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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의 세상 - 트위터 팔로워 총 490만 명, 글로벌 인플루언서 9인 팬데믹 대담
말콤 글래드웰 외 지음, 이승연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21년 9월
평점 :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토론토에서 개최되는 주요 정책 문제 토론인 멍크 디베이트 The Munk Debates 는 피터 멍크와 그의 아내 멜라니 멍크가 설립한 자선 재단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멍크 디베이트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서는 너무나 잘 알려진 토론회이기도 한데요. 특히, 광범위한 주제를 바탕으로 심도 있는 토론으로 유명합니다. 더욱이 사회적 명사 혹은 충분히 존중 받을 만한 저명한 여러 지식인들을 초대해, 이들이 단순히 손쉬운 수입과 공짜 캐나다 여행으로 치부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인식은 멍크 디베이트의 수준 높은 명성으로 인해, 여기에 초대된 인사들이 토론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토론회의 사회자로서는 내셔널 포스트와 토론토 스타의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인 러디어드 그리피스가 나서고 있는데요. 그의 깔끔한 진행 역시 멍크 디베이트의 명성을 올리는 데 한 몫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사회자인 그리피스가 2020년 4월 9일에서 6월 10일까지 진행된 멍크 다이얼로그 시즌1을 기반으로 정리한 내용을 출간한 것입니다. 원제는 "The World after COVID : The Munk Dialogues on a Pandemic edited by Rudyard Griffiths"로 2021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21년 9월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알고 있기로는 국내에 번역된 멍크 토론은 2편으로 알고 있는데요. 저의 북플 친구분이기도 한 얄라님을 통해 이 글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간단히 글을 요약해 보자면, 2019년 11월에 발생한 전세계적인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세계는 어떻게 변화되어 왔으며,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세계의 양태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전망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여기에는 전세계에서 존경 받는 지식인들의 현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를 좀 더 면밀히 풀어본다면, 앞으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떤 위기를 겪게 되고 그동안 누적된 전세계의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 문제는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 주된 관심이 담겨 있는데요. 더불어 넷 미디어 시대에서 우리의 정치적 권리가 안전하게 보호 받을 수 있을 것인지도 현재의 양상과 돌아가는 모습을 통해 규명해 보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이곳에 등장하는 소위 명사들은 미국의 민주주의, 더 나아가 전세계의 민주주의에 대해 걱정과 희망을 동시에 피력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전세계가 매우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 현실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 사태는 막대한 인명 피해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니얼 퍼거슨의 주장대로, 이러한 팬데믹 사태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이었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입증된 바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여기에 이름을 올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의 성공적인 방역 정책을 칭찬하고 있는 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동시에 '작은 규모의 민주국가들'이 권위주의적 수단이 아닌 민주주의 방식으로 팬데믹 사태를 통제한 것에 대해 마찬가지로 그 결과를 인정하고 있었는데요. 사실 팬데믹 초기에 미국을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에서 '개인의 자유'라는 논법에 -분명 중요하지만- 가열차게 매몰되었습니다. 이 개인의 자유는 직면한 문제에서 대부분을 이슈로 빨아들이게 됩니다. 즉, 자신들의 자유는 팬데믹이라는 비상상황에서 조차 절대 교환할 수 없다고 강조한 것인데요. 자신이 죽음에 이른다 하더라도 스스로 마스크를 안 쓸 자유와 권리는 지켜야겠다는 맥락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들은 우리의 확진자 동선 추적을 한국의 민주주의가 종말을 고했다는 식으로 왜곡하기에 이릅니다.
파리드 자카리아가 논평한 대로, 종래의 신자유주의자들이 흡사 앵무새처럼 부르짖었던 '큰 정부 vs 작은 정부'라는 논법은 팬데믹 상황에서 사실상 무의미해진 상황입니다. 물론 아직도 많은 신자유주의자들은 2008년의 그 끔찍한 사태에서 정부 아니, 국민의 세금으로 자신들을 살려준 것도 망각한 채, 2010년 즈음이 지나자마자 더 이상 정부는 금융 시장에 개입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물론 제가 정부의 금융 시장 개입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에 있어 카라 스위셔는 현재까지의 금융 정책 대부분이 최고 부유층을 위한 것들이었으며, 그러한 가운데 나날이 심화된 소득 불균형에 대한 정부의 어떠한 대책이 없었다는 점을 꼬집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여러 논평들 가운데, 팬데믹 이후의 아메리카 2.0에 대해 냉소하는 부분은 절로 저의 눈길을 끌었는데요. "아메리카 2.0은 뭘까요? 엄청난 로비력, 미다스 같은 엄청난 재산, 많은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능력을 갖춘 거대 기업들로 가득한 나라인가요? 아니면 소득 평등을 이룬 나라일까요?"라는 질문의 진정한 해답은 아주 명확합니다. 존 듀이의 주장대로 많은 시민들이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그리고 카라 스위셔 역시, 부자들이 더욱더 방탄 승용차를 타는 상황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사회 안전망에 대한 함의를 다시금 꺼내 들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민주주의 2.0'의 미래에 대해 열띤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다른 토론자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색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소위 '사회적 신뢰'에 대한 문제인데요. 그의 말대로 라면 이 사회적 신뢰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양자 간에 어느 한쪽이 더 유리하다고 주장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는 중국의 일례를 들며, 그동안의 눈부신 중국의 경제 발전으로 인해 자신들의 정부가 분명 권위주의적인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국인들은 현재의 정치 체제에 신뢰를 느낄 수밖에 없다는 요지였는데요. 단순히 풍족한 돈의 소유를 넘어 전체적으로 삶의 풍요로움을 보장하여 이를 사회적으로 자리매김한 정부에 대해 시민들이 '사회적 신뢰'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그의 분석은 실로 현실적이라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앞선 논평에 대해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있어 유권자들의 투표와도 결부지을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되는데요. 물론 신자유주의 이행 이후, 민주주의 국가들의 좌와 우의 논법이 다소 정치적 본류에서 벗어나게 되고 이런 이념적 선택은 현재의 직면한 경제적 불평등을 어느 한쪽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과거의 미국 리버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셈법에 의거 신자유주의에 대거 투항한 사건을 앞선 현실의 예로 들고 싶은데요. 자크 랑시에르나 샹탈 무페의 언급처럼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우파들의 득세에 진보 좌파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점은 분명한 사실일 겁니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좌파 언론인인 로버트 미지크 역시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요. 그렇지만 최소한의 정치적 신념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리버럴들의 그 같은 투항은 소위 자본주의적 독재와 다름없는 광범위한 이행에 있어 보수는 물론이고 진보 역시 어떠한 견제가 되지 못했다는 불행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그문트 바우만이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더욱 견고화 되기 위해서는 서멘사 파워의 진단처럼 현재 유럽이 직면하고 있는 반자유주의자 혹은 반민주주의자들의 대두에 시민들이 즉각 나설 수 있는 결단이 필요 해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어떤 가치인지에 대해 더욱 고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선 자카리아의 평가대로 팬데믹 상황의 소위 '비상 대책'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소멸시키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비상 대책과 같은 수단을 오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휘두르는 헝가리의 오르반과 같은 자들에 의해서 위기가 짙어질 가능성이 더 높은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민주주의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실패한 것이다"라는 자카리아의 뼈아픈 고백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도널드 트럼프와 오르반의 연결은 이처럼 지독한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이에 필연적으로 우리는 모두의 안전과 공익을 위해 시민들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정치적 공감대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이언 브레먼이 강조하는 대로 미국과 캐나다와 같은 민주적 국가들이 팬데믹 사태로 인해 단번에 권위주의 독재 국가로 나아갈 가능성은 그만큼 희박하다고 보는 것이 옳은 해석일텐데요. 그동안 민주주의를 경험한 시민이 다시 과거로 회귀하거나 독재를 추종하기란 너무나 어렵다는 노엄 촘스키의 주장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좀 더 면밀히 따진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충분한 시스템적 역량과 자원은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민주주의를 시녀처럼 부린 자본주의와 경제적 우월 담론을 거의 비판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시민들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어 보이는 것도 확실합니다. 물론 현재 미국과 같은 로비스트들에 의한 광범위한 금권 정치에 있어 힘의 차이가 분명한 것은 사실이기도 한데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저버릴 수는 없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모두의 안전을 위한 공적인 담론 역시 민주주의가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합니다. 이처럼 팬데믹 사태에서 만약 한국과 대만이 그만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다면 확진자의 동선 파악과 같은 행동에 정부가 쉽게 나서기란 어려웠을 것이란 평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여기에 자주 언급된 한국과 대만의 사례는 충분히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긍정적인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아직도 국내의 많은 이들이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해 상당한 불신을 갖고 있는데 반해 전세계인들이 갖는 우리의 평가는 이처럼 상반되기까지 합니다. 특히나 근래 출판되는 많은 팬데믹 관련 글에서 우리 정부에 대한 대처와 방식에 대해 호감을 표하는 저자들이 많다는 점은 아직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건전하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 우리는 팬데믹 상황에세도 질서정연한 선거도 치루고 시민들 대다수에게 있어 민주주의에 대한 함의 역시 중요한 문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다만, 팬테믹 상황에서 나날이 세를 불린 인터넷 기업들이 민주주의에 초래할 부정적인 전망 또한 다른 논저들에서 처럼 반복되고 있기도 한데요.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국가들이 이런 기술 기반으로 정치를 쥐락펴락 하고 있는 것은 충분히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는 인터넷 기업의 사주들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는 비평은 우리 시민들이 귀담아 들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이익에 따라 규정되는 인터넷 환경의 전반적인 혼란이 민주 정치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영국에는 처칠 수상이 있었다. 두 명의 비범한 정치 지도자가 위기를 틈타서 공공 제도를 강화했던 건 순전히 운이 좋았던 것이다
미국은 국민을 보호하고 안전을 지켜야 할 아주 결정적인 국면에서 최고가 아니라는 게 이 위기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지금은 중국 중심의 세계가 아니다. 미국 중심에서 벗어난 세계일 뿐이다
트럼프가 자신에게 절대 권한이 있다고 떠들 수는 있어도 미국 시스템이 갖춘 강점 덕분에 12시간 내에 주지사 10명이 트럼프를 비난했고 트럼프가 뭐라 말하든 대통령의 선언에 따라 주를 봉쇄하거나 개방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물론 아무도 민주주의에 책임감이 없는 독립적인 관료를 원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겐 잘못된 성장 모델이 있었다. 금융에 의존하는 성장 모델에 깊이 빠져들었다. 인력과 자본의 생산성에 의존하는 성장 모델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어떤 백신을 개발하든 도움을 주기 위해 어떤 검사를 할 수 있든, 서구 사회에는 분명히 그 일을 빨리 해내야 할 도덕적 책무가 있다
팬데믹이 누구의 잘못이었는지 국가 간에 책임 공붕이 벌어질 테고 민족주의를 부채질 하게 될 것이다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미국 뿐 아니라 캐나다, 유럽 국가, 한국, 일본 모든 민주 국가가 함께 그런 접근을 요구했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 민주 국가들이 더 이상 한 팀으로 협력하지 않다 보니 공백이 생겼고, 중국은 그 자리를 채울 준비가 완벽히 되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초기부터 코로나19에 ‘우한 바이러스‘란 이름을 붙여 써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느라 이번 팬데믹에 대한 결속을 다지려 모인 G7 공동 성명에 동의를 거부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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