란한 정치와 그로 인해 사회가 실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그 스스로가 '지식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계기가 됩니다. 이런 그와는 완전 다른 길을 가고 있던 보스턴 대학의 총장 존 실버와의 일화는 선선한 인연은 아니었는데요. 여러 구설수에 휘말린 존 실버는 하워드 진에게 엄청난 비판을 당하게 되자 그와 노엄 촘스키를 빗대어 "이미 미국 대학이라는 우물에 하워드 진과 노엄 촘스키라는 독이 풀어져 있다." 고 개탄스럽다 밝히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이 글에서 서술되는 바와 같이 하워드 진이 거쳐온 1950년대는 그저 '좌파'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멀쩡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매카시즘을 이 정도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구절은 세상에 아마 존재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하워드 진이 2010년에 세상을 떠났을 때, 노엄 촘스키가 그리 애석하게 여긴 것은 평생에 걸친 두 동지의 치열한 삶과 생생한 그들의 양심이 동시대를 함께 관통했기 때문일 겁니다. 대략 짐작들을 하시겠지만 하워드 진의 삶은 단순히 지식인 그것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가 진정한 시대의 지성인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따라서 이 책은 원제, "The Historic Unfullfilled Promise"로 2012년 6월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2년 10월에 번역 출판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워드 진의 이 책은 현재 절판된 상황입니다.


여기의 이 글은 하워드 진이 요즘의 시민들을 위해 특별히 기획한 것으로 자체가 일종의 논설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미국 내의 대표적인 진보 잡지 '프로그레시브'에 실린 그의 여러 논설을 펴낸 것으로 1980년부터 2009년까지의 기간에 실린 글들을 모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소개된 글들은 시대를 설명하는 시론이라고도 볼 수 있겠는데요. 하워드 진 특유의 사회 비판적이고 진보적인 성격의 가감 없는 문장들이 단연 저의 시선을 끌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그의 글들 가운데서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새뮤얼 헌팅턴의 소위 '민주주의의 과잉'에 대한 하워드 진의 면밀한 해석을 접할 수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헌팅턴이 밝힌 소위 '민주주의의 과잉'은 그 본질이 일반인들이 여러 사회적 권위에 잘 복종하게 만들지 않는 '민주주의'에 대한 적대감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마찬가지로 진은 "헌팅턴을 비롯한 이들이 원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기들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라고 냉정하게 비판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민주 사회 내부의 많은 시민들이 겉으로만 민주주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속으로는 자신들의 이익 혹은 자신이 속한 계급의 이익을 추구하며 그에 걸 맞는 정치를 추종하게 마련이라는 콜린 크라우치 식의 논법에 상당히 긍정하는 편이기도 한 데요. 이것을 사회 내부의 분열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자유 민주주의 사회의 당연한 의견 개진 일지는 모르겠으나, 이와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민주주의를 수단으로 삼아 자신의 이익으로 삼는다는 점일 겁니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위 특별한 엘리트 계급이 일반 시민들이 주도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한 지배'를 마땅히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단한 통찰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특히, 하워드 진의 이 글에서는 선출된 권력에 대한 기득권과 자본 계층이 보이는 일종의 적대감에 대해 앞선 논법과 비견될 정도로 진술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하는 사법 당국이 스스로의 권위 의식에 취해, 조지 W. 부시의 연임을 거의 불법적으로 이끌어 내었다고 봐도 무방한 일전의 사례는 이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물론 이러한 과정을 오로지 사법 관료의 문제로만 전부 치부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미 미국이라는 나라는 금권 정치와 로비의 힘이 지대한 상황이어서 토머스 제퍼슨을 비롯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우려한 다수(일종의 일반 시민)에 의한 소수(기득권과 엘리트 계층)의 핍박이라는 우려가 이미 무의미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지난 트럼프 정권이 시민들에게 보인 반민주적인 행태는 누구나 봐왔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후자에 있는 자들은 동원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인맥과 강력한 법적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자원, 원하는 모든 것들을 거의 가능하게 하는 권력과 부를 손아귀에 쥐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존 듀이가 "시민 대다수가 좀 더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기를 바란다."라는 점을 언급한 것은 실로 우울한 현실을 대변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거의 가감 없이 지난 미국 현대사를 비평하고 있는 하워드 진의 양심은 그래서 더욱 대단하다고 여겨집니다. 바로 미국 시민들에게 몇 번의 시대적 격변기에서 자신들의 정치가 어떠한 길을 걸었는지를 낱낱이 밝히는 것이 자신의 양심이 시키고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에드워드 W. 사이드가 언급한 진정한 지식인의 범주에 하워드 진을 포함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날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이라크에 즉각적으로 개입해 벌인 일들과 그에 반해 코소보의 인종 청소에 시일을 끌며 머뭇거린 점은 가히 대비되는 사건이라 볼 수 있겠는데요. 이라크 개입에 대한 명분이 되었던 독재자 후세인의 대량 살상 무기는 날조로 밝혀졌고,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벌어진 세르비아인들에 의한 인종 청소는 소위 자유 리더의 정치적 무능력을 온전히 드러내게 되는데요. 하워드 진은 이를 미국이 돈이 되지 않는 전쟁이나 개입에는 일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정의로운 미국'의 진면목이라 글을 통해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유와 인권을 제일가는 가치로 매번 부르짖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국가가 강력한 명분을 손에 쥐고 있었음에도 최소한의 UN을 통한 개입도 스스로 주저한 것은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하지만 이라크에서는 딕 체니와 도널드 럼스펠드와 같은 자들이 더한 이득을 위해 조지 W, 부시를 좌지우지하면서 이라크를 초토화 시킵니다. 이미 영화화 된 바 있는 '거물' 딕 체니에 대한 일대기는 실로 돈과 권력의 결정체라는 그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작품이었습니다. 막강한 전직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의 민간군사기업 '블랙워터'와 권력과의 유착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의 리더이자 스스로 자신들이 쌓아올린 민주 정체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미국이 어떻게 저런 '과두제'의 극명한 속성이 도출되게 된 것인지 지금으로선 사뭇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에 하워드 진은 모든 정치가 가져야만 하는 '도덕적 책무'에 대해 새삼 강조하고 있기도 한데요. 지난 2차 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 지역의 민간인들에 대한 '부수적 희생'이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는 점이 미국이 주도한 전쟁의 암울한 측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토마호크 미사일로 온 가족을 잃은 어느 가장의 피 끓는 일화를 하워드 진이 소개하면서 어떻게 미국 내에서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가 하나도 없는지 개탄해 하고 있었는데요. 물론 전쟁 상황에서 민간인에 대한 피해를 완전히 방지하기란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극히 현실주의에 경도된 사람들은 이러한 모든 것들을 컨트롤 하는 것은 거의 무리라고 주장할 텐데요. 하지만 "어떤 행동이 무고한 사람들을 '필연적'으로 죽게 한다면, 이는 민간인에 대한 '의도적'인 공격만큼 비도덕적인 것이다."는 저자는 하워드 진의 비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저 도덕론적인 이상주의라고 최소한의 견제 장치를 제거해 버린다면 아마도 현실의 이익이라는 유일주의에 심하게 경도된 이 세계에 거의 희망을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또한 하워드 진의 이 책에는 베트남 전쟁부터 로널드 레이건이 CIA를 동원해 벌인 '더러운 개입 작전'과 조지 W. 부시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정치적이고 근본적인 분석이 담겨 있습니다. 소위 평화를 사랑한다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 어떻게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는지는 어쩌면 꽤 많은 학문적 조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군사적 이익이나 전쟁으로 인해 이익을 얻는 대부분의 인사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모두가 인정하는 '국익'으로 치환하고 싶어 하겠지만 문제는 그러한 역사 전부가 모두 도덕적으로 '옳았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하워드 진 역시 참전한 2차 대전이 지난 세대들에 의해 어느 정도 '좋은 전쟁'이라는 평가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이후 냉전 시기의 CIA식 개입을 비롯한 얼마간의 제한 작전들이 군사적 복수와 날조, 거짓 선동이 뒷받침되어 있다는 것은 거의 부정하기 어려울 겁니다. 이와 관련해, 국제 정치를 비롯한 정치 대부분이 현실 세계에서 이상주의적 목적에 부합하는 노력들이 이미 실종된 지 오래이기에 진정한 자유와 평등, 도덕적 책임, 양심, 정의 등도 역시 책에서나 등장하는 사전적 의미로 전락한 지 반세기가 넘게 지났습니다. 아마 오스카 와일드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사전에서나 언급되는 귀중한 단어들 대부분이 우리가 스스로 버린 것과 다름없다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사회를 엄정하게 감시하는 언론의 무능에 대해 여러 분량을 할애해 비판하고 있는 점은 여러 맥락에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힘을 잃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마 큰 의미는 없겠지만 본문 82페이지에 오타 한 곳이 있었습니다.


사무엘 헌팅턴은 이 위원회에서, "1960년대 미국에서 민주주의 열풍이 극적으로 상승했다."면서 이런 현실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중략) 결국 1960년대 민주주의 열풍의 본질은 기존의 공적 사적 권위 체계에 대한 일반인들의 도전에 있다

물론 여전히 많은 미해결의 과제들이 있다. 그 어떤 장애도 없이,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자유를 비롯한 무수한 주제들에 대해 자유롭고 개방적인 토론을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서구에서 지금까지 생존해 올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뒤집어엎는 혁명 대신에 자본주의 연명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의료보험과 주택, 일자리와 먹을 것, 그리고 교육을 비롯해 이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이 주어져야 하며 그것은 확실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체첸 사태에 대해 어느 기자가 질문하자, 클린턴은 남북전쟁의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면서 링컨 대통령이 남부 분리주의자들의 요구를 용납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 아니냐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 맥락이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미국의 폭격에 의한 민간인의 희생, 세계 도처에서 인종청소라는 학살극이 벌어졌을 때 이것을 무시하거나 부추켜온 미국 정부의 그간의 행적, 제3자가 유고 사태에 대해 미국과 나토에게 합리적이고 협상 가능한 제안을 내놓았을 때 그것을 거부해 버린 일 등이다

미국과 세계 도처에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고 식량 또는 직업이 없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은 (언젠가 교황 바오로 2세가 말한 적이 있는)"야만적이고 통제되지 않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부수적인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창문으로 전쟁이 날아 들어오면, 민주주의는 그 창문 밖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워싱턴의 정부 관료들은 이 나라를 전쟁으로 끌고 가려 할 때, 이 나라 안에서나 밖에서의 민주주의 대해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기들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정부의 권력이란 결국 시민, 군인, 공무원, 언론인, 작가, 교사 그리고 예술가들이 정부에 복종해야만 유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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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6 1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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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7 11: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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