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 - 개인, 가족, 사회, 역사에 대한 보수의 철학
러셀 커크 지음, 이재학 옮김 / 지식노마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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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시간 주 플리머스 출신의 정치 이론가,사회 비평가, 문학 평론가이자 스스로 전통적 보수주의자로 여겼던 러셀 에이모스 커크는 미시간 주립대와 듀크대를 거쳐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 받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군에 복무했고 당시 자유지상주의자 이사벨 페터슨과의 서신 교환으로 초기 사상적 토대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에게 크나큰 명성을 가져다 준 '보수의 정신 Conservative Mind'으로 미국 내에서 보수주의의 사상적 기초를 쌓은 인물로 이해되는데요. 그의 여러 일화들을 살펴보다 문득 C. 라이트 밀즈가 머리에서 오버랩 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둘 다 동시에 약간 유쾌한 괴짜 같은 취향을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밀즈와 커크는 사상적 경향이 완전 다른 인물들입니다. 그의 이 책은 원제, "Concise Guide to Conservatism"으로 아마도 지난 1957년에 출간된 것을 최근인 2019년에 새롭게 펴낸 것으로 추측됩니다. 국내에도 마찬가지로 2019년 12월에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저자인 러셀 커크는 그의 생애 내내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버크식 보수주의를 추종했던 인물입니다. 제가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최근 보수주의적 역사에 대해 달통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보수주의의 대부분은 신자유주의와 강력하게 결합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커크의 이 글은 크게 3가지 키워드를 배경으로 진술되고 있었는데요. 그것은 양심과 재산권, 자유였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보충 설명을 드린다면 커크가 설명하고자 하는 보수주의의 맥락은 미국의 공화주의적 보수주의며, 존 애덤스와 제임스 메디슨 등의 사상이 기초한 전통적 보수주의라는 점을 먼저 염두해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 다른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린다면 커크의 이 글을 전체적으로 일독해 보면 아시겠지만 현재 우리의 보수주의와는 그 궤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어느 정도 우리의 보수주의적 토대가 미흡하고 주장하는 바가 주먹구구식이며, 본질적으로 반공주의와 시장 자유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난 현대사를 통해 이들 대부분이 소위 강력한 우파를 추종한다는 점에서 커크가 줄곧 주장하는 공동체의 선에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의 가능성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커크의 논지에 대해 전반적으로 깊은 인상을 받기는 어려웠는데요. 무엇보다 대중과 공중에 대한 정확한 개념 도출이 되지 않고 '민주적 전제주의'라는 일종의 거의 일원화 된 다수 지배 정치에 대한 설명이 미흡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커크가 살았던 첨예한 냉전 시기를 고려한다면 오늘날 건전하게 뿌리 내린 사회 민주주의에 대해 그가 경멸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특히, 커크가 보이는 '평등'에 대한 사실상의 혐오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에 있어 다른 걸 다 떠나 자유와 평등이 중요한 가치라는 것은 분명한데요. 지지 파파차리시의 언급대로 '모두가 평등한 자유'라는 개념은 이처럼 중요한 맥락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이와는 별개로 오늘날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민주주의가 과잉된 상황'이라고 시대적 이해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니, 저로서는 (현재의 변형된) 보수주의 자체가 민주주의를 별로 달가워 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커크의 이 글에서는 '도덕적 경쟁', '질서 있는 자유'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전통적 보수주의와 지금의 보수주의가 얼마나 상이한 개념인지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커크가 설명하는 보수주의에 있어 '인간의 양심'은 중요한 화두로 여겨졌습니다. "비양심적인 인간들이 모여 만든 사회가 양심적일 수 없다"는 취지의 문장도 이를 잘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양심의 문제는 더 나아가 사회적 불평등, 특히 경제적 불평등과 관련해서도 양심이 '자선'을 도덕적으로 권유하고 이는 기독교적 겸허한 양심에서 비롯되었고 가난을 구호 하기 위해 돈 있는 계층이 자발적으로 지갑을 열 수 있는 양심이 보수주의의 기본적 맥락이라고 인용됩니다. 일반적으로 보수주의는 혁신과 혁명이라는 이름과는 반대로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선인先人들에 의해 이어져 내려온 사회 체계나 전통 문화 혹은 가정에 대한 기존의 가치들을 수호하고자 합니다. 이는 일종의 하이에크와 같은 입장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사회를 좀 더 개선시키기 위한 소위 개혁가들의 사회적 시도들이 우리 모두를 고통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경고와도 같은 것이겠죠. 물론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전통 자체가 지키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해야 하는 중요한 가치로서 더 중요한 맥락에서 "개인들의 자발적인 양심이 사회를 아무런 부작용 없이 개선해 나갈 수 있다."는 인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글에서 재산권과 자유는 거의 한 몸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보수주의자들이 흔히 인정하고 있는 인간의 이기심이 자유와 연계되어 있지만 커크는 그렇다고 모든 보수주의자들이 방만한 이기심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물론 그는 "간단히 말해 사유 재산제는 자유를 누리려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라고 진술합니다. 다만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와 결합한 보수주의는 인간의 이기심은 자본주의의 아주 자연스런 요소로서, 그 이기심 자체는 사악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죠. 이를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사회 내에서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이기심 추구는 나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제한 없고 무분별한 자유의 추구와 신자유주의자들의 거의 제한을 두지 않는 이기심 추구를 거의 동일한 맥락에서 바라보고 있는데요. 그래서 커크는 이기심에 대해 인간의 도덕성 혹은 도덕주의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는 관리되어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보수주의자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맹렬히 수긍하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본의 축적이라는 기본적인 인식에 있어 동의하는 것이다."라고 언급되는 부분도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들이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즉, 힘 있는 자들의 마땅한 자유가 아니라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만 하는 기본적인 권리로서 자유를 바라볼 수 있겠는데요. 따라서 커크의 말대로 "보수주의자는 개인의 양심, 법원, 정부가 모든 사람과 계급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언제나 눈을 부릅떠야 한다고 믿는다."는 진술은 이를 정확히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이 쓰여진 시대를 감안해 보면 커크의 공산주의와 집산주의에 대한 격렬한 혐오를 잘 엿볼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인류에게 남긴 상처를 감안해 본다면 이는 지나친 감정이 아닐 수 있는데요. 부의 재분배에 있어서도 전자가 모든 인간들에게 실패한 결과물을 남긴 것도 거의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혁신과 진보에 대해 커크가 보이는 부정적인 인식과 그가 이를 바탕으로 주장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반감은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습니다. 능력이 있는 자들이 좀 더 많은 권리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대로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 쳐도 사회적으로 능력 있는 자들의 권리가 커크가 말하는 대로 '공짜'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는 줄곧 양심과 의무를 들어, 그리고 보통 사람들이 편안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측면에서 앞선 관념을 경계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작금의 보수주의와 커크의 보수주의는 매우 상이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는데요. 에드먼드 버크의 사상을 추종한 커크라면 그리고 미국식 공화주의에 '충성스런' 신념을 갖고 있는 커크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더불어 저자의 글을 통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이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의 해석대로라면 과거 전체주의의 화신인 히틀러가 '급진주의적 선동가'라고 취급할 수 있을 텐데요. 이러한 히틀러의 전체주의를 왜 겸허한 양심의 보수주의자들이 전혀 저항하지 않았나 하는 점입니다. 자크 파월이 당시 평범한 독일인들을 어느 정도 이해했던 부분이나 한나 아렌트가 일생을 소비해 천착했던 전체주의에 대한 해부까지는 바라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여기의 커크가 2차 대전에서 어떠한 양심에서 참전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보수주의적 관념을 떠나서 전쟁을 몸소 체험한 것은 어쩌면 가볍지 않은 일일 겁니다. 그가 수없이 언급했던 것처럼 만약 히틀러가 급진주의자라면 왜 독일의 보수주의자들은 전혀 저항을 하지 않은 것일까요. 작고한 토니 주트의 언급대로 당시의 평범한 독일인들이 히틀러가 만든 거대한 흐름에 전혀 저항을 할 수 없던 것이었을까요. 오히려 일상에서 안온한 행복감을 느꼈을 정도로 말이죠.

현재의 보수주의와 커크가 논증을 통해 설명하는 보수주의는 아마도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날 겁니다. 신자유주의에 의해 도덕주의적 정치는 철지난 것으로 치부 되었고,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존경한다는 밀턴 프리드먼 역시 사회에 정의 따위는 필요 없다고 일갈했었죠. 이와는 상반되게 커크는 자유와 정의, 도덕, 질서, 공동체 등을 보수주의의 핵심이라고 열거하고 있습니다. 사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선명한 진보, 건전한 보수는 필연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보수는 과거 개발 독재와 철저한 반공에 기대어 반대의 의견을 철저히 묵살했던 것과 같이 심지어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까지 앗아간 역사와 제대로 화해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제 스스로가 민주주의에 경도된 사람입니다만 여러 서평에서 언급했듯 에드먼드 버크식의 보수주의에 깊은 감명을 받기도 했는데요. 일전에 버크는 프랑스 혁명의 잔인한 결과들에 대해 양심에 비추어 토로하여 모든 혁명이 역사와 사회에 만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의 보수주의가 과연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적 전통을 얼마나 체화시키고 있는지 그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걔 중에 커크가 말하는 이기심과 지금의 이기심은 매우 차원이 다른 것이 되었기에, 어쩌면 시대와 환경이 다른 미국의 보수주의와 우리의 보수주의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커크의 글을 일독하고 난 후에, 다른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보수주의가 민주주의를 본질적으로 과연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이를 명확하게 다룬 글이 새롭게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보수주의자들 가운데 자유와 민주라는 탈을 쓰고 입으로만 이를 강조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은 실정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커크의 이 책은 홉하우스의 자유주의의 본질과 더불어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정부를 필요악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커크가 말하는 보수주의는 정부를 필요선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보수주의는 많은 재산과 영향력을 가진 이들만의 관심사가 아니고, 특권과 지위만을 방어하려는 사상도 아니다

무슨 의미인지는 분명치 않은 ‘인민people‘이나 ‘군중The Masses‘혹은 ‘핍박받는자The Underprivileged‘는 기독교의 관심사가 아니다

사전적 정의 양심은 ‘사람의 행동이나 동기의 측면에서 내적으로 인식하는 옳고 그름, 다시 말해 사람의 행동과 동기의 도덕적 측면을 파악해 그것이 도덕률에 일치하도록 명령하는 능력이다.‘

반면 인간이 도덕적으로 표류하고 양심에 무지하며 감각적 욕구의 충족에만 매달리는 사회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투표에 참가하든, 또 그 공식적 헌정 체제가 얼마나 ‘자유주의적‘이든 모두 나쁜 사회다

시기심을 견제하는 오직 하나의 진정한 방법은 비상한 재주를 지닌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고유한 권리가 있음을 많은 대중에게 환기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일반적 원칙을 인정하는 사회다. 더 나은 사람들에겐 스스로를 계발할 권리가, 보통 사람들에겐 잔잔하게 살아갈 권리가 부여된다는 원칙이 인정되는 사회 말이다

공동체가 약화되면 대개는 무질서한 자유 anarchic freedom가 아닌, 숨 막히는 집산주의가 들어선다

따라서 급진적 선동가는 일단 권력을 잡은 뒤엔 지역 공동체의 활력을 뿌리 뽑으려 애쓴다. 그 짓을 히틀러가 독일에서 시도했고, 또 러시아의 다른 지역의 공산주의자들이 처절하리만치 철저하게 완수했다

따라서 깨어 있는 보수주의자는 공동체, 마을, 국가, 사업 조직, 시민 사회 모임, 노조, 교회 집단, 동업자 집단, 학교와 대학, 그리고 자선 기금이 요구하는 의무를 다한다

보수주의자는 개인의 양심, 법원, 정부가 모든 사람과 계급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언제나 눈을 부릅떠야 한다고 믿는다

사유 재산 제도는 불평등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인간은 도덕적으로는 평등하지만 다른 모든 관점에서는 불평등하다

국가는 때때로 탐욕스런 빈자를 억누를 필요가 있듯이 오만한 부자를 저지하는 조치도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력이 아닌 개인적 양심과 공중의 여론에ㅔ 호소함으로써, 보수주의자는 재산 소유자들에게 그들의 타고난 권리와 함께 타고난 의무를 환기시키려 노력한다

보수주의자는 진보 그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 반드시 작동하는 신비로운 진보, 그 자체의 힘이 있다는 주장은 강하게 의심한다

‘민주적‘ 국가가 누구의 자유도 빼앗지 않는다는 얘기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자유 경제 없이는 어떤 형태의 자유든 유지되기가 매우 어렵다. 공화국은 그 어떤 특별한 경제 체제보다 중요하지만, 자유로운 경제가 없으면 실질적으로 공화국은 지속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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