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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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와 더불어 영국인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문호인 제인 오스틴은 1775년에 영국 북부 햄프셔 주의 스티븐턴에서 태어났습니다. 오늘날과 비교해봐도 꽤 개방적이고 유쾌한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여동생인 카산드라와 함께 옥스포드로 보내지는데요. 여기의 카산드라는 오스틴에게 여동생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카산드라와 함께 레딩의 기숙 학교에 다닐 때까지 지속적으로 가정 교육을 받았고, 학교 교과 과정에 들어갔을 때, 프랑스어, 철자법, 바느질과 음악 등을 배우게 됩니다. 이후 오스틴은 14살에 습작을 통해 자신의 재능에 눈뜨게 되는데요. 그녀는 1811년에 출간한 이성과 감성을 시작으로 오만과 편견, 맨스필드 파크, 엠마, 노생거 사원 그리고 설득을 세상에 내보이게 됩니다. 생전에는 찰스 디킨스와 조지 엘리엇의 영향에 가려져 큰 반향을 얻지는 못했지만 사후 헨리 제임스에 의해 그녀의 작품이 빛을 보기에 이릅니다. 그녀는 작품 속에서 특유의 정교한 개인들의 일상 생활을 소재로 리얼리즘에 입각해 글을 썼는데요. 특히 여성의 심리묘사와 당시 불합리한 시대상을 작품에 절묘하게 배치시켜 문학적으로 큰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자 신장 질환으로 추정되는 합병증을 앓던 오스틴은 41세의 이른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 그녀에게 큰 명성을 얻게 해준 이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은 지난 1813년 초도 출판되었고 국내 번역본인 민음사판은 1813년의 출판된 초판본을 근거로, 1993년의 노턴 비평본을 대본으로 했다고 역자들에 짧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번역판은 2003년 국내에 출판 되기에 이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거의 오랜만에 쓰는 소설 서평이기도 한 데요. 오스틴의 이 유명한 고전은 그럼에도 너무나 기꺼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녀 때문에 종종 소설 서평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제인 오스틴의 이 오만과 편견은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니 만큼, 많은 분들이 이 작품이 갖는 명성에 관해 한번 쯤은 들어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 볼 수 있는 엘리자베스 베넷과 그녀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언니이자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인, 제인과의 관계는 작가와 그녀의 동생인 카산드라와의 둘도 없는 우애 와도 빗대어 읽혀지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이 현란한 작품을 통해 고유한 많은 캐릭터를 곳곳에 배치하고 있는데요. 특히 개인적으로는 베넷 가의 장녀인 제인의 인품과 더불어 고결한 성품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흔히 무도회에서 벌어지는 남녀 간의 교제와 그런 행위 자체가 중요한 의미로 인식되는 소설의 관습적 배경에서 최소한의 상식과 인격을 갖춘 인물을 찾기란 어려운 법이기도 합니다. 굳이 비틀린 캐릭터를 만들려고 하지 않더라도 '가진 바 알량한 지식조차 없이 그저 허영에 찌든 인물상'을 오스틴은 거듭 비판해 내고 있는데요. 제인은 이와는 거의 상반되게, 작중에서 묘사되는 바와 같이, "온화하고 절대 함부로 남을 판단하지 않는 성격"으로 훌륭한 도덕성이 바탕이 되어 주변의 귀감이 될 만한 여성이었는데요. 만약 엘리자베스의 곁에 이런 제인이 없었다면 엘리자베스의 겸허하고도 진정한 내면의 성장이 개연성을 상실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참고로 롱번의 베넷 가(家)의 가주이자, 다섯 자매의 아버지인 베넷 씨도 어느 정도의 상식인으로 그려지고 있다면, 반대로 속물적이고 지성을 거의 겸비하지 못한, 몇 가지 이상의 인격 상 결점을 가진 아내와 그녀를 필두로 다른 세 자매, 리디아, 메리, 캐서린의 인물 설정은 마치 '상식 대 비상식'의 전형처럼 2부 종반 까지 글의 긴장을 유지하는 데 큰 몫을 하게 됩니다.


이 소설의 주요한 배경으로 여겨지는 상업기의 영국은 사회 전반의 경제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귀족 사회의 영향이 여전히 진하게 남아 있는 실정입니다. 이 소설의 주요한 가문으로 언급되는 베넷 가는 당시 떠오르던 젠트리이지만 국왕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귀족들이나 그 영향 하에 있던 사용인들로부터 다분히 신분적 경멸을 강하게 받습니다. 이는 피츠윌리엄 다아시가 찰스 빙리를 통해서 드러나는 '신분 차이가 극명한 계급 간의 결혼'이 자신들에게도 극복하기 힘든 부분임을 강조합니다. 그럼에도 다아시가 오로지 특별한 사랑을 위해, 이어지는 3부에서 진정한 노력과 함께 스스로 힘든 결정을 감행한 부분은 스토리 상으로 봐도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진술 과정에서 겨우 밝혀지는 인격상의 결점이라곤 "믿는 바에 따라 고집스럽게 행동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다아시에 대한 작가의 초반 설정이 다소 그럴법한 이유가 될 수도 있을 텐 데요. 하지만 어느 한 사람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저 알량한 선입견으로 판단하고, 단정 짓는 인간의 섣부른 행위 자체가 어느 시대에서나 환영받을 수 없는 이유임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그런 연유로 글에서 다아시와 빙리의 관계에 대한 여러 진술 들은 저에겐 꽤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1부 도입에서 빙리와 다아시의 여러 대화를 통해, 이들의 관계에 대한 주도권이 다아시에게 있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깊은 우정과 신뢰는 현 시대의 평범한 우리조차도 부러워할 만한 무언가가 있다고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어느 정도 부와 지위를 가진 젊은 신사들의 평범한 대화 자체에 어떤 중한 의미를 둘 필요는 없겠지만, 남녀 간의 뜨거운 열애 못지 않게 이 두 남자의 서로를 향한 진실한 마음과 조언은 진지하게 고찰해 볼 정도였는데요. 많은 분들은 다소 지나치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다아시가 빙리에게 한 조언은 몇 번이나 그 의미를 곱씹어 본다면 충분히 그러한 발언이 이해가 될 정도입니다. 당시 남녀 간의 혼인이 단순히 이 둘만의 개인적 결합이 아니라, 가문 간의 위신과 명예가 달려있는 일이니 만큼 그 시대의 관습을 고려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겠지요.  

'얼마간의 부와 권력으로 껍데기 같은 위세를 일삼는 귀족의 잔재'에 대해 작가인 오스틴은 간혹 해학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기도 했는데요. 그러한 연장선 상에서 조지 위컴과 윌리엄 콜린스의 존재는 스토리 상 중요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작가에 의해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잘난 체와 비굴함의 혼합"의 전형인 콜린스는 실로 과하게 비틀린 캐릭터이기도 한데요. 지역의 치안 판사 직위를 갖고 있는 캐서린 영부인의 후견으로 지역 목사직을 얻은 그는 이 영부인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비굴할 정도로 자신을 낮추는 지경에 이릅니다. 그럼에도 자신에 대한 과한 자부심은 물론 꽤 과장되고 실속 없이 껍데기 같은 언행은, 오스틴이 그의 설정에 사뭇 공을 들인 티가 날 정도였는데요. "얕은 직위로 과도한 자만에 빠져 스스로를 대단한 인물인 양 여기는 자들의 행태는 그처럼 처연한 것이 없다"는 스탕달의 독설이 순간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콜린스는 이 작품 안에서 주된 풍자의 캐릭터로 위치하면서 부와 권력에 따른 계급 사회의 이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1부에서 3부로 이어지는 글 전반을 통틀어, 가장 문제적이고 소모적인 캐릭터라 볼 수 있는 조지 위컴은 앞선 콜린스와 더불어, 모두에게 교훈이 될 만한 인물입니다. 작품 속에서 엘리자베스의 입을 통해, "선함이 오로지 겉에만 머물러 있는" 위컴은 자신의 아버지가 다아시 가문의 충직한 청지기로 일하면서, 이 부자가 전대 가주에게 깊은 신뢰를 받았음에도 거의 반동적으로 표리부동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는 협잡과 다름없는 능수능란한 어투와 자신에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타고난 말주변을 갖고 있는데요. 어느 정도 주변 인물들에 대해 객관적인 통찰을 보이던 엘리자베스가 순간 속아 넘어갈 정도로 그 능력을 입증 시킨 바가 있습니다. 물론 그녀가 보이는 위컴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와 그에 반해 설득력을 보장할 수 없는 다아시에 대한 편견이 중요한 설정임은 분명한데요. 이 뿐만 아니라, 위컴이라는 캐릭터가 상반된 지점에 있었기에 다아시의 숨겨진 인품과 그의 고결한 행적이 더 한층 빛을 발할 수가 있었습니다. 다만, 위컴이 어떤 반항적 기질을 타고나 신분 상의 굴레를 벗어 던지기 위해 노력하다 끝내 매몰되는 캐릭터였다면 어땠을까는 상상을 해보는데요. 그래서 아쉬운 점은 그가 그저 여자 등이나 치는 인물로 그려져서 만인의 지탄은 물론 경멸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그와 같은 몰락에 대한 극적인 설정이 있었더라면 좀 더 글의 개연성을 답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는데요. 저의 이런 판단에는 위컴이 악인이라기 보다는 참으로 불쌍한 인물이라는 감정의 이입이 있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근대적인 사회라고 볼 수 있는 이 소설의 배경은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위해 그야말로 적절한 남자를 골라야 하는 딜레마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할 텐 데요. 그저 삶의 안정을 위해 남편을 결정한 샬럿 루커스의 상황이 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베넷 부인 역시 이러한 선입견에서 전혀 헤어나지 못하는데요. 자신의 아내가 그런 여자라는 것을 일찍이 깨닫고 자신의 딸들 중 제인과 엘리자베스를 제외한 나머지 세 딸을 아내와 같이 속물로 취급한 베넷 씨 역시 어느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캐릭터라고 여겨집니다. 3부에서 리디아의 야반도주로 인해 집안의 큰 우환이 터지자, 그가 보인 양면적 태도는 시대를 잘 반영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에 반해 양식과 지성을 갖춘 엘리자베스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이는 그의 언행과 관심이 그가 본질적으로 가정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데요. 2부에서 캐서린 영부인이 엘리자베스에게, 왜 가정 교사를 두지 않고 딸들을 교육시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고심을 해봐야 하는 것도 이런 연유일 겁니다. 특히, 엘리자베스와 상반된 캐릭터라고 볼 수 있는 메리의 인물상은 이처럼 극적이라고 여겨졌는데요. 책의 지식을 그저 자신을 드러내는데 수단으로 삼은 메리의 '지성'은 오늘날 지식인들에게도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캐서린이 점차 정상적인(?) 언니들의 영향을 받아 심리적으로 점차 안정적인 소녀로 이어졌다면, 메리는 그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게 됩니다. 물론 약간의 풍자를 포함해서 말이죠.

이 소설에는 소위 '계급적 차이'에 따른 철저한 인식론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캐서린 영부인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사건과 다아시가 빙리에게 전하는 충고나 빙리의 여동생인 캐롤라인 빙리가 베넷 가에 갖는 경멸도 이를 증명합니다. 17세기 이후 유럽의 상업 발전으로 인한 소위 중위 계급의 등장은 기존의 귀족 사회의 인사들이 보였던 그런 경멸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물론 현재에 이르러서는 여느 민주주의 국가에서 계급적 인식은 거의 철폐되었지만 반대로 자본주의에 의해 돈에 의한 격차는 심각해졌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강고한 계급적 차별 의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오로지 인간으로서 사랑을 갈구한 다아시의 노력은 꽤 신선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여기에 특유의 거친 태도로 인해 주변에게 오만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나중에 그는 유교에서 말하는 내유외강형의 인물로 설정상 거의 완벽한 캐릭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엘리자베스는 스스로의 과오와 부적절한 편견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다아시의 됨됨이을 알게 되어, 극적으로 그와 사랑으로 맺어지게 되는 이면에는 다아시의 고집스러운 인품이 한 몫을 하게 됩니다. 이들 두 사람의 사랑 자체는 다아시의 부와 권력을 차치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것은 현재에도 매우 드문 일이라 여겨지는데요. 이는 단순히 여주인공인 엘리자베스의 성장과 그에 따른 보상으로 매겨진 것처럼 오해를 살만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와 다아시와의 결혼이 가볍게 취급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베넷 씨가 "엘리자베스 너는 스스로가 존경할 수 있는 남편을 만나야 그 결혼 생활이 수월할 것이다"는 진술이 실로 공감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 잡힌 사람이 스스로를 완벽하게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타인에 대한 인식을 그처럼 극적으로 변화시키고, 자신의 과오를 절실하게 뉘우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문 케이스이기도 한데요. 그래서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결합은 이처럼 개인사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과 더불어 작품의 시대상에 있어 큰 의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사람의 결합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합당한 결과물이었던 것입니다. 다만, 일부 인물들에 대한 소위 권선징악적인 결말이 나타나지 않아 일부 독자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느낌을 줄 수도 있겠는데요.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 고전이 오스틴의 여러 작품들에 비해 소위 '유쾌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인간이 갖는 허영과 무교양, 무지성에 대해 여러 대화를 통해 일관되게 경멸하고 있는데요. 이는 계급주의적 시각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그러한 결핍을 내보이게 될 때, 그녀는 그것을 눈뜨고 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교육이 특별한 조치라는 위상을 갖던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하더라도 현재에 있어서 조차 매우 어려운 문제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거기다 다방면에 걸친 독서를 통해 지성을 계발함으로써 실속 있는 내면을 갖춰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비굴한 성격은 머리가 나쁜 데다 사람들과 별 교제마저 없는 특유의 자만심과 예기치 않게 일찍 성공한 사람으로서 갖게 된 자부심에 의해 상당한 정도로 상쇄되었다

정상을 참작할 만한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하트퍼드셔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어떤 사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베넷 양뿐이었다

엘리자베스야말로 자신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받아 마땅한 첫 여인,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딱하게 여겨 주었으며 자신이 경모한 첫 여인임을 잊을 수 없었을 테니까

캐서린 영부인은 커피가 올 때까지 쉬지 않고 모든 주제에 대해서 자기 생각을 말했는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 특유의 단정적인 태도였다

그것은 당신의 어머님과 세 여동생이 그렇게 빈번히, 그렇게 한결같이 드러내 보인, 그리고 가끔은 당신의 부친께서조차 가세한, 완벽한 무교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다아시에 대해서든 위컴에 대해서든 자기가 눈이 멀었고 편파적이었으며 편견으로 가득 차고 어리석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에 빠져 있었다 해도 이보다 더 기막히게 눈이 멀 수는 없었을 거야. 그렇지만 내가 빠져 있었던 건 사랑도 아니고 허영이었으니

언니가 어느 면으로 봐도 그렇게 바람직하고, 이점이 많으며, 행복할 가능성도 큰 결혼을 다름 아닌 식구들의 우매함과 무교양으로 인해 박탈당한 셈이니 그야말로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 두 사람 교육에 뭔가 큰 잘못이 있었던 것이 분명해. 한 사람은 선함을 모두 가졌고, 다른 사람은 선함의 외양만 몽땅 가졌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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